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생각합시다 25
알다
어릴 적에 집에서 어머니가 저한테 “‘이해’했니?” 하고 물은 적이 없다고 떠올립니다. 어머니가 저한테 물을 적에는 언제나 “‘알’았니?”라 하셨어요. 마을에서 다른 어른도 으레 “알았니? 몰랐니?” 하고 물었습니다. 어린 우리도 동무하고 “알았어? 몰랐어?”나 “알아들었어? 모르겠어?” 하고 물었지요.
그런데 학교에서 우리를 가르치는 어른은 집이나 마을에서 마주하는 어른하고 다른 말을 썼어요. 학교에서는 언제나 “이해했니?”나 “이해가 가니?”나 “이해가 안 되니?”라 했습니다.
신문이나 책에서도 ‘알다’보다는 ‘이해하다’라는 낱말을 훨씬 자주 쓴다고 느낍니다. 방송이나 사회나 정치에서도 이와 같지 싶어요. 어릴 적에는 왜 집·마을에서 쓰는 말이랑 학교·사회·언론·책에서 쓰는 말이 다른지 잘 모르는 채 지나갔어요. 아리송하구나 싶었어도 이내 잊었습니다.
제가 어른이 되어 사전을 짓는 길을 걸으며 비로소 ‘이해하다’ 뜻풀이를 찾아보았어요. ‘이해하다(理解-)’는 “1. 깨달아 알다. 또는 잘 알아서 받아들이다 2. = 양해하다”를 뜻한대요. ‘양해하다(諒解-)’는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이다”이더군요. 그러니 ‘이해하다 = 알다/깨닫다’인 셈입니다. 사전을 더 뒤적이니 ‘알다’는 “2. 어떤 사실이나 존재, 상태에 대해 의식이나 감각으로 깨닫거나 느끼다”라 하고, ‘깨닫다’는 “1. 사물의 본질이나 이치 따위를 생각하거나 궁리하여 알게 되다 2. 감각 따위를 느끼거나 알게 되다”라 하네요.
사전은 ‘알다’를 ‘깨닫다’로 풀이하고 ‘깨닫다’를 ‘알다’로 풀이하니 돌림풀이예요. 이 대목까지 헤아리거나 짚는 어른은 어쩌면 매우 드물 수 있습니다. 학교나 사회에서도, 문화와 정치에서도 말뜻이나 말결을 제대로 안 살필는지 몰라요. 그러나 이제는 좀 알아야지 싶습니다. 이제는 찬찬히 생각하면서 깨달아야지 싶습니다. 서로 즐겁게 나눌 말을 생각하고, 함께 새로 가꿀 말을 알아야지 싶어요. 2018.3.11.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