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집이자 열쇠집을 들르다. 열쇠를 두 벌 맞추고, 아이 도장을 하나 파다.

 - 2010.12.15. 인천 중구 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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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과 글쓰기


 헌책방에서 책을 살핍니다. 손님이 거의 없는 헌책방 골마루를 바지런히 오가면서 책을 돌아봅니다. 이 책도 반갑고 저 책도 고맙습니다. 눈이 맑게 트이고 넋이 밝게 열립니다. 왜 이 나라 많은 사람들은 이 애틋한 헌책방 헌책을 알아보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 따위는 할 겨를이 없습니다. 내 눈앞에 놓인 이 살가운 헌책을 하나하나 쓰다듬지 못하니 서운하고 아쉬우며 안타깝습니다. 누리려 하지 못하는 사람한테 억지로 누리라 할 수 없습니다. 나 스스로 나부터 즐거이 누리면서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온 대로 책방마실을 합니다. 어릴 때부터 익숙한 대로 책방으로 나들이를 합니다. 사람들 누구나 그때그때 제 삶에 걸맞는 책을 바라거나 찾습니다. 어릴 적부터 익히 가까이하던 책을 나이든 뒤에도 익히 가까이합니다.

 도서관에서 책읽기를 즐기며 컸으면 어른이 되어도 도서관을 사랑합니다. 여느 새책방에서 책읽기를 맛보며 자랐으면 어른이 된 뒤에도 여느 새책방을 찾아다닙니다. 헌책방에서 책을 새삼스레 마주하며 살았으면 어린이일 때뿐 아니라 어른일 때에도 헌책방 헌책을 알아보거나 꿰뚫 수 있습니다.

 태어나기를 도시에서 태어날 뿐더러, 자라기를 도시에서 자라는 데다가, 어른이 되어 큰학교나 회사를 다닐 때에도 도시에서 잠자고 먹고 마시며 다니니까, 도시 삶에 익숙합니다. 웬만한 도시사람들은 시골살이를 모를 뿐더러 잘못 알거나 엉터리로 알거나 엉뚱하게 여기곤 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헌책방 헌책을 제대로 톺아보지 못하는 대목을 섣불리 나무라거나 괜히 안쓰러이 여길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헌책방마실을 했기 때문에, 헌책방에서 고른 헌책들을 가방에 꾸리거나 끈으로 묶어 시골집으로 가져가지 못합니다. 택배로 맡겨야 합니다. 큼직한 상자 하나에 자그마한 상자 하나가 나옵니다. 책값을 치르고 택배값을 냅니다. 괜시리 뿌듯합니다. 어쩐지 홀가분합니다. 배부르고 든든합니다.

 누군가는 값싸게 사들여서 좋다고 합니다. 아마 값싸게 사들여 좋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값싸게 사들여 좋다면 고물상이나 폐지상에서 짐차로 잔뜩 들여놓을 노릇입니다. 값싸게 사들여 좋은 책이라면, 언제나 잔뜩 사들일 텐데, 언제나 잔뜩 사들인 책을 집에 어떻게 건사하려나요. 책은 값싸게 사들일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추억을 먹는다고 합니다. 아마 추억, 그러니까 옛생각을 떠올릴 만합니다. 그렇지만 옛생각이란 무엇이려나요. 지난날 무슨 일을 하며 무슨 책을 읽었는가요. 나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오늘 읽을 책을 살 뿐입니다. 나는 오늘을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오늘 손에 쥘 책을 장만할 뿐입니다. 판이 끊어진 책이건 거의 안 팔리거나 사랑받지 못한 책이건 무슨 대수랍니까. 내 가슴을 후벼파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책이면 다 좋습니다. 내 가슴으로 스며드는 사랑스러운 넋을 실은 책이면 모두 반갑습니다. 내 가슴을 건드리지 못하는 책일 때에는 베스트셀러이건 스테디셀러이건 부질없습니다. 신문기자들이 신문 한 쪽에 대문짝만하게 소개글을 적어 주었다 해서 이런 책을 굳이 나까지 읽을 까닭이 없어요. 나는 내 삶을 사랑하고 아끼며 북돋우고자 책을 읽습니다. 나는 내 삶을 즐기고 돌보며 살찌우고자 책을 가까이합니다. 나는 내 삶을 믿고 살피며 좋아하니까 책을 마주합니다.

 헌책방은 사랑이고 헌책은 삶이며 헌책방 일꾼은 사람입니다. 사랑과 삶과 사람을 한 자리에서 곱게 맞아들이는 마실이 헌책방마실입니다. 고마우면서 반가운 책을 언제나 만나니까 나부터 고마우면서 반가운 넋을 담아 글 한 줄 끄적입니다. 즐거우면서 사랑스러운 책을 늘 얻으니까 나 스스로 즐거우면서 사랑스러운 얼을 실어 글조각 매만진답시고 바둥거립니다.

 돈 천 원으로 아주 눅은 책 하나 헌책방에서 장만하여 선물합니다. 때로는 몇 만 원에 이르는 책 하나 헌책방에서 사들여 선물합니다. 선물받은 분들은 천 원짜리 헌책이건 십만 원짜리 헌책이건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돈값이 아닌 책을 받기 때문입니다. 낡거나 헐거나 반지르르하거나 번쩍이거나 하는 물건이 아닌 책에 깃든 이야기를 받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리 아이가 어릴 적부터 헌책방을 함께 다닐 수 있어 기쁩니다. 나는 우리 아이가 어린 날부터 헌책방을 함께 다니며 헌책방 일꾼한테서 사랑을 받고 헌책방 다른 책손한테서 귀여움을 받으니 참으로 즐겁습니다.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헌책방마실을 이끌어 줄 수 있는 대목 하나 고맙습니다. 김치를 담글 줄 몰라 김치 잘 먹는 아이한테 김치를 제대로 못 먹이는 바람에 할머니 두 분한테서 김치를 얻어 겨우 먹이지만, 자동차 굴릴 돈도 없고 자동차 굴릴 면허증조차 없으니 노상 아이가 두 다리 아프도록 걸리면서 마실을 하지만, 은행계좌는 텅텅 비어 얼음과자이든 까까이든 무어든 마땅히 사 주지 못할 뿐더러 시골집 썰렁한 방을 조금이나마 따숩게 덥히지 못하며 옷을 여러 벌 껴입히며 보내지만, 이렇게 엉터리 어버이이지만, 다문 한 가지 헌책방마실 하나는 살짝이나마 맛보도록 해 줄 수 있어 하늘에 계신 아버지한테도 고맙고 땅과 바다에 계신 아버지한테도 고맙습니다. 누구보다 내 곁에서 함께 살아가 주는 옆지기한테 고맙습니다. (4343.12.2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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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쓰는 마음


 군대에서는 날이면 날마다 눈을 쓸었습니다. 아니, 눈을 삽으로 퍼서 옮겼습니다. 말 그대로 펑펑 쏟아지며 그득그득 쌓이는 눈은 빗자루로 쓸어낸다고 치울 수 없습니다.

 군대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온 뒤에는 눈쓸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딱히 눈을 쓸고프지 않았습니다. 여느 삶자리에서 맞이하는 눈은 ‘눈답다’고 느끼지 않기도 했고, 가뜩이나 여느 삶자리에는 눈도 거의 안 오는데 이 눈을 왜 치우는가 싶었습니다. 눈을 안 치우고 하루나 이틀만 있어도 저절로 녹기 마련입니다. 요즈음 겨울은 겨울이면서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아니라, 며칠쯤 있으면 날이 풀려 눈이 다 녹습니다. 때로는 눈이 쌓인 그날 바로 다 녹아서 사라지곤 해요. 호들갑을 떨면서 화학방정식 소금을 뿌려대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자동차가 다녀야 한다고들 하니까 눈을 치우려 합니다. 사람이 아닌 자동차 때문에 눈을 치웁니다. 왜냐하면 사람 발자국이 난 자리는 비질을 몇 번 하면 다 벗겨지지만, 자동차가 밟은 자리는 비질로는 벗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삽으로 긁어도 잘 안 벗겨져요.

 시골집에 보슬보슬 내리다가 소복소복 내린 눈을 바라봅니다. 눈이 다 멎은 다음 빗자루를 들고 씁니다. 멧자락 집으로 들어설 택배 짐차들이 눈 때문에 못 온다고 핑계를 댈까 싶어 눈을 씁니다. 이토록 눈이 왔어도 우체국 택배는 제때 잘 왔으나 다른 택배는 전화도 없고 오지도 않습니다. 시골마을에서 눈이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핑계거리인가 봅니다.

 맨손으로 눈을 쓰니까 손이 얼어붙습니다. 아니, 손가락이 얼어붙습니다. 장갑을 낀다고 달라지지 않습니다. 장갑을 끼어도 손가락 얼기는 매한가지입니다. 한참 쓸고 나서 손가락을 녹여야 합니다. 군대에서도 그랬으니까요.

 아이는 눈을 쓸어 말끔한 자리를 밟지 않습니다. 아빠가 일부러 안 쓸어 놓은 자리만 밟습니다. 아빠는 우리 집 마당자리는 사람 걷는 길만 조금 쓸고 다른 데는 고스란히 남겼는데, 아이는 딱 요 자리만 밟습니다. 그래, 너를 생각해서라도 아빠는 눈을 쓸기 싫어. 눈이 오면 우리 집은 눈집이 되어 언제라도 눈을 즐기면서 살아간다면 좋겠지. (4343.12.2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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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2.16. 인천 동구 금곡동. 

 한겨울 복판에도 꽃은 피고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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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빛과 글쓰기


 여러 날 바깥마실을 한 뒤 집으로 돌아오니 물이 얼었다. 물꼭지를 더 틀었어야 하나 보다. 언 물은 좀처럼 녹아 주려 하지 않는다. 보일러는 돈다. 어디에서 얼었을까. 무거운 몸으로 집과 보일러방을 오가며 수선을 피우지만 끝내 두 손을 들고 자리에 눕는다. 이동안 날은 풀릴 낌새가 없이 새눈이 보슬보슬 내린다. 눈은 소리없이 내린다. 아니, 새눈은 아주 고즈넉히 내린다. 빨랫줄과 마당과 멧기슭과 나무와 텃밭과 계단논과 지붕에 아주 조용조용 내린다. 집하고 보일러방을 오가던 내 머리와 어깨와 발등에까지 사뿐사뿐 내린다. 어느새 되쌓이고 어느덧 뽀독뽀독 소리가 난다. 요사이는 시골에서도 사람 다니는 길이 아닌 자동차 다니는 길로 바뀐 나머지, 사람이 걸어다니면서 뽀독뽀독 소리를 즐기며 겨울눈을 맞아들이기 어렵다. 서울 같은 도시 찻길은 얼른 ‘화학방정식 소금’을 뿌리니까 눈밭이 없고, 인천 같은 도시 골목길은 바삐 연탄을 깨부수니까 눈밭이 없으며, 시골길에는 흙을 뿌리니까 눈밭이 없다.

 화학방정식 소금물이 흐르는 큰도시 찻길과 거님길은 질퍽질퍽하다. 이런 데에서 자칫 미끄러지면 옷을 모조리 버린다. 눈 내린 길을 거닐며 냄새도 좋지 않다. 연탄재로 얼룩덜룩한 길은 살짝 미끌미끌하지만, 이 길에서 미끄러져도 옷이 그닥 버리지는 않는다. 눈 덮인 길을 걸을 때 눈 내음을 살짝 맡는다. 흙 깔린 시골길에서 넘어지면 툭툭 털면 그만이다. 곱다시 쌓인 눈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눈빛 하얀 솜이불 누리에서 내 눈빛이 맑을 수 있도록 다독이고 싶구나. (4343.12.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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