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나희덕 지음 / 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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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20


“총을 버리고 책을 읽자”
―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나희덕 글
 달 펴냄, 2017.3.31. 14000원


그날 저녁 산책에서 돌아와 아이들에게 제법 비장하게 말해 두었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양지바른 언덕이나 강가에 묘비 대신 벤치를 놓아 달라고. 죽어서라도 차가운 대리석 묘비보다는 나무의자가 따뜻할 것 같다고. (39쪽)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읊는 말이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자.’ 어버이로서 제가 저를 사랑하지 않을 적에는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말이 안 곱구나 싶습니다. 어버이를 떠나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사랑스레 살림을 짓지 않는다면 으레 힘들거나 고단하지 싶어요.

   입으로만 좋은 말을 할 수 있지만, 입바른 말은 아이들한테 하나도 마음밥이 안 된다고 느낍니다. 굳이 입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몸으로 즐거운 기운을 보여주면 아이들이 하나씩 받아먹거나 받아들이지 싶습니다.


이렇게 외딴 갈대숲에서 추위를 견디며 새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니. 더욱이 머리가 희끗해지도록 낯선 나라에 와서 두루미를 연구하는 외국인 여성의 모습에서는 숙연함마저 느껴졌다. 새 한 마리가 하나의 세계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 (186쪽)


  나희덕 님이 쓴 글을 그러모은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달, 2017)를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이 책에 실은 이야기는 참으로 수수합니다. 대단한 이야기가 없고, 대수로운 줄거리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은 이처럼 수수한 이야기가 모여서 태어나지 싶습니다. 우리 살림은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손을 하나하나 여미면서 피어나지 싶고요.

  어쩌면 우리는 문학을 너무 거룩하거나 높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문학상을 타야 문학이 아닌걸요. 이름을 드날려야 시인이나 소설가가 아닌걸요. 삶을 짓는 노래를 나눌 수 있으면 되고, 날마다 곁님이나 아이들이나 이웃이나 동무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로 꽃을 피울 수 있으면 되는걸요.


첫째 아이를 키울 때는 이 아이가 언제 자라서 어른이 되나 까마득하기만 했다. 그래서 한 달이 멀다 하고 문설주 옆에 아이의 키를 표시하며 “와, 이만큼 컸네.” 기뻐하곤 했다. 그런데 둘째 아이를 키울 때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주문처럼 “자라지 말아라. 자라지 말아라.” 중얼거렸다. (65쪽)

연주를 들으며 나는 피아노가 흰건반과 검은건반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떠올렸다. 흰건반 52개, 검은건반 36개, 총 88개의 건반으로 이루어진 피아노를 연주하듯이 (141쪽)


  한 걸음씩 걸어서 그곳에 닿는다고 합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한 걸음이 모여 백 걸음이 되고 천 걸음이 됩니다.  옛말에 있듯이 천 리를 가는 길도 언제나 한 걸음부터입니다. 배고픈 이웃을 돕는 손길은 밥 한 술입니다. 열 사람이 밥 한 술을 거들어요. 백 사람이 밥 한 술을 거든다면 열 사람하고 밥 한 그릇을 나눌 수 있어요.

  한 사람이 따로 밥 한 그릇을 챙겨서 이웃 한 사람을 도울 수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도 그리 넉넉하지 않다 하더라도 한 덩이씩 덜어서 한 그릇을 이룰 수 있어요. 아이들이 조그마한 과자조각이나 빵조각을 덜어서 나누는 손짓처럼 말이지요.

  날마다 꾸준히 피아노를 치다 보니 어느새 제법 피아노를 칠 수 있습니다. 날마다 꾸준히 도마질을 하다 보니 어느새 썩 도마질을 잘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아이를 돌보고 사랑하니 어느새 어버이로서 퍽 티가 날 만큼 부드러우면서 너그러운 품이 됩니다.


코스타리카는 1949년 내전을 겪은 뒤에 군대를 폐지하고 주변국들과 평화협정을 맺은 이래 비무장 중립국을 유지해 왔다. 그리고 국방비로 쓸 돈을 교육과 복지에 투자해 중남미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국가가 되었다. “트랙터는 전차보다 쓸모 있다.” “병영을 박물관으로 바꾸자.” “소총을 버리고 책을 갖자.” 이런 모토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낸 아리아스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군대와 공장 없이도 풍부한 자연과 문화를 누리며 평화롭게 사는 나라. (143쪽)


  ‘세계 시잔치(국제시페스티벌)’를 여는 나라가 있다고 합니다. 아마 큰돈을 모을 만한 자리는 아닐 터이나, 큰기쁨이나 큰보람이나 큰웃음이나 큰얘기를 길어올리는 자리가 될 만하지 싶어요. 온누리 시인을 부르는 시잔치라면, 굳이 큰 경기장이나 호텔을 지을 일이 없을 테지만, 다 같이 골골샅샅 누비면서 새삼스레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면서 이야기꽃을 피울 만합니다.

  우리도 총을 버리고 책을 손에 쥘 수 있다면 참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탱크나 미사일을 버리고 호미나 낫을 손에 쥘 수 있다면, 그리고 군부대를 박물관이나 도서관으로 바꿀 수 있다면, 갖은 첨단무기라든지 레이더라든지 군시설을 학교나 너른마당으로 바꿀 수 있다면, 이 나라는 얼마나 사랑스러우면서 아늑할까요?

  군대하고 공장이 없이도 넉넉한 숲을 누리며서 즐거운 살림을 꾸릴 수 있다면, 바로 이곳에 평화가 흐르리라 생각해요. 군인이 없고 정치인 숫자가 적어도 아기자기하면서 오순도순 마을살림을 지피는 숨결이 흐른다면, 참으로 이곳은 민주하고 평등이 넘실거리리라 생각합니다.

  한꺼번에 천 걸음을 내딛지 않아도 됩니다. 하루에 한 걸음을 내딛으면 됩니다. 날마다 소총하고 총알을 하나씩 녹이고, 이레마다 탱크하고 미사일도 하나씩 녹이다 보면, 남북녘이 이렇게 어깨를 맞대면서 사이좋게 나아갈 수 있다면, 이러한 길을 이제부터 걸을 수 있다면, 이러한 나라는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하지 싶어요. 수수한 이웃님 같은 분이 쓴 글줄을 읽으면서 꿈에 젖습니다. 2018.1.16.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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