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7] 남자와 여자

 우리 말은 ‘사내’와 ‘계집’입니다. 그런데 우리 말을 우리 말로 여기는 흐름은 꽤 예전부터 꺾였습니다. ‘사내’라는 낱말을 놓고는 깎아내리는 느낌을 안 받으면서, ‘계집’이라는 낱말을 놓고는 깎아내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계집’이라는 낱말을 섣불리 올리면 인권모독이나 인권침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인천 싸리재길을 늘 지나다니면서 이 거리에 자리한 가구집들 이름이 어떠한가를 따로 들여다본 적이 없습니다. 리바트가구이든 시몬스침대이든 그저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러던 얼마 앞서 ‘레이디가구’라는 이름이 붙은 가구집 옆을 스치다가 ‘레이디’라는 이름을 붙인 가구 회사는 어쩜 이름을 이리 지었을까 싶어 궁금했습니다. 우리 말로는 ‘아가씨’이잖아요. 또는 ‘아씨’나 ‘색시’쯤 될 테지요. 그런데 ‘색시’라는 낱말도 얕잡는다는 느낌을 받는 낱말이 된 지 오래입니다. 그나마 ‘아씨가구’라 하면 낫다 여길는지 모르나, 이 또한 모를 노릇입니다. 있는 그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모습 고스란히 글로 담지 못합니다. 똥오줌 누는 뒷간에 ‘남자-여자’라 적힌 모습을 보기조차 힘듭니다. (4343.9.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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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24] 스물네 시간

 아이랑 아이 엄마랑 하루 스물네 시간을 붙어 지냅니다. 세 사람이 떨어져 지내는 시간은 하루 한 시간은커녕 하루 한 분조차 안 됩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 한 주 이레, 한 달 서른 날, 한 해 열두 달 내내 함께 살아가며 같이 움직이고 나란히 잠자리에 듭니다. 밥을 한다든지 설거지를 한다든지 책을 읽는다든지 글을 쓴다든지 다른 일을 한다든지 하면 아이는 혼자 심심해 하곤 하지만, 이내 혼자 소리지른다거나 노래부른다거나 춤을 춘다거나 합니다. 엄마나 아빠 따라 책을 펼친다든지 사진찍기 놀이를 하거나 드러눕거나 마구 달라붙거나 엉겨붙습니다. 아이는 스물네 시간 함께 살아가며 제 어버이 삶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하나하나 따릅니다. 옆지기는 옆지기대로 서로서로 마주하는 가운데 닮아 가기도 하고 안 닮아 가기도 합니다. 아이도 그렇겠지요. 제 어버이 삶을 고스란히 따르기도 하지만, 제 어버이 말을 하나도 안 들으며 제멋을 찾아 제길을 갈 테지요. 아이와 아이 엄마하고 보내는 하루 스물네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길다고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밥하고 빨래하며 쓸고닦다 보면 어느새 새벽이 아침 되고 아침이 낮 되며 낮이 저녁 됩니다. 한 해 삼백예순닷새 또한 퍽 짧습니다. (4343.11.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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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8] 꽁짜

 잘 쓰던 손전화 기계가 더는 제구실을 못할 때에 바꿉니다. 손전화 기계는 두어 해가 지나면 약이 금세 닳거나 단추가 제대로 안 눌립니다. 갓난아이가 엄마 아빠 못 본 사이 입에 무느라 침이 흘러들어 맛이 가기도 합니다. 손전화 만드는 곳에서는 이 기계를 열 해나 스무 해 즈음 걱정없이 쓰도록 만들지 않습니다. 아니, 기계 하나라면 쉰 해나 백 해쯤 쓰더라도 말썽이 나지 않도록 단단하거나 야무지게 만들 노릇일 텐데, 이와 같이 마음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더 많은 물건과 더 새로운 물건을 꾸준히 팔아치워 돈을 벌 생각뿐입니다. 요즈음 우리 누리에서 써야 하니까 쓰지만, 우리 식구들이 손전화 없어 못마땅하거나 힘들 일이란 없습니다. 우리 식구들은 느긋하지만 우리 둘레 사람들이 힘들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쓰는 손전화입니다. 이 기계에 딸렸다는 숱한 쓰임새를 쓸 일이란 없습니다. 그예 전화를 걸고 시계로 삼습니다. 엊그제는 버스를 타다가 길거리 전화가게를 바라봅니다. 가게마다 한결같이 ‘꽁짜’를 내겁니다. ‘거저’나 ‘그냥’이란 없습니다. 문득, ‘짜장면’이라 하면 잘못이고 ‘자장면’이라 해야 옳다고 말하는 분들 마음을 읽습니다. (4343.9.2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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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1-15 09:51   좋아요 0 | URL
들리는 소문에 국내 핸폰의 수명은 약 2년이라고 합니다.그래야 약정 기간이 끝난 고객이 다른 통신사를 이용해야 하니까요.뭐 버튼 하나만 교체해도 2~3만원하니 통신사 바꾸는것이 싸기 싸더군요ㅡ.ㅡ

숲노래 2010-11-15 10:56   좋아요 0 | URL
음... 그런가 보군요... 지금 쓰는 녀석도 이래저래 아슬아슬하다고 느끼는데, 다 그런 까닭이 있네요.. ㅠㅜ

그 쓰레기들을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들...
 

[함께 살아가는 말 23] 잠집

 충청북도 충주시 끝자락이라 음성읍과 맞닿은 신니면 무너미마을 부용산 기슭에 이오덕자유학교라는 배움터가 있습니다. 산골마을 품에 안은 배움터 아이들은 으레 산을 타고 밭일을 하며 짐승하고 어울립니다. 이곳에는 ‘모임집’이 마련되어 있고 ‘헤엄터’가 따로 있습니다. 아이이든 어른이든 두루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모이는 집”이라는 말뜻 그대로 모임집이요, “헤엄을 치며 노는 터”라는 말뜻 그대로 헤엄터예요. 언제였는지 잘 떠오르지 않으나, ‘씻는방’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을 들려준 분은 딱히 우리 말글 사랑을 할 뜻으로 ‘씻는방’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말뜻 그대로 “몸을 씻는 곳”이니까 씻는방을 찾았습니다. 그 뒤 ‘잠방’하고 ‘잠집’이라는 말을 다른 사람한테서 듣습니다. 이 말을 읊은 분 또한 애써 한겨레 말사랑을 펼치려는 뜻이 아니라, “잠자는 방”이랑 “잠자는 집”을 찾다가 불쑥 이런 말을 꺼냈을 뿐입니다. 따로 국어사전에 실리지 않은 낱말인 한편, 꼭 국어사전에 실어야 할 만한 말이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예 살아가며 조곤조곤 나누면 좋을 말입니다. 낯선 곳으로 마실을 해서 잠잘 곳을 찾으니 잠집을 알아봅니다. 밖에서 밥을 사먹으니 바깥밥을 먹습니다. (4343.11.1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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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9] 커팅칼

 읍내에 세 식구 함께 마실을 갑니다. 능금이랑 포도랑 몇 가지 먹을거리랑 장만해서 읍내 한복판에 있는 널따란 쉼터에서 다리를 쉽니다. 아이 엄마가 얼음과자를 먹고 싶다고 해서 읍내에 있는 롯데리아에 갑니다. 작은 읍내에도 롯데리아는 으레 하나쯤 있기 마련입니다. 500원짜리 얼음과자하고 600원짜리 얼음과자를 하나씩 시켜서 아이랑 아이 엄마랑 먹습니다. 둘이 한창 맛나게 먹는데 “커팅칼 좀 주세요.” 하는 말이 들립니다. 뒤쪽에 우리처럼 식구들이 함께 나온 분들이 있는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주문대에서 ‘햄버거 자를 칼’을 달라 말합니다. 주문대에 있던 누나는 “커팅칼을 드릴 수는 없고 햄버거를 가지고 오면 잘라 드릴게요.” 하고 말합니다. 아이가 햄버거를 가져옵니다. 주문대 누나는 안쪽에 있는 일꾼한테 “햄버거 좀 잘라 주세요.” 하고 말합니다. 이윽고 햄버거는 알맞게 썰리고, 아이는 썰린 햄버거를 받아 제자리로 갑니다. 아이가 스스럼없이 읊은 ‘커팅칼’이란 “자르는 칼”일 텐데, 어떠한 칼이든 다 ‘자르는’ 데에 씁니다. 그나저나, 혼례잔치에서 으레 “케익 커팅”을 읊고, 무슨 행사에서도 “테이프 커팅”을 합니다. 그래요, ‘커팅나이프’겠지요. (4343.1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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