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그치는가 가르치는가



  한자말 ‘훈계’를 ‘가르침’으로 옮기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가르침’이 썩 못마땅하다고 밝힙니다. 그렇지만 저로서는 훈계도 가르침도 못마땅한 적이 없습니다. 비록 너그러이 가르치는 몸짓이 아니라 할 만한 훈계라 할는지라도, 제가 무엇 하나 배울 수 있도록 이끈다고 여겨요. ‘훈계·가르침’ 두 마디를 놓고 오래도록 생각하며 살다가 엊저녁에 ‘다그치다’라는 낱말이 제 마음으로 스며듭니다. 아하, 그렇군요. ‘훈계’라는 한자말을 ‘가르침’으로 옮긴 분은 잘못 옮기셨구나 싶어요. 우리로서는 ‘다그치다’일 적에 괴로워요. 다그칠 적에는 못 배웁니다. 다그치니까요. ‘다그침’음 배움도 가르침도 아니에요. 다그침은 닦달이면서 서두르는 몸짓입니다. 다그치기에 마음을 닫아요. 다그치는 말을 하는 사람도 마음을 닫고, 다그치는 말을 듣는 사람도 마음을 닫지요.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가만히 열 수 있으면 안 다그치고 가르칠 수 있어요. 가르치는 넉넉한 마음으로 서로 하나가 될 수 있어요.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다그치는 책’은 힘겨워서 물리쳐요. 그런데 하도 오랫동안 다그침질에 길들다 보니 ‘가르치는 책’조차 가르침인 줄 느끼지 못하는 채 손사래를 치지 일쑤로구나 싶어요. 2018.1.6.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