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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숟가락 9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6년 1월
평점 :
만화책 즐겨읽기 611
어머니 곁에는 나밖에 없는걸
― 은빛 숟가락 9
오자와 마리 글·그림
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5.12.24. 5000원
저녁에 종이오리기를 합니다. 여섯 살 작은아이가 종이로 오려서 붙이는 놀잇감을 뜻밖에 퍽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는, 내가 손수 흰종이에 그림을 그린 뒤에 가위로 오려서 풀로 붙이면 되겠구나 싶어서 종이오리기를 합니다. 작은아이가 지켜보고 큰아이도 함께 지켜봅니다. 나는 연필로 척척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다 그린 뒤 살살 오린 뒤에, 종잇단에 풀을 발라서 꾹꾹 눌러서 여밉니다. 네모난 작은 상자가 하나 태어납니다.
눈썰미가 좋은 큰아이는 “나는 세모를 해야지!” 하면서 자로 금을 그은 뒤에 그림을 재미나게 넣습니다. 이리하여 웃음꽃이 피어나는 놀이잔치가 이루어집니다. 아침에 더 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자 하는데, 작은아이는 잠이 안 오고 종이놀이가 생각나는지 자꾸 일어나서 종이오리기를 하겠노라 합니다. 놀이에 폭 빠지면 밤이 깊는 줄 모르겠지요.
‘리츠와 리츠의 동생 루카와 셋이서 데이트를 했다. 내가 만나 보고 싶다고 해서 리츠가 데려와 줬다. 장래에는 리츠처럼 될 것 같아. 리츠랑 결혼하면 이런 아이가 태어날까? 리츠는 좋은 아빠가 될 것 같아.’ (5∼6쪽)
언제나 사랑을 고운 이야기로 빚는 오자와 마리 님 만화책 《은빛 숟가락》(삼양출판사,2015) 아홉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오자와 마리 님이 이야기로 빚는 사랑은 여러 갈래입니다. 가시내하고 사내 사이에서 짝을 맺는 사랑이 하나 있을 텐데, 오자와 마리 님은 가시내하고 사내 사이를 맺는 사랑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아요. 언제나 이 둘 사이에 ‘아이를 바라보는 사랑’하고 ‘아이가 어른한테 나누어 주는 사랑’을 함께 엮습니다. ‘아이들이 손수 짓는 사랑’에다가 ‘온누리에 고운 숨결이 흐르도록 북돋우는 사랑’을 나란히 엮어요.
만화책 《은빛 숟가락》은 ‘사랑을 담아서 짓는 밥’을 한복판에 놓고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모든 기쁜 자리에는 ‘함께 밥상맡에 둘러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랑’이 있다는 줄거리를 만화로 보여줍니다. 《은빛 숟가락》 아홉째 권에서는 ‘아이를 돌보지 않고 버린 어머니’가 낳은 두 아이가 엇갈리는 이야기가 흘러요. 한 아이는 어느덧 스물을 넘긴 젊은이로 자랐고, 다른 한 아이는 이제 여덟 살로 초등학교 1학년입니다. 한 아이는 어릴 적에 ‘버려진 아이’가 되어 다른 집에서 거두어들여서 자랐어요. 다른 한 아이는 버려지다시피 지내다가 ‘의젓하게 자란 친형(친형도 버려진 아이)’이 나중에 이 아이를 알아채고는 ‘새어머니가 따스하게 보듬어 준 보금자리’로 데려와서 함께 지내려 하지요.
“그럼 왜 엄마가 아닌 사람이 왔어?” “바보야, 엄마는 일하러 간 거야. 그치?” “으, 응.” …… ‘고마워, 쇼!.” “아냐. 우리 집도 할머니가 오셨거든.” (23쪽)
“있잖니, 루카. 아줌마는 네 형의 엄마니까 너도 엄마라고 불러도 된단다. 아줌마는 루카의 또 다른 엄마인 셈이니까. 부르고 싶어지면 언제든 불러도 돼.” ‘그치만, 그치만 나한테는 엄마가 있는걸.’ (27쪽)
의젓한 젊은이가 된 아이(리츠)한테는 새어머니도 어머니요, 저를 낳은 어머니도 어머니입니다. 아직 여덟 살인 아이(루카)한테는 저를 내버리다시피 하는 어머니만 어머니요, 친형(리츠)을 보듬어 준 분은 새어머니도 어머니도 아닌 아줌마입니다. 의젓한 젊은이가 된 아이한테는 새어머니뿐 아니라 새어머니가 뒤늦게 낳은 두 아이가 함께 있어요. 아직 여덟 살인 아이한테는 뒤늦게 만난 친형하고 친형네 식구가 있지만, 제(루카)가 ‘저를 버리다시피 한’ 집에서 나오면 그 집에는 ‘저를 낳은 어머니’가 혼자 덩그러니 있고 만다는 대목을 늘 생각합니다.
새어머니가 저를 낳은 어머니인 줄 알고 고등학생 나이까지 자란 뒤에, 친어머니를 찾고 새어머니가 어떻게 저를 거두어서 돌보았는가 하는 대목을 나중에 듣고 안 아이(리츠)는 오래 마음앓이를 한 끝에 새어머니를 어머니로 여기고, 옛 어머니(저를 낳은 어머니)가 낳기는 했어도 돌보지 않는 아이(동생 루카)가 ‘따스한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기를 바라면서 새어머니네 보금자리에 품고 싶습니다.
“뇨키는 만들기 어려워?” “오늘 너도 같이 만들었잖아.” “그게 아니라, 처음부터 전부 말야.” “너 혼자서? 아직 부엌칼이나 불을 쓰긴 어려워.” “어렵지 않아. 이제 1학년인걸?” (87쪽)
“아예 우리 집 아이 해라. 네가 없으면 쓸쓸한걸!” “카나데 누나. 그치만, 카나데 누나한테는 형이랑 시라베 형이랑 아줌마가 있지만, 엄마한테는 나밖에 없어.” (91쪽)
“나한테는 너밖에 없어” 같은 말은 흔히 어른이 합니다. 그렇지만 이 만화책 《은빛 숟가락》에 나오는 여덟 살 아이는 “엄마한테는 나밖에 없어” 하고 말합니다. 이 말이 퍼뜨리는 울림은 작지 않습니다. 이 아이가 가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똑똑히 알리는 울림이요, 이 아이가 바꾸려는 삶이나 가꾸고 싶은 살림이 무엇인가를 힘차게 알리는 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여덟 살짜리 어린이인 루카는 ‘밥짓기(요리)’를 혼자 해내고 싶습니다. 집에서 어머니는 저를 돌보거나 건사할 틈이 없이 바쁜 줄 알기에, 더욱이 집에서 저(루카)부터 밥을 거의 챙겨 먹지 못하면서 지냈지만 제 어머니도 끼니를 거의 거르다시피 지내는 줄 알기에, 이 여덟 살짜리 아이는 제 집으로 돌아가서 ‘혼자 외로울 어머니’한테 밥을 지어서 주고 싶습니다. 같이 먹을 수 있으면 더 기쁘겠지만, 적어도 ‘바쁜 어머니’가 집에서 따스한 밥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태연한 척하지 말고 진짜 마음을 보여줘. 나 안 좋아해?” “좋아해. 좋아하지 않았다면 안 사귀었어.” “나랑 키스하고 싶지 않아?” “하고 싶지! 당연하잖아! …… 키스하고 싶어. 하지만, 그보다 좀더, 난 널 지키고 싶다고 할까? 소중히 대하고 싶어.” “키스하면 소중히 대할 수 없어?” “좋아하니까, 더럽히고 싶지 않은 거야.” “아냐, 시라베. 여자는 그런 걸로 더럽혀지지 않아. 좋아하는 사람하고 키스하면 여자는 모두 좀더 예뻐지는걸.” (126∼129쪽)
마음이란 무엇일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살림을 짓는 사랑스러운 마음이란 어떻게 샘솟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즐거운 살림을 짓는 사랑스러운 마음은 어디에서 어떻게 자라면서 어떤 숨결이 될까 하고 곱씹어 봅니다.
아이들은 따사로운 눈길하고 포근한 손길을 바랍니다. 고작 흰종이에 연필로 그림을 그려서 가위로 오린 뒤 풀을 바를 뿐이지만, 이 종이놀이를 놓고 두 눈을 반짝이고 웃음을 터뜨리며 좋아하는 아이들입니다. 집일이나 집살림을 건사하지 못하는 어머니라 하더라도 “엄마한테는 나밖에 없어” 하고 말하면서 의젓하게 밥짓기를 배우려 하는 아이입니다.
더 많은 뭔가를 주어야 사랑이 되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그저 사랑이면 되는 사랑이지 싶습니다. 따사로이 바라보고, 포근하게 손을 맞잡으면 되는 사랑이지 싶어요. 함께 둘러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적에 즐거운 밥상맡입니다. 대단한 밥을 짓지 않더라도, 무국에 김치 한 접시를 올린 밥상이어도, 우리가 스스로 환하게 웃으면서 어우러질 수 있으면 ‘사랑스러운 살림이 넘실거리는 보금자리’가 되리라 느껴요. 만화책 《은빛 숟가락》 열째 권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2016.2.20.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