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의 헌책방 - 모리오카 서점 분투기
모리오카 요시유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한뼘책방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201


책 하나 쥐고 가볍게 이야기꽃
― 황야의 헌책방
 모리오카 요시유키/송태욱 옮김
 한뼘책방, 2018.1.25.


나는 생활비를 삭감하더라도 예산을 초과해서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에도 시대의 책이 길거리에 나뒹굴고 있는 진보초는 그것만으로도 굉장하다. (43쪽)

카페 리오의 종업원에게 임시 수입 5만 엔이 생겨 전부터 구하고 싶었던 책을 구입한 경위를 이야기하니 의외로 “그렇게 책을 사 읽어서 무얼 하려고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48쪽)


  일본 도쿄에서 ‘모리오카 서점’을 꾸리는 분은 처음부터 ‘책 한 가지만 파는 곳’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처음에 온갖 책을 잔뜩 들여놓지도 않았다고 해요. 처음에는 책하고 오랜 골목길을 좋아하는 나날을 누렸고, 이러다가 도쿄 진보초에서 오래된 헌책집에서 일자리를 얻어 여러 해 동안 책집지기 일을 익혔다고 합니다. 이 같은 길을 거쳐 혼자 책집을 내려는 뜻을 펴 보았고, 유럽으로 날아가 ‘책집에 놓을 사진책을 짐수레 가득 장만해’서 일본으로 돌아오기도 했다지요.

  그렇지만 책장사는 매우 어려웠다고 합니다. 손님이 너무 없을 뿐 아니라, 다달이 달삯을 치러야 할 날은 참 빠르게 다가왔대요.


(잇세이도 서점에) 입사하고 나서 일주일쯤은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일찌감치 가게 하나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부하고 있었지만 통하지 않았다. 가끔 물어오는 책 제목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104쪽)

전무에게 의논하자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겸허하게 말할 수 있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네. 동서고금의 책 중에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것은 1퍼센트도 안 되거든.” 하며 깨우쳐 주었다. (118쪽)


  《황야의 헌책방》(모리오카 요시유키/송태욱 옮김, 한뼘책방, 2018)은 ‘한 번에 한 가지 책만 파는 곳’으로 모리오카 서점을 꾸리기까지 책집지기로서 어떤 삶을 일구었나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 까맣게 모르던, 아니 아예 생각조차 않던 젊은이가 만난 사람하고 지켜본 오랜 골목길을 이야기합니다. 으레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고, 돈이 생기면 헌책집에 들러 값싸게 하나둘 사서 모으는데, 이러다가 1941년에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즈음 그때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궁금해서 옛 신문을 뒤적여 보면서 지난날 그대로 따라해 보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따라하던 때에, 일본에 진주만에 폭탄을 떨구기 하루 앞서 나온 신문에 ‘잇세이도 서점’이라는 곳에서 “헌책 삽니다”라는 광고를 실은 모습을 보았대요. 일본이란 나라는 전쟁 한복판에서도 책을 사서 읽고 내고 썼을 뿐 아니라, 헌책집에 책을 내놓고 사러 갔구나 싶어 모리오카 요시유키 님 스스로도 무척 놀랐다고 합니다.


“여기서 고서점을 하고 싶습니다.” 그 사람은 생각했던 대로 가게 주인 우치다 씨였다. 우치다 씨는 “이 건물은 쇼와 2년, 그러니까 1927년에 세워졌는데 이곳에서 고서점을 한다면, 하기에 따라서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153쪽)


  도쿄에 있는 커다란 헌책집에서 일하는 동안 ‘도무지 모르고 낯선 책’이 너무 많아 한동안 어쩔 줄 몰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있는 책’이란 손에 쥐는 모래알처럼 아주 적기 때문에, 모르면 모른다고 밝히면서 새로 배우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군요.

  오늘날 같은 모리오카 서점이란, 이 책집지기가 이제껏 마주한 사람과 삶과 책과 마을이 모두 어우러져서 비롯했구나 싶습니다. 온누리 모든 책 가운데 알 수 있는 책이란 매우 적으니, 이 매우 적은 책 가운데 책집지기가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책 하나를 두는 곳으로 꾸리면서, 이 책집을 전시관으로 함께 삼을 수 있다지요.

  뭔가 더 많이 갖다 놓지 않고, 뭔가 더 단출히 꾸미면서 책과 삶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이끈다고 할 만합니다. 더 많이 읽거나 갖추기보다는 우리 눈앞에 있는 책과 삶을 더 찬찬히 지켜보면서 아끼자는 뜻이기도 하리라 봅니다.


서점을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나자 내 표정에는 완전히 패배감이 떠돌았다. 입을 벌려 웃을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역시 너무 조급하게 일을 진행한 것이다. 계획성이 없었다. 손님이 오지 않으니 당연히 책도 팔리지 않았다. (184쪽)


  처음부터 모두 알 수는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처음에는 마냥 즐거운 길을 찾아서 오랜 골목을 거닐고, 곁일을 하며 번 돈으로 책 몇 권을 장만합니다. 옛 신문을 도서관에서 복사해 읽다가 얼결에 커다란 헌책집 일꾼 가운데 하나로 뽑혀서 한동안 일합니다. 책을 좋아하던 때에 마주하던 책하고는 달라도 너무 다른 헌책집 책을 만지면서 ‘모르는 것투성이’라서 늘 배워야 하는 줄 깨닫고, 손수 헌책집을 차리고 보니 미처 살피지 않은 대목이 참으로 많아서 이리 부딪히고 저리 깨지면서 시나브로 길을 찾습니다.

  《황야의 헌책방》이라는 이름은 아무것도 없다 싶은 벌판에 선 모습을 빗대지 싶은데, 아무것도 없다 싶은 벌판이기에 지쳐서 쓰러져도 혼자 쓰러지면 될 뿐이라는 마음으로 무엇이든 차근차근 지어 보는 삶도 함께 빗대었구나 싶습니다.

  아직 아무도 해 보지 않았어도 되어요. 그렇게 해서는 돈을 못 번다는 소리를 들어도 되어요. 헌책집 한쪽을 전시관으로 삼아도, 이러다가 ‘한 번에 한 가지 책만 파는 곳’으로 바꾸어도 되지요. 다만 숱한 가시밭길을 거쳐서 여기에 이릅니다.


오후부터 저녁까지 기본적으로 가게를 보는 일에는 변함이 없지만, 전시회도 열자 매일 사람들이 가게를 찾아오게 되었다. 거기에서 대화가 이어지기도 했다. 개업 초기 손님이 아무도 오지 않을 때는 창밖으로 흐르는 가메지마가와를 바라보며 갈매기에게 땅콩을 던져주며 마음을 달랬는데 상황이 크게 변했다. 손님 중에는 회화나 조각, 도예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 그리고 카메라맨이나 디자이너가 많았다. 손님이 전시 장소로서 가게에 흥미를 보이게 되었고, 가게 안의 갤러리는 손님의 다음 스텝을 위한 발판 역할을 했다. (202쪽)


  한국에서 마을책집이 하나둘 늘어납니다. 더 많은 책을 건사하지 않는 작고 상냥한 마을책집입니다. 큰책집은 자꾸 더 커다란 책집이 되려 하고, 전국 곳곳에 새끼가게를 줄줄이 엽니다만, 전국 마을책집은 골목 귀퉁이라 할 만한 데에 조그맣게 문을 엽니다.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이란 바로 ‘더 큰, 더 많은, 더 이름난’이 아닌 ‘알맞은, 상냥한, 즐거운’인 줄 느끼는 분들이 새로운 책살림을 짓는구나 싶습니다.

  언뜻 보면 쓸쓸하거나 거칠거나 터무니없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알맞고 상냥하며 즐거운 마을책집에는 골목이며 마을을 천천히 거닐어 사뿐사뿐 다가오는 이웃이 책손으로 깃들 수 있습니다. 아직 장사는 만만하지 않을 수 있지만, 더 키워서 더 팔아서 더 드날리려는 물결에 휩쓸리면 이웃을 만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책집지기로서도 골목이나 마을하고 이웃이 되지 못합니다.

  따뜻하며 싱그러운 바람이 책집 골목에 붑니다. 이 바람을 품고서 이웃님이 책손으로 찾아갑니다. 두 손 가득이 아닌, 한 손에 가볍게 책 하나를 쥐고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이 피어납니다. 2018.3.20.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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