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2.19.
《사라진 손바닥》
나희덕 글, 문학과지성사, 2004.8.27.
스텐 우묵판을 사려고 순천으로 마실을 간다. 두 아이도 가방을 꾸려 함께 길을 나선다. ‘우묵판’은 큰아이랑 이야기를 하며 얻은 이름이다. ‘웍’을 큰아이하고 살펴보며 “우리는 어떤 이름으로 가리키면 좋을까?” 하고 물으니, “음, 깊은 프라이팬?” 한다. ‘프라이팬’은 ‘부침판’이나 ‘지짐판’으로 고쳐쓰니 ‘웍’이라면 ‘우묵부침판·우묵지짐판’이라 해 볼 만하려나. 아무튼 셋이서 시외버스를 타며 노래를 함께 듣는다. 두 아이가 좋아하는 ‘R.I.O. serenade’를 자꾸자꾸 듣는데 세 차례쯤 들을 무렵 노랫말에 살짝 귀에 스민다. 그동안 숱하게 들으며 노랫말을 좀처럼 못 알아챘는데 이제 조금 트이지 싶다. 귀가 즐거우니 눈도 즐거워서, 《채소의 신》을 오늘 끝내고 시집 《사라진 손바닥》을 읽는다. 《채소의 신》은 매우 엉성한 번역 말씨가 아니라면 참으로 훌륭한 밥책이지 싶다. 우리 몸을 “하느님이 깃든 거룩한 곳”이라고 말하며 멋지게 맺는다. 맛책이자 멋책을 마치고 나서 읽는 《사라진 손바닥》은 심심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심심한 시집이 외려 수수한 맛으로 즐거울 만하지 싶다. 거룩한 척 떠벌이거나 떠받들린 En시인을 떠올려 보자. 시마을에는 거룩한 이가 아닌 수수한 이가 있을 노릇이라고 본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