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꽃 책읽기

 


  참깨를 심어 참깨를 거둔다. 들깨를 심으면 들깨를 거둔다. 그런데, 참깨나 들깨를 따로 안 심었는데 참깨나 들깨가 자라나곤 한다. 사람이 하나하나 손으로 심어도 자라나지만, 참깨와 들깨 스스로 잎을 틔우고 줄기를 올린 다음 꽃을 피우고 나서 씨앗을 맺어 퍼뜨리면 이듬해에 스스로 싹이 돋기 마련이다.


  시골이든 도시이든, 여느 사람이 바라보기에 뜬금없다 싶은 데에서 ‘둥글레풀’이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곤 한다. 민들레나 쑥 또한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생각하지 못하던 데에서 피어나곤 한다. 그렇지만, 민들레나 쑥은 스스로 생각을 기울여서 그곳에서 자라난다. 그리고, 사람들 가운데 어느 누구는 도시 곳곳이 온통 시멘트로만 덮이기보다는 풀이 함께 있기를 바라곤 하는데, 이 바람이 솔솔 맺혀 ‘돌 틈 들꽃’이 되곤 한다. 시골에서는 들사람이 들마음을 펼치며 들꽃이 흐드러지곤 한다.


  사랑을 심어 사랑을 거둔다. 내가 심은 마음씨앗이 사랑이라면 사랑을 거둔다. 나는 사랑이라고 말하며 심었으나 정작 속으로는 사랑 아닌 다른 무엇을 생각했다면, ‘입으로 말한 사랑’이 아닌 ‘속으로 생각한 다른 무엇’이 자라난다. 내가 심었으니 내가 거두고, 내가 뿌렸으니 내가 맺는다.


  좋고 나쁨은 없다. 옳고 그름은 없다. 참깨풀이 맺는 참깨풀꽃이 들깨풀이 맺는 들깨풀꽃과 견주어 더 예쁘거나 덜 곱지 않다. 참깨꽃이 복숭아꽃보다 덜 곱지 않다. 참깨꽃이 감꽃보다 더 예쁘지 않다. 참깨꽃은 참깨꽃이요, 참깨꽃은 참깨를 맺는 씩씩한 사랑이다. (4345.8.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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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8-30 12:21   좋아요 0 | URL
참깨꽃 소박하니 곱네요 첨보아요

숲노래 2012-08-30 12:32   좋아요 0 | URL
사람들이 깨를 먹을 때에, 또 깻잎을 먹을 때에,
깨꽃이 얼마나 고운가를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늘바람 2012-08-31 12:21   좋아요 0 | URL
님 덕분에 저도 이제 그리 생각할 것 같습니다
 


 거센 비바람 책읽기

 


  거센 바람이 분다. 빗줄기는 그리 굵지 않다. 이런 비바람 날씨인데도 풀벌레가 운다. 어디서 울까. 우리 집 처마 밑이나 서까래에서 울까.


  이 바람에 웬만한 나무는 뽑히지 않고, 웬만한 풀은 눕지 않는다. 니무와 풀은 비바람하고 언제나 한몸이었으니, 바람결 따라 이리저리 춤추다가는 가만히 선다.


  비바람 결에 맞추어 전깃불이 꺼지곤 한다.전깃불 꺼지면, 먼저 물이 끊긴다. 땅밑물도 ‘전기 먹는 무자위’로 뽑아올리니까. 다음으로 냉장고를 못 쓴다. 먹을거리를 하루조차 건사하지 못한다. 과학문명과 현대기술은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가며 먹고사는 길을 밝힌다 할 수 있을까. 제도권학교뿐 아니라 대안학교도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칠까. 참답게 먹고 착하게 입으며 아름답게 집짓는 길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학교는 몇 군데나 될까. 크디큰 비바람이 닥친다며 서울·경기 쪽 학교는 일찌감치 아이들더러 학교에 오지 말고 집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단다. 휴교령. 웃기는 노릇이다. 크디큰 비바람은 이제 막 제주에 닿았을 뿐인데. 서울·경기 쪽 학교가 쉰다고 하고서 한참 뒤, 우리 마을 면소재지 초등학교도 쉰다고 마을방송으로 알린다. 그러나 중·고등학교도 쉬는지 잘 모르겠다. 고3 아이들은 비바람이 몰아치건 말건 수험공부를 해야 할까. 지붕에서 비가 새고 전기가 끊어져도 고3 아이들은 대학바라기 시험문제를 풀어야 할까.


  냇물이 불고, 논마다 벼가 쓰러지며, 골짝은 흘러넘쳐 멧자락이 무너지더라도, 주식시장은 열려야 할까. 이런 삶터에서 프로야구나 프로축구 경기를 치러야 하나.


  지구별 사람들은 어떤 책을 쓰고 어떤 책을 읽는가. 한국땅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이야기하고 어떤 책을 아로새기는가. 사람이 사람답게 되어 살아가는 길을 어느 책에 밝히는가. 사람이 사람다운 사랑을 빛내며 어깨동무하는 꿈을 어느 책에 갈무리하는가. (4345.8.2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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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심 책읽기

 


  네 식구 나란히 걷는다. 옆마을 논길을 걷고 밭 사이를 걷는다. 어느 논둑에 몹시 고운 빛깔과 냄새를 나누어 주는 꽃이 있어서 한참 들여다본다. 처음에는 쑥꽃인가 싶더니, 꽃잎이 붙은 줄기를 찬찬히 더듬으니 덩굴꽃이다. 어느 덩굴꽃일까. 이렇게 작은 꽃을 피우는 덩굴풀은 어떤 열매를 맺을까. 우리 집뿐 아니라 이웃 시골집 돌울타리를 타고 꽃을 피우는 하늘타리하고 같은 갈래인 덩굴풀일까. 풀이름 또는 꽃이름이 궁금해서 마을 할머님한테 여쭌다. 마을 할머님은 “지심이여, 지심.” 하고 말씀한다. 딱히 이름을 알 까닭 없이, 논밭에서 뽑아야 할 ‘지심(김)’이라고 한다.


  엉겅퀴나 지칭개도 언제나 지심이 되어 뽑힌다. 갓이나 유채도 따로 나물이나 김치를 담가 먹지 않으면 지심으로 여겨 뽑는다. 모시는 이제 거들떠보는 사람 없을 뿐 아니라 아주 빨리 훌쩍 자라니 낫으로 치거나 약을 뿌려 죽인다. 깻잎만 하더라도 다 못 먹는 판이니 모시잎까지 먹으려 하는 시골사람이란 만날 길이 없다. 생각해 보면, 깻잎뿐 아니라 콩잎도 고추잎도 다 먹는 잎이다. 어느 잎이든 다 먹는 잎이요, 밥이 되는 잎이 있고 약이 되는 잎이 있다.


  할머니들이 지심이라 하는 덩굴꽃 두 줄기 꺾는다. 한 줄기는 작은아이 손에 쥐어 준다. 한 줄기는 큰아이 손에 쥐어 준다. 두 아이는 지심꽃을 들고 한참 재미나게 논다. (4345.8.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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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시풀 나물비빔 책읽기

 


  마당 가장자리 꽃밭에서 자라는 부추풀 언저리에 모시풀이 함께 자란다. 모시풀은 키가 아주 잘 자란다. 어느새 어른 키높이가 된다. 어른 키높이쯤 되면 모시풀 줄기는 몹시 억세다. 아마 옛사람은 어린 모시풀은 잎을 뜯고 줄기를 꺾어 나물비빔으로 먹었을 테며, 이렇게 먹고도 잘 자라서 억센 줄기가 높이높이 자랐을 때에는 천을 짤 실을 얻었겠지.


  여린 잎을 똑똑 딴다. 여른 줄기를 톡톡 끊는다. 물에 잘 헹구어 토막토막 썬다. 다른 풀과 섞어 맛나게 나물비빔 먹는다. 모시풀잎은 깻잎과 다르다. 참깻잎이랑 들깻잎이랑 서로 다르다. 모양새랑 크기도 다르지만 잎사귀를 쓰다듬는 느낌하고 냄새도 다르다.


  그렇지만 모시풀을 나물비빔으로 즐겁게 먹은 지 아직 얼마 안 된다. 어느 풀이든 맛나게 먹을 수 있는데, 맛나게 먹는 풀이라고 느끼지 못한 채 키만 멀뚱멀뚱 자라도록 내팽개치기 일쑤였다.


  모시풀꽃은 어떻게 생겼는지 아직 구경하지 못했다. 즐겁게 뜯어먹다가 가을을 맞이하면 집 둘레 모시풀이 맺는 몽우리랑 봉오리를 구경할 수 있겠지. 모시풀은 나물비빔이 되어 내 몸으로 들어온다. 모시풀이랑 나랑 한몸이 되고, 내 마음은 모시풀 푸른 잎사귀 되어 하늘바라기를 한다. (4345.8.2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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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에 한 줄, 반갑게 읽는 책

 


  두 아이 새근새근 자는 새벽녘에 조용히 일어납니다.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습니다. 희뿌옇게 트는 동에 기대어 책을 펼칩니다. 헌책방에서 고맙게 만난 《바보라도 살고 있는 거야》(성광문화사,1992)를 몇 쪽 읽습니다. 이 책을 쓴 일본사람 후꾸이 다쯔우(福井達雨) 님은 1962년에 ‘지양학원’이라 하는 장애 어린이 보육원을 열었습니다. 일본에서도 아직 장애교육이 제대로 자리잡지 않던 무렵이라 사회와 정부와 마을과 여느 어버이조차 장애 어린이를 바라보는 눈길을 차갑기만 했다는데, 바로 이 차갑기만 하던 눈길이 슬프고 안타까운 나머지, 모든 아이들이 골고루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을 꿈꾸었다고 해요. “진짜 법률은 어떠한 작은 생명이라도 살리는 것입니다(67쪽).” 하고 말하며 공무원과 의사하고 싸웁니다. 무엇보다 후꾸이 다쯔우 님을 비롯해 지양학원 교사들은 “이 아이들은 육체가 아니고, 한 생명입니다(51쪽).” 하고 말할 줄 압니다.


  날마다 몇 쪽씩 읽으며 새 기운을 북돋웁니다. 책에 나오는 일본 장애 어린이도, 우리 집에서 이른새벽부터 씩씩하게 일어나 개구지게 노는 아이들도, 모두 아름다운 목숨이에요. 맑은 사람이고 밝은 눈빛이며 고운 몸뚱이입니다. 아이들은 어른처럼 시계를 바라보며 더 자거나 덜 자려 하지 않아요. 몸이 개운하게 잠을 깼으면 놉니다. 조금이라도 기운이 있으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나무토막을 쌓고 무너뜨리며, 책을 읽기도 하고, 연필로 곳곳에 그림을 그립니다. 넘치는 기운을 마음껏 온 사랑으로 누립니다.


  홍동기 님이 그리고 가리 님이 글을 넣은 《술술술》(미우,2012)이라는 만화책 첫째 권을 읽다가, 238쪽에서 “단맛에 길든 사람들 미각이 원래의 막걸리를 독하다고 느끼는 거지. 그러니까 너도 나도 달게 만드느라 이것저것 섞고. 하지만, 내가 마신다고 생각하면 나는 못 섞어. 쌀도 수입쌀을 쓰면 수지타산이 맞지만, 내가 농사지은 쌀에는 쥐가 들어도 수입쌀 더미엔 쥐가 안 들더라구. 그걸 보고는 수입쌀이 무서워서 내가 지은 쌀로만 만들어요. 사람 몸에 들어가는 거니까 말여.” 하는 대목을 봅니다. 좋은 기운으로 밥을 짓습니다. 좋은 생각으로 ‘밥이 될 쌀이 되는 벼’를 흙(논)에 심어 거둡니다. 볍씨를 갈무리해서 모판을 만들 때부터 언제나 좋은 꿈을 꿉니다. 나쁜 꿈이나 나쁜 생각이 깃들면, 좋은 밥을 짓지 못해요. 맨 처음 씨앗일 때부터 좋은 손길로 좋은 흙에 심으려고 마음을 기울여요. 그러니까, 누구나 흙을 일구는 사람이었던 지난날 시골마을에서 ‘손수 지은 곡식’으로 술 한 동이를 빚을 때에는 언제나 가장 좋은 기운이 서린 사랑으로 술을 빚었으리라 느껴요. 내가 먹을 곡식을 내가 살아가는 땅에서 일구어요. 내가 먹을 곡식을 갈무리해서 내가 마실 술을 내 보금자리에서 빚어요. 내가 사는 마을 들판과 멧골을 함부러 더럽히는 사람이란 없어요. 내가 사는 보금자리를 예쁘고 정갈히 건사하기 마련이에요. 내가 먹고, 내 어버이가 먹어요. 내가 마시고, 내 아이들이 마셔요. 내가 먹고, 내 동무하고 나누어요. 내가 마시고, 내 이웃하고 함께 즐겨요.


  어니스트 톰슨 시튼 님이 쓴 《뒷골목 고양이》(지호,2003) 36쪽을 살피면, “우리에 갇힌 어미 고양이는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먹을 것과 물은 충분했지만, 자유가 몹시도 그리웠다.”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마을 고양이들은 우리 집 마당도 우리 옆집 마당도 홀가분하게 드나듭니다. 어느 때에는 돌로 쌓은 울타리를 새끼들 이끌고 천천히 밟으며 지나갑니다. 때로는 돌울타리를 잘못 디뎌 와르르 무너뜨립니다. 마을에 들고양이가 여럿이지만, 가을에 나락을 베어 푸대에 담으면 으레 쥐들이 쏠아 쌀알을 파먹는답니다.


  빗소리를 듣습니다. 거세게 부는 바람 따라 세차게 지붕과 마당을 때리는 빗줄기 소리를 듣습니다. 한창 이삭이 팰 무렵 이렇게 거센 비바람이 찾아들면 어쩌나 싶지만, 들판에서 흙에 뿌리내리고 햇살을 바라보는 볏포기는 씩씩하게 비바람을 맞아들입니다. 작은아이는 가슴에 안고 큰아이는 걸리며 논밭 사잇길을 걷습니다. 구름을 올려다봅니다. 바람이 부는 결을 헤아립니다. 이 빗속에서도 노랫소리 나누어 주는 풀벌레를 생각합니다. 빗속 풀벌레 노랫소리는 어느 살림집 처마 밑에서 들려올까요. 아니면 마루 밑에서 들려올까요. 아니면 감나무 밑이나 석류나무 밑에서 들려올까요. 한여름에 깨어나 나무를 타고 오르던 매미들은 세찬 비바람을 어디에서 그을까요. 나뭇가지 한쪽에 조그맣게 웅크리면서 날이 개기를 기다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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