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보기
― 흔들리는 사진에

 


  애써 찍은 사진이 흔들리면 어딘가 서운하다고 여깁니다. 흔들린 사진이라 해서 값어치가 떨어질 까닭은 없지만, 나는 흔들린 사진을 바라지 않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사진을 곧잘 찍으면서도, 또 집에서 저녁나절 아이들 뒹구는 모습을 으레 찍으면서도, 셔터값 1/15초나 1/8초나 1/4초로도 안 흔들리는 사진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가만히 따지면, 1/4초마저도 안 되는 1/0.3초나 1/0.08초로 찍으면서 안 흔들리기란 몹시 어렵다 할 만합니다. 이렇게 사진을 찍자면 세발이를 받칠 만합니다. 그렇지만, 이리 놀고 저리 움직이는 아이들을 찍자며 집안에서 세발이를 받치고 움직일 수 없어요. 내가 사진을 즐겨찍는 곳인 헌책방에서 세발이 대고 사진을 찍기도 매우 까다롭습니다.


  나는 내 몸을 세발이로 삼습니다. 숨을 훅 들이마시고는 한동안 숨을 멈춥니다. 마시지도 내뱉지도 않는 채 퍽 오래 기다립니다. 손끝 떨림 하나 없도록 몸을 다스리고는 차아알칵 하고 한 장 찍습니다. 벽에 기대어 찍기도 하지만 벽 없는 데에서 찍기도 하고, 바닥에 쪼그려앉거나 거의 엎드리다시피 찍기도 합니다.


  안 흔들리는 사진을 바라면 참말 안 흔들리는 채 사진을 얻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한편, 아주 가끔 그런데, 흔들린 사진 가운데 ‘어, 이 사진 훨씬 마음에 드네.’ 싶기도 합니다. 왜 ‘흔들린 사진 하나가 더 마음에 드는’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사진으로 찍히기로는 흔들린 사진’이지만, 이 사진을 찍던 때 내 마음이 아주 너그럽거나 따사롭거나 즐겁거나 예쁘기에, ‘흔들리건 안 흔들리건’ 내 마음이 촉촉하게 젖으며 반갑구나 하고 여기지 싶어요. 흔들리는 사진에 내 마음이 사로잡힌달까요. (4345.1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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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도권학교 책읽기

 


  제도권학교는 아이들을 나이에 따라 줄을 세운 다음, 똑같이 생긴 교실에 넣고, 똑같이 생긴 걸상에 앉혀, 똑같은 교과서를 펼치고, 똑같은 지식을 머리에 담도록 이끕니다. 제도권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삶을 배우지 못하고, 제도권학교에서 일하는 어른들은 삶을 가르치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다니는 동안 밥짓기·옷짓기·집짓기 어느 하나 배우지 못하고, 어른들은 밥짓기도 옷짓기도 집짓기도 가르치지 못하는데, 이를 배우거나 가르쳐야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톱니바퀴 가운데 하나가 되어 똑같이 움직이도록 내모는 제도권학교에서는, 아이도 어른도 쳇바퀴를 돌 뿐입니다. 삶을 누리거나 사랑을 나누는 길을 걷지 못합니다. 삶하고도 동떨어지고, 사랑하고도 등질 뿐더러, 꿈을 빛내는 길하고도 멀어집니다. 제도권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돈을 벌 일자리’를 ‘도시에서 몇 가지’ 찾지만, 정작 아이 스스로 무엇을 아끼고 좋아하는지를 느끼거나 헤아리지 못합니다. 삶을 누리는 일이나 사랑을 나누는 놀이를 살피거나 돌아보지 못합니다. 어른도 이와 같아, 어른 스스로 ‘교과서 지식 알려주는 몫’은 하지만, 어른이자 어버이로서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참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즐기지 못합니다.


  제도권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책을 못 읽습니다. 오직 ‘학습’을 하고 ‘독서’를 하며 ‘독후 활동’이나 ‘독후감’이나 ‘논술’에 얽매입니다. 아이들 손에 책이 있다고 하지만, 이는 책 아닌 종이꾸러미일 뿐, ‘삶을 밝히고 사랑을 깨달으며 꿈을 북돋우는 이야기’ 깃든 슬기꾸러미로 스며들지 못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어른(교사)이 손에 책을 쥐더라도 이와 비슷해요. 어른 또한 사랑을 깨달으려고 책을 펼치지 않습니다. 어른부터 삶을 밝히려고 책을 읽으면서 어른다이 살아가는 꿈을 북돋울 수 있어야 아름다울 텐데, 제도권학교에 길든 어른 가운데 이녁 넋을 곱게 돌보려고 책을 쥐는 이는 너무 적어요. 어쩌면 제도권학교에서 달삯쟁이로 일하면 ‘삶·사랑·꿈’하고는 고개를 돌려야 할는지 모르지요.


  다 다른 아이들은 잠을 자도 다 다르게 잡니다. 몇 분 더 자는 아이가 있고, 몇 분 덜 자는 아이가 있습니다. 밥을 먹건 물을 마시건, 먹고 마시는 부피가 다르고, 먹고 마시는 빠르기가 다릅니다. 풀과 꽃을 쓰다듬을 때에 손끝에서 가슴으로 스미는 느낌이 다르고, 별과 무지개를 바라보는 느낌이 달라요. 다 다른 아이들은 다 다른 삶·사랑·꿈을 찾아 다 다른 책을 손에 쥐면서 다 다른 얼을 빛내야 할 테지만, 제도권학교에 깃들고 나면 ‘모두 같은 책’을 읽으면서 ‘모두 같은 줄거리’를 훑으며 ‘모두 같은 느낌글’을 쓰도록 내몰립니다.


  시 하나를 읽힐 때에 다 다른 아이가 다 같이 느껴야 할까요. 시 하나를 쓸 적에 ‘하늘’이 글감이든 ‘흙’이 글감이든 다 다른 아이가 다 같은 이야기와 모양새로 시를 써야 할까요.


  학교에 다녀야 한다면, 그야말로 ‘가르치고 배우는 터’인 ‘배움터’에 다녀야 올바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학교 아닌 사랑을 나누는 곳에서 자라고 놀며 살아야 맞습니다. 어른 또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몫을 할 일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무럭무럭 자라고 씩씩하게 놀며 예쁘게 살아야 맞습니다.


  삶을 누리는 사람만 책을 읽을 줄 압니다. 사랑을 나누는 사람만 책을 아낄 줄 압니다. 꿈을 빛내는 사람만 책을 쓸 줄 압니다. (4345.1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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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 은행잎 책읽기

 


  창원중앙역에서 기차를 내려 한 시간 남짓 창원시 언저리와 한복판을 걷는다. 처음 창원중악역 둘레를 걷는 동안, 퍽 많구나 싶은 나무들이 우람하게 자라 숲을 이루어 눈이 확 트이고 가슴이 시원스레 열린다. 나무내음이 물씬 풍기며 알록달록 곱다. 이윽고 나무숲을 지나 시내 한복판으로 접어들 무렵부터 나무는 온데간데없고 높다란 건물과 널따란 찻길과 끝없는 자동차가 물결을 이룬다. 나무그늘 아닌 건물그늘에서 벗어날 무렵 새삼스레 노란 은행잎이 빛나는 조그마한 거님길이 나오고, 5층짜리 나즈막한 아파트가 나온다. 도시에서 숨을 틀 만한 데가 시내 바깥에 살짝살짝 있구나. 도시에서 가장 예쁘다 할 만한 이 노란 은행잎 거님길을 걷는 아이들이 있네. 이 길을 거닐면서 노란 가을내음 가을빛 가을바람 누릴 수 있겠지. 도시에서 배기가스 때문에 은행나무만 심지 말고, 감나무도 심고 능금나무도 심으면, 감나무 우거진 길을 거닐며 감알 발그스름한 싱그러운 빛깔과 내음을 물씬 누릴 테고, 복숭아나무도 심고 살구나무도 심으면 봄날 이 길을 거닐 적에 복숭아꽃 살구꽃 흐드러진 고운 빛깔과 내음을 듬뿍 누리겠지. (4345.1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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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아직 책을 안 읽니?

 


  아직 때가 안 되었으니 못 읽겠지요. 책은 줄거리를 훑자고 읽는 책이 아니에요. 책은 마음으로 읽고 마음으로 아로새기며 마음을 북돋우기에 책이에요. 그러니, 스스로 마음그릇이 덜 된 사람은 책을 읽지 못해요. 그렇지만, 퍽 많은 이들은 마음그릇이 덜 되었는데에도 손에 책을 쥐어요. 저마다 이녁 마음그릇에 걸맞다 싶은 책을 손에 쥐고는 그만 ‘줄거리 흝기’에 빠지고 말아요.


  책읽기는 사랑읽기이기에, 책 하나 읽을 때에 사랑을 느껴야 아름다울 테지만, 정작 줄거리만 훑으니까, 어느 책을 읽든 사랑 아닌 줄거리만 자꾸 따져요. 책느낌글을 쓸 적에도 스스로 누린 사랑을 쓸 노릇이지만 하나같이 줄거리만 잔뜩 읊어요. 스스로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사랑을 느끼지 못했으니 줄거리만 적겠지요. 스스로 마음을 일깨우지 않았고 사랑을 북돋우지 않았으니 줄거리 아니고는 책느낌글을 쓸 수는 없겠지요.


  왜 아직 책을 안 읽나요? 왜 아직 삶을 안 읽나요? 왜 아직 사랑을 안 읽나요? 왜 아직 꿈을 안 읽나요? 왜 아직 줄거리만 읽나요? 왜 아직 겉껍데기를 읽고, 글쓴이 발자국을 읽으며, 출판사 이름값만 읽나요? 왜 아직 책을 안 읽나요? (4345.1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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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석류꽃 책읽기

 


  늦가을에 석류꽃 한 송이 빨갛게 피어나다. 석류열매 붉디붉게 맺혀 몽땅 떨어진 석류나무 가운데 한 그루에서 맨 꼭대기 나뭇가지에 석류꽃 한 송이 달린다. 어쩜, 너는 어떡하니. 나날이 바람이 차갑게 바뀌는데, 늦가을 앞두고 여러 날 퍽 따스한 바람이 불고 고운 햇살이 드리웠다지만, 이렇게 일찌감치 몽우리를 열면 어떡하니.


  그래도, 너는 너대로 가을 끝자락과 겨울 첫자락을 보고 싶었니. 그래, 굳이 굵다란 석류알이 되어야 하지는 않아. 가을바람 맡고 겨울바람 쐬면서 더 씩씩하고 튼튼하게 한삶을 누릴 수 있어. 봄내음과 여름내음 맡으며 피어나는 석류꽃도 아리땁지만, 찬바람과 눈바람 마주하는 석류꽃도 어여뻐. 누렇게 익은 벼를 베어낸 텅 빈 논자락 곁에서 한들거리는 석류나무에 새로 돋은 푸른 잎사귀와 너무 일찍 터지고 만 석류꽃 봉오리 하나, 더없이 푸르고 붉으며 환하구나. (4345.10.3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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