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어 만난 사람들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30] 사진공모, 《화보 이산가족찾기》(민족통일중앙협의회,1983)

 


  1983년, 나는 국민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이무렵 텔레비전으로 ‘이산가족 찾기’ 이야기를 곧잘 보았습니다. 우리 집에는 헤어지거나 잃은 식구가 없는 줄 아는데, 어찌하다 보니 이 이야기를 자주 보고 자주 눈물지었습니다. 모두들 전쟁이라는 끔찍한 생채기 때문에 헤어지고 잃으며 아프던 나날을 보냈고, 누군가는 반가이 새 사랑을 이으며 누군가는 쓸쓸히 빈터를 떠납니다. 퍽 어린 내 눈은 눈물을 흘리며 생각합니다. 다른 어느 일보다 내 살붙이를 잃거나 서로 떨어지고 마는 일이 아주 슬플 뿐 아니라, 언제까지나 지울 수 없는 응어리가 되는구나 하고.


  한 해 두 해 살같이 흐릅니다.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 금세 지납니다. 사람들은 반가운 이끼리 서로 만납니다. 사람들은 낯선 이하고도 마음을 열며 사귑니다. 사람들 살아가는 이 터에서는 어느 무엇보다 서로를 아끼거나 사랑하는 일이 가장 큰 셈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돈을 더 많이 번다든지, 가방끈을 더 길게 늘인다든지, 책을 더 많이 읽는다든지, 땅을 더 늘린다든지, 이름을 더 높인다든지 하는 일이란, 언뜻 보기에 꽤 기쁘다 여길는지 모르나, 막상 돈을 더 벌거나 가방끈을 더 늘리거나 책을 더 읽는대서 내 삶이 아름답게 거듭난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내 삶을 사랑하고 내 곁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할 때에는 온통 부질없는 셈 아닌가 싶어요.

 

 


  지난날 우리 겨레는 땅덩이를 둘로 쪼개어 서로 치고받으며 싸웠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군대로 끌려가서 죽고, 군대로 끌려가지 않은 사람도 죽습니다. 누가 누구를 도왔으니 죽고, 누구는 또 누구를 도왔기에 죽습니다. 어느 한쪽을 믿거나 따른다는 뜻이 아니라, 전쟁무기가 온 나라 골골샅샅 짓밟으며 까부수기 때문에 이리 몸을 옮기고 저리 몸을 옮깁니다. 몸과 마음을 붙이던 고향마을에서 떠나고야 맙니다.


  학교에서 먼 옛날 세 나라 이야기를 배울 때에 가까운 옛날인 1950년 전쟁을 떠올렸습니다. 고구려와 신라와 백제, 여기에 가야까지 하면 네 나라인데, 고구려이든 신라이든 백제이든 가야이든 모두 ‘한겨레’라 했어요. 고구려만 한겨레이거나 가야만 한겨레가 아니에요. 백제는 한겨레가 아니라 말하지 않고, 신라는 두겨레나 세겨레라 일컫지 않아요. 그런데, 이들 같은 겨레는 다른 나라로 쪼개져 서로 땅을 넓히거나 빼앗으려고 끝없이 싸움을 벌였어요.


  먼 옛날, 이 땅덩이 이 겨레 옛사람은 스스로 좋아서 싸움을 벌였을까 궁금합니다. 임금님이 이웃나라로 쳐들어가 땅덩이를 넓히자 외치는 바람에 싸움판에 휩쓸리지 않았나 궁금합니다. 먼 옛날이나 가까운 옛날이나 여느 사람들은 싸움터에서 죽고 고향마을에서 그만 애꿎게 죽지 않았나 싶어요.

 

 


  오늘 우리 나라는 경기도·경상도·강원도·전라도·충청도·제주도처럼 나뉩니다. 꼭 나누어야 하지 않으나, 삶터와 삶자락에 따라 나누어요. 먼 옛날, 우리 나라라 한다면 서로 싸우지 말고 한쪽은 고구려, 다른 한쪽은 백제, 또 한쪽은 가야와 신라, 이렇게 사이좋게 나누어 서로 즐거이 살림을 꾸리며 어려울 때에는 돕고 기쁠 때에는 함께 잔치를 벌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생각합니다. 굳이 한덩어리가 되어 한 임금님이 다스려야 하지 않으니까요.


  비매품으로 나온 《화보 이산가족찾기》(민족통일중앙협의회,1983)를 헌책방에서 문득 마주합니다. 이러한 책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한 장 두 장 넘깁니다. 한창 ‘이산가족 찾기’가 온 나라를 들끓던 무렵, ‘민족통일중앙협의회’라 하는 곳에서 ‘이산가족 사진공모’를 했다 하고, 이 사진공모에서 입선한 작품을 그러모아 화보 하나 마련했다 합니다.


  벌써 꽤 지난 일이기에 아무렇지 않게 돌아볼 만한 사진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헤어진 식구를 찾는 사람들 낯빛은 하나같이 슬픕니다. 헤어진 식구를 서른 몇 해만에 드디어 찾은 사람들 얼굴빛은 하나같이 눈물바람입니다.

 

 

 


  슬픔 가득한 사진을 바라봅니다. 눈물젖은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사진공모란 이모저모 많다고 하지만, 이런 이야기까지 사진공모를 해야 했을까 싶기도 한데, 이렇게 사진공모가 있었기에 이날 이곳 이 사람들 눈물과 아픔과 생채기를 먼먼 뒷날까지 찬찬히 들려줄 수 있구나 싶어요. 좋은 뜻으로든 아픈 목소리로든, 누군가 어떤 이야기 하나 빚고 나면, 이 이야기는 책이라는 자리로 그러모아 오래오래 물려주면서 새로 거듭나곤 합니다.


  사진은 흔히 기쁜 자리에서 찍습니다. 누군가 어떤 잔치를 벌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혼인잔치이든 돌잔치이든 생일잔치이든 예순잔치이든, 잔치판하고 잘 어울리는 사진입니다. 학교에 처음 들어가는 자리라든지, 학교를 마치는 자리라든지, 학교에서 상을 주고받는 자리라든지, 누군가를 기리거나 누군가한테 손뼉 쳐 주는 자리하고도 잘 어울리는 사진입니다.

 

 


  이와 달리 슬프거나 궂은 자리는 사진하고 잘 어울린다고 여깁니다. 누군가 죽었다든지, 누군가 다쳤다든지, 누군가 괴롭거나 힘든 일이 있다든지, 가난과 굶주림에 찌들리는 살림이라든지, 슬프거나 궂은 자리에서 어느 한 사람이 사진기를 들면 이내 눈살을 찌푸려요. ‘어디 함부로’ 사진기를 들이미느냐 손가락질합니다. 어쩌면, 헤어진 식구를 찾는다는 자리에서 벌인 ‘사진공모’도 적잖은 사람들한테서 손가락질을 받지 않았을까요. 방송국이며 신문사이며 잡지사이며, 여기에 개인으로 사진기를 걸친 사진작가들까지,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사진기를 바짝 들이대니, ‘바라는 사람은 안 오’고 사진기만 춤을 추니 대단히 성가시거나 더욱 괴롭지 않았을까요.


  바라던 사람을 만난 사람들 눈물바람 모습은 누가 사진을 찍더라도 다 괜찮아 다 괜찮아 하고 외치며 기뻐했으리라 느낍니다. 바라던 사람을 만나지 못해 며칠이고 배를 곯으며 눈이 퀭한 모습은 가까운 살붙이가 사진을 슬쩍 찍으려 해도 다 싫어 다 싫어 하고 손사래치며 못마땅해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늘 나는 《화보 이산가족찾기》를 넘기면서, 헤어진 아픈 사람들 응어리진 마음을 읽습니다. 따로 공모전이 없었으면 1983년 그무렵에 ‘헤어진 아픈 사람들 이야기’를 사진책 하나로 엮으려던 움직임은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어디에 지진이 나 마을이 갈라지고 무너진다 하더라도 이러한 아픔과 생채기를 적잖은 이들이 사진으로 담아 금세 사진책 하나로 갈무리해요. 먼발치 사람들까지 아픔을 나누고 생채기를 달래요.

 


  슬픈 사람들 앞에서 사진기를 들이미는 일이란 내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내키지 않는 사진을 넘어, 한겨레 모두한테 아픔을 보듬고 생채기를 달래며, 이 겨레가 앞으로 어떻게 살림을 꾸리며 살아야 좋은가 하는 이야기를 나누려 하는 넋이라 한다면, 얼마든지 사진을 눈물로 찍고 슬픔으로 담으며 사진책을 빚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진공모 1등을 하려는 사진은 사진이 아닐 테지만, 사랑을 나누려는 사진은 사진이에요.


  사람을 찾는 사진입니다. 사랑을 찾는 사진입니다. 삶을 찾는 사진입니다. 이야기를 빚고 꿈을 이루는 사진입니다. (4345.3.21.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6만 원으로 사진책 하나 장만하기

 


  갑작스레 6만 원이 생겼다. 누리책방 알라딘에 쓴 느낌글 가운데 세 꼭지가 ‘이달 좋은 느낌글’로 뽑혀 하루아침에 6만 원을 벌었다. 나는 돈을 벌려고 느낌글을 쓰지 않는다. 누가 돈을 준대서 느낌글을 써 주지 않는다. 나 스스로 즐겁게 읽은 책과 얽힌 내 삶 이야기를, 나 스스로 좋아서 느낌글 하나로 갈무리한다. 이렇게 쓰는 느낌글이기에 ‘이달 좋은 느낌글’이라며 내 글을 세 꼭지 뽑아 주면서 6만 원을 덤으로 안기니 몹시 놀란다.


  그러나 놀라지 않기로 다짐한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 6만 원으로 새롭게 책 하나 사기로 다짐한다. 그동안 돈이 없다며 장만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애타던 사진책들 가운데 한 권을 산다.


  내가 사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진책을 모조리 사자면 아마 5억 원쯤은 있어야지 싶다. 이 가운데 누리책방에 주문해서 살 수 있는 사진책이라 한다면 ‘알라딘 보관함’에 담은 사진책 값만 하더라도 2천만 원이 넘는다. 더욱이, 일본 도쿄 간다 헌책방거리로 마실을 가서 그곳에서 사진책을 실컷 장만하여 한국으로 보내 달라 한다면, 나로서는 몇 억 엔어치를 살 테니, …….


  덧없는 꿈인지 배부른 생각인지 모르나, 읽고 싶은 사진책이 아주 많다. 그러나 이 사진책들을 장만할 돈이 내 주머니에는 없다. 나로서는 내가 오늘 읽을 수 있는 사진책을 수없이 되읽으며 내 마음을 다스리려 한다. 나 스스로 내가 꿈꾸는 좋은 사진을 빚어 보려고 한다.


  아무튼, 하늘에서 떨어진 6만 원 선물이 찾아왔기에, 《てるてる はるひ―父さん 晴日を撮る》라 하는 사진책 하나를 산다. 이 사진책을 낸 사진쟁이가 누구인지 모르고, 책에 깃든 사진이 어떠한지조차 모른다. 오직 겉그림 하나만 바라보며 장만한다. (4345.3.12.달.ㅎㄲㅅㄱ)

 

ㄱ. 책으로는 삶을 배우지 못한다

ㄴ. 좋은 사진은 좋은 삶에서 태어난다

ㄷ. 누구를 바라보며 찍는 사진입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진으로 역사를 바꾸려는 손길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29]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1987)

 


  1980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사진으로 찍은 사람이 꽤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들은 오래도록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사슬에다가 치안유지라는 허울이 너무 무시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시인 박용수 님이 사진책 《민중의 길》(분도출판사)을 내놓은 적 있으나 1989년이요, 사진기자 신복진 님이 《광주는 말한다》(눈빛)를 내놓았으나 2006년입니다. 1980년 광주를 말하는 ‘한국사람이 찍은 사진’은 아홉 해가 지나서야 겨우 조금 빛을 보고, 스물여섯 해를 훌쩍 지난 뒤에야 가까스로 이럭저럭 빛을 본 셈입니다. 이때 한국에 와서 취재를 하던 외국 기자들이 찍은 사진은 언제쯤 사진책 하나로 묶여 빛을 볼 수 있을까요. 한국사람이 미처 못 담은 모습, 한국사람한테는 꽁꽁 막혀 바라볼 수 없던 모습을 담은 외국 기자들 사진은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쯤 뒤에는, 또는 서른 해나 마흔 해쯤 뒤에는 빛을 볼 만할까요.


  박도 님이 미국 어느 도서관에서 고이 잠자던 사진을 깨워 《지울 수 없는 이미지》(눈빛)를 내놓은 때는 2004년입니다. 한국전쟁 무렵 한국땅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인데, 이 사진들은 자그마치 쉰 해를 훌쩍 지나 빛을 봅니다. 그러니까, 1980년 광주 이야기라면 앞으로 2030년쯤은 되어야 어디에선가 먼지를 털며 겨우 빛을 드러내지 않으랴 싶어요. 다만, 이 모습을 잊지 않은 누군가 있어야 하고, 이 모습을 되찾으려는 누군가 있어야 합니다.

 

 

 


  일제강점기에서 풀려난 한국은 기나긴 해를 군사정권 독재 그늘에 가려진 채 보내야 했습니다. 땅덩이는 남과 북으로 갈렸으나, 사람들 마음은 더 잘게 쪼개어져야 했습니다. 서로 믿고 서로 돕는 따스한 사랑보다는 서로를 미워하고 서로를 노려보는 끔찍한 총부리가 으르렁거려야 했습니다. 평화도 통일도 민주도 자리잡기 힘들었습니다. 사랑도 믿음도 꿈도 섣불리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 모든 아픔과 응어리를 그대로 눌러둘 수 없기에 조금씩 불씨가 피어났고, 1980년대 끝무렵에는 남녘땅 사람들이 주먹을 불끈 쥐며 몇 마디 아우성을 터뜨렸어요.


  이즈음, 붉은 빛으로 감싼 사진책 하나, 펴낸곳 이름 따로 없이, 어느 사진을 어디에서 얻어 누가 오리고 잘라 엮었는가 하는 이름 또한 없는 채, 조용히 태어났습니다. 개인이나 단체나 출판사 이름 어느 한 가지조차 쓸 수 없던 그무렵, ‘종교는 건드리지 않는다’라 하는 금 안쪽에서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이름을 붙인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1987)이 나옵니다.


  여기저기에서 오려 붙인 사진을 그러모았으니, 오늘날로 말하자면 ‘저작권 도둑질’이라 할 만하겠지요.


  글로도 그림으로도 사진으로도, ‘하고픈 말’을 마음껏 드러낼 수 없던 때에 나온 사진책이니, 가슴에서 북받치며 터져나온 책 하나라 할 만하겠지요.

 

 

 


  펴낸곳도 지은이도 엮은이도 따로 없는 만큼, 이 책은 여느 새책방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여느 도서관에도 이 책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아주 숨죽인 채, 사람들 사이사이 손과 손을 거쳐 눈시울을 적시며 몰래 읽고 읽혔습니다.


  나는 이 사진책을 헌책방에서 만났습니다. 자칫 헌책방 일꾼마저 ‘이런 책을 다룬다는 대목 때문에 경찰한테 붙들릴’ 수 있는데, 적잖은 헌책방 일꾼들은 아무렇지 않게 이 책을 조용히, 슬그머니 드러내어, 가만히, 말없이 번듯하게, 적잖은 사람들이 되읽고 돌려읽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어요.


  군사정권 독재자들은 왜 글·그림·사진을 송두리째 걸어 잠갔을까요. 군사정권 독재자들은 왜 신문과 방송과 책이 자유롭지 못하게 얽어맸을까요. 걸어 잠긴 글·그림·사진인데, 우리들은 이를 얼마나 느끼거나 생각했을까요. 얽어매인 나머지 제목소리 못 내던 신문과 방송과 책이었는데, 우리들은 이를 얼마나 알거나 깨달았을까요.

 

 

 


  사진은 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요. 그림은 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요. 글은 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요.


  나는 생각합니다. 사진도 그림도 글도 역사를 바꾸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바뀝니다. 왜냐하면, 사진이 역사를 바꾸지 못하지만, 사진 한 장에 온 눈물과 꿈과 사랑과 믿음을 담을 수 있으면, 이렇게 눈물을 담고 꿈을 담으며 사랑을 담는데다가 믿음을 담은 사진 한 장은 역사를 바꾼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찍는 사진마다 내 온 눈물과 꿈과 사랑과 믿음을 담으려 해요. 집안에서 뒹구는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든, 마당에서 마음껏 뛰노는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든, 언제나 내 마음속 모든 기운이 솟구쳐오르도록 이끌어 사진 한 장으로 영글어 놓고 싶어요.

 

 

 


  나한테 사진을 찍는 힘은 내가 살아가는 힘입니다. 나한테 사진을 읽는 눈길은 내가 사랑하는 눈길입니다.


  사진책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한 권이 이 나라 역사를 바꾸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이 사진책을 들여다본 사람들 가슴은 바꿀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그날 그곳 그때 그이를 이 사진책 하나로 가만히 그리면서 함께 웃고 같이 울며 나란히 어깨동무하는 꿈 한 자락을 끌어낼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미워하지 말자. 그러나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는 한 마디로 끝맺은 사진책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을 넘기면, 여느 동네 여느 아주머니들이 시민군이 먹을 밥을 스스로 해서 스스로 챙기는 사진이 있습니다. 시민군한테 음료수 병을 갖다 안기는 사진이 있습니다.


  이와 달리, 총칼을 무섭게 빼든 군인한테 밥 한 그릇이나 물 한 모금 선선히 갖다 바치는 모습은 어떠한 사진으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시민군도 계엄군도 모두 사람인데, 계엄군이라는 허울을 쓰고 광주땅 사람들 수천을 아무렇지 않게 끔찍히 죽인 이들은 누가 심어 거두고 누가 차려서 내미는 밥을 먹었을까 궁금합니다.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일는지 궁금합니다. 정권이란 무엇이고 독재란 무엇이며 정치란 무엇일는지 궁금합니다. 민주와 평화와 통일과 자유란 어떠한 모습과 이야기일는지 궁금합니다.


  왜 권력을 손아귀에 쥐려 하나요. 왜 돈뭉치를 뒷주머니에 챙기려 하나요. 왜 총칼로 사람들을 무릎 꿇리며 함부로 다루나요. 누구라도 하루 세 끼니 밥을 먹어야 하는 목숨이에요. 누구라도 논밭에 씨앗을 뿌려 알뜰히 건사해서 가을날 흐뭇하게 곡식과 열매를 얻어 어깨동무하며 누려야 할 이웃이에요. 살림을 즐거이 꾸리는 데에 마음·품·겨를·돈을 쓸 노릇이라고 느껴요. 군대를 만들거나 무기를 만들거나 4대강 삽질을 하는 데 따위에 어떠한 마음·품·겨를·돈조차 쓰지 않아야 한다고 느껴요.


  사진 한 장은 역사를 바꾸었을까요. 사진책 한 권은 삶을 바꾸었을까요. 사진기를 쥔 사람들은, 사진으로 담긴 사람들은,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사진책을 돌려읽는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까요. (4345.3.9.쇠.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노이에자이트 2012-03-09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89년에는 가톨릭 사제들의 증언집인 <저항과 명상>(빛고을 출판사)이 나왔습니다.부록으로 독일 기자가 광주항쟁에 대해 쓴 글 세 편이 있죠.

숲노래 2012-03-09 17:21   좋아요 0 | URL
오, 그렇군요.
음... 저희 집에도 있나 싶기도 한데
가물가물하네요 @.@
 

 


 마흔 날 어디를 ‘여행’하라 한다면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27] 장을선, 《아프리카의 인상》(사진예술사,1990)

 


 사진을 찍어 상을 받아야 할 까닭이 없고, 사진을 찍으며 돈을 벌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을 찍어 이름을 날려야 한다든지, 사진을 찍으며 책을 내야 할 까닭이 없어요. 스스로 좋아하니 찍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즐기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삶을 누리는 길동무인 사진입니다. 스스로 아름답게 거듭나는 넋을 다스리는 사진입니다.

 

 삶을 돌아보면, 사진공모전은 덧없습니다. 저마다 다 다른 삶을 일구며 저마다 다 다른 사랑을 빚은 사진에는 차례나 번호나 점수를 매길 수 없어요. 어떤 사진을 몇 작품으로 만들었다 해서 작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습니다. 어느 모임에 들어가 사진을 찍기에 사진작가가 되지 않습니다. 한자말로 적어 ‘작가(作家)’인데, 사진작가란 “사진을 짓는 사람”이란 소리입니다. 이제껏 없던 사진을 새롭게 지을 때에 이러한 이름을 쓴다지만, 누구라도 ‘이제껏 있던 사진을 다시 찍’는 일이란 없어요. 다른 사람이 내놓은 작품을 베끼거나 따른다 하더라도 빈틈 하나 없이 똑같이 베끼지 못합니다. 더욱이, 다른 사람 작품을 베끼거나 따른다는 일이란 얼마나 슬픈 일이 될까요. 내 삶은 내 삶이지, 다른 사람 삶을 흉내낼 수 없어요. 내 넋은 내 넋이지, 다른 사람 넋을 따라갈 수 없어요.

 

 내 눈길에 따라 내 나름대로 빚는 사진이에요. 참가비도 상금도 상장도 없이, 사진공모전에 사진을 보낸 사람들 작품을 모두 한 자리에 실어 스스럼없이 나누거나 보여주거나 즐길 때에 비로소 서로서로 즐거울 ‘사진잔치’로 자리잡으리라 생각해요.

 

 

 장을선 님 사진책 《아프리카의 인상》(사진예술사,1990)을 읽습니다. 여섯 아이를 낳아 돌본 어머니 길을 걸으며 사진기를 다른 한손에 쥔 장을선 님이라고 합니다. 장을선 님은 1989년에 여덟 번째 ‘대한민국 사진전람회’에서 큰 사진상 하나를 받고는 나라밖으로 ‘사진 배우는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하고, 이 사진여행길에 찍은 사진을 《아프리카의 인상》이라는 사진책으로 낼 수 있었다 합니다.

 

 적잖은 돈이 들 사진여행을 마흔 날 동안 홀가분히 떠날 수 있었고, 케냐와 이집트를 사진기 걸쳐메고 돌아봅니다. 사진책을 찬찬히 넘기면서 한편으로는 부럽네,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쉽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케냐와 이집트를 밟는 마실길이기에 고작 마흔 날밖에 못 다니겠지요. 장을선 님으로서는 아프리카를 꿈처럼 그리며 살았기에 아프리카로 떠날 수 있을 테지요. 그런데, 사진책 《아프리카의 인상》을 읽으며 ‘아프리카 이야기’와 ‘케냐 이야기’와 ‘이집트 이야기’가 얼마나 예쁘게 얼크러지는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프리카라 이름을 붙이니 아프리카인가 보구나 하고 생각할 뿐, 사진만 들여다보아서는 왜 어떻게 아프리카라 할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흔 날 마실은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짧습니다. 누군가는 아프리카에 살림집 얻어 여러 해 눌러지내며 사진을 찍습니다. 누군가는 아프리카를 이웃집 드나들듯 자주 오가며 사진을 찍습니다.

 

 

 

 오래 눌러지내며 사진을 찍어야 가장 잘 찍지 않습니다. 몇 번 스치듯 지나갔대서 제대로 못 찍지 않습니다. 오래 눌러지낼 때에는 오래 눌러지내는 빛을 담습니다. 몇 번 스치듯 지나갈 때에는 짧은 한동안을 빛내는 결을 담습니다.

 

 살결이 까만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아 아프리카가 되지 않습니다. 책이름처럼 ‘아프리카를 느낀’ 무언가도 되지 않습니다. 서로 가만히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일은 언뜻 보기에 잘 빚은 사진이라 할 만하지만, ‘서로를 구경하고 지나치는’ 일에 그치곤 합니다.

 

 왜 얼굴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어야 할까요. 왜 아이들과 어른들 얼굴을 가만히 마주하며 사진을 찍어야 할까요. 아프리카란 어떤 땅이고, 케냐란 어떤 나라이며, 이집트는 어떠한 삶터인가요. 세 가지 궁금한 대목을 풀어내지 못한다면, 애써 마흔 날에 걸쳐 두 나라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막상 사진으로 빚는 이야기는 못 태어나는 셈 아닌가 싶어요. 참말, ‘구경하는 사진(인상)’으로 머물면서, ‘살아가는 사진’으로는 새로 태어나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이 사진책에 나오는 사람들 모습은 살가우며 수더분해서 반갑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 삶으로 깊숙히 스며들며 담은 이야기를 찾을 수 없어 아쉽습니다. 마실하는 날이 넉넉하지 못해 오래 머물지 못하기에 겉스치는 ‘느낌(인상)’을 담는 사진이 된다 하겠으나, 겉스칠 때에는 겉스치며 마주하는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즐기면 돼요. ‘반짝 하는 놀라운 사진 한 장’이 아니라, 짧은 동안 마주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꿈과 사랑을 살포시 담는 사진’을 보여주면 넉넉해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랑을 기쁘게 담으면 되거든요. 이를테면, 귀여운 손자가 명절날 찾아와 며칠만 있다가 돌아가더라도 이 며칠이 더없이 사랑스러워 나로서는 더없이 사랑스럽다 여긴 사진을 찍습니다. 고작 하루만 머물다 돌아가든, 하루조차 아닌 몇 시간만 머물고 돌아가든 나는 내 손자를 아주 예쁘게 여기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나한테 마흔 날 어디 홀가분하게 마실을 다녀오라 한다면 어디를 다닐 만한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내 옆지기라면 우리 보금자리 뒤에 깃든 천등산부터 걸어 소백산맥 길을 따라 지리산을 지나고 태백산을 아울러 오대산과 설악산 있는 데까지 멧길 천천히 걷기를 할 텐데, 나라면 마흔 날 동안 어떤 마실을 할 만할까 헤아려 봅니다.

 

 일본 도쿄 헌책방거리를 마흔 날 동안 쏘다니며 책을 살피고 장만하며 누리면 얼마나 좋으랴 하고 꿈꿉니다. 고흥 시골마을을 골골샅샅 누비며 맞아들이면 얼마나 즐거우랴 하고 꿈꿉니다.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 따라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바닷마을을 휘 돌아볼 수 있어도 무척 기쁘겠구나 하고 꿈꿉니다. 자전거 타고 한국땅 헌책방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마실을 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습니다. 문닫은 시골 작은학교를 자전거 타고 찾아다니고, 작은학교 깃든 시골마을 작은가게에 들러 깡통맥주 하나 마시면서 사진을 찍어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해요.

 

 

 

 

 요즈음도 ‘대한민국 사진전람회’에서 큰 사진상 받는 이한테 나라밖 마실을 보내 주는지 궁금합니다. 요즈음도 나라밖으로 마실을 보내 준다면, 사진쟁이 스스로 가고프다는 곳으로 보내 주지 말고, 지구별 나라들을 하나씩 콕콕 집어, 해마다 다른 나라로 보내면서, ‘해마다 다 다른 나라 삶과 사람과 삶터를 다 다른 사진쟁이가 다 달리 담도록’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한 해에 한 나라씩 어떤 이야기를 갈무리하도록 이끈다고 할까요. 이러면서 작은 사진상 받는 이한테 나라안 골골샅샅 돌아보도록 이끌어, 해마다 두 가지 사진열매 빚을 수 있어요. 하나는 ‘한국에서 바라보는 지구별’을,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바라보는 한국땅’을.

 

 아이를 여섯 낳아 돌본 어머니이기 때문에 꼭 여섯 아이 삶을 사진으로 담아야 한다거나, 여섯 아이가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을 때에 이 여섯 아이들네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섯 아이 삶을 두고두고 사진으로 갈무리한다면, 장을선 님으로서는 아직 한국에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놀라운 ‘사진 육아일기’를 여섯 권 빚을 수 있고, 이 여섯 아이들네 아이들 이야기까지 갈무리하며 ‘사진 생활일기’를 수없이 빚을 수 있으리라 느껴요.

 

 아프리카도 좋고, 록키산맥도 좋아요. 그런데 장을선 님이 선보일 첫 사진책이 《아프리카의 인상》이니 서운합니다. 두 번째 사진책은 《The Spring of Rockies》이니 슬픕니다. 장을선 님 아이들이 당신한테 힘이 되고 사랑이 되며 믿음이 되었기에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막상 장을선 님 아이들 삶과 사랑과 믿음을 고루 갈무리한 사진으로는 사진책을 일구지 못하니 쓸쓸합니다.

 

 작품이 되어야 사진이 되지 않아요. 사진은 작품을 만드는 일이 아니에요. 삶이 될 때에 사진이에요. 사진은 삶을 사랑하는 꿈을 보살피는 좋은 길동무 가운데 하나예요. (4345.3.2.쇠.ㅎㄲㅅㄱ)


― 아프리카의 인상 (장을선 사진·글,사진예술사 펴냄,1990.10.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 스스로 느끼는 대로 사진을 찍는다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26] 로버트 코왈크직(Robert Kowalczyk), 《Morning Calm》(Dawn press,1981)

 


 1969년에 평화봉사단과 함께 한국에 와서 세 해 동안 영어를 가르쳤다고 하는 로버트 코왈크직(Robert Kowalczyk)이라고 하는 분은 1972년부터 일본 교토에서 살면서 사진을 찍고 대학교수로 일했다고 합니다. 바지런히 찍은 사진은 일본과 한국과 미국에서 선보였고, 이 가운데 한국에서 담은 한국 이야기를 《Morning Calm》(Dawn press,1981)이라는 책에 담아 일본과 미국에서 나란히 펴냅니다. 이 사진책은 로버트 코왈크직 님으로서는 첫 사진책이라 하는데, 이 사진책 뒤로는 네팔 카트만두와 포카라 골짜기를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고 해요. 이분은 ‘명희(Myung-Hee)’라는 분하고 혼인해서 ‘킴벌리(Kimberlye)’라는 아이 하나를 두었답니다. 사진책 《Morning Calm》에 담은 수채그림은 옆지기 명희 님이 그렸답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모두 사진책 《Morning Calm》 책날개에 영어로 적힙니다. 로버트 코왈크직이라고 하는 분 발자취는 한국땅에서 거의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한국사람들 삶자락 담은 사진책을 내고 사진잔치를 열며 한국 아가씨랑 혼인해서 아이를 낳기도 했으니, 한국이라는 나라를 퍽 사랑하며 아끼리라 보는데, 다른 잘 알려진 숱한 ‘한국에 뿌리내리는 외국사람’과 달리, 이분 이름은 깊이 숨겨집니다.

 

 

 

 

 

 그러나, 한국에는 헌책방이 있고 주한미군이 있습니다. 한국땅 헌책방 가운데 이 사진책을 받아들여 예쁘게 꽂은 데가 있었습니다. 주한미군 도서관은 부대에 새로 들어오는 병사가 읽을 수 있도록, 미군부대가 들어선 나라가 문화와 예술과 삶이 어떠한가를 알려주거나 가르치려고 온갖 책을 두루 갖추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갖춘 책들이 좀 묵거나 낡으면 ‘주한미군 부대가 있는 나라 헌책방’에서 돌려읽힐 수 있게끔 내놓습니다. 지난 1960∼70년대뿐 아니라 1980∼90년대에도, 2000∼10년대까지도, 주한미군 도서관은 한국땅 헌책방에 ‘꽤 좋으며 괜찮은 미국책’을 꾸준히 많이 내놓습니다.

 

 내 손으로 들어온 사진책 《Morning Calm》은 ‘US Army camp Red Cloud’에서 흘러나왔습니다. ‘붉은구름 미군부대’라 할 텐데, 서울 용산에 있다고 합니다. 도서관 대출종이가 그대로 있어 이 사진책을 얼마나 읽었는가 살필 수 있는데, 1983년 1월 24일에 도서관에 들였고, 이때부터 꾸준히 읽힌 다음 2001년 7월 3일을 끝으로 더는 읽히지 않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이 사진책 《Morning Calm》에 실린 한국 모습은 1970년대입니다. 1981년에 나온 사진책 모습은 끝없는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에 발맞추어 하루가 다르게 바뀌거나 무너집니다. 1990년대로 접어들 무렵이면 꽤 아스라이 멀어진 옛이야기로 여길 만한 모습이에요. 2000년대가 될 무렵이면 좀 생뚱맞게 여길 만한 모습일 수 있어요. 미국땅에서 한국땅 미군부대에 새로 찾아오는 군인한테는 1970년대 모습을 담은 1981년 사진책이 더는 쓸모있다 하기 어렵습니다. 2000년대와 2010년대 미군부대에서는 새로운 ‘한국 이야기 깃든 모습 담은 사진책’을 갖추려 하겠지요. 게다가 이 사진책은 도시가 아닌 시골을 보여줍니다.

 

 문득, 조지 풀러라는 미국사람이 한국전쟁 언저리에 찍은 무지개빛 사진을 담은 《끝나지 않은 전쟁》(눈빛,1996)이라는 사진책이 떠오릅니다. 한국전쟁 무렵 한국땅 모습과 여느 한국사람 이야기가 이 작은 사진책에 꽤 알뜰히 실립니다. 게다가 까망하양 사진이 아닌 무지개빛 사진입니다.

 

 

 

 

 

 

 

 

 무지개빛 사진으로 들여다보는 1950년대 첫머리 여느 한국사람 모습은 ‘그리 지저분하’거나 ‘그닥 꾀죄죄하’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끼니 잇기 수월찮은 한국 어린이일 텐데 입성은 그럭저럭 수수합니다. 햇볕에 그을리고 흙땅을 밟는 흙빛 얼굴입니다. 까망하양 사진으로만 들여다본다면 자칫 ‘많이 시커멓게만’ 보일 얼굴이겠으나, 무지개빛 사진으로 들여다보니 아주 싱그러우며 튼튼해 보이는 ‘흙빛’ 얼굴이요 차림이에요.

 

 사진책 《Morning Calm》은 까망하양 사진입니다. 이 사진에 나오는 어른이나 어린이도 자칫 ‘많이 시커멓게만’ 보인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버트 코왈크직 님은 당신이 마주하는 한국사람을 ‘그리 추레하’게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닥 꾀죄죄하’게 보이는 모습으로는 찍지 않아요. 당신이 좋아하는 결을 살려 사진을 찍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이웃을 헤아리며 사진으로 옮깁니다. 그러고 보면, 로버트 코왈크직 님은 한국 아가씨와 짝을 지었습니다. 한국을 사랑하면서 한국 아가씨하고 짝을 지었을 테고, 한국을 사랑하는 손길과 마음길로 두 사람 뜻을 사진책 한 권에 곱게 실었겠지요.

 

 

 

 

 

 

 

 

 “The pure, uncluttered atmosphere of the Korean countryside seemed capable of reaching buried chords in the heart of modern man. Nostalgia? Yes. but, also something more than a mere longing for things past. For the feelings presented by the people and places of the Korean coutryside are touching not because they are lost, but because they are here, some where, amid the problems and complexities of our lives. Perhaps in order to see these very important values we must in some way change the focus of our vision and allow ourselves the benefits of true gifts offered.”라는 말마디를 곰곰이 되새깁니다. 로버트 코왈크직이 사진으로 담은 한국 모습은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 왔을 때인 1969년부터 1971년까지 바라본 모습입니다.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이 한창 불타오르던 무렵이기도 하고, 시골마을 사람들 삶이 배어나는 사진이지만 이런 자국이 곳곳에 살짝 스며들곤 합니다. 고즈넉하면서 어여쁜 시골마을이지만, 이러한 시골마을까지 ‘슬픈 도시 물질문명’이 파고들려 해요. 돈을 더 벌라고, 돈을 더 쓰라고, 기계를 더 들이라고, 텔레비전을 보라고, 자꾸자꾸 무언가를 부추깁니다. 흙을 일구며 살아오던 이 겨레는 서로서로 돕고 아끼면서 살림을 곱게 꾸렸는데, 이 고운 살림을 스스로 저버리도록 무언가 자꾸 꼬드기며 시골을 망가뜨립니다.

 

 

 

 

 

 로버트 코왈크직 님 ‘한국 시골 사진’은 이 대목 이 갈림길에 선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라지려 하기에 더 예쁘게 감싸’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벌써 잊혀지거나 사라지고 만 모습이기에 꿈 같은 모습이라고 추켜세우지 않습니다. 좋은 터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고 사진으로 말합니다. 맑은 터전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맑은 모습을 보여준다고 사진으로 얘기합니다.

 

 살아가는 빛이 드러나는 사진입니다. 살아가는 빛을 가만히 살펴 찬찬히 선보이는 사진입니다.

 

 1969∼1971년 사이에는 이무렵대로 아름다운 빛이 이 땅에 감돌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느덧 이때부터 마흔 해를 지난 2010년대에는 2010년대대로 아름다운 빛이 이 땅에 감돌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옛날과 오늘날은 다릅니다. 옛날과 같은 모습을 오늘날에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옛날은 옛날대로 아름다이 느끼며 누리는 삶입니다. 오늘날은 오늘날대로 어여삐 느끼며 누리는 삶이에요. 옛날에도 수도물을 마셔야 하던 사람들이 있고, 오늘날에도 맑은 냇물을 마시는 사람들이 있어요. 옛날에도 자가용을 몰던 사람들이 있으며, 오늘날에도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름답게 얼크러지는 꿈을 꾼다면 아름답게 일구고 싶은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사랑스레 어깨동무하는 꿈을 꾼다면 사랑스레 일구고 싶은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넋이 삶이 되고, 삶이 사진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4345.2.28.불.ㅎㄲㅅㄱ)


― Morning Calm (로버트 코왈크직 사진,Dawn press 펴냄,1981)

 

 

 

 

 

 

 

 

 

 

 

 

 

 

 

조지 풀러 사진책은 알라딘에 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