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꽃 책읽기

 


  사람들이 꽃 이야기를 더는 하지 않는 이른가을, 들깨는 조용히 꽃망울을 터뜨린다. 줄줄이 작은 꽃송이를 맺는다. 들깨는 꽃이 지고 자그마한 열매가 맺었을 적에 꽃송이를 통째로 꺾어서 튀겨 먹어도 맛나지. 잎사귀를 먹어도 즐겁고, 가만히 냄새를 맡아도 좋다. 참깨꽃처럼 꽃송이가 커다랗지 않아 눈에 잘 안 뜨일 만한 들깨꽃이지만, 한여름부터 이른가을까지 붉은 꽃망울 곱게 드리우는 봉숭아하고 나란히 밭두둑을 빛낸다. (4345.9.7.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별을 바라보는 책읽기

 


  옆지기 어버이 살아가는 경기도 일산에서도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면 별을 만날 수 있다. 아파트가 비죽비죽 올라선 틈바구니에서도 별 한두 조각 찾을 수 있다. 내 어버이 살아가는 충청북도 음성에서도 하늘을 찬찬히 올려다보면 별을 마주할 수 있다. 높고낮은 멧봉우리 사이사이 별 여러 조각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별이 이것밖에 없었을까. 별이 이것밖에 안 보일까.


  밤이 되면 어느 곳이든 깜깜하다. 어둠이 내린다. 다만, 깜깜해지더라도 등불을 켜며 밝히는 데가 있고, 어둠이 내려도 수많은 가게마다 환하게 불빛을 쏘는 곳이 있다.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등불을 켠 밑에 서면 밤하늘을 바라보지 않는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불빛 환한 가게 둘레에 설 적에는 밤하늘을 느끼지 않는다. 우리를 둘러싼 별빛을 느끼지 않고, 우리를 어루만지는 달빛을 헤아리지 않는다.


  내 어버이 시골집 마당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생각한다. 아침과 낮에 고운 햇살을 느끼지 않는 데에서는 저녁과 밤에 보드라운 달무늬와 별무늬를 느끼지 못하는구나 싶다. 아침과 낮에 고운 햇볕과 바람과 흙을 누리지 못하는 데에서는 저녁과 밤에 보드라운 밤노래와 밤바람과 밤구름을 느끼지 못하는구나 싶다.


  해를 잊는 곳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달을 잃고 별을 등지는 데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마주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해가 흩뿌리는 빛과 볕을 사랑으로 받아들일 때에 내 마음속에서 따순 이야기 천천히 피어난다. 달이 드리우는 무늬와 결을 꿈으로 맞아들일 적에 내 가슴속에서 너른 이야기 하나둘 샘솟는다.


  별이 잔치를 이루는 곳에서 별똥이 흐른다. 별이 노래하는 곳에서 밤새와 밤벌레가 춤을 춘다. 별이 오순도순 얼크러지는 곳에서 사람들은 숲에 깃들어 풀과 꽃과 나무를 맑은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새근새근 잠든다. (4345.9.3.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름답구나 글 한 조각

 


  시를 쓰는 박노해 님이 내놓은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느린걸음,2010)를 읽는다. 날마다 예닐곱 꼭지씩, 때로는 열다섯 꼭지나 스무 꼭지씩 읽는다. 아침에 〈무엇이 남는가〉를 읽다가 오래도록 생각에 잠긴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공 하나씩 쥐며 뛰논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려는 따사롭고 시원스러운 나날, 좋은 숨결 느끼며 좋은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는다. 나도 아이들도 모두 싱그럽다. 박노해 님은 시를 쓰며 노래한다. “정치가에게 권력을 빼 보라 / 무엇이 남는가” 하고 노래한다. 이윽고 “나에게 사랑을 빼 보라 / 나에게 정의를 빼 보라 // 그래도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면” 하고 노래한다.


  나한테 책을 뺀다면, 나한테 집안일을 뺀다면, 또 나한테 사랑을 빼고 꿈을 뺀다면, 나는 무엇이 될까. 나한테 뺄 만한 권력이나 돈이나 직위나 이름이 있을까 헤아려 본다. 나한테 연필을 빼거나 사진기를 뺀다면, 또 나한테 자전거를 빼고 기저귀를 빠는 손을 뺀다면, 나한테 무엇이 남을까. 아니, 이것저것 모두 빼더라도 나는 오롯한 나로서 남을 수 있을까. 나한테서 모든 것을 송두리째 뺀다 하더라도 나는 참다운 알맹이로서 남을 수 있을까.


  나를 느끼는 글을 쓰며 내가 아름답다고 느낀다. 나를 느끼도록 이끄는 글을 읽으며 나와 이웃과 삶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아이들은 놀고 놀며 또 논다. 이것을 만지고 저것을 줍는다. 여기에서 땀을 내고 저기에서 땀을 쏟는다. 바람은 아이들 이마를 간질인다. 아이들은 땀을 흠뻑 쏟다가 바람이 산들산들 어루만지는 손길을 누리며 땀을 말끔히 씻는다.


  이제 밥을 안쳐야지. 이제 국을 끓여야지. 이제 풀물을 짜서 식구들 다 함께 마셔야지. 이제 짐을 꾸려 충청도 음성에서 살아가는 할아버지한테 생일 축하한다는 인사를 하러 길을 나서야지. 이제 마알간 햇살 곱게 누리며 숲길을 달리는 군내버스를 타야지. (4345.9.1.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기와 책읽기

 


  이제 전기가 없으면 글을 못 쓰고, 책을 엮지 못하며, 편지를 띄울 길 또한 없는 한국이 되었다. 그런데 이 전기를 중앙정부가 거머쥐고는 나누어 주지 않는다. 마을마다 조그맣게 전기를 일구어 쓰도록 돕거나 이끌지 않는다. 도시면 도시, 시골이면 시골, 저마다 쓰임새에 맞추어 햇살과 흙과 푸나무와 어깨동무할 좋은 전기를 빚어 쓰게끔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이 나라 중앙정부는 전기를 비롯해, 사람들 먹을거리도 마을마다 스스로 일구어 먹도록 돕거나 이끌지 않는다. 나라밖에서 값싸게 사다 먹도록 할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서로 값다툼을 하도록 내몬다. 도시면 도시, 시골이면 시골, 스스로 먹을거리를 일구어 먹는 틀거리를 마련할 생각이 조금도 안 보인다.


  전기는 돈으로 만든다. 전기를 돈으로 만든 다음 돈벌이로 삼는다. 사람들 누구나 전기 씀씀이에서 헤어나지 못할 얼거리로 짠 뒤, 중앙정부가 시키는 대로 살아가도록 내몬다. 가만히 보면, 학교에 들어가고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를 다니는 얼거리도 중앙정부 틀거리인 셈이다. 사람들은 학교를 다니며 배우는 틀에서 홀가분하지 않다. 학교를 안 다니면 안 되는 듯 여기고 만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가를 생각하지 못하면서, 학교 졸업장이 없으면 일자리를 못 얻는다고 여기기까지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집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밥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글을 쓰고 책을 엮어 이야기를 빚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마을학교를 열 수 있어야 하고, 마을학교에 앞서 집학교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 마을마다 스스로 배움터를 일구고, 집집마다 스스로 배움마당을 마련할 때에 가장 아름다우리라 느낀다.


  마을에서는 마을전기를 쓰고 마을살림을 꾸리며 마을배움터를 누릴 때에 참으로 사랑스럽겠지. 고속도로나 고속철도나 공항에 기대는 삶이란 얼마나 쓸쓸할까. 교통수단 아닌 삶을 찾아야지 싶다. 기계문명 아닌 마음을 살려야지 싶다. (4345.8.28.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태풍과 감과 책읽기

 


  지난겨울에 이어 봄까지 감알을 아주 신나게 먹었다. 살아오며 감을 이토록 많이 먹고 둘레에 선물한 적은 처음이다. 가을을 다시 코앞에 두면서 새삼스레 감알을 생각한다. 우리 집 뒤꼍 감나무는 줄기는 크고 곧지만 알은 몇 안 맺힌다. 올해에 달린 얼마 안 되는 알은 거의 모두 태풍에 떨어지고 딱 한 알만 남았지 싶다. 우리 식구 들어오기 앞서까지 한동안 빈집이었고, 할머니 혼자 살며 뒤꼍을 돌보지 못했기에 이 감나무는 알을 제대로 못 맺었으리라 느낀다.


  우리 집 돌울타리하고 이웃한 옆 밭뙈기에 있는 작은 감나무를 바라본다. 작은 감나무인데 굵은 알이 퍽 많이 맺힌다. 태풍에도 그리 떨구지 않은 듯하다. 마을 어귀 감나무는 크고 알이 많이 맺혔는데, 아직 나무에 달린 알도 많고, 바닥에 떨어진 알도 많다. 이렇게나 많이 떨어졌으니, 올해에는 지난해처럼 감알 구경이 만만하지 않을 수 있겠다 생각하면서도, 감나무는 스스로 알맞춤하게 알을 달고는, 나머지는 떨구어 스스로 거름으로 삼는 셈 아닌가 싶기도 하다. 스스로 거름으로 삼을 만한 풋감이 많을수록 감나무는 해마다 더 튼튼하게 무르익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뒤꼍 감나무가 떨군 애꿎은 풋감을 모두 주워 감나무 곁에 놓는다.


  나는 감알을 먹고 싶어 감나무를 바라본다. 마을 이웃들도 감알을 먹겠다는 생각으로 감나무를 바라보리라. 이 감알을 알뜰히 따서 살뜰히 내다 팔 생각으로 바라보리라고는 느끼지 않는다. 마을 어디에나 감이 너르고 흔한데, 감알을 어디에 내다 팔겠는가. 게다가 무거운 감알을 이고 지고 읍내에 나간들, 읍내 사람들이라 해서 감알만 먹으며 살지는 않는다. 아주 눅은 값에 도매상한테 넘겨 도시로 보내도록 해야 비로소 감알을 팔 만하리라 본다. 그러니까, 시골 어르신들은 당신 술안주로 감알을 먹고, 도시로 나간 딸아들한테 감알을 부치며, 때때로 놀러오는 당신 딸아들이랑 손주들한테 감알을 내놓을 생각이리라 느낀다.


  감이 익을 무렵이면 날마다 감을 다섯 알쯤 먹을까. 우리 네 식구는 날마다 감을 열다섯 알이나 스무 알씩 먹으면서 지낼까. 뒤꼍 큰 감나무랑 작은 감나무 모두 차근차근 기운을 북돋우며 알을 예쁘게 맺을 수 있기를 빈다. (4345.8.30.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