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10.26.


그제에 이은 읍내마실. 그제 못 부친 책을 오늘 부치려고 한다. 큰아이는 만화책 《미스터 초밥왕》을 챙기고, 나는 《김성현이 들려주는 참 쉬운 새 이야기》를 챙긴다. 두 사람은 군내버스에서 저마다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마을 앞에서 고흥읍까지 20분 길이지만 이동안 책을 꽤 많이 읽을 수 있다. 어느 날에는 시집 한 권을 통째로 다 읽기도 한다. 흔들거리는 버스라서 책을 못 읽지 않는다. 20분이라서 너무 짧지 않다. 오직 손에 쥔 책에만 모든 마음을 쏟아서 들여다보면 버스가 흔들거리거나 말거나 못 느끼고, 버스 일꾼이 라디오를 크게 틀었는지 대중노래를 크게 틀었는지 하나도 안 듣는다. 다시 말해서 흔들리는 버스에서 책을 읽더라도 눈을 버리지 않을 수 있다. 불빛이 어둡다는 생각을 하면 그저 어둡고, 자꾸 흔들려서 글씨도 흔들려 보인다고 여기면 글씨도 흔들려 보인다. 가만히 돌아보면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무렵에 비로소 책에 눈을 뜨는데, 이때에는 학교에서 교과서 공부를 하랴 바쁘고, 대학입시 공부를 따로 하느라 몹시 벅찼다. 이러는 동안 틈을 내어 ‘교과서랑 시험문제’ 아닌 이야기를 다룬 책을 펼치기란 아주 어렵다. 교과서나 참고서 아닌 책을 책상맡에 펼쳐서 읽다가는 자칫 교사한테 빼앗기기도 한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버스로 집부터 학교까지 40분 걸리는 길에 새벽이며 밤이며 책을 읽었고, 버스에서 내려 학교로 걸어가는 20분 길에도 책을 읽었다. 학교를 마치고 버스 타는 곳으로 가는 길에도 길가 등불에 기대어 책을 읽었고, 토요일에 드디어 책방마실을 할 수 있을 적에도 학교부터 동인천까지 한 시간 즈음 걸어가면서 책을 읽었다. 이렇게 한 해 두 해 지내다 보니 아무리 흔들리는 곳에서도 책을 잘 잡고서 마음껏 읽을 수 있다. 그나저나 《김성현이 들려주는 참 쉬운 새 이야기》는 대단히 잘 나온 책이다. 두 권을 장만해서 한 권은 내가 보는 책으로 삼고, 다른 한 권은 큰아이가 따로 혼자 보는 책으로 삼기로 한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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