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소년학급단 5
후지무라 마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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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07



어린이가 앞으로 나아가는 길

― 소년소녀학급단 5

 후지무라 마리 글·그림

 정효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2.4.25. 4500원



  어린이는 늘 묻습니다. 몰라서 묻는다고 할 텐데, 늘 새롭게 배우려는 마음이기에 묻습니다. 어른은 잘 안 묻습니다. 아니까 안 물을 수 있을 텐데, 늘 새롭게 배우려는 마음이 어느새 사그라들어서 안 물을는지 몰라요.


  어린이는 늘 물으면서 무엇이든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받아들입니다. 어른도 어린이처럼 늘 물으면서 무엇이든 새롭게 바라본다면, 마흔 살이나 예순 살이라 하더라도 늘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정치나 사회 이야기도 옛날부터 생각하던 대로 알기만 하지 말고, 새롭게 물으면서 새롭게 알 수 있어요. 시나 소설 같은 문학도 옛날부터 알거나 읽던 대로 알거나 읽기보다는, 처음으로 마주한다는 마음으로 새롭게 읽으려 하면 참말 새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요.



“이제 와서 착한 척해 봐야 소용없어. 한 번쯤은 카즈히로의 기분을 생각해 봐! 네가 같은 일을 당했다면 어떡할래?” (6∼7쪽)


‘하지만, 그럼 대체 난 어떻게 했어야 하는 걸까. 모르겠어.’ (11∼12쪽)



  후지무라 마리 님이 빚은 만화책 《소년소녀학급단》(학산문화사,2012) 다섯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책이름이 밝히듯이 ‘소년’하고 ‘소녀’가 이룬 ‘학급 모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아직 어린 사내하고 가시내가 서로 어떻게 부대끼거나 어우러지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직 모르기에 그야말로 몰라서 ‘쉬운 잘못’을 저지르곤 합니다. 어른이 보기에는 쉬운 잘못이라 하더라도 어린이로서는 ‘처음 느낀 잘못’이기에, 이 잘못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놓고 힘들고 아프며 괴롭습니다. 이 아이들 곁에서 ‘얘야, 다 괜찮단다. 이제부터 새로 하면 되고, 바로 그 잘못을 씻으면 돼.’ 하고 말해 주는 어른이 없다면, 아이는 더욱 힘들고 아프며 괴롭겠지요.


  어른은 어린이보다 먼저 태어나서 살림을 짓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보다 여러 가지 일을 먼저 겪었고, 먼저 여러 가지를 새롭게 마주하면서 배웠지요. 어른은 어린이한테 길잡이가 될 만해요. 슬기로운 길잡이가 될 수 있고, 포근하면서 넉넉한 길동무가 될 수 있어요. 아무것도 모르겠는 어린이한테 ‘마음을 다스리면서 가꾸는 길’을 기쁘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루카.” “왜?” “엄마는 야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무슨 일 있을 때 엄마한테 얘기해 주면 상담은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17쪽)


“하루카가 친구를 상처 입힌 일로 오래오래 이불 속에만 있으면 더 슬플 거야.” “사실은 오늘 학교 빠진 거 꾀병이었어.” “알고 있었어. 근데 오늘 하루뿐이다. 다음부터 이러면 안 돼?” “내가 착한 아이가 아니라서 슬퍼?” “하루카. 착한 아이가 되려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 그러다간 도리어 하루카가 괴로워질 거야.” (20∼22쪽)



  어른은 ‘알면서 잘못을 또 저지를’ 수 있습니다. 어른은 으레 이렇지요. 어린이는 ‘모르면서 잘못을 자꾸 저지른’다면, 어른은 알면서 잘못을 거듭 저지른다고 할 만해요. 자, 그러면 어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알면서도 잘못을 거듭 저지르니, 어른은 나쁜 사람일까요? 아니면 어른한테도 ‘다 괜찮아’ 하고 타이르거나 다독일 동무가 있어야 할까요?


  어린이는 새롭게 하나하나 겪으면서 배우고 자랍니다. 어른도 새롭게 하나하나 겪으면서 배우고 자라요. 어린이는 마음속으로 즐거움을 품으면서 씩씩하게 배우면서 자랍니다. 어른도 마음 가득 기쁨을 품으면서 힘껏 일어서려는 몸짓이 되어 배우면서 자랄 수 있습니다.


  괴로움을 품지 말고 기쁨을 풀을 때에 기쁩니다. 또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는 생각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서 새롭게 하겠노라는 마음을 품을 적에 한 걸음을 씩씩하게 내딛겠지요.



“카즈, 자신의 가능성을 버리지 마.” (76쪽)


‘각자의 새로운 한 걸음입니다.’ (87쪽)


“나, 나 전부터 오빠를 좋아했어. 제, 제대로 말한 적이 없는 것 같아서. 할 말은 이거야. 그럼 갈게.” (124∼125쪽)



  어린이가 걷는 걸음은 늘 새 걸음입니다. 그러면 어른은? 만화책 《소년소녀학급단》을 읽으면서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늘 새 걸음을 내딛으면서 기운차게 일어설 적에 스스로 삶을 새롭게 배우고 즐거울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어린이도 스스로 “내 씨앗(가능성)”을 버리지 말 노릇이요, 어른도 마흔 살이건 예순 살이건 스스로 “내 씨앗”을 고이 품어서 마음밭에 심을 노릇이지 싶어요.


  어린이하고 어른이 어깨동무를 하며 걸어가는 길이 살림짓기가 되리라 생각해요. 즐겁게 웃으면서 걷는 살림짓기예요. 기쁘게 노래하며 나아가는 살림짓기예요.


  밥을 하다가 된장국을 잘못 끓일 수 있고, 때로는 냄비를 태워먹을 수 있습니다. 어른도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깰 수 있고, 물을 쏟아서 방바닥이 물바다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잘못 저런 잘못 모두 빙그레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내가 나한테 하는 말입니다. 어여쁜 어린이가 곁에 있다는 대목을 늘 새롭게 헤아리면서 어른인 나도 늘 새롭게 배우고 한 걸음씩 내딛자고 다짐을 합니다. 2016.2.26.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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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맨션 6 토성 맨션 6
이와오카 히사에 지음, 송치민 옮김 / 세미콜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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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12



한 걸음 내딛기

― 토성 맨션 6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

 송치민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5.4.15. 9000원



  이와오카 히사에 님 만화책 《토성 맨션》(세미콜론,2015) 여섯째 권을 보면 ‘앞날’ 이야기가 끝없이 나옵니다. 너도 나도 ‘앞날’을 생각하면서 말머리를 열어요. 앞날을 스스로 끝장내려 하지 말자고 이야기합니다. 앞날을 늘 생각하면서 살자고 이야기해요. 앞으로 다가올 날에는 꿈이 가득한 삶을 이루자고 이야기합니다.



“알겠어? 지금처럼 미래를 정해 놓고 맘대로 포기하는 걸 가게야마 씨나 다마치 앞에서 떠들면 그냥은 안 넘어간다.” (16쪽)


‘입 밖으로 나온 말에 나 자신도 놀랐다. 나는 역시 이 사람을 좋아한다.’ (22쪽)




  그러면, 왜 이 만화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앞날을 이야기할까요? 이제껏 살며 앞이 늘 캄캄하게 막히거나 닫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보이지 않는 앞날 때문에 숨이 막히거나 가슴이 답답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참말 앞날이 막혔기에 숨이 막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스스로 앞날을 새롭게 열려는 마음이 못 되면서 숨이 막힐 수 있어요. 왜 그러한가 하면, 우리 앞날은 언제나 우리가 스스로 지을 뿐, 남이 지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레에서 나한테 돈을 주어야 내 앞날이 열리지 않습니다. 옆에서 나한테 손을 내밀어야 내 앞날이 수월하지 않습니다. 다른 곳에서 내 앞에 빛을 비추어 주어야 내 앞날이 환하지 않습니다.


  내가 스스로 걸어가야 비로소 내 앞날이 또렷해요. 내가 스스로 살림을 지으려는 몸짓이 되어야 바야흐로 내 앞날을 즐겁게 엽니다.



‘가장 멋진 건 바로 지금 둘이 함께하는 시간이야.’ (28쪽)


“빛이 들어오지 않는 하층에는 처음부터 몸이 약한 사람도 많아. 이 프로젝트에 자네가 참가해 주면 희망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봐.” (51쪽)





  한 걸음씩 내딛습니다. 때로는 한꺼번에 두세 걸음씩 껑충 건너뛸 수 있습니다. 어느 때에는 뒷걸음도 칠 수 있어요. 주저앉거나 쓰러진 뒤 도무지 못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냥 눌러앉을 수도 있어요.


  어떤 모습이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마음속으로 ‘한 걸음’씩 걷자는 생각을 키울 수 있어야 합니다. 주저앉은 내 모습이어도 앞으로 나아가는 숱한 걸음 가운데 하나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비록 뒷걸음을 친다지만, 이 뒷걸음은 머잖아 새로운 한 걸음으로 다시 씩씩하게 내딛는 바탕이 되리라 여길 수 있어야지요.



“저는 거짓말을 하기 위해 고용됐던 겁니까?” “그야 그렇지. 싫다면 그만두고. 네가 뭘 바꿀 수 있다면 바꿔 봐.” (96∼97쪽)


‘아니, 좋아하는 건 그 장소뿐일까? 사실은 그 장소에 관련된 사람들이 좋아. 그래서 떠날 수 없는 거야.’ (118∼119쪽)



  나는 너한테 빛이 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그러할 수 있어요. 그러나, 누구보다 내가 나한테 스스로 빛이 될 때에, 나는 너한테 빛이 될 수 있습니다. 너는 나한테 빛이 될 만할까요? 아마 그러할 수 있을 테지요. 다만, 누구보다 네가 너한테 스스로 빛이 될 때에, 너는 나한테 빛이 될 만합니다.


  스스로 어떤 삶을 가꾸려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스스로 어떤 살림을 사랑하려 하는가를 헤아려야 합니다. 스스로 어떤 사람으로 일어서려 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다 돼요. 다 좋아요. 다 아름답지요. 다 사랑스럽습니다. 내가 스스로 기운을 차려서 일어서면 모든 실마리를 기쁘게 풀 수 있습니다. 2016.2.2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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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숟가락 9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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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11



어머니 곁에는 나밖에 없는걸

― 은빛 숟가락 9

 오자와 마리 글·그림

 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5.12.24. 5000원



  저녁에 종이오리기를 합니다. 여섯 살 작은아이가 종이로 오려서 붙이는 놀잇감을 뜻밖에 퍽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는, 내가 손수 흰종이에 그림을 그린 뒤에 가위로 오려서 풀로 붙이면 되겠구나 싶어서 종이오리기를 합니다. 작은아이가 지켜보고 큰아이도 함께 지켜봅니다. 나는 연필로 척척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다 그린 뒤 살살 오린 뒤에, 종잇단에 풀을 발라서 꾹꾹 눌러서 여밉니다. 네모난 작은 상자가 하나 태어납니다.


  눈썰미가 좋은 큰아이는 “나는 세모를 해야지!” 하면서 자로 금을 그은 뒤에 그림을 재미나게 넣습니다. 이리하여 웃음꽃이 피어나는 놀이잔치가 이루어집니다. 아침에 더 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자 하는데, 작은아이는 잠이 안 오고 종이놀이가 생각나는지 자꾸 일어나서 종이오리기를 하겠노라 합니다. 놀이에 폭 빠지면 밤이 깊는 줄 모르겠지요.



‘리츠와 리츠의 동생 루카와 셋이서 데이트를 했다. 내가 만나 보고 싶다고 해서 리츠가 데려와 줬다. 장래에는 리츠처럼 될 것 같아. 리츠랑 결혼하면 이런 아이가 태어날까? 리츠는 좋은 아빠가 될 것 같아.’ (5∼6쪽)



  언제나 사랑을 고운 이야기로 빚는 오자와 마리 님 만화책 《은빛 숟가락》(삼양출판사,2015) 아홉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오자와 마리 님이 이야기로 빚는 사랑은 여러 갈래입니다. 가시내하고 사내 사이에서 짝을 맺는 사랑이 하나 있을 텐데, 오자와 마리 님은 가시내하고 사내 사이를 맺는 사랑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아요. 언제나 이 둘 사이에 ‘아이를 바라보는 사랑’하고 ‘아이가 어른한테 나누어 주는 사랑’을 함께 엮습니다. ‘아이들이 손수 짓는 사랑’에다가 ‘온누리에 고운 숨결이 흐르도록 북돋우는 사랑’을 나란히 엮어요.


  만화책 《은빛 숟가락》은 ‘사랑을 담아서 짓는 밥’을 한복판에 놓고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모든 기쁜 자리에는 ‘함께 밥상맡에 둘러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랑’이 있다는 줄거리를 만화로 보여줍니다. 《은빛 숟가락》 아홉째 권에서는 ‘아이를 돌보지 않고 버린 어머니’가 낳은 두 아이가 엇갈리는 이야기가 흘러요. 한 아이는 어느덧 스물을 넘긴 젊은이로 자랐고, 다른 한 아이는 이제 여덟 살로 초등학교 1학년입니다. 한 아이는 어릴 적에 ‘버려진 아이’가 되어 다른 집에서 거두어들여서 자랐어요. 다른 한 아이는 버려지다시피 지내다가 ‘의젓하게 자란 친형(친형도 버려진 아이)’이 나중에 이 아이를 알아채고는 ‘새어머니가 따스하게 보듬어 준 보금자리’로 데려와서 함께 지내려 하지요.



“그럼 왜 엄마가 아닌 사람이 왔어?” “바보야, 엄마는 일하러 간 거야. 그치?” “으, 응.” …… ‘고마워, 쇼!.” “아냐. 우리 집도 할머니가 오셨거든.” (23쪽)


“있잖니, 루카. 아줌마는 네 형의 엄마니까 너도 엄마라고 불러도 된단다. 아줌마는 루카의 또 다른 엄마인 셈이니까. 부르고 싶어지면 언제든 불러도 돼.” ‘그치만, 그치만 나한테는 엄마가 있는걸.’ (27쪽)




  의젓한 젊은이가 된 아이(리츠)한테는 새어머니도 어머니요, 저를 낳은 어머니도 어머니입니다. 아직 여덟 살인 아이(루카)한테는 저를 내버리다시피 하는 어머니만 어머니요, 친형(리츠)을 보듬어 준 분은 새어머니도 어머니도 아닌 아줌마입니다. 의젓한 젊은이가 된 아이한테는 새어머니뿐 아니라 새어머니가 뒤늦게 낳은 두 아이가 함께 있어요. 아직 여덟 살인 아이한테는 뒤늦게 만난 친형하고 친형네 식구가 있지만, 제(루카)가 ‘저를 버리다시피 한’ 집에서 나오면 그 집에는 ‘저를 낳은 어머니’가 혼자 덩그러니 있고 만다는 대목을 늘 생각합니다.


  새어머니가 저를 낳은 어머니인 줄 알고 고등학생 나이까지 자란 뒤에, 친어머니를 찾고 새어머니가 어떻게 저를 거두어서 돌보았는가 하는 대목을 나중에 듣고 안 아이(리츠)는 오래 마음앓이를 한 끝에 새어머니를 어머니로 여기고, 옛 어머니(저를 낳은 어머니)가 낳기는 했어도 돌보지 않는 아이(동생 루카)가 ‘따스한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기를 바라면서 새어머니네 보금자리에 품고 싶습니다.



“뇨키는 만들기 어려워?” “오늘 너도 같이 만들었잖아.” “그게 아니라, 처음부터 전부 말야.” “너 혼자서? 아직 부엌칼이나 불을 쓰긴 어려워.” “어렵지 않아. 이제 1학년인걸?” (87쪽)


“아예 우리 집 아이 해라. 네가 없으면 쓸쓸한걸!” “카나데 누나. 그치만, 카나데 누나한테는 형이랑 시라베 형이랑 아줌마가 있지만, 엄마한테는 나밖에 없어.” (91쪽)



  “나한테는 너밖에 없어” 같은 말은 흔히 어른이 합니다. 그렇지만 이 만화책 《은빛 숟가락》에 나오는 여덟 살 아이는 “엄마한테는 나밖에 없어” 하고 말합니다. 이 말이 퍼뜨리는 울림은 작지 않습니다. 이 아이가 가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똑똑히 알리는 울림이요, 이 아이가 바꾸려는 삶이나 가꾸고 싶은 살림이 무엇인가를 힘차게 알리는 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여덟 살짜리 어린이인 루카는 ‘밥짓기(요리)’를 혼자 해내고 싶습니다. 집에서 어머니는 저를 돌보거나 건사할 틈이 없이 바쁜 줄 알기에, 더욱이 집에서 저(루카)부터 밥을 거의 챙겨 먹지 못하면서 지냈지만 제 어머니도 끼니를 거의 거르다시피 지내는 줄 알기에, 이 여덟 살짜리 아이는 제 집으로 돌아가서 ‘혼자 외로울 어머니’한테 밥을 지어서 주고 싶습니다. 같이 먹을 수 있으면 더 기쁘겠지만, 적어도 ‘바쁜 어머니’가 집에서 따스한 밥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태연한 척하지 말고 진짜 마음을 보여줘. 나 안 좋아해?” “좋아해. 좋아하지 않았다면 안 사귀었어.” “나랑 키스하고 싶지 않아?” “하고 싶지! 당연하잖아! …… 키스하고 싶어. 하지만, 그보다 좀더, 난 널 지키고 싶다고 할까? 소중히 대하고 싶어.” “키스하면 소중히 대할 수 없어?” “좋아하니까, 더럽히고 싶지 않은 거야.” “아냐, 시라베. 여자는 그런 걸로 더럽혀지지 않아. 좋아하는 사람하고 키스하면 여자는 모두 좀더 예뻐지는걸.” (126∼129쪽)



  마음이란 무엇일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살림을 짓는 사랑스러운 마음이란 어떻게 샘솟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즐거운 살림을 짓는 사랑스러운 마음은 어디에서 어떻게 자라면서 어떤 숨결이 될까 하고 곱씹어 봅니다.


  아이들은 따사로운 눈길하고 포근한 손길을 바랍니다. 고작 흰종이에 연필로 그림을 그려서 가위로 오린 뒤 풀을 바를 뿐이지만, 이 종이놀이를 놓고 두 눈을 반짝이고 웃음을 터뜨리며 좋아하는 아이들입니다. 집일이나 집살림을 건사하지 못하는 어머니라 하더라도 “엄마한테는 나밖에 없어” 하고 말하면서 의젓하게 밥짓기를 배우려 하는 아이입니다.


  더 많은 뭔가를 주어야 사랑이 되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그저 사랑이면 되는 사랑이지 싶습니다. 따사로이 바라보고, 포근하게 손을 맞잡으면 되는 사랑이지 싶어요. 함께 둘러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적에 즐거운 밥상맡입니다. 대단한 밥을 짓지 않더라도, 무국에 김치 한 접시를 올린 밥상이어도, 우리가 스스로 환하게 웃으면서 어우러질 수 있으면 ‘사랑스러운 살림이 넘실거리는 보금자리’가 되리라 느껴요. 만화책 《은빛 숟가락》 열째 권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2016.2.20.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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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의 생활 30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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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09



웃는 마음과 우는 마음을 배운다

― 천재 유교수의 생활 30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1.6.25. 4500원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빚은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학산문화사,2011) 서른째 권에서는 두 가지 마음하고 얽힌 이야기가 흐릅니다. 하나는 ‘우는 마음’을 어떻게 나타내야 하는가를 놓고 오랫동안 생각에 잠긴 유교수 모습이 흐르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웃는 마음’을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가를 놓고 그야말로 오래도록 생각에 잠긴 유교수 모습이 흐르는 이야기예요. 그리고, 두 마음을 함께 펼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되씹으며 지낸 삶이 흐르는 이야기입니다.



“딸이 결혼한다 해서 아버지가 슬프다거나 서운하다거나 허전하독 느끼는 감정을, 저는 이해할 수가 없군요.” (6쪽)


“세츠코가 결혼해도 그러실 겁니까?” “당연하지. 히로마츠 군이 세츠코와 결혼한대 해도 본인들의 자유인 이상 나는 반대하지 않겠네.” “그, 그게 아니죠. 그건 너무 무관심한 것 아닙니까?” “어째서?” (8∼9쪽)



  눈물이 나오면 눈물을 흘리면 됩니다. 웃음이 나오면 웃음을 지으면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느낌을 마음으로 드러내어 본 일이 드물거나 없다면,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도무지 알 수 없겠지요.


  유교수는 다른 사람을 따라하거나 흉내내지 않습니다. 아니,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언제나 유교수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세 딸이 시집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유교수 마음을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가’를 놓고 늘 망설이거나 생각에만 빠졌다고 해요.



“하나코한테만 할아버지, 아니 아빠 노릇을 하고 있어요. 언니들에게 못해 준 만큼. 우리는 그래도 아빠 성격상 아빠는 아빠니까 당연한 거고,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아빠 스타일이고 멋지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왜 이제 와서 그런 얼굴을 하세요? 우리가 결혼하면 아무렇지도 않고, 하나코가 그러면 슬퍼요?” (20쪽)


“나츠코가 결혼했을 때도 빈 나츠코의 방에 억지로 책장을 들여놨잖아? 아마 허전했던 게지. 너희들이 태어날 때부터 쭈욱 보고 있었는걸. 온갖 생각이 다 나실 거야. 그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것뿐이지. 그게 네 아버지니까.” (29쪽)



  모르기 때문에 알려고 하는 유교수입니다. ‘모른다’고 하는 느낌을 아주 잘 알아채면서, ‘알자’라든지 ‘배우자’ 같은 마음이 되는 유교수입니다. 남들이 웃으니까 따라 웃는 삶이 아니라, 왜 웃음이 나오는가를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스스로 실마리를 풀고 나서야 웃는 유교수예요. 남들이 우니까 같이 웃는 삶이 아니라, 왜 눈물이 나와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면서 스스로 실타래를 풀고 나서야 눈물을 짓는 유교수입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빛날 때, 그것이 결과적으로 반드시 행복은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잠자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63쪽)


“하나코가 버릇없이 굴더냐?” “아니. 그냥 내가, 또 미움 살 짓을 한 것 같네요.” “걱정 마라. 노리코는 언제나 조금 먼 길을 오는 것뿐이니까.” (84쪽)



  유교수가 보이는 몸짓은 여러모로 엉뚱하거나 생뚱맞을 수 있습니다. 다만, 엉뚱하든 생뚱맞든, 이런 느낌은 ‘남이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유교수 스스로는 늘 스스로 가야 하는 길을 갈 뿐입니다. 유교수가 걷는 길은 ‘유교수 삶’입니다. 이 땅에 태어나서 ‘스스로 겪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하고’ ‘스스로 누리고’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굳이 다른 사람이 하듯이 따라할 까닭이 없습니다. 유교수는 모든 일을, 그러니까 아주 조그마한 느낌 하나까지도 스스로 겪거나 보거나 하거나 누리면서 기쁨으로 맞아들이려 합니다.



“2년간 수험공부를 했다고?” “정확하게는 1년요. 아빠가 돌아가셔서 알바해야 했거든요.” “그렇군. 잘 왔네. 마음껏 면학에 힘쓰기 바라네.” (106쪽)


“요즘 자주 눈에 띄긴 하지만 유지 관리하기가 어렵지 않나?” “아뇨, 간단해요! 가발이거든요.” “가발?” “저 지금 암 치료중이라서, 머리가 다 빠졌거든요. 항암제 부작용이죠. 그랬더니 오히려 이것저것 과감한 스타일에 도전할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116쪽)



  언제나 배울 수 있는 사람은 늙지 않습니다. 언제나 배우는 사람은 늘 새로운 숨결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늙지 않습니다. 늙는 사람은 배우지 않는 사람입니다. 늙는 까닭은 새롭게 배우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먹는 밥도 우리 몸을 살찌우는 ‘새로운 숨결’입니다. 흐르는 냇물도, 하늘을 가득 채운 바람도, 언제나 모두 ‘새로운 숨결’이에요. 숨쉬기조차 늘 ‘새로운 바람 마시기’인데, 이를 깨닫거나 헤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숨조차 숨답게 쉬지 않는다고 할 만합니다.


  유교수라면 숨쉬기도 스스로 모두 생각하겠지요. 어떤 바람을 마시는가를 늘 생각하고, 스스로 제 몸을 살찌우고 살리며 북돋우는 바람 한 줄기를 받아들이는구나 하고 늘 깨달을 테지요.


  예순 살이 되고 일흔 살이 되어도 웃음과 눈물을 언제나 새롭게 돌아보면서 배우려고 하는 몸짓이기에, 유교수는 늘 유교수답게 하루를 짓습니다. 4349.2.1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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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린네 20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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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08



동무를 사귀려면 마음을 상냥하게 열면 돼

― 경계의 린네 20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6.1.25. 4500원



  타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책 《경계의 린네》(학산문화사,2016) 스무째 권을 즐겁게 읽습니다. 어느덧 스무째 권에 이른 《경계의 린네》를 읽으니, 이 만화책 주인공인 ‘로쿠도 린네’하고 ‘마미야 사쿠라’ 사이에 허물이 하나 사라지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로쿠도와 마미야, 또는 린네와 사쿠라는 오랫동안 ‘마음이 맞는 사이’로 가까이 지냈지만 둘은 ‘이 마음’이 무엇인지를 뚜렷이 드러내지 않는다거나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제 스무째 권에 이르러 두 사람은 ‘봄소풍 같은 모임’에 함께 가는데, 마미야 사쿠라는 언제나처럼 로쿠도 린네하고 함께 먹을 도시락을 챙깁니다. 로쿠도 린네는 너무 가난한 살림이라 도시락은 엄두도 내지 못하기에, 늘 살가이 챙기고 마음을 써 주는 동무가 반가우면서 고맙습니다. 도시락도 도시락이지만, ‘마음을 쓰는 동무’가 반가우면서 고마워요. 무엇보다도 마미야 사쿠라라는 동무는 ‘맨눈’으로도 ‘떠도는 넋’을 볼 수 있어요. 그리고, ‘떠도는 넋’을 맨눈으로 보면서도 놀라지 않아요.



몇 년에 한 번 사신 청년단과 흑묘들은 윤회의 바퀴 청소에 동원된다. “어쩐지 무섭네요.” “그래, 이 작업은, 위험한 데다 일당도 없어.” (7쪽)


“로쿠도 린네 이놈!” “말도 없이 혼자만 한몫 챙기게 둘 수야 없지!” “흥, 교화하게 결계 테이프 같은 거나 붙여놓고!” “윽, 어떻게 돌파했지?” “2천 엔짜리 결계 해제약을 사용했지!” “아니, 그렇게 비싼 물건을?” (147∼148쪽)



  맨눈으로 떠도는 넋을 볼 줄 아는 마미야 사쿠라는 늘 로쿠도 린네 곁에 있어 주면서 여러모로 일을 거듭니다. ‘여느 사람’인 마미야 사쿠라는 ‘사신’ 노릇을 하는 로쿠도 린네하고는 다른 세계(차원)에서 살지만, 그래서 ‘사신이 낫을 휘둘러서 떠도는 넋을 성불해 주고 저승으로 보내는 일’을 할 수는 없지만, 따사로운 마음결로 둘레를 맑고 밝게 어루만지는 일을 할 수 있어요.


  곰곰이 돌아보면 바로 이 마음이 가장 너르면서 큰 마음이지 싶습니다. 이런 솜씨가 있거나 저런 재주가 있는 몸짓도 훌륭하다고 할 텐데, ‘훌륭한 솜씨나 재주’는 없더라도 동무나 이웃을 따사로운 사랑으로 보듬을 수 있는 마음은 그지없이 아름답다고 느껴요. 다시 말해서, 만화책 《경계의 린네》는 ‘두 가지 세계(차원)’에서 다른 삶을 타고나며 사는 두 사람이 ‘두 가지 실타래’를 엮는 줄거리를 들려준다고 할 만합니다.


  먼저 ‘린네’라는 아이는 ‘저승 세계(차원)’에서 태어나서 자라면서 ‘이승 세계(차원)’에서 목숨을 내려놓은 사람들이 ‘떠도는 넋’이 되지 않고 곱게 저승으로 들어와서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도록 이끄는 일을 합니다. ‘사쿠라’라는 아이는 ‘이승 세계’에서 태어나서 자라면서 ‘저승 세계’ 사람들을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저승 세계 사람들한테는 없는 ‘따스한 마음’을 늘 보여주면서 가르치거나 나누는 노릇을 한다고 할 만해요.



“서, 성가시지 않아?” “괜찮아. 있는 힘껏 여자친구 연기를 할 테니까.” (46쪽)


“마미야 사쿠라는, 천사처럼 상냥해.” ‘그렇구나. 거짓말이라도 기쁘네.’ “그 여자가 그렇게 상냥해?” “그럼. 먹을 것도 잘 주고, 가끔 돈도 꿔 주거든.” (70∼71쪽)



  상냥한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어버이가 아이를 낳아서 돌보는 마음도 ‘상냥함’이리라 느낍니다. 아이가 어버이를 믿고 따르면서 날마다 새롭게 기쁨을 배우는 몸짓도 늘 ‘상냥함’이리라 느껴요. 마음이 맞는 두 동무가 서로 어깨를 겯고 노래하는 삶도 ‘상냥함’이 바탕이 될 테지요. 이웃이 서로 사촌처럼 지낸다고 하는 옛말처럼, 두 이웃이 오붓하게 어울리는 살림살이도 언제나 ‘상냥함’이 흐르는 모습이겠지요.


  내가 어버이 노릇을 하자면 나는 스스로 상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맑고 밝게 자라려면 어버이인 나는 아이들한테 상냥함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동무를 사귀려 한다면 스스로 기쁘게 마음을 열면서 상냥하게 말을 걸고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웃하고 함께 일을 하거나 두레를 이루자면 늘 상냥한 마음결로 일손을 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구나. 로쿠도는 결국, 나보다 부적을 택한 거야. 뭘까? 이, 언짢은 기분은.’ (109쪽)


“이제 따라오지 마. 그 도시락도 어차피 줄 생각이었으니까.” “그 말은 못 듣겠어!” “필요없다고?” “필요해! 같이 먹고 싶어!” (126∼127쪽)



  만화책 《경계의 린네》 스무째 권에서 로쿠도 린네는 마미야 사쿠라가 싸서 준 도시락 가방을 함께 풀어서 함께 먹자고 말합니다. 드디어 두 사람은 돗자리를 펴고 함께 앉습니다. 이때에 두 사람 둘레에 다른 동무랑 이웃이 찾아와서 함께 둘러앉아요. 마미야 사쿠라는 도시락을 쌀 적에 언제나 ‘두 사람 몫’이 아니라 ‘여러 사람 몫’을 싸지요. 마치 로쿠도 린네 둘레에 있는 다른 동무도 함께 배고픔을 달래면서 이야기꽃을 피울 줄 안다는 듯이.


  그러니까 이렇게 마음을 쓸 줄 아는 몸짓이 바로 ‘상냥함’이라 할 만하구나 싶습니다. 이 상냥함은 ‘솜씨 좋은 저승 세계 사신’한테도 없는 마음이요, 이 상냥함은 ‘돈이 많거나 얼굴이 잘생겼다고 하는 이승 세계 사람들’한테도 없는 마음이에요. 상냥한 숨결, 따스한 마음, 너른 생각, 기쁜 사랑,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만화책이 《경계의 린네》라고 하겠네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4349.2.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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