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는 악어가 살지
파비오 제다 지음, 이현경 옮김 / 마시멜로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아이들한테 전쟁 아닌 평화를 가르치는가
 [푸른 책과 함께 살기 97] 파비오 제다,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마시멜로,2012)

 


- 책이름 :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
- 글 : 파비오 제다
- 옮긴이 : 이현경
- 펴낸곳 : 마시멜로 (2012.4.1.)
- 책값 : 12000원

 


  무척 어린 어느 날 일을 떠올립니다. 얼추 서른 해쯤 앞서, 장마비가 장대처럼 푹푹 꽂히듯 쏟아지는 날, 사람들은 집에서 부침개도 부쳐서 먹고, 밥도 해서 먹으며, 수제비도 끊어 먹는다 하지만, 다른 짐승들은 먹이를 어떻게 찾을까 궁금했습니다. 자그마한 참새와 도시에 많은 비둘기를 비롯해, 까치나 까마귀나 제비나 박쥐나 노루나 사슴이나 멧토끼는 어떻게 먹이를 찾을까 궁금했습니다. 풀을 먹는 짐승은 빗물에 젖은 잎사귀를 뜯어먹지 않는다 했는데, 그러면 풀짐승은 장마철에 어떻게 밥을 먹을 수 있나 궁금했습니다.


  어린 나는 또 다른 대목이 궁금합니다. 이제 꽁꽁 얼어붙는 겨울입니다. 영 도 밑으로 십오 도나 이십 도 떨어지는 오들오들 떨리는 이 겨울에, 참새부터 멧토끼까지, 모두들 어떻게 추위를 견디거나 겨우살이 먹이를 찾을 만한지 궁금했습니다. 시골마을 어른들은 멧짐승을 걱정해서 멧짐승 먹이를 어느 한켠에 마련해 둘는지 궁금했어요. 예부터 몹시 춥고 시린 겨울에는 멧짐승이 먹이를 찾아 사람들 살림집까지 찾아온다 했는데, 먼먼 옛날 먹이를 찾아 여느 살림집에 찾아온 범이나 여우나 사슴이나 멧토끼를 바라보았을 옛사람은 이들 멧짐승이나 들짐승을 어떻게 맞이했을까 궁금했어요.


  궁금한 마음은 오늘날에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장마철이나 겨울철에 으레 ‘내가 토끼라면 어떻게 지낼까?’ 하고 생각하며 토끼 몸이 되어 들판이나 멧자락을 누빕니다. ‘내가제비라면 어떻게 지낼까?’ 하고 생각하며 제비 몸뚱이로 들판이나 멧자락을 누비며 어디에서 먹이를 찾을 만한가 하고 알아봅니다.


.. “무기를 사용해서는 안 돼. 누군가 신과 땅, 인간을 모욕하며 네 기억, 네 추억, 네 감정에 상처를 낸다 해도, 권총이나 칼, 돌을 손에 쥐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 줘.” … “아프가니스탄인들과 탈레반은 다르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선생님을 죽인 그 사람들의 국적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아요? … 자신들이 신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일들이, 사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될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거예요.” ..  (14, 42∼43쪽)


  개미는 시골에서 살지만 도시에서도 삽니다. 개미는 처음부터 도시에서 살아갈 마음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시골을 밀어 도시로 만드는 바람에 개미는 도시에서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개미한테 ‘자, 이곳을 밀어 없앨 테니 너희 스스로 알아서 떠나.’ 하고 알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개미한테뿐 아니라, 쥐한테도 ‘너희는 새 보금자리로 떠나렴.’ 하고 알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개미나 쥐한테뿐 아니라, 풀이나 꽃이나 나무한테도 ‘이제 너희는 얼른 너희 열매를 맺고 씨앗을 날려 새로운 터에서 자라 보거라.’ 하고 알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냥 삽차로 밉니다. 사람들은 그냥 땅을 깊이 파고는 시멘트와 쇳덩이를 단단히 박습니다. 이 다음에 사람들은 흙땅에 시멘트를 가득 붓습니다. 개미도 쥐도 풀도 꽃도 나무도, 한꺼번에 떼죽음입니다. 죽는 줄조차 못 느끼며 그냥 죽습니다. 두더쥐도 지렁이도 죽습니다. 참새도 까치도 죽습니다. 아직 깨지 않은 알인 채 죽는 멧새와 들새가 있습니다. 거미도 죽고 메뚜기도 죽습니다. 개구리도 죽으며 뱀도 죽어요. 모두 죽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모든 도시는 숱한 목숨들을 한꺼번에 마구 죽인 뒤에 세운 무덤누리와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얼거리를 헤아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아니,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가면서 이 얼거리까지 헤아릴 겨를이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도시에서는 모두들 너무 바쁩니다. 도시에서는 모두들 밥벌이로 몹시 지칩니다. 도시에서는 내 식구들 작은 보금자리 얻느라 매우 고단합니다. 개미를 생각하거나 쥐를 헤아리거나 풀·꽃·나무를 살필 만한 틈이 없다 할 만해요.


  새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이 아파트를 짓느라 어떤 논밭이나 시골을 망가뜨렸을까’ 하고 걱정하는 사람은 찾아보지 못합니다. 오래된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에도 ‘이 아파트가 서기까지 얼마나 예쁜 논밭이나 시골이 무너졌을까’ 하고 돌이키는 사람은 찾아보지 못합니다.


  새 고속도로가 날 적에도, 새 고속철도가 뚫릴 적에도, 새 공항이 생길 적에도, 새 놀이공원이 들어설 적에도, 새 공장이나 발전소가 설 적에도, 사람들은 이런저런 문화와 문명과 시설과 설비 때문에 소리와 이름과 주검 없이 사라지는 목숨들을 헤아리는 사람은 찾아보지 못해요.


.. 내 고향은 아주 좋았다. 과학 기술이 발달한 곳도 아니고 전기도 없는 곳이었다. 불빛이 필요하면 석유램프를 사용하곤 했다. 그렇지만 사과가 있었다. 난 사과가 자라는 것을 보았다. 내 눈앞에서 사과 꽃봉오리가 터지고 그것이 사과로 변해 갔다 … 사실 우린 더 이상 돈이 없었고 그 브로커는 우리를 국경 너머로 데려다줄 발루치족과 이란인들에게 돈을 지불해야 했다. 그리고 그 비용은 아주 컸다. 그러니까 그 사람 잘못은 아니었다. 우린 그 사람 자식이 아니니까. 우리를 데려다주기 위해 돈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  (35, 87∼88쪽)


  저녁부터 빗소리를 듣습니다. 장마비는 거센 바람하고 찾아옵니다.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잦아드는 새벽나절, 멧새 몇 마리 우리 집 마당으로 찾아와 후박나무 가지에 앉아 열매를 따먹습니다. 비가 살짝 그은 틈을 타서 고픈 배를 채우고 싶겠지요. 나랑 옆지기는 이 시골집에 후박나무를 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 집에 들어오기 앞서 이 땅에 집을 짓고 아이들 낳아 살아가던 예전 어른들이 후박나무를 심었어요. 후박나무는 우람하게 자라 가지를 죽죽 뻗으며, 사람한테는 예쁜 그늘과 시원한 바람노래를 들려줘요. 후박나무는 새들한테 좋은 쉼터가 되면서 좋은 잔치밥상이 되어 줘요.


  뒤꼍 뽕나무도 멧새와 들새한테는 좋은 쉼터이자 잔치밥상입니다. 매화나무도 감나무도 멧새와 들새한테는 좋은 쉼터이면서 잔치밥상입니다. 사람도 매화열매를 먹고 새도 매화열매를 먹습니다. 사람도 감알을 먹고 개미도 감알을 먹습니다.


  그러고 보면, 시골마을 논밭은 시골마을 사람들을 먹일 뿐 아니라 도시마을 사람들을 먹여요. 도시마을에는 논도 밭도 없으니 도시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시골마을 사람들을 먹이지 못해요. 도시마을에서는 시골마을 사람들 먹여살릴 길이 없지만, 이에 앞서 도시마을 스스로 먹여살릴 길이 없어요. 돈을 낳고 돈을 키우지만, 돈을 먹을 수 없는 사람이에요. 돈은 먹을거리하고 바꿀 수 있는 이음고리이지만, 누군가 먹을거리를 흙에서 거두지 않는다면 아무도 밥을 먹을 수 없어요.


..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거나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그들 앞으로 가서 ‘하나만 사 주세요. 제발 하나만 사 주세요.’라고 말하며 파리처럼 귀찮게 달라붙어야 했다. 사람들은 짜증을 냈고 나를 함부로 대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성가시게 하는 게 싫었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산다는 건 아주 흥미로운 일이었다. 또한 살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일들도 기꺼이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난 학대받는 데애 지쳐 버렸다. 근본주의자들과 경찰이 지긋지긋했다 … 나는 사람들이 신분증이나 종교적 신념에 신경을 쓰지 않고 모두에게 친절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  (74, 81, 82쪽)


  총이나 칼은 평화를 이루지 못해요. 돈이 밥을 만들지 못하듯, 사람이 돈을 먹지 못하듯, 총이나 칼은 평화를 이루거나 부르지 못해요. 총이나 칼은 오직 전쟁을 이루거나 부를 뿐이에요. 총이나 칼은 전쟁을 비롯해 미움과 눈물과 슬픔과 아픔을 이루거나 부릅니다. 총이나 칼을 손에 쥔 사람은 고운 사랑을 꿈꾸거나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한테 총이나 칼을 손에 쥐도록 이끄는 정치 지도자나 사회 지도자는 착한 사랑을 꿈꾸거나 생각하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평화를 지킬 뜻’으로 구축함도 만들고 전투기도 만들며 잠수함도 만든다 외치지만, 정작 구축함이나 전투기나 잠수함을 만든 다음에는 전쟁을 꾀합니다.


  한국이랑 이웃한 일본이 ‘자위대’라 하는 군대를 만든 일은 평화를 지킬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하고 싶은 뜻이기 때문에 자위대라는 군대를 만들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군대나, 아니 남녘땅에 있는 군대나 북녘땅에 있는 군대도 평화를 지키지 않습니다. 남녘이나 북녘 모두 전쟁을 꾀하려고 군대를 둡니다.


  전쟁은 옆나라를 치는 전쟁이 있고, 제 나라 여느 사람들을 윽박지르는 전쟁이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나 사회 지도자는 군대로 쿠테타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나 사회 지도자는 군대(또는 경찰 또는 전투경찰)를 앞장세워 독재에 맞서려는 사람들을 총과 칼로 찍어 누르곤 합니다. 가만히 돌이키면, 경찰이 하는 일 또한 군대와 똑같이 ‘여느 마을 여느 사람’을 지키는 일이 아니에요. 여느 마을 여느 사람을 ‘뒤에서 지켜보는’ 일이 경찰들 몫입니다. 정치 지도자와 사회 지도자가 경찰들 힘을 빌어 여느 마을 여느 사람을 억누릅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시골마을에서 경찰이 할 일은 없습니다. 참말 평화롭다 하는 시골마을에서 경찰은 제구실을 못합니다. 도둑이 많은 도시에서 경찰이 바쁘다 하는데, 도시에는 도둑이 많을밖에 없습니다. 도시라는 삶터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이웃과 동무가 되어 밥을 나누는 얼거리가 아니거든요.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더 가진 이가 옆사람을 밟고 올라서면서 등치도록 하는 얼거리예요. 1등을 하든 2등을 하든 아무튼 성공을 해야 살아남는 도시예요. 경쟁을 붙이고 싸움을 붙이는 도시예요. 착하거나 여린 사람은 뒤로 밀리다가 굶습니다. 밥을 먹는 일이 전쟁이나 싸움처럼 되고 말아, 도시에서는 도둑이 끊어질 수 없어요. 돈이 더 있으면 떵떵거리며 놀음놀이를 누릴 수 있다는 바보스러운 꿈이 연속극으로든 영화로든 책으로든 자꾸 쏟아지니까, 스스로 삶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들이 그만 도둑이 되고 말아요. 밥도 사랑도 삶도 나누지 못하는 얼거리인 도시에서 마음이 다친 이들이 도둑이 되고 말아요.


.. “지금 하자라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로, 그저 말 한 마디 때문에, 혹은 의미 없는 어떤 규정 때문에 거리에서 개처럼 죽을 수 있어. 아프가니스탄에서 벗어나게 해 준 네 어머니에게 감사해야 한다.” … “지금까지 살면서 아직 보지 못한 것, 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곳 쿰에서, 공장 밖으로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너무 위험하잖아. 무슨 말인지 알지? 난 완벽하게 (떠날) 준비가 됐어.” ..   (141, 151쪽)


  파비오 제다 님이 쓴 푸른책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마시멜로,2012)를 읽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난 사내아이가 고향마을을 떠나야 살아남을 수 있는 아프며 슬픈 삶자국을 찬찬히 돌아보는 이야기책입니다. 어린 사내아이를 낳아 사랑스레 돌보던 어머니는 이 아이 목숨이 개죽음으로 사라지기를 바라지 않아, 이 아이를 이웃나라로 데리고 가서는 ‘그곳에 가만히 놓’고 고향마을로 돌아갑니다. 이 아이는 제 목숨이 개죽음으로 사라질는지 안 사라질는지 모릅니다. 아직 온누리를 스스로 널리 겪지 못했거든요. 그렇지만 마음으로는 조금씩 느낍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버리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했어요. 아프가니스탄에서 억눌리며 괴로운 여느 사람들이 삶을 붙잡으며 사랑할 수 있는 길이 너무 가늘고 작은 탓에, 이 아이는 이 가늘고 작은 삶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려고 온힘을 쏟아야 합니다.


.. 우리는 우리가 맞닥뜨려야 할 위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죽음이 가까이에서 느껴질 때에도, 우리는 항상 그것이 멀리 있다고 생각했다.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분명히 말하지만 50유로였다. 할머니는 내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세상에는 아주 이상하고도 친절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  (191, 217쪽)


  푸른책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를 읽는 사람 가운데 이 아이가 겪어야 한 일을 ‘눈앞에서 그리듯 떠올리’거나 ‘코앞에서 지켜보듯 믿을’ 만한 이가 얼마나 될까 잘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어머니가 차려 주는 밥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서 먹는 오늘날 푸름이들이 이 책에 담긴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돈 몇 푼 치르면 어디에서든 맛난 밥을 사다 먹을 수 있는 오늘날 공무원들이 이 책에 담긴 이야기를 낱낱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내 이웃은 누구일까요. 나는 내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나요. 내 동무는 누구일까요. 나는 내 동무를 얼마나 아끼며 살아가나요.


  내가 입으로 전쟁 아닌 평화를 바란다고 말한다면, 나는 몸으로 전쟁 아닌 평화를 이루려고 어떤 일을 하는가요. 전쟁 아닌 평화가 지구별에 깃들 수 있도록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한국땅에서 전쟁 아닌 평화가 싹터 자랄 수 있도록 내가 품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왜 스무 살 푸르며 빛나는 젊은 사내는 군대에 들어가야 할까 궁금합니다. 푸르며 빛나는 젊은 사내가 군대에서 총칼을 손에 쥐며 배우는 ‘사람 죽이는 솜씨’는 이웃과 동무를 얼마나 아끼거나 사랑하는 길이 될까 궁금합니다.


.. “이탈리아 학원을 6개월 다닌 뒤에 사설학원 학생 자격으로 중학교 3학년 시험을 봤어요.” “그럼 그 전에는?” “아무것도요. 아프가니스탄 고향마을에서 잠깐 학교를 다녔지만 그 이외는 학교를 전혀 다니지 않았어요.” 나는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탈레반에 끌려가 아이들 보는 앞에서 총에 맞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 그 이전에도 어머니를 찾을 수 있었지만 체류허가증을 받고 나서야, 생존에 필요한 안정을 찾고 나서야, 나는 다시 어머니와 남동생과 누나를 떠올린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그들을 지워 버렸었다. 내가 사악하거나 몰인정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신경을 쓰기 전에 우선 내 자신이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내 삶을 사랑할 수 없다면 누군가에게 어떤 사랑을 줄 수 있겠는가 ..  (264, 271쪽)


  한국땅 초·중·고등학교는 아직 아이들한테 전쟁 아닌 평화를 가르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한국땅 초·중·고등학교는 이제껏 아이들한테 평화 아닌 전쟁을 가르친다고 느낍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입시전쟁’과 ‘입시지옥’을 말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입시전쟁을 치르는 병사’와 ‘입시지옥을 가로지르는 전사’를 말합니다. 아이들은 그저 책상 앞에 달라붙어 문제집과 시험지를 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책상 앞에서 군인이 됩니다. 아이들이 손에 쥔 연필은 총이나 칼입니다. 아이들은 동무나 이웃이 아닌 적군을 마주하며 교실에서 부대낍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동무나 이웃을 사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적군을 쓰러뜨리거나 짓밟는 솜씨를 익힙니다.


  고등학교까지 마친 아이들은 대학교에서 새삼스레 적군을 쓰러뜨리거나 짓밟습니다. 대학교까지 마친 아이들은 회사에서 다시금 적군을 쓰러뜨리거나 짓밟습니다.


  서로를 살리거나 사랑하는 길을 익히지 못하는 아이들입니다. 서로를 살리거나 사랑하는 길을 보여주지 않는 어른들입니다. 그래도,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에 나오는 씩씩한 아이는 스스로 죽음길을 가로질러 삶길로 나아갔어요. 미움과 시샘과 따돌림과 우쭐거림이 아니라 사랑과 믿음과 꿈과 빛을 찾아 먼길을 나섰어요.


  슬픈 한국땅에도 미움 아닌 사랑 찾는 아이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고단한 한국땅에도 시샘 아닌 믿음 찾는 아이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온통 전쟁투성이 한국땅에도 따돌림 아닌 꿈 찾는 아이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어디를 가나 도시로 바뀐 한국땅에도 우쭐거림 아닌 빛 찾는 아이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4345.7.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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