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22] 삶글

 책을 좋아하며 삶을 꾸릴 때에는 책삶이 된다고 느낍니다. 사진을 아끼며 살아갈 때에는 사진삶이 되며, 글을 사랑하며 살아갈 때에는 글삶이 됩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일을 놓고 시골살이라 하고, 도시에서는 도시살이라 하는데, 시골삶과 도시삶처럼 적바림해 볼 수 있나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자전거를 즐겨 탈 때에는 자전거삶이 될 테고,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걷는 나날을 즐긴다면 두다리삶이 되려나요. 살면서 ‘삶’을 느끼지 않는 날이란 없습니다. 기뻐도 내 삶이고 슬퍼도 내 삶입니다. 지쳐도 내 삶이요 가붓해도 내 삶이에요. 깊은밤, 칭얼거리는 아이를 토닥여 곱게 재운 다음 일어나 풀숲에 쉬를 하며 밤하늘 올려다봅니다. 조용하면서 따사롭게 살아가던 분들 이야기를 오롯이 담은 책, 그러니까 삶책이 반갑다면서 책사랑을 이어오는 내 나날이라면, 바로 나부터 삶책을 쓸 수 있도록 땀을 흘리고 품을 들이며 마음을 쏟아야지 싶습니다. 글을 쓴다면 삶글을 쓸 노릇이고, 말을 한다면 삶말을 할 노릇입니다. 일을 할 때에는 삶일을 해야겠고, 놀이를 즐긴다면 삶놀이를 해야겠지요. 삶살림, 삶사랑, 삶믿음, 삶꿈, 삶나눔, 삶집, 삶마음, 삶꿈. 한 마디씩 차근차근 되뇝니다. (4343.11.1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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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20] 가을잎

 가을이 되어 붉거나 노랗게 물드는 잎이 나무마다 그득합니다. 어제까지는 퍽 오래도록 비가 오지 않더니, 지난밤 살짝 비가 흩뿌립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가을잎이 제법 졌습니다. 나무에 달리면 나뭇잎이라 하고, 나무에서 떨어져 땅에 살포시 누우면 가랑잎이라 합니다. 비가 흩뿌린 뒤 바람이 제법 세게 붑니다. 나무에 대롱대롱 달려 있던 잎들이 하나둘 톡톡 떨어져 나부낍니다. 이리 날다가 저리 구릅니다. 시골집 둘레는 온통 가랑잎입니다. 붉거나 노랗게 물든 가을잎투성이입니다. 가을이기에 이토록 붉거나 노란 잎사귀를 마주합니다. 겨울에도 푸른빛 건사하는 겨울잎을 만날 수 있을 테고,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푸석푸석 삭으며 흙으로 돌아가는 겨울잎을 만날 수 있겠지요. 봄에는 새로 움터 싱그럽고 물기 가득한 봄잎을 만날 테며, 여름에는 한껏 물이 올라 반짝반짝 빛나는 여름잎을 만나겠지요. 철 따라 거듭나는 잎사귀처럼 사람도 철 따라 새삼스레 거듭날까 궁금합니다. 어머니 배에서 무럭무럭 자라다가 바깥마실을 하는 갓난쟁이가 한 돌 두 돌 크며 어린이가 되고 푸름이가 되며 젊은이가 되어 갈 텐데, 이동안 어떠한 마음잎 하나 가슴에 조촐히 담을는지 궁금합니다. (4343.1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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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21] 밤하늘

 시골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합니다. 이 하늘이 언제까지 파랄 수 있을까 하고. 볼일을 보러 도시로 나오며 낮하늘을 올려다볼 겨를이 없습니다. 바쁜 사람들 물결에 나 또한 바쁜 사람 하나로 휩쓸립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시골 살림집으로 돌아올 무렵이면 다시금 하늘을 올려다볼 겨를을 내는데, 애써 하늘을 올려다보려 하지만 하늘은 꽁꽁 막힙니다. 건물에 막히고 건물 지붕에 막히며 찌뿌둥한 잿빛 먼지구름에 막힙니다. 낮에는 낮대로 낮하늘을 껴안기 어려운 도시이구나 싶은데, 처음에는 이렇게 느끼지만, 이내 도시사람 삶이란 참 슬프겠다고 느낍니다. 제아무리 먼지구름 가득한 가을하늘일지라도 틀림없이 가을하늘이거든요. 밤에는 갖은 등불로 너무 밝아 별빛 하나 찾을 수 없지만, 이런 밤하늘이라 하더라도 꼭 밤하늘이에요. 밤낮이 없거나 밤낮이 바뀐다는 도시인 터라, 아침에는 어마어마하게 몰려다니는 사람이 낮이 되면 거의 안 보이다가 어둑어둑할 때에 다시금 어마어마하게 몰려다닙니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친 다음 도시에서도 살짝 먼지구름이 걷혀 낮하늘은 파란하늘이고 밤하늘은 초롱초롱 별하늘이거나 까만하늘이곤 합니다. 나는 도시로 볼일을 보러 나온 때에도 밤하늘을 헤아리며 아주 조그마한 별을 찾습니다. (4343.11.1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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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여는 말 689] 지못미

 진보신당 심상정 님이 책을 하나 냈습니다. 책이름 《당당한 아름다움》만큼이나 활짝 웃는 얼굴이 무척 아름답다고 느껴집니다. 심상정 님 얼굴이 곱거나 예쁘다고 느껴질 얼굴인지 아닌지 잘 모릅니다만,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일하는 사람이든, 스스로 자기 길을 옳다고 여기며 꿋꿋하게 걸어가면 그이 스스로 제 깜냥껏 아름다움을 찾기 마련입니다. 어떤 이는 무지개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어떤 이는 시궁창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며, 어떤 이는 싱그러운 들판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한편, 어떤 이는 자동차 배기가스로 가득한 도심지에서 아름다움을 찾습니다. 어느 쪽이 더 나은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없이 저마다 뜻과 값이 있을 테지요. 그러나저러나 심상정 님은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졌습니다. 퍽 아쉽다고 여길 수 있고, 그래도 홀로 꿋꿋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 하고 말하며, 누군가는 ‘아직 덜 무르익었으니 더 무르익어야 해’ 하고 말합니다. 틀림없이 가시밭길은 고단하고 거칠며 팍팍합니다. 외롭고 슬프고 가슴 아픕니다. 그러나 가시밭길이 있기에 탁 트인 길이 시원합니다. 가시밭길이 있기에 더욱 단단해지고 좀더 야무지게 됩니다. 가시밭길을 거치면서 우리 스스로 꿋꿋해지고, 가시밭길을 헤치면서 우리 나름대로 아름다워집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심상정 님을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가 아닌 ‘앞으로 더 무르익도록 애쓰고 첫마음을 더 다부지고 튼튼하게 가꾸소서’ 하고 말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4341.10.1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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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지기 어머님이 우리 딸아이를 보며 자꾸만 “우리 공주님!”이라고 말한다. 이 소리가 들릴 때마다 영 껄쩍지근하다. 그러나 옆지기는 ‘귀중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하지’ 하면서 넘어가자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야 ‘귀중하다는 뜻을 그렇게 말해도, 우리는 우리가 아이를 바라보고 키우는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을 지켜 나가면 된다’고 한다. 우리 아이는 여왕도 공주도 아니요, 마님도 하녀도 밥어미도 아니다. 그저 계집아이일 뿐, 있는 그대로 딸일 뿐, 다른 사람이 아니다. “이쁜 공주!” 하고 쓰다듬어 주고픈 마음은 알겠지만, 갓난아기일 때부터 딸아이를 딸아기 그대로 바라보면서 쓰다듬어 줄 수 없다면, 아이 마음에 새겨지는 이름과 아이를 바라보는 우리들 마음이 어찌 되겠는가. 그런데, 이런저런 걱정도 우리 옆지기는 부질없다고 말한다. 우리 두 사람 피를 물려받은 아이라면, 우리 마음을 아이가 잘 헤아리면서 자랄 테니 믿는단다. (4341.8.1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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