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포는 항구다 창비시선 364
박형권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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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27



한숨에 지는 하루

― 전당포는 항구다

 박형권

 창비, 2013.7.25.



엄마는 아직도 밥집 꿈을 꾸는지

김밥 두 줄! 순두부 하나! 잠꼬대를 하는 아침

오늘도 아빠는 사발면 하나를 식탁에 올려놓았다

너를 우리의 살림으로 초대하는 일이

늘 이 모양인 나는 대체 어느 나라 아빠이냐 (아빠의 내간체, 녹말중독자/10쪽)


로또 하면 인생 확 바꿀 돈 만원을 가지고

자반고등어 한손 사고 참치 캔과 두부 한 모 사니

에누리 없이 똑 떨어진다 (〈뷰피플 플라워〉를 지나가고 있다/26쪽)


방세 두어달 밀리고 공과금 고지서는 쌓여만 가는데

죽을 땐 죽더라도 삼겹살 몇 덩이 씹어보고 싶어서

전당포 간다

육질이 쫄깃했던 내 젊음은 일회용 반창고처럼 접착력이 떨어져

오늘 하루 버티는 일에도 힘껏 목숨을 건다 (전당포는 항구다/78쪽)



  한숨을 쉬는 그때 하루가 지더군요. 한숨을 쉬지 않는 날에는 하루가 지지 않아요. 한숨하고 함께 사그라드는 하루요, 한숨이 아닌 한사랑으로 새롭게 가꾸는 하루이지 싶습니다.


  주머니가 텅 비었기에 한숨을 쉴 만하지 않습니다. 주머니에 10원이 있대서, 100원이 있대서 1000원이 있대서 10000원이 있대서 한숨을 쉴 만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머니에는 돈이 얼마쯤 있어야 비로소 한숨을 그칠 만할까요. 우리 주머니에 돈이 아무리 철철 넘치더라도 사랑이 없다면 한숨에서 헤어날 길이 없지는 않을까요.


  시집 《전당포는 항구다》(박형권, 창비, 2013)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숨이 가득합니다. 도시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그림이 하나하나 흐릅니다. 어쩌면 시인은 이 같은 가난이 괴로울 수 있고, 어쩌면 시인은 이 같은 가난을 늘 글로 옮기면서 글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가난살림인 터라 이 하루를 그대로 글로 옮겨서 시도 되고 시집도 되어요.


  짓는 하루에는 한숨이 없습니다. 짓는 하루에는 땀방울이 똑똑 떨어지면서 새롭게 솟는 기운이 흐릅니다. 짓는 하루에는 날마다 즐겁게 지피면서 자라는 꿈이 있습니다. 시인은 시집에 한숨살이를 잔뜩 적바림했습니다만, 이 한숨 저쪽에 있는 웃음이 틀림없이 넓고 고우리라 생각합니다. 2018.3.4.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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