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마실길에 읽는 책 2017.10.30.


서울 고속버스역에 시외버스가 닿을 즈음 전철그림을 편다. 저녁 다섯 시 무렵에 망원역 쪽으로 가기 앞서 두 군데 책방에 들를 수 있겠다고 여긴다. 어느 길을 가면 좋을까 하고 어림하다가, 장승배기역에서 내리면 이곳 가까이 있는 헌책방 〈문화서점〉에 들를 수 있고, 살짝 걸어서 상도동에 있는 마을책방 〈대륙서점〉까지 갈 수 있겠네 싶다. 〈문화서점〉을 마지막으로 들른 지 열 해가 넘었지 싶다. 서울에서 살며 출판사 밥을 먹으며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으로 지낼 무렵에 마지막으로 들렀고, 서울을 떠나 인천에서 살다가 인천마저도 떠나 고흥으로 가고부터는 좀처럼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잘 계신가? 숱한 책방이 문을 닫는 물결에서도 〈문화서점〉 책방지기 할아버지는 잘 계신가? 참 오랜만에 들렀으나 책방지기 할아버지는 내 얼굴을 떠올리신다. 예전에 드린 사진도 되새기면서 아주 반기신다. 저녁에 가야 할 곳이 있어 오래 머물지 못한 터라 책을 예닐곱 권밖에 못 보았다. 곧이어 찾아간 〈대륙서점〉은 마을책방 가운데 대단히 복닥거리는 저잣거리 한복판 매우 좋은 목에 있네. 놀랍다. 이런 목에 마을책방이 있다니. 예전에 이곳이 얼마나 사람이 붐비는 책방이었을는지 어림해 본다. 그리고 책손물결은 예전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넘실거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에 느긋하게 들르며 더욱 느긋하게 책을 살피기로 하고 네 권 즈음 장만한다. 전철역으로 걸어가서 6호선이었나, 전철을 타며 《엄마는 페미니스트》를 읽는다. 민음사 쏜살문고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작은 출판사에서는 어림도 못하는 손바닥책이다. 큰 출판사이기에 이런 손바닥책을 낼 뿐 아니라, 전국 마을책방 책상을 차지할 수 있구나 싶다. 작은 출판사에서 내는 숱한 알뜰한 책이 전국 마을책방마다 다 다른 빛깔로 책상을 차지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페미니스트》는 나쁜 책이 아니지만 너무 얇다. 사잇그림을 빼고 빈자리를 살피면 100쪽은커녕 60쪽쯤 될까 싶은 매우 얇은 글밥인데 9800원. 지나친 장삿속인 쏜살문고네. 줄거리가 좋은 책이기는 하나, 이만 한 책이라면 5000원만 받아도 되지 않나? 큰 출판사가 나쁜 일을 했다고는 여기지 않지만, 큰 출판사 책들이 마을책방 책상하고 책꽂이를 지나치게 많이 차지해 버리지 않았나? 나는 꿈꾸어 본다. 쏜살문고를 안 다루는 마을책방이 한국에 씩씩하게 골골샅샅 태어나기를. 그나저나 이 책을 읽다가 내릴 곳을 놓쳐서 하마터면 인천까지 갈 뻔했다. 겨우 돌고 돌아서 망원역에서 내린다.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