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즈 간바라 메구미 시리즈 (너머) 1
온다 리쿠 지음, 박정임 옮김 / 너머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325



수수께끼를 풀려고 찾아나선 길

― 메이즈 MAZE

 온다 리쿠 글/박정임 옮김

 너머, 2017.9.8. 13000원



  아이들이 묻습니다. 뭔가 어렵구나 싶어서 묻습니다. 때로는 낯설구나 싶어서 묻고, 때로는 모른다며 묻습니다. 때로는 두근거리면서 묻고, 때로는 스스로 풀 길이 없다면서 묻습니다.

  온다 리쿠 님이 빚은 문학책 《메이즈 MAZE》(너머, 2017)를 읽으면서 저는 저한테 묻습니다. 무엇보다 ‘메이즈’란 뭔가 싶어 묻습니다. 이 말부터 풀지 못하면 이 문학책에 흐르는 이야기를 종잡지 못할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영어 ‘maze’는 “1. 미로 2. 종잡을 수 없이 복잡한 것”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한자말 ‘미로(迷路)’는 “1. 어지럽게 갈래가 져서, 한번 들어가면 다시 빠져나오기 어려운 길”을 가리킨다고 해요. 두 낱말을 어림하다가 이 두 낱말을 아이들한테 들려주기는 어렵네 싶어서 생각을 하다 보니 한국말 ‘수수께끼’가 떠올라요. 옳지, 그렇구나.


  ‘수수께끼’는 “1. 어떤 사물에 대하여 바로 말하지 아니하고 빗대어 말하여 알아맞히는 놀이 2.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복잡하고 이상하게 얽혀 그 내막을 쉽게 알 수 없는 것”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쉽게 알 수 없거나 종잡을 수 없을 적에 ‘수수께끼·미로·메이즈(maze)’인 셈입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떼를 쓰듯 물었다. “어떻게 ‘존재하지 않는 곳’이 있을 수 있어? 왜 그런 이상한 이름을 붙인 거야?”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년 주변에는 그곳에 가 본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13쪽)



  《메이즈 MAZE》는 사람들이 빨려들어가면서 사라진다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어떤 숨은 땅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꽤 옛날부터 퍽 많은 사람들이 사막에서 어떤 곳에 들어갔다가 아무 자국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고 해요.


  사라진 사람을 찾으러 떠난 사람도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주검이 남지도 않았답니다. 통째로 사라졌다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사라진 사람을 찾으러 다녀왔’어도 멀쩡히 돌아옵니다.


  왜 누구는 사라지고 누구는 안 사라질까요? 왜 누구는 실오라기 하나 찾을 길이 없는데, 다른 누구는 ‘사라지는 숨은 곳’에서 아무런 일이 없을까요?



“나는 세계의 사람들이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은 시간을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실제로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어떤 공기를 마시고 있고 어떤 시간을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어.” (104쪽)


“모습을 바꾸는 것입니다. 안에 들어간 사람에 따라.” 셀림은 다시 한 번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왜죠?” 미쓰루가 묻자 셀림은 처음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모릅니다. 신의 뜻이겠죠.” (121쪽)



  《메이즈 MAZE》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내는 ‘수수께끼 길’로 이끌립니다. 그 수수께끼 길이란 어떤 곳인지 풀어내 달라는 말을 듣고서 제법 목돈을 만질 수 있다는 일을 하기로 합니다. 수수께끼 길이 어떠한지 하늘에서 위성사진이나 항공사진을 찍으면 다 풀리지 않겠느냐고 묻지만, 사내를 둘러싼 사람들(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 군인이었다지요)은 수수께끼 길 위쪽으로 헬리콥터를 띄워서 사진을 찍든 위성사진을 찍든 아무것도 안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사진으로 찍히지 않는 더욱 수수께끼인 길을, 게다가 때때로 꿈틀꿈틀하면서 생김새가 달라지기도 하는 수수께끼인 길을, 어떻게 풀어야 할는지 모르는 채 하루하루 보내요.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죽이는 것도 아니고 먹는 것도 아니고, 성인 남자에게 한순간 백 년의 시간이 흐르도록 한다…… 그렇다면 그 순간을 맞이한 사람은 어떤 식으로 느낄까요. 우리에게는 한순간에 지나지 않을 그 시간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요. 그 사람 역시도 한순간으로 느낄 뿐 다음 순간에는 의식도 육체도 소멸하는 걸까요. 아니면 인간의 생명시계 그대로 백 년을 체감하고 있을까요.” (200쪽)



  ‘수수께끼 길’에 함부로 발을 디뎠다가는 ‘조사하는 사람’도 사라질 수 있다기에 들어가 볼 수 없습니다. 항공사진이든 위성사진이든 찍을 수 없습니다. 옛날부터 둘레에 퍼진 몇 조각 이야기만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 사내는 머리를 쥐어짜지만 어떤 실마리도 얻기 어렵습니다.


  이러던 어느 날부터 조금씩 깨닫는 대목이 있어요. 사내가 맡기로 한 ‘수수께끼 길에 얽힌 참모습을 푸는 일’보다 사내를 둘러싼 사람들(군인)이 의뭉스레 보여주는 모습이 더욱 수수께끼 같다고 느끼지요. 다들 뭔가 감추면서 가장 깊은 곳 이야기는 안 들려주니 애가 타다가 ‘죽음을 무릅쓰고 그 수수께끼 길’에 몰래 뛰어들자고 다짐합니다.



그렇게 많은 돈과 무수한 인권이 동원되었다. 엄청난 인해전술로 만들어낸 장대한 거짓말. 내 개인적인 감정이나 잠시뿐인 하찮은 정의감 따윈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메구미도, 스콧도 결코 상식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충분히 도덕적인 그들도 많은 것을 참아가며 이 일을 하는 것이다. (272∼273쪽)



  문학책 《메이즈 MAZE》는 문학으로 ‘수수께끼란 참말 수수께끼가 맞을까?’ 하고 우리한테 묻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수께끼인 길과 사람들(군인) 이야기를 엮으면서 ‘이 수수께끼가 참으로 수수께끼인지, 어쩌면 모든 사람을 한꺼번에 속이려는 거짓말은 아닌지?’ 하고 묻습니다.


  지구별에는 도무지 실마리를 풀 수 없다고 하는 “세계 몇 대 불가사의”가 있어요. 그런데 이 실마리를 풀 수 없다고 하는 이야기나 일이 참으로 ‘알 수 없는 이야기나 일’인지, 어쩌면 누가(또는 어느 권력이나 나라나 무리가) 무엇을 어디엔가 잔뜩 뒤집어씌워서 우리 눈이나 머리나 마음이나 생각을 온통 뒤죽박죽으로 흔들어 놓은 셈은 아닐까 하고 묻기도 하는 《메이즈 MAZE》입니다. 알 길이 없대서 수수께끼로 삼기보다는, 알 길이 없도록 온통 가로막히거나 범벅이 되어서, 알아낼 길이 모조리 사라진 노릇은 아닌가 하고도 묻습니다.


  아주 하찮다 싶은 것을 꽁꽁 감추어 수수께끼로 삼았을는지 모릅니다. 아무것도 아닌 데에 사람들 눈길이 쏠리도록 거짓스러운 수수께끼를 지어냈을는지 모릅니다. 이 땅에 참이란 무엇이고 거짓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참으로 여기고 거짓이라 느낄까요. 감춰진 길 하나를 찾으려고 하는 작은 한 사람 발자국을 좇으면서 우리 곁에는 어떤 수수께끼가 있을까 하고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2018.1.7.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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