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삶
 ― 사진으로 보는 삶


 나는 어디를 가든 사진기를 갖고 갑니다. 따로 사진 찍을 만한 일이 있든 없든 노상 사진기를 챙깁니다. 짐을 실어 나를 때에도 사진기를 두릅니다. 무논에 들어가 손으로 모를 심을 때에도 목에는 사진기를 걸었습니다. 사진 찍을 오른손은 안 쓰고 왼손으로만 모를 심었어요. 갓난쟁이를 안고 한두 시간 마실을 하더라도 목에 사진기를 겁니다. 네 살 아이랑 둘이 읍내 마실을 다녀오며 가방 가득 먹을거리를 장만하고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면서 새근새근 잠든 아이는 품에 안으면서도 어깨에는 사진기를 걸쳤어요. 우체국에 가든 빵집에 가든 면사무소에 가든 사진기는 내 어깨에 있습니다.

 내 어깨나 목에 걸린 사진기를 보는 분들은 으레 묻습니다. “사진 찍으셔요?” “사진가셔요?” 나는 사진작가는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무어 찍을 만한 모습이 있느냐고 여쭈면 “언제라도 찍고 싶은 모습이 있으면 찍어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무슨 사진을 찍느냐고 여쭈면, “집에서 아이들 찍어요. 아이들 찍는 사진으로도 찍을 사진이 아주 많아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내 첫째 사진감은 ‘헌책방’입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시골로 살림집 옮기면서 헌책방 마실을 좀처럼 못 하고, 헌책방 마실을 좀처럼 못 하니까 헌책방 사진을 거의 못 찍는 나날입니다. 내 둘째 사진감은 ‘인천 골목길’입니다. 그렇지만, 인천을 떠난 지 이태가 되고 보니 인천 골목길을 찍을 일이 없어요.

 내 셋째 사진감은 저절로 옆지기랑 아이들이 됩니다. 나는 내 살붙이를 사진으로 담으면서 살아갑니다. 나까지 네 식구로 지내기 앞서 늘 자전거로 움직였기에 틈틈이 자전거를 사진으로 담기도 했는데,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자전거마실을 하며 찍는 사진도 퍽 즐겁습니다.

 내 몸이 고단하지 않다면, 무너질 듯 힘겹거나 벅차지 않다면, 나는 우리 집에서 우리 아이들 사진을 백 장 남짓 쉽게 찍습니다. 아이들 눈빛과 눈길과 낯빛과 얼굴 모두 사랑스러워요. 사랑스러우면서 따사로운 이야기를 사진 하나에 깃들이고 싶어 사진기 단추를 눌러요.

 시골자락 조그마한 집에서 《아프가니스탄 산골학교 아이들》이라는 사진책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이야, 이 일본 사진쟁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해맑고 착한 아이들을 두루 만나며 사랑스럽고 따사로운 사진을 얻는구나, 참 좋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얘들아, 너희 아버지는 너희를 바라보며 사랑스러움과 따사로움을 느끼기에 너희를 담는 아버지 사진은 사랑스러움과 따사로움이 묻어날 수 있으면 즐겁고 넉넉해.’ 하고 생각합니다.

 이불쓰기 놀이를 하는 두 아이를 바라보며, 아니, 동생이랑 이불쓰기 놀이를 하며 밤잠을 미루고 노는 첫째 아이 예쁜 짓을 바라보며, 몇 시인데 잠을 안 자니 하며 걱정스레 말하다가도 사진기를 집어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우리 집에서 ‘내 아이 다큐사진’을 날마다 신나게 찍습니다. (4344.11.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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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으로 보는 삶
 ― 사진기에 담긴 826장



 전라남도 고흥군 시골마을에서 첫밤을 지냈습니다. 살림집을 옮기느라 석 달 남짓 바깥잠을 자다가 비로소 집잠을 잡니다. 띄엄띄엄 예전 집에서 머물며 쉬기는 했는데, 새 보금자리에 깃들며 이것저것 고치고 손질하느라 짐을 제대로 풀지 못하며 벽종이를 바르고 바닥을 깔고 하면서 식구들이 고단합니다. 이동안 셈틀 자리를 잡을 수 없으니, 보름 남짓 사진기 메모리카드에 사진이 쌓입니다.

 내 사진기는 스스로 목숨을 다했습니다. 지난해에 한 번 크게 고쳤으나 다시금 목숨을 다했습니다. 어찌할 바 모르며 헤매는데 형이 형 사진기를 빌려줍니다. 형 사진기를 고맙게 얻어 쓰면서 형이 쓰던 16기가 메모리카드를 함께 받아서 씁니다. 덩치가 큰 메모리카드를 쓰기 때문에 보름 남짓 셈틀에 사진을 옮기지 못하며 지내면서도 826장에 이르는 사진을 건사합니다.

 골목마실을 하거나 헌책방마실을 하면 하루에도 삼사백 장이나 오륙백 장은 금세 찍습니다. 아무런 마실을 하지 못하면서 보름 남짓 헤매고 떠돌며 조금조금 담은 사진이 826장입니다. 조금조금 담았다지만 하루에 마흔 장은 넘게 찍었네 하고 헤아리다가 살짝 놀랍니다. 그렇구나, 사진을 거의 찍을 수 없이 지내는 하루하루라지만, 용케 이렇게 찍는구나, 아니 이렇게 사진기 단추를 누르면서 내 마음을 쉬고 내 몸을 다스리는구나.

 새벽녘 까만하늘이 붉은하늘이 되다가 노란하늘로 빛나더니 천천히 파란하늘로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홀로 깨어 가만히 바라보다가 사진기를 들어 노란하늘을 두어 장 담습니다. 나중에 아이한테 보여주려고 사진으로 담습니다.

 처음에는 사진으로 보여줄밖에 없고, 나중에는 아이 스스로 붉은하늘 노란하늘 파란하늘 골고루 바라보며 누릴 수 있겠지요. 느긋하게 지낼 집에 따사로이 뿌리내릴 때쯤 메모리카드 사진을 아이들하고 함께 바라보며 우리 식구 힘겨이 보낸 여러 나날을 예쁘게 되새기겠지요. (4344.10.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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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0-24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골마을에서 첫밤을 지내셨나요....
항상 좋은 일 가득하고, 건강하시기 빌겠습니다.

숲노래 2011-10-26 05:03   좋아요 0 | URL
반 해 넘게 집 옮기는 일에 시달리면서 몸이며 마음이며
몹시 힘들지만,
이제부터 즐거이 자리잡으며 살아가고 싶어요~
 

사진 생각
― 사진과 사랑


 첫째 아이를 낳습니다. 둘째 아이를 낳습니다. 한국땅 여느 남자라 한다면 집밖일을 하느라 집안일은 옆지기한테 도맡겼을 테며, 아이키우기 또한 옆지기가 도맡도록 했겠지요. 어느 아버지라 하더라도 ‘나도 내 아이하고 함께 살아갑니다’ 하고 말할 테지만, 막상 ‘아이하고 같은 곳에서 함께 눈을 마주하면서 살아가는 겨를’은 얼마 안 되리라 느낍니다.

 집에서 두 아이를 건사하고 살림을 도맡는 아버지로서 생각합니다. 왜 이 나라 여느 아버지라 하는 사람들은 아이키우기와 살림하기와 집안일을 어머니한테 떠넘길까 궁금합니다. 여느 한국땅 아버지로서 집밖에서 돈만 잘 벌어오면 아이는 저절로 쑥쑥 자랄는지요. 돈이 넉넉해서 마음껏 쓸 수 있으면 집안일이나 집살림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는지요.

 나는 내가 사진을 몹시 모를 뿐 아니라 사진을 어설피 말해서는 안 된다고 느껴, 사진길을 열 해 남짓 걷는 동안 사진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사진책을 장만해서 읽기만 했습니다. 사진책을 읽는 눈썰미를 기르면서 내 사진기를 다루는 손길을 다스려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어느덧 열네 해째 사진길을 걸으면서 돌이킵니다. 사진길을 한 해 걸었으면 한 해 걷는 삶 그대로 사진을 말하면 됩니다. 사진길을 다섯 해 걸었으면 다섯 해 걷는 삶 그대로 사진을 말하면 돼요.

 사진길을 쉰 해 걸은 사람만 사진을 말해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길을 다섯 달 걸은 사람이 말하는 사진이 사진길을 스물다섯 해 걸은 사람이 말하는 사진하고 견주어 모자라거나 어수룩하거나 덜 떨어질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은 그저 사진이니까요. 누구하고 누구를 견줄 수 없습니다. 서로 다른 사진이고 서로 다른 이야기이며 서로 다른 꿈입니다. 곧, 사진은 저마다 다 달리 걷는 길이요, 저마다 다 달리 일구는 삶입니다.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도 ‘아이키우기 = 삶’입니다. 저마다 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른 결대로 아이를 돌보거나 보살피거나 먹여살립니다. 다만, 아이들을 ‘키운’대서 아이들하고 ‘함께 살아간다’ 할 만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먹여살리’니까 아이들하고 ‘함께 살아가는’ 어른이라 할 만하지 않아요.

 아이들을 수용소에 가두어도 ‘키우’거나 ‘먹여살리’는 셈입니다. 아이들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설에 넣어도 ‘돌보’거나 ‘아끼’는 셈이에요. 그러나, 이때에도 아이들과 ‘함께 살아간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란, 아이들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꿈을 꾸면서 같은 사랑이 오가는 일입니다.

 수많은 어버이들이 ‘아이를 낳기 앞서나 아이를 낳은 뒤’에 사진기를 장만합니다. 막상 ‘내 아이’가 되고 보니, 이 멋지고 예쁘며 사랑스럽다 여기는 아이를 사진으로 안 담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내 아이’를 사진으로 담는 이들 가운데, 내 아이 여느 자리 여느 삶 여느 모습을 여느 사진으로 담아 여느 이야기로 일구는 분은 아주 드뭅니다. 예쁘게 차려입히고 예쁘게 눈짓을 하며 예쁘게 웃어야 비로소 사진으로 담을 만하다고 여깁니다. 따지고 보면, 어버이 스스로 사진을 삶으로 녹이지 않는데, 제아무리 멋들어지거나 값지다 하는 사진기가 있다고 해 보았자, 아이를 사진으로 찍으려 한대서 얼마나 살갑거나 사랑스레 찍을 수 있겠어요. 사진기는 손에 쥐었어도 삶은 가슴으로 붙안지 못하는걸요. 사진은 찍는다지만 삶을 찍지 못할 뿐 아니라, 어버이 삶도 아이 삶도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걸요.

 집일을 하며 하루 내내 집안에서 지낸다고 모든 어버이가 아이사랑과 삶사랑을 살뜰히 느낀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집안에서 하루 내내 보내며 집일을 건사하는 일을 답답하게 여긴다거나 괴롭게 느낄 분이 제법 많다고 봅니다. 손으로 천기저귀를 갈아 손으로 똥기저귀와 오줌기저귀를 정갈하게 빨래한 다음 햇볕 잘 드는 곳에 기쁘게 너는 어버이는 오늘날 거의 없습니다. 바쁘고 힘드니까 빨래기계를 쓴다는데, 너무 바쁘고 힘든 나머지 천기저귀는 생각조차 않거나 아예 모릅니다. 더욱이, 종이기저귀를 쓰면서 이 종이기저귀를 어떻게 만드는지를 살피지 않으며, 이 종이기저귀가 어떤 쓰레기가 되어 이 땅을 더럽히는가를 깨닫지 않습니다.

 먹을거리를 장만해서 밥을 차리든, 옷을 장만하든 늘 같습니다. 아이한테 더 좋은 밥이나 더 예뻐 보이는 옷을 안기는 일이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잘 생각해야 해요. 아이를 함께 낳은 내 짝꿍한테 더 맛난 밥을 사먹이는 일이 사랑인가요. 내 짝꿍이 더 예뻐 보이는 옷을 입도록 새옷 사 주는 일이 사랑인가요. 더 멋져 보이는 자가용을 장만해서 슬슬 나들이를 다니는 일이 사랑인가요. 아파트를 장만하느라 회사에서 돈벌이만 하면서 집안에 몸을 둘 겨를이 없는 삶이 사랑인가요. 돈을 더 벌고 돈을 더 쓰기만 하는 삶일 뿐, 사랑을 더 나누며 사랑이 더 꽃피도록 하지는 못하는 삶은 아닌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누구나 삶을 일구는 대로 삶을 바라보며, 삶을 바라보는 결 그대로 말을 하며, 삶을 바라보는 결 그대로 말을 하는 얼거리에 따라 생각하면서, 이 생각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옮깁니다.

 삶을 참다이 사랑할 때에 사진을 참다이 사랑합니다. 삶을 착하게 사랑할 때에 사진을 착하게 사랑합니다. 삶을 아름다이 사랑할 때에 사진을 아름다이 사랑합니다.

 나는 하루 스물네 시간을 집에서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복닥이니까, 집 바깥으로 나돌면서 돈을 버는 데에는 젬병입니다. 그야말로 돈벌이는 거의 못하면서 살아갑니다. 돈을 거의 못 버니까 돈을 거의 못 씁니다. 돈을 거의 못 벌어 돈을 거의 못 쓰니, 돈을 적게 쓰면서 살림을 꾸릴 만한 시골자락 작은 집을 얻어서 지냅니다. 돈을 더 써야 하는 삶이라면 시골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돈을 덜 쓰거나 적게 쓰거나 안 써도 되는 삶이기에 시골에서 호젓하게 살아갈 수 있으며,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하루 내내 살을 부비면서 따사로운 나날을 누릴 만합니다.

 아이들 잠투정을 고스란히 받아먹으면서 밤새 설잠이 들거나 눈이 벌게진 채 해롱거립니다. 깊은 밤에도 몇 차례 깨어 둘째 오줌기저귀를 갈고 첫째 오줌 마렵다 할 때에 부시시 일어나서 오줌 누는 데까지 데리고 가서 데리고 돌아옵니다. 함께 살아가니까 참으로 고단한 일이 많고, 참으로 고단한 일이 많은 만큼 더 사랑할 수 있으며, 내가 보낸 어린 나날 나는 내 어버이하고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깊이 곰삭입니다.

 아이들이 어느 자리 어느 때에 어여쁜가 하고 느끼려면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여느 어른은 여느 아이들 말을 좀처럼 못 알아듣지만, 아이들하고 함께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아이들이 ‘아직 제대로 소리내지 못하는 퍽 어설픈 소리’를 잘 가리거나 알아챕니다. 좀 다른 테두리이지만, 아이들은 ‘어른들 누리로 보자면 고장말을 하는 셈’입니다. 이웃 고장에서 지내는 사람들 말을 새겨듣고 받아들이듯 내 아이나 이웃 아이 말을 내 아이 삶과 이웃 아이 삶을 깊이 톺아보면서 새기면 훤히 알아들으며 이야기꽃을 나눌 수 있어요.

 다큐사진을 찍거나 패션사진을 찍거나 무슨무슨 사진을 찍거나 언제나 똑같습니다. 사진기를 쥔 사람하고 사진기를 바라보는 사람이 마음과 마음으로 사귀거나 만나야 합니다. 일과 일이라 하더라도 마음과 마음이 오가지 않을 때에는 빛나는 사진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다큐사진을 찍는 곳에서 사진기 앞에 선 사람하고 제대로 섞이거나 녹아들지 못했을 때에는 노상 겉도는 사진만 만듭니다. 패션사진이든 상업사진이든 무슨 사진이든, 모델이 되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얼 잘하는가를 깨닫지 않으면서 뜻과 마음을 제대로 나누지 못하면 겉치레 사진만 만듭니다.

 그럴듯하게 보이는 사진을 ‘만드는’ 일이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없이 아름답다고 느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지’ 못하고 사진을 ‘만들기’만 한다면 슬픕니다. 안타깝습니다.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 사랑을 하면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애써 ‘만들지’ 않아도 돼요.

 글은 써야지 글을 만들 수 없습니다. 노래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결대로 불러야지 노래를 억지로 만들듯 쥐어짤 수 없습니다. 만들 때에는 만든다지만, 참다이 만드는 사진이라면 참다이 찍는 테두리에서 만듭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삶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아이키우기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글이고 그림이며 책이자 노래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바야흐로 사람이요 사진이며 사귐입니다. (4344.9.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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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삶
― 사진을 찍는 아이


 도시를 떠나 시골로 옮긴 살림집을 한 해만에 다른 시골로 옮깁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알아보고 오래오래 깃들 시골로 살림집을 마련해야 했을 테지만, 이렇게 한 해를 살고 다시금 버겁게 짐을 꾸려 새로운 시골집으로 가는 일은 우리한테 또다른 이야기를 베푼다고 느낍니다. 옮길 때에는 옮기더라도 시골에 깃들며 새 시골을 꿈꾸는 동안 마음이 따사로우면서 넉넉하거든요.

 새 보금자리를 꿈꾸면서 사진기를 하나 새로 장만합니다. 처음 꿈꾸던 새 보금자리는 전라남도 끝자락 바다와 갯벌을 품에 안은 작은 시골마을입니다. 그러나 이곳으로 가자니 돈이 퍽 많이 있어야 하고, 밑돈이 거의 없는 우리로서는 살림을 짐차에 실어 이곳으로 가는 동안 길에서 모든 돈을 다 써야 하고 말기에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다음으로 알아본 시골자락은 얼마 안 되는 우리 밑돈으로도 짐차를 불러 옮기는 돈하고 살림집을 조금 손질하는 데 들 돈을 댈 만합니다. 그래서 밑돈 가운데 얼마를 덜어 조그마한 디지털사진기 하나를 장만합니다.

 새 디지털사진기는 옆지기하고 아이가 갖고 놀듯 쓸 만한 녀석입니다. 비가 오는 날에도 쓸 수 있습니다. 물속 십 미터쯤 들어가도 찍을 수 있답니다.

 돌이 되기 앞서부터 아버지 무거운 사진기를 기운차게 들어서 사진을 찍던 첫째 아이는 자그맣고 가벼운 사진기를 처음 쥐면서 제대로 못 찍습니다. 자꾸 흔들리고 이리저리 엉성합니다. 그렇지만 이내 새 사진기에 손과 몸을 맞춥니다. 다만, 조그마한 사진기는 조그마한 만큼 기능이 적거나 달라, 아버지가 쓰는 사진기처럼 불을 안 터뜨리고 찍지 못합니다. 아버지가 쓰는 디지털사진기는 완전수동으로 맞추어 어두울 때에는 어두운 감도에 맞추지만, 새 디지털사진기는 완전수동으로 쓸 수 없을 뿐더러, 불을 터뜨리지 않고 찍으려 해도 사진기 앞쪽에서 작은 알전구에서 불을 앞으로 쏩니다.

 아버지가 사진기를 들고, 아이가 사진기를 듭니다. 이러하건 저러하건, 아버지는 아버지 사진기로 사진놀이를 즐기고, 아이는 아이 사진기로 사진놀이를 즐깁니다. 진작부터 아이한테 아이 사진기 하나를 선물하고 싶었지만, 아이가 네 살이 되기까지 새 사진기를 도무지 장만하지 못했습니다. 바야흐로 살림집 옮길 때를 닥치어 목돈을 주섬주섬 모으다가 비로소 사진기를 곁으로 장만합니다.

 아이는 아이 사진기로 사진놀이를 하다가 금세 사진기를 내려놓습니다. 아이는 다른 놀이로 접어듭니다. 아이는 아버지 손을 하나씩 잡습니다. 아버지는 사진기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둘 모두 사진기를 내려놓고 손을 잡으며 춤을 춥니다. 늦은 저녁 아이가 이끄는 대로 춤을 추면서 놉니다. 공을 튀기며 놀고, 책을 펼치며 놀며, 땀에 젖은 몸을 씻으며 놉니다. (4344.8.2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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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얻어 쓰는 필름사진기 첫 사진


 2010년 3월에 필름사진기 FM3A라는 좋은 녀석을 얻었다. 오래오래 쓰라면서 빌려주신 분은 로모사진기를 즐겨쓴다. 필름사진기로 캐논 이오에스 5번을 썼으나 이 녀석은 기계가 목숨을 다했고, 니콘 에프엠 2번은 여러 차례 도둑을 맞거나 잃어서 다시 사들일 돈이 없었다. 갓 얻어서 오랜만에 필름을 끼우고 찍은 첫 사진은 딸아이 잠든 모습. 2010년 3월에 얻어 그무렵에 찍은 필름을 2011년 7월에 이르러 비로소 스캐너로 긁는다. 열여섯 달 동안 필름 한 통 긁기 힘들 만큼 무슨 일이 많거나 바빴을까. 힘들거나 바쁘게 살았다면서 참말 집일이나 집살림을 옳게 건사했을까. 필름에 잔뜩 낀 먼지가 함께 긁힌다. 아이는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서 서른다섯 달 어린이가 되었고, 사진에 깃든 열아홉 달 아기는 그야말로 먼 옛날 옛적 모습 같다. 둘째를 낳고 나서 헌책방마실을 할 수 없으니, 필름사진기는 다시금 잠을 잔다. 이 필름사진기에 깃든 필름에 담긴 사진은 앞으로 언제쯤 빛을 볼 수 있을까. (4344.7.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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