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빛과 글쓰기
목포에 사는 형이 지난주에 감귤 한 상자 부쳐 주었다. 생극면에 사는 아버지 어머니가 어제 감귤 한 상자 가져다 주셨다. 형은 택배로 부쳐 주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김치까지 한 통 함께 들고 오셨다. 두 분은 짐만 내리고 금세 가시고, 아이는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더 안 놀고 홀랑 가신다며 엉엉 꺼이꺼이 운다.
지난주에 형한테서 귤을 한 상자 받고는 곧바로 꺼내어 쟁반에 차곡차곡 쌓았다. 상자에 그대로 놓으면 밑바닥 귤이 물러터지면서 곰팡이가 슬기 때문이다. 지난달 무극 장날에 귤을 한 상자 사들여 집에 놓고 신나게 먹는데, 바닥이 보일 무렵 바닥에 있던 귤이 짓물러졌더라. 이제껏 숱하게 겪고 뻔히 알면서 귀찮거나 번거롭다며 쟁반에 옮겨 담지 못해 왔다.
쟁반에 담긴 귤은 참 소담스러우며 예쁘다. 한참 흐뭇하게 바라보는 애 아빠한테 옆지기가 한 마디 한다. 그냥 쌓으면 안 되고 하나하나 씻어서 쌓아야 한다고. 생각해 보니 그렇다. 귤알을 하나하나 씻어서 모시 천으로 물기를 닦은 다음 쌓아야겠지. 에휴. 또 일이로구나. 귤알 하나 먹기 참 까다롭구나.
투덜투덜하면서도 쟁반 하나를 부엌으로 들고 가서 개수대 그릇에 쏟아붓는다. 하나하나 물로 씻는다. 이런 다음 모시 천으로 물기를 닦아 쌓는다. 쟁반 둘을 이렇게 한 다음 허리를 토닥인다. 좀 쉬자. 이렇게 쟁반 가득 쌓은 귤을 하나 반쯤 먹을 무렵 내 어버이한테서 귤 상자를 새로 받는다. 몹시 고맙다고 말씀을 하고 생각을 하는 한편, 내 머리로 스치는 또다른 생각이란, ‘아, 이 귤도 하나하나 씻고 닦아서 쟁반에 담아야 하는구나!’
상자에 담긴 귤을 쟁반으로 옮겨 놓고 보면 퍽 예쁘다. 이 귤을 물로 겉을 씻고 천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다시 쟁반에 쌓아 놓으면 한결 어여쁘다. 아이는 알까. 알아주려나. 어쩌면 모를 테지. 아무래도 모르겠지. 나중에는 알아주려나. 네 살 열네 살 스물네 살쯤 나이가 차면 바야흐로 알아보려나. 아이야, 나무에 대롱대롱 달린 귤은 나뭇잎이랑 나뭇가지랑 어울리면서 매우 곱고, 쟁반에 알뜰히 쌓아올린 귤은 어머니나 아버지 꾸덕살 손을 거치면서 아주 예쁘장하단다. (4343.12.2.나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