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과 글쓰기


 여러 날 바깥마실을 한 뒤 집으로 돌아오니 물이 얼었다. 물꼭지를 더 틀었어야 하나 보다. 언 물은 좀처럼 녹아 주려 하지 않는다. 보일러는 돈다. 어디에서 얼었을까. 무거운 몸으로 집과 보일러방을 오가며 수선을 피우지만 끝내 두 손을 들고 자리에 눕는다. 이동안 날은 풀릴 낌새가 없이 새눈이 보슬보슬 내린다. 눈은 소리없이 내린다. 아니, 새눈은 아주 고즈넉히 내린다. 빨랫줄과 마당과 멧기슭과 나무와 텃밭과 계단논과 지붕에 아주 조용조용 내린다. 집하고 보일러방을 오가던 내 머리와 어깨와 발등에까지 사뿐사뿐 내린다. 어느새 되쌓이고 어느덧 뽀독뽀독 소리가 난다. 요사이는 시골에서도 사람 다니는 길이 아닌 자동차 다니는 길로 바뀐 나머지, 사람이 걸어다니면서 뽀독뽀독 소리를 즐기며 겨울눈을 맞아들이기 어렵다. 서울 같은 도시 찻길은 얼른 ‘화학방정식 소금’을 뿌리니까 눈밭이 없고, 인천 같은 도시 골목길은 바삐 연탄을 깨부수니까 눈밭이 없으며, 시골길에는 흙을 뿌리니까 눈밭이 없다.

 화학방정식 소금물이 흐르는 큰도시 찻길과 거님길은 질퍽질퍽하다. 이런 데에서 자칫 미끄러지면 옷을 모조리 버린다. 눈 내린 길을 거닐며 냄새도 좋지 않다. 연탄재로 얼룩덜룩한 길은 살짝 미끌미끌하지만, 이 길에서 미끄러져도 옷이 그닥 버리지는 않는다. 눈 덮인 길을 걸을 때 눈 내음을 살짝 맡는다. 흙 깔린 시골길에서 넘어지면 툭툭 털면 그만이다. 곱다시 쌓인 눈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눈빛 하얀 솜이불 누리에서 내 눈빛이 맑을 수 있도록 다독이고 싶구나. (4343.12.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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