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비바람 책읽기

 


  거센 바람이 분다. 빗줄기는 그리 굵지 않다. 이런 비바람 날씨인데도 풀벌레가 운다. 어디서 울까. 우리 집 처마 밑이나 서까래에서 울까.


  이 바람에 웬만한 나무는 뽑히지 않고, 웬만한 풀은 눕지 않는다. 니무와 풀은 비바람하고 언제나 한몸이었으니, 바람결 따라 이리저리 춤추다가는 가만히 선다.


  비바람 결에 맞추어 전깃불이 꺼지곤 한다.전깃불 꺼지면, 먼저 물이 끊긴다. 땅밑물도 ‘전기 먹는 무자위’로 뽑아올리니까. 다음으로 냉장고를 못 쓴다. 먹을거리를 하루조차 건사하지 못한다. 과학문명과 현대기술은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가며 먹고사는 길을 밝힌다 할 수 있을까. 제도권학교뿐 아니라 대안학교도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칠까. 참답게 먹고 착하게 입으며 아름답게 집짓는 길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학교는 몇 군데나 될까. 크디큰 비바람이 닥친다며 서울·경기 쪽 학교는 일찌감치 아이들더러 학교에 오지 말고 집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단다. 휴교령. 웃기는 노릇이다. 크디큰 비바람은 이제 막 제주에 닿았을 뿐인데. 서울·경기 쪽 학교가 쉰다고 하고서 한참 뒤, 우리 마을 면소재지 초등학교도 쉰다고 마을방송으로 알린다. 그러나 중·고등학교도 쉬는지 잘 모르겠다. 고3 아이들은 비바람이 몰아치건 말건 수험공부를 해야 할까. 지붕에서 비가 새고 전기가 끊어져도 고3 아이들은 대학바라기 시험문제를 풀어야 할까.


  냇물이 불고, 논마다 벼가 쓰러지며, 골짝은 흘러넘쳐 멧자락이 무너지더라도, 주식시장은 열려야 할까. 이런 삶터에서 프로야구나 프로축구 경기를 치러야 하나.


  지구별 사람들은 어떤 책을 쓰고 어떤 책을 읽는가. 한국땅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이야기하고 어떤 책을 아로새기는가. 사람이 사람답게 되어 살아가는 길을 어느 책에 밝히는가. 사람이 사람다운 사랑을 빛내며 어깨동무하는 꿈을 어느 책에 갈무리하는가. (4345.8.2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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