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랑꾼 이색 서점에서 무얼 보았나?
김건숙 지음 / 바이북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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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95


책방이란, 이야기가 흐르는 숲이 있는 보금자리
― 책사랑꾼, 이색 서점에서 무얼 보았나?
 김건숙 글·사진
 바이북스, 2017.8.10.


서점이라는 공간이 많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해 주는 곳임에는 틀림없다. 그 안에 있기만 해도 책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것 같다. (19쪽)


  시골에서는 책방마실을 하자면 매우 먼 길을 나섭니다. 시골 면소재지에는 책방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시골 읍내에 책방이 있는 곳은 드뭅니다. 드문드문 있어도 참고서 아닌 책을 살뜰히 다루는 책방을 마주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수험서 아닌 읽을거리다운 책을 갖춘 시골에서 산다면, 이러한 시골은 매우 알뜰한 고장이라고 여깁니다.

  저는 전남 고흥에서 살기에 책방마실을 하자면 적어도 이웃 고장 순천을 다녀옵니다. 시골집에서 읍내를 거쳐 순천으로 책방마실을 다녀오려면 하루를 오롯이 써야 하고, 찻삯으로 2만 원 남짓 듭니다. 혼자 다녀온다면 이만 한 마실삯이지만, 아이를 이끌고 다녀오자면 바깥밥을 먹어야 하니 몇 곱으로 마실삯을 들입니다.

  책방마실을 하려고 마실삯을 제법 쓰면서 생각하곤 합니다. 누리책방에서 책을 장만한다면 우표값조차 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을책방으로 나들이를 다녀오면 ‘책으로 쉬는 터전’을 누립니다. 시끌벅적한 한길에 있는 책방에서조차 고즈넉한 기운이 흐르며 넉넉하지요. 우리가 책을 손에 쥐어 읽는 뜻이라면, 책이 깃든 터전이 베푸는 즐거운 맛을 온몸으로 담고 싶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표지가 잘 보이도록 전면으로 세워놓은 책들을 보니 아무 책이나 들고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44쪽)

과거의 저자 강연은 청중이 너무 많은 까닭에 저자가 일방적으로 강연을 한 다음 말미에 서너 명의 질문을 받는 식으로 진행했다. 동네서점에서는 북토크 형식으로 많이 진행되고 서점의 단골 고객들이 많이 참여하므로 대체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이다. (64쪽)


  《책사랑꾼, 이색 서점에서 무얼 보았나?》(바이북스, 2017)는 책을 사랑하는 분이 멀고 가깝고를 따지지 않고 ‘책이 있는 곳’을 즐거이 누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참말 그렇지요. 책을 사랑하는 분이라면 책방이 가깝든 멀든 따질 일이 없습니다.

  멧골을 사랑하는 분이라면 아무리 먼 멧골이라도 기꺼이 찾아가요. 지리산이든 설악산이든 태백산이든 북한산이든, 어느 고장 어느 산이든 신나게 찾아가서 하루를 누릴 뿐 아니라, 여러 밤을 한데에서 지새울 수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를 다녀올 적에도 이와 같아요. 즐겁게 마실을 다닙니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발걸음도 이와 같고요.

  예전에는 한자말로 ‘애호가’ 같은 말을 썼다면,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터전을 가꾸면서 새롭고 이쁘게 ‘즐김이’나 ‘사랑이·사랑꾼’ 같은 말을 씁니다. ‘책즐김이’가 되고 ‘책사랑꾼’이 됩니다. ‘골목즐김이·골목사랑꾼’이나 ‘멧골즐김이·멧골사랑꾼’이 되어요.


책이야 인터넷서점에서 살 수가 있다지만 서점 안에서 만들어지는 여러 추억과 책 문화는 어디에서 만들까? 유럽은 죽어 가는 시골마을을 살리고 지역 주민들의 풍요로운 삶을 되찾기 위해 책마을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파주출판도시는 “도심의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면서 사업을 영위하기 어려웠던 한국 출판 산업 육성조치의 일환으로 정부가 싼값에 토지를 불하해 준 산업 지원책”이었다고 한다. (90쪽)

나는 ‘타샤의책방’에 붙어 있는 “집필 클럽”이라는 단어를 보고 조앤을 떠올렸다. 조앤이 힘든 삶을 글과 함께 극복하면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세우는 데 도움을 준 공간은 바로 마을의 카페였다. (173쪽)


  2010년대로 접어들기 앞서까지 ‘새책방’을 놓고 나라 곳곳을 마실하는 걸음은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새책방이라면 나라 어디를 가나 똑같거나 엇비슷한 책을 놓을 뿐이었거든요. 이무렵까지만 해도 나라 곳곳에서 책방마실을 하는 발걸음이라면 고장마다 다 다르면서 재미나고 알찬 ‘헌책방’을 마실하는 발걸음이 있었습니다. 참말로 고장마다 마을헌책방은 그 고장 글꾼이나 사진꾼이나 그림꾼이 즐겨찾는 책터이면서 쉼터이고 모임터 구실을 했습니다. 고장 글꾼이 낸 시집이나 고장 사진꾼이 낸 사진책을 찾으려면 고장마다 헌책방을 찾아가야 했어요.

  요즈음은 마을책방(독립서점)에서 제 고장 글꾼이나 사진꾼이나 그림꾼 책을 따로 한 자리를 마련해서 잘 보이도록 놓곤 합니다. 사뭇 달라졌어요. 고장에서 조용히 글이나 사진이나 그림을 짓는 분들은 바코드를 붙이지 않는 책을 흔히 냅니다. 모든 책이 굳이 국립중앙도서관에 들어가야 할 까닭이 없어요. 작게 열 사람이 나눌 책을 지을 수 있고, 넉넉히 백 사람쯤 나눌 책을 지을 수 있습니다.

  요즈음 마을책방은 바로 이처럼 ‘작게 나누는 제 고장 이야기’를 느긋하게 펼쳐서 넉넉하게 보여주고 다루는 이음터 노릇을 톡톡히 합니다. 이제 책방마실을 새롭게 할 만한 문을 여는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라 곳곳에서 제대로 마을책방·고을책방을 꾸리는 길이 열린다고 할 수 있어요.


진보초의 고서점들을 구경하고 다니다 보면 얼마나 책을 정갈하게 진열해 놓았는지 감탄사가 절로 나올 것이다. (221쪽)

도쿄에서 가장 땅값이 비싸기로 소문난 긴자에 단 한 종류의 책만 팔 생각을 한 이 배짱 두둑한 주인장 덕에, 세계의 많은 사람들도 이와 같은 즐거운 상상도 하고 색다른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려고 할 것이다. (260쪽)


  《책사랑꾼, 이색 서점에서 무얼 보았나?》를 읽다 보면 한국 곳곳에 있는 마을책방 이야기 곁에 일본 여러 곳에 있는 마을책방 이야기가 흐릅니다. 한국하고 다른 일본 책살림을 엿보면서, 앞으로 한국 마을책방이 어느 대목에서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서 한결 튼튼히 거듭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살며시 비춥니다.

  일본에는 한국문학을 다루는 책방도 있다고 해요. 일본에서 일본책 아닌 한국책을 다루는 셈입니다. 멋지지요. 한 가지 책만 다루는 책방도 있다고 해요. 이 또한 멋집니다.

  가만히 보면 요즈음 마을책방은 더 많은 책을 갖추려 하지 않습니다. 모든 마을책방이 처음 문을 연 뒤로 책을 조금씩 더 갖추기는 하지만, 책꽂이를 빨리 채우지 않습니다. 차근차근 채워요. 책손이 바란다고 해서 모든 책을 다 갖추려 하지 않습니다. 모든 책을 다 갖추려고 하는 아주 커다란 책방이 아닌, 마을에서 마을 나름대로 새롭게 이야기를 지피는 쉼터·모임터·만남터·이음터 구실을 하는 새로운 책터가 되려고 하는 만큼, 책방지기 나름대로 눈썰미를 키워서 하나하나 느긋하게 갖춥니다.

  이 대목도 눈여겨볼 만해요. 그동안 여느 새책방은 ‘많이 팔 수 있는 널리 알려진 책’을 잔뜩 들여놓고는 정작 제대로 펼치지 않기 일쑤였어요. 이러다가 잔뜩 반품하지요. 책손은 책손대로 어떤 책이 들고 나는가를 살피기 어려우면서, 출판사로서는 새책이 자꾸 반품으로 망가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모든 새책방은 모든 새책을 다 갖출 수 없어요. 왜 그러한가 하면 해마다 100권 200권 300권 …… 엄청나게 쏟아내는 큰 출판사 책만 갖추려 해도 300평짜리 책방마저 턱없이 모자랍니다. 책방지기는 저마다 눈썰미를 키워서 스스로 책을 고르거나 가려서 갖출 수 있어야 해요. 책손은 바로 책방지기 눈썰미를 믿고, 이 가운데에서 마음을 살찌울 읽을거리를 살핍니다.


고즈넉한 메구로가와의 거리, 잔잔히 흘러나오는 서점 안의 음악, 조용하고 깔끔한 매장에 유유히 흐르던 전광판, 서가에 꽂혀 있는 여러 예술서 등의 이미지가 긴 여운으로 남게 된 ‘카우북스’는 나카메구로 주민들에게 ‘영혼의 미술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318쪽)


  ‘영혼의 미술관’이란 우리 넋을 아름답게 북돋우는 보금자리와 같지 싶습니다. 마음을 가꾸는 터전이요, 마음을 돌보는 쉼터요, 마음을 사랑하는 자리요, 마음에 사랑을 심는 보금자리인 책방 하나이지 싶습니다. 아직 모든 고장이나 고을에 마을책방이 태어나지는 못했습니다만, 머잖아 이 나라 골골샅샅 이쁘며 사랑스러운 마을책방이 두루 자리를 잡고 뿌리를 뻗으리라 생각합니다.

  수험서나 교재가 아닌 책을 놓는 마을책방이 퍼질 만하리라 생각해요. 대학입시나 자기계발을 훌훌 벗어던지고, 삶을 짓는 즐겁고 슬기로운 마음을 가꾸는 길동무가 될 마을책방이 서울뿐 아니라 시골에도 하나둘 싹트리라 생각합니다. 숲에서 자라던 나무를 베어 종이로 삼아 묶은 살뜰한 이야기꾸러미인 책이 있는 곳이란, 바로 숲을 옮겨놓은 터전일 테니, 책방에 깃드는 분이라면 누구나 ‘책이 되어 준 나무’를 만나는 셈이라고 느껴요. 곧 책방이란 ‘이야기가 흐르는 숲이 있는 보금자리’라고 할 만합니다. 책사랑꾼이란 숲사랑님이겠지요. 2018.1.14.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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