인 콜드 블러드 트루먼 커포티 선집 4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간만에 만나는 걸작이었습니다. 500p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읽는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책장이 술술 넘어갔습니다. 추석연휴 버스 안에서 그리고 집에서 읽었습니다. 덕분에 오고가는 시간이 심심하지 않았습니다. 


 <인 콜드 블러드>를 읽기 전에 먼저 <카포티>란 영화를 봤습니다. <카포티>는 트루먼 카포티가 살인사건을 취재하고 살인범을 인터뷰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탄생한 책이 바로 <인 콜드 블러드>입니다. 영화 <카포티>는 베넷 밀러 감독 작품입니다. 베넷 밀러는 <머니 볼>, <폭스캐처> 영화의 감독입니다. 세 작품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모두 추천하고 싶은 작품들입니다. 


 영화 <카포티>에서 트루먼 카포티가 무대에서 <인 콜드 블러드>를 낭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문장이 너무 좋아서 "다음 책은 무조건 <인 콜드 블러드>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카포티를 연기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보통 영화를 먼저보고 책을 읽으면 책이 감흥이 떨어지거나 그 반대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습니다. <인 콜드 블러드>는 영화를 보고 봤음에도 전혀 감흥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영화에서는 결코 보여줄 수 없는 방대하고 촘촘한 이야기들이 펼쳐져서 좋았습니다. 책과 영화가 완전히 같은 내용이 아니라서 같이 감상해도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카포티>는 작가 카포티와 살인범 중 페리를 중점적으로 다뤘습니다. <인 콜드 블러드>는 작가 카포티가 전혀 등장하지 않고 오로지 3인칭 관찰자 시점에 머뭅니다. <인 콜드 블러드>는 살해당한 가족과 살인범, 마을 사람들과 형사들, 재판과정까지 풍성하게 다루는 데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저도 이 책을 계기로 카포티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저는 카포티가 이 책의 분위기와 맞게 서늘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작가로 느껴졌습니다. 하루키씨가 카포티를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은 이유를 알 거 같습니다. 트루먼 카포티는 오드리 헵번 주연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원작 동명소설의 작가입니다. 


 (아래부터는 스포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살인범은 어떤 사람들인가? 어떤 심리와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가? 살해당한 가족들을 보면서도 인생이란 참으로 한치 앞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해당한 가족들은 네 가족입니다. 작은 마을의 농장주이자 유지인 한 남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아들, 딸이 희생자였습니다. 살인은 어느 날 한 밤 중에 벌어집니다. 살해당한 네 명 그 누구도 오늘이 자신의 마지막 날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딸 낸시는 소위 엄친아로 이쁘고 공부잘하고 성격도 좋고 만능인 아이였습니다. 자신이 죽기 전까지는요. 


 살인범은 두 남성입니다. 딕과 페리. 무자비한 살인을 저지른 살인범들입니다. 하... 하지만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딕은 사고로 머리를 다친 후부터 조금 이상해집니다. 물론 그 전에도 그리 성실한 축은 아니었지만 머리를 다친 후에는 좀 더 과격해지고 수표를 남발해서 쓰다가 교도소에 가게됩니다. 재판 당시는 1960년대였습니다. 그 때는 정신이상으로 사형을 면하지 못했지만 오늘날에는 만약 좋은 변호인단이 붙어서 사고 전후로 딕의 달라진 점들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면서 변호를 하면 정신이상 판정을 받진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페리는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예술적인 자질이 있었지만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었습니다. 어린시절 선원으로 일하는 도중 성인남자들에게 수차례 강간을 당했습니다. 이후 군인으로 한국전쟁에도 참전했습니다. 일가족을 살해하기 전에 그는 이미 살인경험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군 전역 후 오토바이사고로 다리를 절게되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절도로 교도소에 들어가 딕을 만나게 됩니다. 페리는 평생 누구와도 사랑다운 사랑, 우정다운 우정을 맺지 못했습니다. 열등의식과 피해의식을 가진 채 세상에 대한 분노를 간직하고 살았습니다. 그 분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갑자기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페리 역시 오늘날에는 정신이상 감정을 받아서 사형을 면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페리와 페리의 삶을 보면 글쎄요. 트루먼 카포티의 말이 떠오릅니다. 카포티는 영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페리와 나는 같은 집에서 살았던 형제같다. 어느 날 그는 뒷문으로 나가고 나는 앞문으로 나갔다." 카포티도 페리처럼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그는 친척에게 맡겨져 교육과 양육을 받으며 자랄 수 있었습니다. 페리는 부모님의 이혼 후 고아원 등으로 보내져 학대와 억압을 받으며 자랍니다. 만약 페리도 적절한 교육과 사랑을 받으며 자랐으면 뛰어난 예술적 성취를 보여줬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 생각때문에 더 안타까웠습니다.


 만약 우리가 페리와 같은 삶을 살았더라면 우리는 과연 지금처럼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삶에서 최소한의 인간적인 조건은 지켜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를 무시할 경우 누군가는 반드시 그 댓가를 치루게 될지도 모릅니다. 살인범을 변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살인은 너무나 큰 범죄이며 유가족들에게 큰 아픔입니다. 하지만 살인범은 태어날 때부터 살인범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이코패스들조차도 어린 시절 적절한 사랑과 교육을 받으면 극단적인 살인범은 되지 않고 정상인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문장 자체가 월등히 훌륭하고 좋았습니다. 책과 영화 모두 추천하고 싶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19-09-18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한번 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래 읽은 <법정에 선 뇌> 주제와 유사할 것 같습니다.
법학과 뇌과학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볼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

고양이라디오 2019-09-19 00:02   좋아요 0 | URL
영화와 책 둘 다 강추입니다^^ 각기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