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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사람과 사는 지혜 - 루이제 린저의 38가지 이야기
루이제 린저 지음, 곽복록 옮김 / 지식공작소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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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는 삶과 살아가는 생각
 [사랑하는 배움책 7] 루이제 린저, 《낮은 목소리》(덕성문화사,1992)

 


- 책이름 : 낮은 목소리
- 글 : 루이제 린저
- 옮긴이 : 윤시원
- 펴낸곳 : 덕성문화사 (1992.1.10.)
- 2001년에 《내가 아닌 사람과 사는 지혜》(지식공작소)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옴

 


  동이 트는 새벽에 먼 하늘가를 바라본 적 있는 사람은 날마다 얼마나 기쁘며 좋은 선물인가를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저녁에 해가 기울 적에도 붉게 타는 노을이요, 새벽에 해가 뜰 적에도 붉게 타는 노을이에요. 지는 노을도 아름답고, 뜨는 노을도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저녁에 지는 노을이든 새벽에 뜨는 노을이든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도시에는 높은 건물이 너무 많은 나머지 하늘가를 바라볼 틈이 없어요. 새벽 일찍 일어나 회사나 학교로 가는 사람들은 버스나 지하철 같은 데에서 꾸벅꾸벅 조느라 높은 건물 틈바구니에서 벗어났다 하더라도 하늘을 곱게 껴안지 못합니다. 도시를 크게 감도는 먼지구름 때문에 새벽노을이나 저녁노을을 못 보기도 하겠지요.


.. 부정한다고 해서 새로운 운명이 얻어지는 것도 아니며, 그럴수록 부과된 운명은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질 뿐입니다 … 누구든지 용기를 내고자 하면 용기는 생기는 법입니다 … 자신을 잘 처리해 나갈 수 있다면, 견디지 못할 생활 상태란 없을 것입니다 … 그 행위자를 영원히 미워하여 당신에 대한 행위자의 개선의 기회를 박탈한다면 그것은 가혹하고도 또한 똑같이 비인간적인 처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행동의 나쁜 점을 지적해 주고 비판해 주고 그들이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실제적인 기회를 주는 것이 참다운 용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13, 17, 28, 50쪽)


  천천히 파란 빛깔로 물드는 하늘을 누립니다. 하늘빛이 드러나면서 하늘을 채우는 구름이 얼마나 어떻게 있는가를 깨닫습니다. 티 한 점 없다 싶도록 구름이 안 보이는 날이 있고, 온통 하얗디하얗게 빛을 입힌 날이 있어요.


  들판에서는 벼가 익습니다. 이삭을 패고 여무는 벼는 천천히 고개를 숙입니다. 아직 여물지 않은 벼는 볏잎처럼 푸른 빛깔 알곡만 꽃대에 달린 채 뻣뻣합니다. 알곡이 여물수록 차츰 무게를 더하고, 알곡 무게가 더할수록 꽃대는 천천히 휘겠지요. 들판은 모를 심은 날에 따라 알곡이 여무는 차례가 다릅니다. 모를 심은 차례대로 알곡이 익을 테고, 알곡이 익는 차례에 따라 벼를 베겠지요.


  마을 이장님이 새벽방송으로 ‘경관 사업’을 이야기합니다. 시골 면사무소에서는 ‘경관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가을걷이 마친 논에 유채씨 뿌리기’를 시킵니다. 벼를 모두 벤 빈 논이 늦봄까지 텅 빈 채 있으면 ‘보기 안 좋다’ 해서 유채씨를 뿌리도록 시켜요. 유채씨를 뿌리면 늦겨울부터 천천히 푸른싹이 돋고 이른봄에는 꽃대가 올라 유채꽃이 노랗게 피어나요. 늦봄에 써레질을 하고 모를 심기까지 ‘시골 들판을 지나가는 바깥사람’들 눈에 ‘보기 좋으’라고 유채씨를 뿌리도록 한다고, 이러한 ‘경관 사업’을 알뜰히 해 주어야 마을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빈 들판을 바라보기보다는 노란 꽃누리를 바라볼 때에 한결 좋을 수 있겠지요. 도시로 떠난 딸아들이 자가용 몰고 시골집으로 찾아올 적에는 이 유채밭을 바라보며 ‘아이 예쁘네’ 하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보기 좋은 모습(경관)’이란 왜 유채밭이어야 할까 궁금해요. 자동차나 군내버스나 경운기 지나다니는 큰길 가장자리를 따라 전라남도 시골마을에 어울리도록 유자나무나 석류나무를 심을 수 있을 텐데요. 매화나무를 심고 모과나무를 심을 수 있을 텐데요. 길을 따라 죽 심으면 좋아요. 마을로 접어드는 길에도 온갖 나무를 심을 수 있어요. 밤나무도 심고 참나무도 심으며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을 수 있어요. 능금나무나 복숭아나무를 심을 만해요. 이렇게 심은 나무들이 가득한 시골길이라면, 열 해가 지나고 스무 해가 지나면서 한결 사랑스럽고 시원스러운 길이 되리라 생각해요. 길마다, 마을마다, 열매나무 흐드러진다면, 시골을 떠난 딸아들도 시골로 돌아오도록 이끌 만할 수 있으리라 느껴요. 마을사람뿐 아니라 길손 누구라도 열매를 몇씩 따서 먹을 수 있겠지요. 어느 한 집에서 몽땅 털듯 가져가도록 하지는 말고, 누구나 즐겁게 누리도록 하면 되겠지요.


.. 과거란 엄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그것은 결코 소멸되지 않는 재산입니다. 그러므로 벗어버린 당신의 생을 올바른 관점에서 뒤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신이 아닙니다. 전쟁은 우리가 하며 우리 이웃을 미워하는 것도 우리입니다 … 사람이 완전히 겸허한 가운데 스스로 작고 충실하고 초라한 하느님의 심부름꾼 이외에는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때에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는지를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 사람들은 완전히 자기 자신일 때에만 행복합니다 ..  (36, 37, 58, 81쪽)


  새벽빛이 온 마을을 비춥니다. 하늘가만 붉게 적시던 빛깔은 시나브로 마을로 스밉니다. 불그스름한 빛은 이내 파르스름하게 바뀝니다. 파르스름한 빛은 곧 하얗게 바뀝니다. 그러다가는 노오랗게 바뀌고, 이제 또렷한 무지개빛이 돼요. 햇빛이 무지개빛으로 온 들판을 어루만질 때에 아침이 됩니다.


  우리 집 꽃밭이자 조그마한 텃밭에서 자라나는 부추풀은 모두들 하얀 꽃송이를 환하게 터뜨립니다. 아직 몽우리로 맺힌 부추풀도 제법 많으니, 앞으로 이레쯤 뒤에는 몽우리도 꽃봉오리로 터질 수 있고, 보름이나 한 달 즈음 부추꽃을 날마다 바라보며 꽃놀이를 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하얀 부추꽃에는 온갖 나비가 찾아듭니다. 내가 이름을 아는 나비도 찾아들고, 내가 이름을 모르는 나비도 찾아듭니다. 짝을 지어 찾아들기도 하고, 홀로 찾아들기도 합니다. 나비 따라 잠자리도 우리 집 마당이나 꽃밭으로 찾아들며 노닐기도 하는데, 잠자리는 곧잘 거미줄에 걸립니다. 거미줄에 걸렸다가 풀려난 잠자리가 있으나, 커다란 거미가 지은 커다란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는 그예 거미밥이 됩니다.


  풀숲에서는 여치나 방아깨비가 거미밥이 되곤 합니다. 여치나 방아깨비는 무엇을 먹이로 삼으며 지낼까요. 여치나 방아깨비한테 먹이가 되는 목숨은 어떤 목숨을 받아들이며 저희 목숨을 이을까요.


  하늘은 파랗고 들판은 푸릅니다. 내 마음은 어떤 빛깔일까 생각해 봅니다. 내 사랑은 어떤 무늬일까 헤아려 봅니다. 이 파란 기운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될는지, 이 푸른 숨결을 맞아들이는 사랑이 될는지, 곰곰이 짚어 봅니다.


.. 우리는 누구나 자기에 대한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 꿈은 그것을 실현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소멸됩니다 …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어느 때가 가장 행복할가요. 그것은 바로 사랑할 때입니다 … 상승하지 않는 자는 하강합니다. 위를 바라보지 않는 자는 자신을 위로 끌어올릴 만한 대상을 보지 못합니다 … 내가 그 돈을 그들에게 주기 전까지 금고는 텅 빈 채로였으나, 그들은 조바심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그날의 일용할 양식만을 기원했고, 언제나 그것은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  (49, 63, 74, 82, 117, 135쪽)


  이른새벽에 누런쌀을 살살 씻어 불립니다. 이른아침에 쌀을 냄비에 담아 불을 올립니다. 자그마한 불로 천천히 끓는 밥은 솔솔 냄새를 피웁니다. 밥냄비를 올리면서 국냄비를 나란히 올립니다. 엊저녁 먹고 남은 된장국을 덥힙니다. 반찬 한 가지 새로 할 수 있고, 오이와 곤약을 송송 썹니다. 텃밭에서 돗나물을 뜯고, 다른 풀을 뜯습니다. 모시풀을 뜯기도 하고, 지칭개를 뜯기도 하며, 쑥을 뜯기도 하지만, 이름을 모르는 풀을 뜯기도 합니다. 잎사귀 하나 혀에 얹고 살살 씹으며 괜찮다 싶으면 어떠한 풀이든 다 뜯어서 나물비빔을 합니다.


  밥을 하는 마음은 내 숨을 북돋우는 마음입니다. 밥을 차리는 마음은 내 숨결을 살찌우는 마음입니다. 하루 더 살고 싶어서 밥을 하지 않습니다. 하루 더 사랑스레 즐기고 싶어서 밥을 합니다. 한 끼니 채우려고 밥을 하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예쁘게 누리고 싶어서 밥을 차립니다.


.. 나무가 뿌리를 통해서 자라나는 것처럼 우리들을 자라게 하는 요소는 우리들의 무의식의 세계이며,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활력소이며 활력 저장소인 것입니다 … 진리란 어느 한 극단이 없으며, 이쪽도 저쪽도 다 옳은 길이면 진리인 것입니다 … 누구든 앞으로 배울 가능성이 있기 마련이며 … 생명이란 살아 숨쉬는 것입니다 …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 다른 하나를 잃어버린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 타인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참된 양심에 따라서 진실만을 행동하는 경우뿐입니다 ..  (89, 107, 121, 128, 130쪽)


  루이제 린저 님이 쓴 글을 갈무리한 《낮은 목소리》(덕성문화사,1992)를 읽습니다. 1992년에 나온 《낮은 목소리》는 판이 끊어져 헌책방에서 찾아보는 책이 됩니다. 2001년에 《내가 아닌 사람과 사는 지혜》(곽복록 옮김,지식공작소)라는 이름으로 새 번역과 새 판이 나왔습니다. 이 책은 루이제 린저 님이 짤막하게 쓴 글을 갈무리하는데, ‘운명’이나 ‘인품’이나 ‘용서’나 ‘죽음’이나 ‘삶’이나 ‘돈’이나 ‘행복’이나 ‘사랑’처럼, 사람들 삶에서 흔히 돌아보거나 마주하거나 느낄 만한 대목을 곰곰이 생각을 기울여서 쓴 글입니다.


  이를테면 ‘사랑’이라는 대목에서 “인생이 다양하기에 우리는 각자의 개성으로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하고 말하다가는 “한 인간에게 성실을 지키는 한 그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상대방을 완전무결한 인격체로 보는 것입니다.” 하면서 ‘사랑’을 새삼스레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 그런 규제된 생활은 힘들고 괴롭지만 그것은 그들 자신의 선택인 것입니다 … 만족하는 사람은 평화로운 사람입니다 …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하여 격렬하고 완강하게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고통 당하여야만 합니다 … 꿈은 우리의 잘못을 보여주고 우리로 하여금 변화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 그들(아이들)은 말로써가 아닌 그 눈에 가득한 기쁨이나 선물에 대한 충분한 애착으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  (141, 147, 152, 159, 173쪽)


  생각하는 대로 나한테 찾아오는 삶이라고 합니다. 내가 걱정을 마음에 품으면 걱정이 나한테 찾아온다고 해요. 내가 미움을 마음에 품으면 미움이 나한테 스며든다고 해요. 내가 웃음을 마음에 품으면 웃음이 나한테 찾아온다지요. 내가 수다를 마음에 품으면 수다가 나한테 찾아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 마음에 품는 한 가지를 자꾸자꾸 생각하거든요. 자꾸자꾸 생각하면서 내 삶을 이 생각에 맞추거든요. 내가 생각하는 한 가지를 바라봅니다. 내 둘레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 가운데 ‘내 마음에 품은 한 가지’가 보일 적에 쉬 알아채고 어느새 그리로 끌립니다.


  돈을 생각하던 사람은 돈 될 일이 있는 곳에 갑니다. 돈을 생각하던 사람은 돈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귀를 쫑긋합니다. 꿈을 생각하던 사람은 누가 돈을 얘기하건 말건 듣지 않을 뿐더러, 느끼지 않습니다. 햇살을 생각하던 사람은 누가 자가용을 얘기하더라도 가슴이 움직이지 않아요. 떡갈나무를 생각하는 사람은 코앞에 미루나무 한 그루 있어도 못 알아보곤 합니다. 둥글레풀꽃을 찾는 사람은 코앞에 엉겅퀴꽃이 있어도 못 알아보기도 해요.


.. 당신은 당신의 그 아름다운 생의 비밀을 당신이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 비밀을 말함으로써 빛나던 광채가 사라졌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 인간이 설사 무인도에서 혼자 지낸다 해도 그는 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 인간의 행복은 소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가운데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도 어리석습니다 … 천국에서는 결혼도 출산도 없으며 오로지 우정만이 존재합니다 … 내가 사랑하는 경우, 인류 전체의 모든 인간도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랑을 체험하는 까닭에, 사랑이란 ‘진실로 존재한다’는 가정에는 어디에고 모순이 있을 수 없습니다 ..  (164, 190, 197, 208, 212쪽)


  생각하는 삶이란 살아가는 생각입니다. 살아가는 생각은 곧 생각하는 삶입니다. 삶을 생각하기에 살아가고, 죽음을 생각하기에 죽습니다. 내 어버이를 생각하기에 나 또한 어버이가 되고, 아이들을 생각하기에 나 또한 언제나 아이들 같은 넋으로 살아갑니다.


  전쟁을 생각하는 사람은 삶부터 전쟁과 같으며, 말이나 글 모두 전쟁처럼 내뱉아요. 평화를 생각하는 사람은 집안부터 평화를 이루며, 책을 읽든 빨래를 하든 평화롭게 즐겨요.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생각하도록 이끌까요. 오늘날 학교에서 교사 자리에 선 이들은 스스로 무엇을 생각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려 할까요. 오늘날 어버이는 아이들 앞에서 어떤 생각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는가요. 오늘날 어버이는 스스로 어떤 삶을 누리려는 생각일까요. (4345.8.2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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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
메리 몽간 지음, 정환욱.심정섭 옮김 / 샨티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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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맑을 때에 아기도 맑다
 [사랑하는 배움책 6] 메리 몽간,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샨티,2012)

 


- 책이름 :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
- 글 : 메리 몽간
- 옮긴이 : 정환욱, 심정섭
- 펴낸곳 : 샨티 (2012.7.10.)
- 책값 : 2만 원

 


  한여름 새벽에 일어나 찬물로 몸을 씻으며 빨래 한 점을 합니다. 아침에 새삼스레 다시 몸을 씻고 나서 빨래 여러 점을 합니다. 이제 낮이 되어 아이들이 뛰놀고 땀에 젖은 옷을 벗기고 씻길 무렵, 또 빨래를 하겠지요. 낮에 여러 차례 아이들 씻기며 빨래를 하는 여름이요, 저녁에도 아이들을 또 씻기고 빨래하는 여름입니다.


  빨래거리를 그러모아 기계에 넣고는 한꺼번에 돌려도 된다 하지만, 여름날 자주 몸을 씻거나 씻기는 틈틈이 손으로 빨래를 합니다. 몸을 씻으며 흐르는 물로 빨래감을 적시고, 씻은 몸을 말리면서 빨래를 합니다. 따사로운 햇살은 빨래를 보송보송 말려 줍니다.


  네 식구 살림을 꾸리며 하는 빨래는 하루 내내 이어집니다.


.. 당신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생각해 보세요. 또 아기가 자라면서 여러 변화들이 생길 텐데 그때 당신의 느낌이 어떨지 생각해 보세요 … 왜 우리는 정상적인 출산을 부인하고 있고, 출산 교실에서는 왜 출산을 어쩔 수 없는 위험한 의료 작업으로 묘사하는 것일까? … 왜 여성들이 이런 경험을 해야 하는가? 왜 완벽한 출산을 할 수 있도록 창조된 여성의 몸이 진통을 시작하기도 전에 통제되어야 하는가 … 출산이 고통스럽다는 믿음이 너무 강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 믿음이 맞는지 어떤지 생각도 해 보지 않은 채 고통을 합리화하고 출산이 고통스러운 이유를 스스로 설명하기도 하며 거기에 고상한 목적을 갖다 붙이기도 한다 ..  (31, 65, 81, 83쪽)


  햇살 뜨거운 여름에는 빨래가 잘 마릅니다. 햇살 포근한 봄가을에도 빨래는 잘 마릅니다. 햇살 따사롭지만 겨울에는 빨래가 잘 안 마릅니다. 그러나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빨래를 합니다. 기저귀를 빨래하고 여느 옷가지를 빨래합니다. 날씨에 따라 빨래 마르기가 달라지지만, 철에 따라 빨래는 다 다른 기운을 햇살과 바람한테서 받아먹습니다. 햇살을 먹으며 마르고, 바람을 먹으며 마릅니다.


  볕이 좋은 날은 이불을 마당에 넙니다. 이불은 좋은 볕을 듬뿍 쬐며 좋은 기운으로 한결 보송보송합니다. 좋은 볕을 머금은 이불을 덮으며 좋은 날씨를 떠올립니다. 장마철을 맞이해 이불을 말리지 못하고, 또 이불을 빨지 못하며 눅눅한 기운을 느껴야 할 때에는 햇살조각을 그립니다. 날은 춥지 않더라도 해가 들지 않는 날에는 살림살이가 얼마나 고단한가 하고 깨닫습니다.


  햇빛이 좋을 때에는 햇볕도 햇살도 좋아, 아이들과 들길이나 멧길을 걷기에 좋습니다. 내 몸은 좋은 빛살을 누리고, 내가 걷는 길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도 좋은 빛살을 누립니다. 저마다 좋은 기운을 뿜으면서 좋은 삶터를 이룹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어버이인 나부터 스스로 가장 즐겁게 누리는 삶을 아이들하고 함께 누리고 싶습니다. 어버이인 나한테 가장 즐겁게 찾아드는 삶을 아이들한테 찬찬히 보여주면서 나누고 싶습니다. 곧, 어버이와 아이로서 다 함께 햇살을 누리고 싶습니다. 어버이와 아이는 다 같이 바람과 풀과 나무를 누리고 싶습니다. 고운 바람을 누리고, 고운 꿈을 빚으며, 고운 사랑을 열고 싶습니다.


.. 아기를 처음 본 날, 아기가 이 세상에 ‘잡아당겨져’ 나오면서 겪었을 경험을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기분이 몹시 우울해졌고 한편으로는 분하기도 했다 … 약물을 쓰지 않고 내 아기를 안전하게 출산하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나는 그(의사)에게 거듭 설명했다 … 의사가 있든 없든 아기는 정확히 자기가 나오고 싶을 때 나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 진통의 단계 구분은 의료진을 위해 개발된 평가의 척도일 뿐이다. 산모에게 진통은 하나의 연속 과정이고 산모가 깊이 이완할 때 출산은 시작된다 … 산모들은 두려움이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깨닫도록 도움을 받기보다는 약물을 사용하자거나 의료 개입을 받으라고 먼저 권유받는다. 두려움의 실체를 알기보다는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부터 선택하도록 내몰리는 것이다 ..  (46∼47, 70∼71, 88∼89쪽)


  두 아이와 살아가는 나날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새벽녘 빗소리를 들으며 네 식구 살림을 돌아봅니다. 옆지기와 빚는 삶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비구름 걷히고 맑은 햇살 따사로이 내리쬐는 빛무늬를 느끼며 시골살이를 돌아봅니다.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저희 삶길을 살피거나 찾으리라 느낍니다. 아이들이 시골살이를 어떻게 여길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나중에 다른 터로 옮기든 그대로 함께 살든 오늘 이곳에서 지내는 나날을 몸과 마음에 새기리라 느낍니다.


  나는 예나 이제나 하루 앞을 걱정하거나 근심하며 보낸 적이 없습니다. 주머니에 맞돈이 하나도 없어 우체국에서 30만 원을 빌고는 ‘도둑맞아 사라진 사진기’ 하나를 헌것으로 13만 원 치르고 장만해서 사진을 찍고 살던 때에도, 은행계좌에 남은 돈이 10만 원이 채 안 되던 때에도, 하루 앞을 걱정하거나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돈은 빌릴 수 있고 갚을 수 있습니다. 스무 해쯤 지나야 갚을는지 모르고, 백 해쯤 지나야 갚을는지 모르지요. 어찌 되든 돈은 얼마든지 빌리거나 갚아요. 다만, 내 마음이나 삶은 오늘을 오늘대로 누리지 못하면 덧없이 지나갑니다. 팍팍한 살림이라 하더라도 오늘은 오늘대로 누려야 비로소 새 하루가 찾아오고, 새 하루도 이날대로 누려야 다시금 새 하루가 찾아와요.


  내 어버이 집을 떠나 서울에서 혼자 살 적에는 다달이 찾아오는 집삯 내는 날이 참 빨랐다고 느낍니다. 서울에서는 혼자 살며 방을 얻을 적이든, 어디를 돌아다닐 때이든, 사람을 만날 때이든, 으레 돈이 들어요. 서울은 전철역조차 걸상이 몇 군데 없습니다. 버스 타는 데에 걸상이 널따랗게 있지 않아요. 사람이 걷는 길은 너무 좁을 뿐 아니라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서기 일쑤요, 전봇대와 꽃밭이 ‘걷는 길을 막’습니다. 제대로 마음을 가다듬지 못한다면, 사람다운 나날을 스스로 깨닫거나 아끼기는 힘든 터가 서울이로구나 하고 느꼈어요. 언제나 돈으로 굴러가는 얼거리이다 보니, 나 스스로 홀가분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집삯이라든지 밥값이라든지, 자꾸 돈에 마음이 쓰이곤 했어요.


  그러나, 이런 서울에서도 돈보다 사람한테 마음을 쓰는 이는 틀림없이 있으리라 믿어요. 빠듯한 살림살이 걱정보다 즐거울 하루 삶에 찬찬히 마음을 기울이는 이는 어김없이 있으리라 믿어요. 모든 사람이 온통 돈에 마음을 빼앗겼다면 그예 불구덩이 같은 서울이요 한국이겠지요.


  서울을 떠나 시골에서 지내고, 고향 인천으로 돌아가서 몇 해를 살며, 다시 시골로 옮겨 지내다가, 이제 아이들 낳고 한결 깊은 시골마을로 옮겨 살아갑니다. 지나온 나날을 하나하나 짚습니다. 도시에서 살던 나날이 끔찍했거나 힘들었다고만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도시하고 시골은 무엇보다 한 가지가 크게 달라요. 내가 보고, 내가 느끼며, 내가 맡고, 내가 마시는 모든 숨결이 크게 달라요.


  나는 푸른 들판과 숲을 보고 싶지, 끝없는 건물과 아파트를 보고 싶지 않아요. 나는 풀 돋는 흙길을 걷고 싶지, 아스팔트나 시멘트로만 덮인 길을 걷고 싶지 않아요. 풀숲에 드러누우면 풀내음을 맡으며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어 즐거워요. 하늘빛이 파랗구나 하고 느끼고 싶어요. 파란 하늘을 하얗게 물들이는 구름을 느끼고 싶어요. 도시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나 스스로한테 하늘을 말하고 구름을 말하며 별을 말했어요. 비가 모질게 퍼부으면 이 빗물이 도시를 다 휩쓸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했어요. 도시에 있는 모든 것이 모조리 빗물에 휩쓸려 사라지면 도시에도 차츰 푸른 싹이 트며 풀밭이나 꽃밭이나 나무숲으로 거듭날까 하고 생각했어요.


.. 여성은 양육자인 동시에 치유자였다 … 자연스럽게 아기를 낳는 동안 여성들은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접받았다. 이러한 태도는 수천 년간 계속되었다 … 출산에서 필요한 것은 출산을 빨리, 급박하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고 이완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부드러운 격려와 출산을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 중요하며 …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말과 생각을 할 필요가 있고, 원치 않는 환경을 불러들이는 부정적이고 불필요한 말이나 행동은 삼가는 것이 좋다 … 서로를 격려해 주는 것만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사는 것이 산모가 긍정적인 출산 경험을 하도록 돕는 것이다 ..  (74∼75, 92, 105, 108쪽)


  메리 몽간 님이 빚은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샨티,2012)을 읽습니다. ‘평화롭게 아기 낳기’를 밝히는 이야기책입니다. 메리 몽간 님은 당신 아이를 ‘조금도 평화롭지 않게’ 낳았다고 해요. 그러니까, 메리 몽간 님은 ‘아주 끔찍하고 매우 아프게 아이를 낳았’답니다. 당신 몸은 가장 슬프고 아픈 생채기를 치러야 했다고 해요. 당신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새로운 아이를 낳을 무렵, 당신 아이한테 ‘평화롭게 아기 낳기’를 이끌어 보았고, 이렇게 이끌며 아기를 낳을 때에 당신 아이와 ‘당신 아이가 낳은 아기’ 모두 평화롭게 이 땅에서 어우러질 수 있었다고 해요.


  간추려서 말하자면, 메리 몽간 님은 몸으로는 슬픔을 겪었습니다. 마음으로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몸에 아로새겨진 생채기를 마음으로 품은 사랑으로 달래면서 쓴 책이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이로구나 싶습니다. 당신은 평화로운 아기 낳기를 할 수 없었으나, 당신 아이를 비롯해 당신 아이 또래 젊은이, 또 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새로 짝꿍을 맺으며 낳을 아이들을 헤아리며 쓴 책이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이라 할 만해요.


  몸으로 배우고 마음으로 익혔기에 책을 쓸 수 있었달까요. 몸으로 배우고 마음으로 익혔으니 기쁘게 글을 쓰고 ‘아기 낳는 참 예쁜 길’ 하나를 깨달아 밝힌다고 할까요.


..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부모가 할 일은 자신들이 아기를 정말 원했으며 환영하고 있다는 것을 배 속의 아기에게 말해 주는 것이다 … 아기가 배 속에 있는 9개월은 아기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도 부모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성장해 가는 기간이다 … 아기들은 자신이 선택한 장소에서 안전하게 나온다 … 산모의 자연스러운 몸의 파동이 아기를 산도로 부드럽게 내려 보낸다 … 누에고치에 있는 나비를 억지로 빼내겠는가? 자연 출산 과정에는 아기와 산모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꼭 필요하다 ..  (118, 156, 172쪽)


  가시버시를 맺어 주는 혼례식장에서 가시버시 두 사람한테 ‘평화로운 마음’이 들도록 이끄는 일은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혼례식장은 가시버시 두 사람이 느긋하며 아늑하게 사랑다짐을 하도록 이끌지 않아요. 시간에 맞추어 착착착 형식을 밟습니다. 틀을 세워 틀에 맞추도록 합니다.


  가시버시가 되는 두 사람은 초등학교이든 중학교이든 고등학교이든 ‘사랑을 배우는’ 일이 없습니다. 어느 학교에서도 사랑을 들려주지 않아요. 사랑을 가르치는 교과목이 없기에 사랑을 못 들려주지 않아요. 오늘날 제도권학교는 사랑하고는 동떨어져요. 오늘날 문명사회 제도권학교는 학력자격증을 떼어 주는 기관입니다. 가시버시가 서로를 사랑하는 길을 밝히지 않을 뿐 아니라, 가시버시가 사랑으로 맺은 아이를 사랑으로 보듬는 길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가시버시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뜻을 들려주지 않으며, 가시버시가 사랑으로 빚은 아이가 사랑스레 무럭무럭 자라는 꿈을 이야기하지 않아요.


.. 농약을 많이 쓰거나 방부제 처리된 야채나 과일은 피할 수 있는 지식도 갖추어야 한다 … 산모와 남편이 산모 자신과 아기를 위해 지극히 자연스럽고 평화로우며 만족스러운 출산에 대한 그림을 분명하게 그리고 있다면, 자신의 출산의 다른 사람에 의해 통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몇 시간에 걸쳐 아기를 인위적으로 밀어내느라 녹초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역으로 오직 산도가 준비되었을 때에만 아기가 아래로 내려오게 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 아기가 태어난 뒤 다른 사람 손에 아기를 맡기는 걸 아예 막거나 최소화해야 한다. 아기는 자신에게 익숙한 체취나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 친구나 친지 등 손님은 엄마가 해야 할 집안일을 도와주려는 목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만 허용한다. 방문해서 식사를 가져다주고, 세탁기를 대신해서 돌려주고, 시장을 봐주고, 집을 청소해 주는 등 손님이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  (206, 223, 297, 317, 326쪽)


  어버이가 맑은 숨을 마실 때에 아이가 맑은 숨을 마십니다. 어버이가 고운 풀벌레 노랫소리를 누릴 때에 아이가 고운 풀벌레 노랫소리를 누립니다.


  어버이가 돈벌이 회사에 얽매일 때에 아이는 시험점수 학교에 얽매이면서 제 어버이와 똑같은 길로 나아갑니다. 어버이가 밥과 옷과 집이 이루어지는 삶을 슬기롭게 살피지 않을 때에, 아이도 밥과 옷과 집이 이루어지는 삶을 스스로 슬기롭게 살피지 않아요.


  ‘아기 낳기’는 점 하나입니다. 점 하나를 찍는 앞뒤 흐름, 곧 삶을 헤아리면서 아기를 맞이하고 아기를 사랑할 노릇입니다. 그런데, 점 하나를 찍는 ‘아기 낳기’는 하늘에서 똑 하고 떨어지지 않아요. 가시버시가 살아가는 나날이 고이 흐르면서 아기도 낳고 무럭무럭 자라며, 어느새 아이들 키는 제 어버이보다 커집니다.


  냇물은 물방울 하나가 아니에요. 물방울이 모여 냇물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냇물에서 물방울 하나를 떼어낼 수 있지만, 이 물방울 하나는 여럿으로 더 나눌 수 있으며, 물방울 하나로도 또다른 냇물이 되어 흐르곤 합니다.


  햇살이 비춥니다. 햇살은 조각과 조각이 모여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햇살 가운데 조각 하나만 떼어내지 못합니다. 풀벌레가 노래합니다. 풀벌레 노랫소리 가운데 조각 하나를 떼어내 듣지 못합니다. 사랑은 사랑일 뿐이요, 삶은 삶입니다. 가시버시 몸속에서 자라는 씨앗부터 사랑하면서 아기가 태어나고, 아기는 스스로 튼튼한 나무 한 그루 되어 살아갑니다.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에서 말하는 ‘평화롭게 아기 낳기’를 살피면, 아기를 낳는 때에만 평화로울 수 없다는 줄거리입니다. 여느 내 삶이 평화로울 때에 아기를 낳을 때에도 평화를 생각하면서 아기를 평화로 맞이합니다. 언제나 사랑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기를 사랑으로 맞아들여 사랑으로 낳아 사랑으로 돌봅니다.


  무엇을 걱정할까요. 이 아기가 벙어리로 태어날까 걱정하나요. 이 아기가 앞으로 학교에서 1등을 못할까 걱정하나요. 이 아기가 앞으로 대학교에 못 갈까 걱정하나요.


.. 출산은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좋습니다 … 사랑의 하나님이 부부가 사랑으로 아기를 갖게 하고는 이런 고문 같은 심한 고통 속에서 아기를 낳도록 하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 출산은 과학이 아니다. 해부학도 아니다. 또한 의사나 조산사, 간호사의 일도 아니며, 누군가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출산은 부모와 아기의 것이다 ..  (32, 43, 59쪽)


  아기는 사랑으로 낳으면 됩니다. 아기는 사랑으로 돌보면 됩니다. 아기는 사랑으로 먹이고 입히며 재우면 됩니다.


  어버이는 스스로 제 삶을 사랑으로 보살피면 됩니다. 어버이는 스스로 제 하루를 사랑스레 누리면 됩니다. 어버이는 스스로 제 일과 놀이를 가장 빛나는 사랑이 되도록 가꾸면 됩니다.


  걱정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여느 때에도 걱정투성이요, 아기를 낳을 때에도 걱정덩어리입니다. 근심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근심꾸러미요, 아기를 낳을 적에도 근심나라입니다.


  가르칠 수 없고 배울 수 없습니다. 살아갈 뿐입니다. 걱정도 사랑도 누가 따로 가르치거나 누구한테서 배우지 않습니다. 스스로 생각해서 맞아들일 뿐입니다. 사랑으로 맺은 두 사람이 아기를 낳을 적에 참말 사랑이 될 수 있지만, 걱정이 되기도 할 테지요. 어버이 두 사람이 참다이 사랑이 아닌 근심이나 걱정이라면, 어버이 두 사람이 착하게 사랑이 아닌 다른 물질이나 욕망에 사로잡힌다면,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을 읽더라도 아기를 평화롭게 낳지 못합니다. 책 한 권 읽는대서 아기를 평화롭게 맞이하지 못해요. 삶이 평화로울 때에 아기도 평화롭게 낳지, 삶은 평화롭게 다스리지 않으면서 아기만 평화롭게 낳지 않아요. (4345.8.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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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8-20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한 저를 위해 써 주신 리뷰 같아요.
두어번 반복해서 읽습니다.
비슷한 다큐를 본적이 있어요
큰 아이를 낳을 때 기체조를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걸 배웠지요
내가 아프다지만 밖으로 나오는 아이는 낯선 세상에 더 두렵고 더 아프고 더 고통스럽다고,
그래서 아이 낳는 순간에도 아이 숨을 편히 쉬게 해주려고 복식호흡에 힘썼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입을 벌리지 않았죠
입을 벌리면 복식호흡이 안되니까요.
아기와 건강하게 만나길 바라는 요즘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숲노래 2012-08-20 06:57   좋아요 0 | URL
잘 아실 테지만, 아기를 낳는 일은 '아이와 살아가는 긴 흐름' 가운데 하루예요. 이 하루를 걱정할 일이 없어요. 이 하루를 기쁘게 맞이하면서, 기나긴 나날을 어떻게 즐거이 살아갈까를 생각하시기를 빌어요~ 좋은 기운 내셔요~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요시노 겐자부로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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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시골에 ‘농업고등학교’가 없을까
 [푸른책과 함께 살기 98] 요시노 겐자부로,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양철북,2012)

 


- 책이름 :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 글 : 요시노 겐자부로
- 옮긴이 : 김욱
- 펴낸곳 : 양철북 (2012.6.28.)
- 책값 : 12000원

 


  아이 둘을 재웁니다. 뜨거운 여름 한낮 햇살을 쬐며 면 소재지 우체국을 함께 다녀온 다섯 살 첫째 아이는 만화영화를 보고는 그동안 쌓인 졸음을 참지 못해 아버지 자장노래를 들으며 살포시 잠듭니다. 자전거수레에서 넉넉히 잔 둘째 아이는 집에서 마루에 시원스레 응가를 누고는 한손에 부채와 파리채를 갈마들어 쥐며 이래저래 온 집안을 쏘다니며 놀다가 천천히 잠듭니다.


  두 아이를 재우고 나서 아버지도 한동안 같이 잡니다. 햇살이 저녁으로 넘어가는구나 하고 느끼며 일어납니다. 마당에 넌 옷가지를 걷습니다. 마당에 넌 이불도 걷습니다. 여러모로 집일을 건사합니다. 이러구러 삼십 분 즈음 지나 셈틀을 켜려 하는데 두 아이가 잠에서 깹니다. 이제 아이들은 자고 싶은 만큼 잤습니다.


  잠자리를 털고 나란히 일어난 두 아이를 일으켜 ‘조금 걷자’고 얘기합니다. 만화영화를 보여 달라 하는 첫째 아이한테 바깥에 다녀와서 보자고 달랩니다. 세 사람은 저녁햇살을 누리며 마을 어귀로 걷습니다. 마을 어귀에 있는 오랜 빨래터로 갑니다. 빨래터에서 셋이 물놀이를 합니다.


  마을 빨래터는 두 군데 있습니다. 빨래터에는 멧골에서 흐르는 물이 네 철 끊이지 않고 시원스레 흐릅니다. 집집마다 물꼭지가 달린 요즈음에는 모두 집에서 빨래하고 물을 쓰지만, 마을에서 아이들이 자라던 때에는 모두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물을 길었다고 합니다. 1980년대까지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여름철 물놀이를 즐겼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을 앞에는 흥양초등학교가 있는데, 1990년대에 문을 닫았지만, 아마 이곳이 문을 닫을 무렵 집집마다 물꼭지가 들어왔을 테고, 물꼭지가 들어오면서 빨래터는 옛날 옛적 이야기처럼 남았으리라 생각합니다.


.. 우라가와가 자신을 괴롭힌 아이를 볼 때는 그 눈빛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눈빛에서 증오 같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기에 분위기에 휩쓸려 같이 장난을 친 아이들은 씁쓸해진다. 장난친 것을 후회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 “그럼 이번에는 집이 가난하다는 걸 떠나서 우리가와하고 너희들이 다른 점은 뭘까?” … 가난해서 열등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아직 사람답게 성장하지 못했다는 증거란다 ..  (37, 114, 117쪽)


  스물아홉 집이 살아가는 마을에 아이가 있는 집은 오직 우리 집입니다. 우리가 이 마을에 새로 들어오며 ‘마을에 아이들 목소리’가 흐릅니다. 우리 마을에도 옆 마을에도 옆옆 마을에도 어린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면 소재지로 가야 비로소 어린이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면 소재지에서 구경하는 어린이라 하더라도 앞으로 열 해쯤 지나면 거의 모두 사라질는지 몰라요. 아직까지 시골 면 소재지 언저리에 아이들이 있다지만, 이 아이들이 자라서 초등학교를 거쳐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한결같이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아 돈을 버는 삶’으로 바뀌리라 생각해요.


  우리 식구 살아가는 전라남도 고흥은 군민 거의 모두 흙을 일구거나 고기를 잡습니다. 관공서는 있으나 여느 회사나 공장이 거의 없어요. 골프장도 기차역도 따로 없으며, 이른바 ‘돈을 번다는 시설’이 없는데, 달리 말하자면 ‘돈을 벌되 공해를 내뿜는 위해시설’이 없습니다. 고흥사람은 거의 모두 땅과 하늘과 바다와 햇볕과 나무와 풀과 바람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고흥이라는 곳은 오롯한 시골이요, 시골사람답게 시골내음이 솔솔 피어나는 터전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시골 고흥인 만큼, 고흥에는 ‘농업고등학교’나 ‘농업중학교’가 있을 법합니다만, 막상 농업을 가르치는 학교는 없습니다. 인문계 학교 아니면 실업계 학교인데, 실업계 학교는 도시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는 솜씨를 가르칠 뿐이에요. 고향인 시골마을에서 흙이나 바다를 사랑하며 살아갈 길을 가르치거나 보여주거나 이끌지 못해요.


  저희는 잘 모릅니다만, 우리 보금자리 고흥뿐 아니라, 고흥하고 이웃한 보성이나 장흥도 엇비슷하리라 느껴요. 참말 시골이지만, 시골에 있는 초·중·고등학교에서 교사들이 학생들한테 농업이나 어업을 가르치지 못해요. 시골학교 교사가 학생한테서, 또 학부모한테서 농업이나 어업을 배우면서 아이들이랑 삶을 나누려 하지 못해요.


.. 마지막 열쇠는 코페르, 바로 너 자신이란다. 너 말고는 아무도 없어. 네가 인생을 살고, 인생에서 여러 가지를 체험하고, 체험하면서 생각한 것을 위대한 사람들이 남긴 지혜와 견주어 볼 때 비로소 그 사람들이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 인생에서 중요한 건 어느 때나 네가 느낀 진심, 네 마음을 움직이는 생각이란다 … 네가 학교에서 배운 대로 또는 세상이 인정하는 대로만 살아간다면 언제까지나 자립한 사람이 될 수 없단다 … 진심으로 네가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져야 해.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고,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 때도, 네가 그것을 좋아한다고 확신할 때도 그 감정은 언제나 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단다 ..  (50, 52쪽)


  한국에서 ‘농업고등학교’ 이름을 건사하는 학교가 아직 몇 군데 있습니다. 그런데 농업고등학교치고 아이들이 농사일을 배우는 데는 거의 없습니다. 농업고등학교를 나와 씩씩하게 흙일꾼으로 살아가는 아이가 매우 적습니다.


  요즈음 한여름을 맞이해 서울처럼 커다란 도시에서는 ‘전기 예비율’이 아주 낮다며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내놓습니다. 참말 도시는 전기를 많이 쓰니까 나날이 전기를 걱정할밖에 없어요. 그러나, 전기를 많이 쓰는 도시는 스스로 전기를 빚지 않아요. 적어도 아파트 옥상에 햇볕전지판을 붙이지 않을 뿐더러, 아파트이든 높은 건물이든 유리창이 햇볕전지판 노릇을 하도록 과학기술을 일구지 않아요. 조금만 생각하고 조금만 과학기술을 슬기롭게 쓴다면, 자동차도 지붕뿐 아니라 앞뒤 유리를 햇볕전지판 노릇을 하도록 만들면서 기름(석유) 아닌 햇볕으로 구르도록 할 수 있어요. 서울처럼 커다란 도시 찻길을 가득 메운 거리등불도 햇볕으로 켜지도록 할 수 있어요. 빗물을 받아서 쓰는 길을 얼마든지 열 수 있어요. 도시사람 똥오줌이 쓰레기로 버려지지 않고 좋은 거름이 되도록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도시사람은 지구별을 아끼거나 사랑하며 보살피는 길을 좀처럼 생각하지 않아요. 서울이나 부산이나 대구나 인천 같은 도시에는 아예 농업고등학교는 생기지 않아요. 시골에도 농업고등학교가 없지만, 도시에도 농업고등학교는 없어요.


  왜 시골 아이가 몽땅 도시로 가서 회사원이나 공무원 노릇을 해야 할까요. 왜 시골 아이가 흙일꾼이나 고기잡이가 되면 안 되고, 모조리 도시에 있는 공장에서 일해야 할까요. 왜 도시 아이 가운데 한둘이라도 시골로 가서 흙일꾼이나 고기잡이가 되도록 이끌지 않을까요. 왜 대학교 농업과학 학과 아이들은 대학교를 마친 다음 시골로 가서 흙일꾼이 될 마음을 품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면, 출판사이든 신문사이든 도시에만 있어요. 시골에는 없어요. 농민이 읽는 신문을 만든다는 사람도 도시에 신문사가 있을 뿐, 스스로 시골에서 일하면서 신문을 만들지는 않아요. 농업이나 어업을 다루는 공무원도 서울이나 커다란 도시에서 건물에서 펜대나 셈틀만 붙잡을 뿐, 정작 흙이나 물을 만지면서 시골사람이랑 어깨동무를 하지 않아요.


.. 느티나무 위로  펼쳐진 밤하늘은 빨려들 것처럼 짙은 쪽빛이었다. 별은 바늘 끝에 색을 묻혀 하늘에 찍어 놓은 것처럼 높은 곳에서 작게 빛나고 있었다 … ‘너와 상관없는 낯선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에도 당연히 분자와 분자가 교류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따뜻하게 만나야 한단다’ … ‘사람이 사람에게 좋은 감정으로 친절을 베풀고, 그것을 기쁨으로 삼는 것처럼 아름다운 관계는 이 세상에 없단다’ ..  (65, 88∼89쪽)


  저녁을 차립니다. 두 아이를 먹입니다. 밥을 다 먹은 아이들을 씻깁니다. 아이들을 씻기면서 빨래를 합니다. 빨래기계가 있으나, 나는 손빨래가 한결 익숙합니다. 이불을 빨 때에는 빨래기계를 쓰지만, 여느 때에는 틈틈이 아이들을 씻기거나 내 몸을 씻으며 손빨래를 합니다. 다 씻은 아이들하고 저녁에 뜬 반달을 구경합니다. 반달을 구경하고 세 사람이 둘러앉아 만화영화를 봅니다. 아이들 어머니는 홀가분하게 바깥마실을 나갔습니다. 아이들 어머니가 이틀을 바깥잠을 자기로 하고, 아이들 아버지가 홀로 아이들하고 복닥입니다. 아이들 어머니가 집에 있어도 모든 집일을 아버지가 도맡았는데, 아이들 어머니가 없이 집일을 하자니 한결 바쁘기도 하면서, 온통 ‘아이바라기’만 하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그렇지만, 혼자 아이들을 바라보며 밥을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고 하는 하루는 일찍 마무리합니다. 아홉 시가 안 되어 두 아이가 졸립다며 불을 끄고 자자고 부릅니다. 자장노래를 삼십 분 남짓 부르며 밤잠을 재웁니다. 큰아이는 어머니 왜 안 오느냐고 묻습니다. 오늘은 어머니가 말미를 얻어 마실을 갔다고 여러 차례 얘기하며 부채질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재웁니다.


  무르익는 한여름 밤에는 풀벌레 노랫소리 고즈넉하게 들립니다. 자동차 다니는 소리 없고, 시끄러운 노래 트는 가게 없으며, 술에 절은 사람들 얄궂은 소리 없습니다. 전철 소리도 버스 소리도 없습니다. 우리 마을 앞을 지나가는 군내버스는 저녁 여덟 시 즈음 마지막으로 지나갑니다. 군내버스가 마지막으로 지나가는 깜깜한 저녁부터 이듬날 아침에 첫 군내버스가 지나갈 때까지 그야말로 차소리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밤잠을 자며 시끄러운 소리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아니, 아이들은 밤잠을 자며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으며 한갓집니다. 때때로 개구리도 노래를 하고, 멧새도 노래를 합니다. 바람이 나뭇잎과 풀잎을 건드리며 풀노래가 들려오기도 합니다.


.. “얼마나 연습한 거야?” 코페르가 물었다. “연습?” “너무 잘하니까.” “연습 같은 건 안 했어. 엄마를 도와주다 보니 이렇게 됐어. 하나를 잘못 튀기면 3전 손해거든. 그래서 열심히 하다 보니까.” … 그런데 우리가 머리 숙여 칭찬하고 떠받드는 그 위대한 사람들은 그 타고난 재능으로 어떤 일을 해낸 걸까. 또 그들이 이룩한 업적은 우리 삶에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 ..  (98, 162쪽)


  나는 시골에서 살아가기에 시골마을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날마다 새롭게 들여다보는 들판을 사진으로 담고 글로 옮깁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느낀 이야기를 쓰고, 처마 밑에 둥지를 틀어 새끼를 깐 제비들을 바라본 이야기를 씁니다. 뭉게구름 이야기를 쓰고,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에 태워 논둑길을 달리며 느낀 이야기를 씁니다.


  우리 식구는 신문을 안 읽습니다. 텔레비전을 안 봅니다. 가끔 면내나 읍내에 나갔을 적에 어느 가게에 들를 때면 신문을 들추기도 하지만, 신문을 들춘다 해서 우리들 시골에서 살아가며 도움이 되거나 귀를 기울일 만한 이야기를 찾지 못합니다. 시골사람이 시골마을에서 예쁘게 살아가며 웃음꽃 피우는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는 적이란 거의 없어요. 시골사람이 시골마을에서 착하게 살아가며 사랑꽃 피우는 이야기가 방송에 나오는 적이란 아주 드물어요. 곰곰이 살피면, 도시사람이 도시에서 예쁘거나 착하게 살아가는 이야기 또한 신문이나 방송에는 거의 안 실려요. 정치꾼 이야기, 주식 이야기, 경제발전과 군대 이야기, 미국과 일본 이야기, 자동차나 백화점 이야기, 운동경기나 영화 이야기가 신문이나 방송에 나올 뿐이에요.


  봄이 되어 들판에 흐드러지는 들풀 이야기가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지 않아요. 봄까지꽃이나 할미꽃에서 비롯하는 한 해 숱한 꽃누리 이야기를 신문이나 방송에서 다루지 않아요. 벚꽃놀이 이야기나 가끔 다루지만, 사람들이 날마다 먹는 밥이 되어 주는 벼가 이삭을 패는 이야기는 신문에도 방송에도 나오지 않아요. 어쩌면, ‘이삭이 팬다’는 말조차 모를 수 있겠지요. 개구리밥이 얼마나 작으며 예쁜 풀인지를 모를 수 있겠지요. 얼마나 많은 잠자리와 나비가 자동차한테 치이거나 밟혀서 죽는지 모를 수 있겠지요.


.. 그런데 선배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게 정당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판단하는 것도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기네 마음에 들지 않는 학생은 교풍을 어지럽히는 놈들이며 손봐야 할 녀석들이라고 판단했다 … 다른 학교와 운동경기를 할 때 응원하러 오지 않았다고 국민이 아니라는 낙인을 찍어 버리는 무서운 선배들이 있는 학교를 누가 사랑할 수 있을까 … “학교를 위해 폭력을 써야 한다는 건 모두 거짓말이야.” … ‘사람이 사회에서 느끼는 불행과 고통을 생각해 보면, 사람은 절대로 다른 사람을 증오하거나 적으로 만들면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어.’ ..  (146∼147, 150, 219∼220쪽)


  나는 시골사람입니다. 한자말로 적자면 ‘촌민(村民)’입니다. 요샛말로 고쳐서 말하자면 ‘촌사람’이나 ‘촌놈’입니다. 오늘날 한국땅에는 도시사람이 99요, 시골사람은 1이라 합니다. 나는 99:1 가운데 ‘하나(1)’라는 자리에 섭니다. 그러나, 시골마을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면 소재지나 읍 소재지에 나들이를 가 볼 때면, 때때로 시외버스를 타고 이웃 순천시에 가 볼 때면, 도시와 시골은 99:1이 아니라 99.99:1쯤 되지 않으랴 싶어요. 부산이나 인천이나 서울을 가 볼 때면, 도시와 시골은 99.999:1쯤 되겠구나 싶기도 해요.


  사람들이 도시에 지나치게 몰린 채 살아가요. 너무 좁은 곳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요. 너무 좁은 곳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니, 사람들 스스로 숨이 가빠요. 풀이나 나무 자랄 빈틈이 없어요. 자동차 댈 자리조차 없다고 하지만, 자동차에 앞서 사람이 느긋하게 눕거나 앉을 자리마저 없어요. 열 층이건 스무 층이건 겹겹이 포개어도 모자라다고 하는 판이에요. 땅밑으로 파고 들어가서 집을 지어요. 지붕을 뚫고 옥탑까지 집으로 마련해야 해요.


  돈을 얼마나 벌어야 하나요. 돈을 언제까지 벌어야 하나요. 돈을 왜 벌어야 하나요.


  돈을 벌어서 밥과 옷과 집을 사나요. 그러면, 돈을 벌지 말고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마련하면 되지 않을까요. 돈을 벌어서 유기농 곡식조차 아닌 화학약품에 찌든 곡식이나 가공식품을 사먹지 말고, 마음을 벌고 사랑을 벌며 삶을 버는 하루를 누리면서 가장 아름답고 좋은 밥을 스스로 일구어 먹으면 아름답지 않을까요.


  농업은 경제가 아니에요. 농업은 삶이에요. 어업도 경제가 아니에요. 어업도 삶이에요. 돈을 많이 벌어 도시에서 유기농 곡식을 사먹으면서 아이들을 영어 잘 가르치는 학원과 학교에 넣으면 앞으로 무슨 보람을 누릴 수 있을까요. 아이들도 나(도시 어른)처럼 도시에서 돈 잘 벌어 유기농 곡식 사다 먹을 만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야 하나요.


.. 코페르는 그때의 자신을 떠올렸다. 다른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더라도 코페르 자신은 누가 그랬는지 알고 있다.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의 내 마음 … “사람이 살면서 만나는 사건들은 모두 한 번뿐이며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것을 돌층계 사건에서 배웠기 때문에, 내 안에 들어 있는 좋은 생각과 아름다운 감정들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  (187, 214쪽)


  요시노 겐자부로 님이 1930년대에 일본에서 내놓은 푸른책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양철북,2012)를 읽습니다. 일본제국주의가 이웃 한국과 대만을 식민지로 삼았을 뿐 아니라, 중국까지 쳐들어가며 슬픈 바보짓을 일삼던 때에, 요시노 겐자부로 님을 비롯해 생각과 마음과 사랑을 활짝 연 사람들은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책을 내놓았다고 해요. 1930년대 일본도 2010년대 한국처럼 처세와 자기계발을 일삼자는 책이 판치면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 어둠고 슬픈 굴레에서도 생각을 빛내고 마음을 일으키며 사랑을 나누자고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씩씩하고 꿋꿋하게 있었다고 해요.


.. 내가 사람다운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희망이었다는 말을 절대로 잊지 않을 거예요. 나는 정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내가 좋은 사람이 된다면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나는 거예요 ..  (259쪽)


  요시노 겐자부로 님은 중일전쟁이 한창일 뿐 아니라 태평양전쟁까지 일으키던 일본제국주의가 어린이와 푸름이를 망가뜨리는 꼴을 지켜보면서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물었어요. 또 둘레 어버이와 어른한테 똑같이 물었어요. ‘여보시오, 당신들 어떻게 살아갈 생각이오?’


  이 물음은 2012년 한국에서까지 이어집니다. 아마 2022년 한국에서도, 2032년이나 2112년 한국에서도 이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참말 오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어린이와 푸름이와 어른 모두 어떠한 생각을 일구고 어떠한 마음을 빛내어 어떠한 사랑을 꽃피울 때에 스스로 즐거우면서 아름다울까 궁금합니다.


  어떻게 살고 싶나요. 무엇을 하며 살고 싶나요. 어떤 꿈을 꾸고 싶나요. 어떤 길을 걷고 싶나요. 어떻게 웃고 싶나요. 내 고운 목숨을 어떻게 빛내고 싶나요. (4345.7.2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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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초록 냄새 쪽빛문고 10
구도 나오코 지음, 고향옥 옮김, 초 신타 그림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푸른 숨결로 빛나는 내 동무
 [어린이책 읽는 삶 22] 구도 나오코, 《친구는 초록 냄새》(청어람미디어,2008)

 


- 책이름 : 친구는 초록 냄새
- 글 : 구도 나오코
- 그림 : 초 신타
- 옮긴이 : 고향옥
-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 (2008.12.15.)
- 책값 : 9800원

 


  깊은 밤입니다. 논배미 앞에 섭니다. 봄날 개구리는 사람이 앞에 서면 노랫소리를 똑 끊었는데, 여름날 개구리는 사람이 앞에 서니 노랫소리를 들려줍니다. 여름날 개구리는 겨울잠을 자고 깨어난 개구리가 낳은 알에서 태어난 새 목숨일까요. 온갖 개구리들이 저마다 다 다른 목소리로 노래를 들려줍니다. 이 개구리들은 그리 안 큰 몸뚱이일 텐데, 노랫소리가 참 우렁찹니다.


  논둑에 쪼그리고 앉습니다.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여기에 하나, 여기에 또 하나, 이쪽에 하나, 저쪽에 하나, 저기에 하나, 하면서 소리를 뽑는 개구리가 어디쯤 있나 헤아립니다. 수십이나 수백 마리가 터뜨리는 노래가 아니라, 예닐곱 마리쯤 터뜨리는 노래인데, 이렇게 예닐곱 마리가 서로 갈마들며 노래를 터뜨리니, 뒤쪽 다른 논에서도 하나둘 노래를 터뜨립니다.


  개구리 노랫소리는 그냥 개구리 노랫소리가 아닙니다. 나는 개구리들이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개구리 노랫소리’라 뭉뚱그려 말하지만, 개구리마다 목소리가 매우 다릅니다. 같은 목소리인 개구리는 하나도 없습니다. 괙괙 노래하는 개구리가 있고, 개굴개굴 노래하는 개구리가 있으며, 배배 노래하는 개구리가 있어요. 배구배구 노래하는 개구리가 있고, 왜구왜구 노래하는 개구리가 있어요. 으으미으으미 하고 낮고 길게 뽑는 개구리가 있습니다. 두꺼비일까? 다른 녀석일까? 맹꽁이는 아닌 듯한데?


.. ‘바람 냄새가 좋군.’ 사자는 심호흡을 하고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무와 바위 옆에 가면 머리를 문질러 보고 싶고, 보드라운 풀이 있으면 뒹굴어 보고 싶다 … ‘누군가와 함께 산책을 한다는 건, 참 좋은 거구나.’ 사자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달팽이를 이마에 태우니 혼자일 때보다 여기저기 볼 수 있어 더 즐겁다. “아, 여기에 꽃이 피어 있어.” 하고 사자가 꽃을 발견하면 달팽이가, “아, 여기에 연못이 있어.” 하고 연못을 발견해 준다 ..  (13, 20쪽)


  사람은 개구리를 바라보며 ‘개구리 노랫소리’라 말합니다. 거꾸로, 내가 개구리라 한다면, 개구리로서 사람을 바라볼 때에 ‘사람 노랫소리’ 또는 ‘사람 말소리’라 할 만할까요.


  한국사람으로서 일본사람이 말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그저 뭉뚱그려 ‘일본사람 말소리’라 할는지 모릅니다.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느 외국사람 노랫소리’처럼 들을 수 있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을 다 다른 목소리로 다 다른 이야기를 엮어 들려주지만, 나로서는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말소리를 ‘다 똑같이 잘 못 알아듣는 노랫소리’처럼 여길 수 있어요.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개구리들은 나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저마다 다 다른 목소리와 결과 무늬로 이렇게 이야기꽃을 피우는가 하고 생각에 잠깁니다. 개구리가 들려주는 고운 이야기를 내 마음으로 받아들여 내 넋을 다시금 곱고 맑게 다스리자고 생각합니다.


.. 달팽이가 ‘으음, 으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러니까 수풀 속 이파리들 속에 파묻혀 있으면 온몸에 바람이 스며들어 와.” … “오늘은 유난히 목소리가 예뻐.” “틀림없이 좋은 노래가 될 거야.” 달팽이의 발성연습을 들으며 당나귀가 말했다 ..  (26, 65쪽)


  그야말로 사람이 물결을 이루는 곳에 있어도, 내 살붙이 모습은 놓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 왁자지껄한 한복판에 서도, 내 살붙이가 읊는 말마디를 한두 마디쯤 알아듣습니다.


  마음을 그러모으면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마음을 그러모을 때에 들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기에 바라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느끼지 못하리라 봅니다. 곧, 마음이 있고, 생각이 있으며, 사랑이 있을 때에 내 몸이 움직이는구나 싶어요.


  나 스스로 좋은 넋이 되어야 합니다. 나부터 좋은 얼로 빛나야 합니다. 내가 시나브로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나는 내 삶을 아끼는 하루를 누리면서 내 곁에서 나란히 맑게 웃거나 울 예쁜 동무를 사귀거든요.


  동무는 멀리 있지 않아요. 동무는 그저 나이가 같은 사람이 아니에요. 동무는 같은 학교를 다닌대서 사귀지 않아요. 동무는 서로서로 믿고 기대며 좋아할 수 있는 어여쁜 삶지기예요.


.. 사자가 종종종 뛰어간다. 저녁노을이 하도 예뻐 언덕에 올라가 해 지는 것을 보려는 것이다 … “오늘은 심심한 땅에 들렀다가 쓸쓸한 땅을 돌아보고, 그리고 기쁨의 땅에서 잠시 쉬어야지.” 달팽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  (67, 93쪽)


  구도 나오코 님 이야기책 《친구는 초록 냄새》(청어람미디어,2008)를 읽습니다. 잔잔하게 울려퍼지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참말, 내 좋은 동무는 누구라도 풀내음이 난다고 느낍니다. 그래요, 나는 말합니다. 내 동무는 풀내음, 이라고 말합니다. 나도 풀내음이요 내 동무도 풀내음입니다. 나부터 풀내음이고 내 살붙이도 풀내음입니다. 내가 즐겁게 풀내음이면서 우리 아이들도 풀내음이에요.


  풀내음, 풀빛, 풀꽃, 풀결, 풀삶, 풀맛이라 할 만합니다. 푸르고 푸릅니다. 푸르면서 푸릅니다.


.. 사자는 ‘기쁨에 찬 얼굴’ 그대로 당나귀와 놀기로 했다. 그리고, ‘근심에 찬 얼굴’은 혼자만 있을 때를 위해 아껴 두기로 했다 … “글쎄, 왠지 아주 먼 옛날부터 친구였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 ..  (115, 202쪽)


  얼굴이 푸르고, 마음이 푸릅니다. 눈빛이 푸르고, 생각이 푸릅니다. 손길이 푸르고, 사랑이 푸릅니다.


  손에 책을 쥘 때면, 책도 손도 모두 푸릅니다. 손에 수저를 들 때면, 수저도 밥그릇도 손도 모두 푸릅니다. 손에 호미를 잡으면, 호미도 손도 흙땅도 푸릅니다.


  푸른 하루입니다. 푸른 나날입니다. 푸른 목소리입니다. 푸른 누리입니다. 푸른 꿈결입니다. 푸른 목숨이요, 푸른 이야기이며, 푸른 살림입니다.


  아이들은 모두 천천히 자라면서 푸름이로 멋진 나날을 맞이하고, 푸른 나날 예쁘게 보내는 고운 넋은 이 땅을 푸르게 보살피는 착한 사랑을 푸른 숨결로 북돋웁니다. (4345.7.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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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는 악어가 살지
파비오 제다 지음, 이현경 옮김 / 마시멜로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아이들한테 전쟁 아닌 평화를 가르치는가
 [푸른 책과 함께 살기 97] 파비오 제다,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마시멜로,2012)

 


- 책이름 :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
- 글 : 파비오 제다
- 옮긴이 : 이현경
- 펴낸곳 : 마시멜로 (2012.4.1.)
- 책값 : 12000원

 


  무척 어린 어느 날 일을 떠올립니다. 얼추 서른 해쯤 앞서, 장마비가 장대처럼 푹푹 꽂히듯 쏟아지는 날, 사람들은 집에서 부침개도 부쳐서 먹고, 밥도 해서 먹으며, 수제비도 끊어 먹는다 하지만, 다른 짐승들은 먹이를 어떻게 찾을까 궁금했습니다. 자그마한 참새와 도시에 많은 비둘기를 비롯해, 까치나 까마귀나 제비나 박쥐나 노루나 사슴이나 멧토끼는 어떻게 먹이를 찾을까 궁금했습니다. 풀을 먹는 짐승은 빗물에 젖은 잎사귀를 뜯어먹지 않는다 했는데, 그러면 풀짐승은 장마철에 어떻게 밥을 먹을 수 있나 궁금했습니다.


  어린 나는 또 다른 대목이 궁금합니다. 이제 꽁꽁 얼어붙는 겨울입니다. 영 도 밑으로 십오 도나 이십 도 떨어지는 오들오들 떨리는 이 겨울에, 참새부터 멧토끼까지, 모두들 어떻게 추위를 견디거나 겨우살이 먹이를 찾을 만한지 궁금했습니다. 시골마을 어른들은 멧짐승을 걱정해서 멧짐승 먹이를 어느 한켠에 마련해 둘는지 궁금했어요. 예부터 몹시 춥고 시린 겨울에는 멧짐승이 먹이를 찾아 사람들 살림집까지 찾아온다 했는데, 먼먼 옛날 먹이를 찾아 여느 살림집에 찾아온 범이나 여우나 사슴이나 멧토끼를 바라보았을 옛사람은 이들 멧짐승이나 들짐승을 어떻게 맞이했을까 궁금했어요.


  궁금한 마음은 오늘날에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장마철이나 겨울철에 으레 ‘내가 토끼라면 어떻게 지낼까?’ 하고 생각하며 토끼 몸이 되어 들판이나 멧자락을 누빕니다. ‘내가제비라면 어떻게 지낼까?’ 하고 생각하며 제비 몸뚱이로 들판이나 멧자락을 누비며 어디에서 먹이를 찾을 만한가 하고 알아봅니다.


.. “무기를 사용해서는 안 돼. 누군가 신과 땅, 인간을 모욕하며 네 기억, 네 추억, 네 감정에 상처를 낸다 해도, 권총이나 칼, 돌을 손에 쥐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 줘.” … “아프가니스탄인들과 탈레반은 다르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선생님을 죽인 그 사람들의 국적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아요? … 자신들이 신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일들이, 사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될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거예요.” ..  (14, 42∼43쪽)


  개미는 시골에서 살지만 도시에서도 삽니다. 개미는 처음부터 도시에서 살아갈 마음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시골을 밀어 도시로 만드는 바람에 개미는 도시에서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개미한테 ‘자, 이곳을 밀어 없앨 테니 너희 스스로 알아서 떠나.’ 하고 알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개미한테뿐 아니라, 쥐한테도 ‘너희는 새 보금자리로 떠나렴.’ 하고 알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개미나 쥐한테뿐 아니라, 풀이나 꽃이나 나무한테도 ‘이제 너희는 얼른 너희 열매를 맺고 씨앗을 날려 새로운 터에서 자라 보거라.’ 하고 알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냥 삽차로 밉니다. 사람들은 그냥 땅을 깊이 파고는 시멘트와 쇳덩이를 단단히 박습니다. 이 다음에 사람들은 흙땅에 시멘트를 가득 붓습니다. 개미도 쥐도 풀도 꽃도 나무도, 한꺼번에 떼죽음입니다. 죽는 줄조차 못 느끼며 그냥 죽습니다. 두더쥐도 지렁이도 죽습니다. 참새도 까치도 죽습니다. 아직 깨지 않은 알인 채 죽는 멧새와 들새가 있습니다. 거미도 죽고 메뚜기도 죽습니다. 개구리도 죽으며 뱀도 죽어요. 모두 죽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모든 도시는 숱한 목숨들을 한꺼번에 마구 죽인 뒤에 세운 무덤누리와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얼거리를 헤아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아니,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가면서 이 얼거리까지 헤아릴 겨를이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도시에서는 모두들 너무 바쁩니다. 도시에서는 모두들 밥벌이로 몹시 지칩니다. 도시에서는 내 식구들 작은 보금자리 얻느라 매우 고단합니다. 개미를 생각하거나 쥐를 헤아리거나 풀·꽃·나무를 살필 만한 틈이 없다 할 만해요.


  새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이 아파트를 짓느라 어떤 논밭이나 시골을 망가뜨렸을까’ 하고 걱정하는 사람은 찾아보지 못합니다. 오래된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에도 ‘이 아파트가 서기까지 얼마나 예쁜 논밭이나 시골이 무너졌을까’ 하고 돌이키는 사람은 찾아보지 못합니다.


  새 고속도로가 날 적에도, 새 고속철도가 뚫릴 적에도, 새 공항이 생길 적에도, 새 놀이공원이 들어설 적에도, 새 공장이나 발전소가 설 적에도, 사람들은 이런저런 문화와 문명과 시설과 설비 때문에 소리와 이름과 주검 없이 사라지는 목숨들을 헤아리는 사람은 찾아보지 못해요.


.. 내 고향은 아주 좋았다. 과학 기술이 발달한 곳도 아니고 전기도 없는 곳이었다. 불빛이 필요하면 석유램프를 사용하곤 했다. 그렇지만 사과가 있었다. 난 사과가 자라는 것을 보았다. 내 눈앞에서 사과 꽃봉오리가 터지고 그것이 사과로 변해 갔다 … 사실 우린 더 이상 돈이 없었고 그 브로커는 우리를 국경 너머로 데려다줄 발루치족과 이란인들에게 돈을 지불해야 했다. 그리고 그 비용은 아주 컸다. 그러니까 그 사람 잘못은 아니었다. 우린 그 사람 자식이 아니니까. 우리를 데려다주기 위해 돈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  (35, 87∼88쪽)


  저녁부터 빗소리를 듣습니다. 장마비는 거센 바람하고 찾아옵니다.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잦아드는 새벽나절, 멧새 몇 마리 우리 집 마당으로 찾아와 후박나무 가지에 앉아 열매를 따먹습니다. 비가 살짝 그은 틈을 타서 고픈 배를 채우고 싶겠지요. 나랑 옆지기는 이 시골집에 후박나무를 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 집에 들어오기 앞서 이 땅에 집을 짓고 아이들 낳아 살아가던 예전 어른들이 후박나무를 심었어요. 후박나무는 우람하게 자라 가지를 죽죽 뻗으며, 사람한테는 예쁜 그늘과 시원한 바람노래를 들려줘요. 후박나무는 새들한테 좋은 쉼터가 되면서 좋은 잔치밥상이 되어 줘요.


  뒤꼍 뽕나무도 멧새와 들새한테는 좋은 쉼터이자 잔치밥상입니다. 매화나무도 감나무도 멧새와 들새한테는 좋은 쉼터이면서 잔치밥상입니다. 사람도 매화열매를 먹고 새도 매화열매를 먹습니다. 사람도 감알을 먹고 개미도 감알을 먹습니다.


  그러고 보면, 시골마을 논밭은 시골마을 사람들을 먹일 뿐 아니라 도시마을 사람들을 먹여요. 도시마을에는 논도 밭도 없으니 도시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시골마을 사람들을 먹이지 못해요. 도시마을에서는 시골마을 사람들 먹여살릴 길이 없지만, 이에 앞서 도시마을 스스로 먹여살릴 길이 없어요. 돈을 낳고 돈을 키우지만, 돈을 먹을 수 없는 사람이에요. 돈은 먹을거리하고 바꿀 수 있는 이음고리이지만, 누군가 먹을거리를 흙에서 거두지 않는다면 아무도 밥을 먹을 수 없어요.


..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거나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그들 앞으로 가서 ‘하나만 사 주세요. 제발 하나만 사 주세요.’라고 말하며 파리처럼 귀찮게 달라붙어야 했다. 사람들은 짜증을 냈고 나를 함부로 대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성가시게 하는 게 싫었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산다는 건 아주 흥미로운 일이었다. 또한 살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일들도 기꺼이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난 학대받는 데애 지쳐 버렸다. 근본주의자들과 경찰이 지긋지긋했다 … 나는 사람들이 신분증이나 종교적 신념에 신경을 쓰지 않고 모두에게 친절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  (74, 81, 82쪽)


  총이나 칼은 평화를 이루지 못해요. 돈이 밥을 만들지 못하듯, 사람이 돈을 먹지 못하듯, 총이나 칼은 평화를 이루거나 부르지 못해요. 총이나 칼은 오직 전쟁을 이루거나 부를 뿐이에요. 총이나 칼은 전쟁을 비롯해 미움과 눈물과 슬픔과 아픔을 이루거나 부릅니다. 총이나 칼을 손에 쥔 사람은 고운 사랑을 꿈꾸거나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한테 총이나 칼을 손에 쥐도록 이끄는 정치 지도자나 사회 지도자는 착한 사랑을 꿈꾸거나 생각하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평화를 지킬 뜻’으로 구축함도 만들고 전투기도 만들며 잠수함도 만든다 외치지만, 정작 구축함이나 전투기나 잠수함을 만든 다음에는 전쟁을 꾀합니다.


  한국이랑 이웃한 일본이 ‘자위대’라 하는 군대를 만든 일은 평화를 지킬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하고 싶은 뜻이기 때문에 자위대라는 군대를 만들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군대나, 아니 남녘땅에 있는 군대나 북녘땅에 있는 군대도 평화를 지키지 않습니다. 남녘이나 북녘 모두 전쟁을 꾀하려고 군대를 둡니다.


  전쟁은 옆나라를 치는 전쟁이 있고, 제 나라 여느 사람들을 윽박지르는 전쟁이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나 사회 지도자는 군대로 쿠테타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나 사회 지도자는 군대(또는 경찰 또는 전투경찰)를 앞장세워 독재에 맞서려는 사람들을 총과 칼로 찍어 누르곤 합니다. 가만히 돌이키면, 경찰이 하는 일 또한 군대와 똑같이 ‘여느 마을 여느 사람’을 지키는 일이 아니에요. 여느 마을 여느 사람을 ‘뒤에서 지켜보는’ 일이 경찰들 몫입니다. 정치 지도자와 사회 지도자가 경찰들 힘을 빌어 여느 마을 여느 사람을 억누릅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시골마을에서 경찰이 할 일은 없습니다. 참말 평화롭다 하는 시골마을에서 경찰은 제구실을 못합니다. 도둑이 많은 도시에서 경찰이 바쁘다 하는데, 도시에는 도둑이 많을밖에 없습니다. 도시라는 삶터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이웃과 동무가 되어 밥을 나누는 얼거리가 아니거든요.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더 가진 이가 옆사람을 밟고 올라서면서 등치도록 하는 얼거리예요. 1등을 하든 2등을 하든 아무튼 성공을 해야 살아남는 도시예요. 경쟁을 붙이고 싸움을 붙이는 도시예요. 착하거나 여린 사람은 뒤로 밀리다가 굶습니다. 밥을 먹는 일이 전쟁이나 싸움처럼 되고 말아, 도시에서는 도둑이 끊어질 수 없어요. 돈이 더 있으면 떵떵거리며 놀음놀이를 누릴 수 있다는 바보스러운 꿈이 연속극으로든 영화로든 책으로든 자꾸 쏟아지니까, 스스로 삶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들이 그만 도둑이 되고 말아요. 밥도 사랑도 삶도 나누지 못하는 얼거리인 도시에서 마음이 다친 이들이 도둑이 되고 말아요.


.. “지금 하자라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로, 그저 말 한 마디 때문에, 혹은 의미 없는 어떤 규정 때문에 거리에서 개처럼 죽을 수 있어. 아프가니스탄에서 벗어나게 해 준 네 어머니에게 감사해야 한다.” … “지금까지 살면서 아직 보지 못한 것, 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곳 쿰에서, 공장 밖으로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너무 위험하잖아. 무슨 말인지 알지? 난 완벽하게 (떠날) 준비가 됐어.” ..   (141, 151쪽)


  파비오 제다 님이 쓴 푸른책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마시멜로,2012)를 읽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난 사내아이가 고향마을을 떠나야 살아남을 수 있는 아프며 슬픈 삶자국을 찬찬히 돌아보는 이야기책입니다. 어린 사내아이를 낳아 사랑스레 돌보던 어머니는 이 아이 목숨이 개죽음으로 사라지기를 바라지 않아, 이 아이를 이웃나라로 데리고 가서는 ‘그곳에 가만히 놓’고 고향마을로 돌아갑니다. 이 아이는 제 목숨이 개죽음으로 사라질는지 안 사라질는지 모릅니다. 아직 온누리를 스스로 널리 겪지 못했거든요. 그렇지만 마음으로는 조금씩 느낍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버리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했어요. 아프가니스탄에서 억눌리며 괴로운 여느 사람들이 삶을 붙잡으며 사랑할 수 있는 길이 너무 가늘고 작은 탓에, 이 아이는 이 가늘고 작은 삶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려고 온힘을 쏟아야 합니다.


.. 우리는 우리가 맞닥뜨려야 할 위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죽음이 가까이에서 느껴질 때에도, 우리는 항상 그것이 멀리 있다고 생각했다.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분명히 말하지만 50유로였다. 할머니는 내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세상에는 아주 이상하고도 친절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  (191, 217쪽)


  푸른책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를 읽는 사람 가운데 이 아이가 겪어야 한 일을 ‘눈앞에서 그리듯 떠올리’거나 ‘코앞에서 지켜보듯 믿을’ 만한 이가 얼마나 될까 잘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어머니가 차려 주는 밥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서 먹는 오늘날 푸름이들이 이 책에 담긴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돈 몇 푼 치르면 어디에서든 맛난 밥을 사다 먹을 수 있는 오늘날 공무원들이 이 책에 담긴 이야기를 낱낱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내 이웃은 누구일까요. 나는 내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나요. 내 동무는 누구일까요. 나는 내 동무를 얼마나 아끼며 살아가나요.


  내가 입으로 전쟁 아닌 평화를 바란다고 말한다면, 나는 몸으로 전쟁 아닌 평화를 이루려고 어떤 일을 하는가요. 전쟁 아닌 평화가 지구별에 깃들 수 있도록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한국땅에서 전쟁 아닌 평화가 싹터 자랄 수 있도록 내가 품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왜 스무 살 푸르며 빛나는 젊은 사내는 군대에 들어가야 할까 궁금합니다. 푸르며 빛나는 젊은 사내가 군대에서 총칼을 손에 쥐며 배우는 ‘사람 죽이는 솜씨’는 이웃과 동무를 얼마나 아끼거나 사랑하는 길이 될까 궁금합니다.


.. “이탈리아 학원을 6개월 다닌 뒤에 사설학원 학생 자격으로 중학교 3학년 시험을 봤어요.” “그럼 그 전에는?” “아무것도요. 아프가니스탄 고향마을에서 잠깐 학교를 다녔지만 그 이외는 학교를 전혀 다니지 않았어요.” 나는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탈레반에 끌려가 아이들 보는 앞에서 총에 맞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 그 이전에도 어머니를 찾을 수 있었지만 체류허가증을 받고 나서야, 생존에 필요한 안정을 찾고 나서야, 나는 다시 어머니와 남동생과 누나를 떠올린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그들을 지워 버렸었다. 내가 사악하거나 몰인정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신경을 쓰기 전에 우선 내 자신이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내 삶을 사랑할 수 없다면 누군가에게 어떤 사랑을 줄 수 있겠는가 ..  (264, 271쪽)


  한국땅 초·중·고등학교는 아직 아이들한테 전쟁 아닌 평화를 가르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한국땅 초·중·고등학교는 이제껏 아이들한테 평화 아닌 전쟁을 가르친다고 느낍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입시전쟁’과 ‘입시지옥’을 말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입시전쟁을 치르는 병사’와 ‘입시지옥을 가로지르는 전사’를 말합니다. 아이들은 그저 책상 앞에 달라붙어 문제집과 시험지를 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책상 앞에서 군인이 됩니다. 아이들이 손에 쥔 연필은 총이나 칼입니다. 아이들은 동무나 이웃이 아닌 적군을 마주하며 교실에서 부대낍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동무나 이웃을 사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적군을 쓰러뜨리거나 짓밟는 솜씨를 익힙니다.


  고등학교까지 마친 아이들은 대학교에서 새삼스레 적군을 쓰러뜨리거나 짓밟습니다. 대학교까지 마친 아이들은 회사에서 다시금 적군을 쓰러뜨리거나 짓밟습니다.


  서로를 살리거나 사랑하는 길을 익히지 못하는 아이들입니다. 서로를 살리거나 사랑하는 길을 보여주지 않는 어른들입니다. 그래도,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에 나오는 씩씩한 아이는 스스로 죽음길을 가로질러 삶길로 나아갔어요. 미움과 시샘과 따돌림과 우쭐거림이 아니라 사랑과 믿음과 꿈과 빛을 찾아 먼길을 나섰어요.


  슬픈 한국땅에도 미움 아닌 사랑 찾는 아이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고단한 한국땅에도 시샘 아닌 믿음 찾는 아이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온통 전쟁투성이 한국땅에도 따돌림 아닌 꿈 찾는 아이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어디를 가나 도시로 바뀐 한국땅에도 우쭐거림 아닌 빛 찾는 아이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4345.7.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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