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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린네 20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608
동무를 사귀려면 마음을 상냥하게 열면 돼
― 경계의 린네 20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6.1.25. 4500원
타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책 《경계의 린네》(학산문화사,2016) 스무째 권을 즐겁게 읽습니다. 어느덧 스무째 권에 이른 《경계의 린네》를 읽으니, 이 만화책 주인공인 ‘로쿠도 린네’하고 ‘마미야 사쿠라’ 사이에 허물이 하나 사라지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로쿠도와 마미야, 또는 린네와 사쿠라는 오랫동안 ‘마음이 맞는 사이’로 가까이 지냈지만 둘은 ‘이 마음’이 무엇인지를 뚜렷이 드러내지 않는다거나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제 스무째 권에 이르러 두 사람은 ‘봄소풍 같은 모임’에 함께 가는데, 마미야 사쿠라는 언제나처럼 로쿠도 린네하고 함께 먹을 도시락을 챙깁니다. 로쿠도 린네는 너무 가난한 살림이라 도시락은 엄두도 내지 못하기에, 늘 살가이 챙기고 마음을 써 주는 동무가 반가우면서 고맙습니다. 도시락도 도시락이지만, ‘마음을 쓰는 동무’가 반가우면서 고마워요. 무엇보다도 마미야 사쿠라라는 동무는 ‘맨눈’으로도 ‘떠도는 넋’을 볼 수 있어요. 그리고, ‘떠도는 넋’을 맨눈으로 보면서도 놀라지 않아요.
몇 년에 한 번 사신 청년단과 흑묘들은 윤회의 바퀴 청소에 동원된다. “어쩐지 무섭네요.” “그래, 이 작업은, 위험한 데다 일당도 없어.” (7쪽)
“로쿠도 린네 이놈!” “말도 없이 혼자만 한몫 챙기게 둘 수야 없지!” “흥, 교화하게 결계 테이프 같은 거나 붙여놓고!” “윽, 어떻게 돌파했지?” “2천 엔짜리 결계 해제약을 사용했지!” “아니, 그렇게 비싼 물건을?” (147∼148쪽)
맨눈으로 떠도는 넋을 볼 줄 아는 마미야 사쿠라는 늘 로쿠도 린네 곁에 있어 주면서 여러모로 일을 거듭니다. ‘여느 사람’인 마미야 사쿠라는 ‘사신’ 노릇을 하는 로쿠도 린네하고는 다른 세계(차원)에서 살지만, 그래서 ‘사신이 낫을 휘둘러서 떠도는 넋을 성불해 주고 저승으로 보내는 일’을 할 수는 없지만, 따사로운 마음결로 둘레를 맑고 밝게 어루만지는 일을 할 수 있어요.
곰곰이 돌아보면 바로 이 마음이 가장 너르면서 큰 마음이지 싶습니다. 이런 솜씨가 있거나 저런 재주가 있는 몸짓도 훌륭하다고 할 텐데, ‘훌륭한 솜씨나 재주’는 없더라도 동무나 이웃을 따사로운 사랑으로 보듬을 수 있는 마음은 그지없이 아름답다고 느껴요. 다시 말해서, 만화책 《경계의 린네》는 ‘두 가지 세계(차원)’에서 다른 삶을 타고나며 사는 두 사람이 ‘두 가지 실타래’를 엮는 줄거리를 들려준다고 할 만합니다.
먼저 ‘린네’라는 아이는 ‘저승 세계(차원)’에서 태어나서 자라면서 ‘이승 세계(차원)’에서 목숨을 내려놓은 사람들이 ‘떠도는 넋’이 되지 않고 곱게 저승으로 들어와서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도록 이끄는 일을 합니다. ‘사쿠라’라는 아이는 ‘이승 세계’에서 태어나서 자라면서 ‘저승 세계’ 사람들을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저승 세계 사람들한테는 없는 ‘따스한 마음’을 늘 보여주면서 가르치거나 나누는 노릇을 한다고 할 만해요.
“서, 성가시지 않아?” “괜찮아. 있는 힘껏 여자친구 연기를 할 테니까.” (46쪽)
“마미야 사쿠라는, 천사처럼 상냥해.” ‘그렇구나. 거짓말이라도 기쁘네.’ “그 여자가 그렇게 상냥해?” “그럼. 먹을 것도 잘 주고, 가끔 돈도 꿔 주거든.” (70∼71쪽)
상냥한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어버이가 아이를 낳아서 돌보는 마음도 ‘상냥함’이리라 느낍니다. 아이가 어버이를 믿고 따르면서 날마다 새롭게 기쁨을 배우는 몸짓도 늘 ‘상냥함’이리라 느껴요. 마음이 맞는 두 동무가 서로 어깨를 겯고 노래하는 삶도 ‘상냥함’이 바탕이 될 테지요. 이웃이 서로 사촌처럼 지낸다고 하는 옛말처럼, 두 이웃이 오붓하게 어울리는 살림살이도 언제나 ‘상냥함’이 흐르는 모습이겠지요.
내가 어버이 노릇을 하자면 나는 스스로 상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맑고 밝게 자라려면 어버이인 나는 아이들한테 상냥함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동무를 사귀려 한다면 스스로 기쁘게 마음을 열면서 상냥하게 말을 걸고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웃하고 함께 일을 하거나 두레를 이루자면 늘 상냥한 마음결로 일손을 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구나. 로쿠도는 결국, 나보다 부적을 택한 거야. 뭘까? 이, 언짢은 기분은.’ (109쪽)
“이제 따라오지 마. 그 도시락도 어차피 줄 생각이었으니까.” “그 말은 못 듣겠어!” “필요없다고?” “필요해! 같이 먹고 싶어!” (126∼127쪽)
만화책 《경계의 린네》 스무째 권에서 로쿠도 린네는 마미야 사쿠라가 싸서 준 도시락 가방을 함께 풀어서 함께 먹자고 말합니다. 드디어 두 사람은 돗자리를 펴고 함께 앉습니다. 이때에 두 사람 둘레에 다른 동무랑 이웃이 찾아와서 함께 둘러앉아요. 마미야 사쿠라는 도시락을 쌀 적에 언제나 ‘두 사람 몫’이 아니라 ‘여러 사람 몫’을 싸지요. 마치 로쿠도 린네 둘레에 있는 다른 동무도 함께 배고픔을 달래면서 이야기꽃을 피울 줄 안다는 듯이.
그러니까 이렇게 마음을 쓸 줄 아는 몸짓이 바로 ‘상냥함’이라 할 만하구나 싶습니다. 이 상냥함은 ‘솜씨 좋은 저승 세계 사신’한테도 없는 마음이요, 이 상냥함은 ‘돈이 많거나 얼굴이 잘생겼다고 하는 이승 세계 사람들’한테도 없는 마음이에요. 상냥한 숨결, 따스한 마음, 너른 생각, 기쁜 사랑,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만화책이 《경계의 린네》라고 하겠네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4349.2.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