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생물 - 과학잡지 에피 2호 과학잡지 에피 2
이음 편집부 지음 / 이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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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34


‘무기·장사’ 아닌 삶에 맞닿는 과학이 되기를
― 과학잡지 에피 2호
 이음, 2017.12.1. 12000원


  과학이란 무엇인가 하고 아이들이 묻는다면, 과학은 우리 곁에 늘 있다고 대꾸해 줍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고 아이들이 물을 적에도, 교육이나 사회나 정치나 예술이란 무엇인가 하고 아이들이 물을 적에도 똑같이 대꾸합니다. 모두 우리 곁에 늘 있다고 대꾸해요.

  우리 곁에 없을 적에는 과학도 문학도 교육도 부질없다고 대꾸합니다. 우리 곁에 있기에 비로소 뜻이 있으면서 즐겁거나 아름답게 어우러질 수 있다고 대꾸합니다.

  아이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다 알아들을는지는 잘 모릅니다. 어쩌면 어른들부터 못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말로 우리 곁에 없거나 저 멀리 떨어진 과학이라면, 우리 삶을 무너뜨리거나 괴롭히는 길로 가고 맙니다. 이른바 ‘첨단 전쟁무기를 새로 만드는 첨단과학’이 있어요. 정치하고 기업이 손을 맞잡고 사회 얼거리를 주름잡으려고 하는 무시무시한 ‘첨단과학’도 있지요.


‘만능’이라는 번역어 표현은 줄기세포의 세포 분화 메커니즘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분화를 제어해 원하는 말단 세포를 안전하게 만들 수 있을 때에나 가능한 말이다. 그러므로 ‘만능’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잠재적인 능력이라고 보아야 적절할 것이다. (20쪽)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약속을 뒤엎고 뜬금없이 핵발전소 공사 중단 여부를 시민에게 물었다. 대의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선거로 권력을 위임 받은 지도자가 해야 할 책임 있는 의사 결정의 역할을 방기한 것이다. (34쪽)


  과학잡지 《에피》(이음 펴냄) 2호를 읽습니다. 과학을 둘러싼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겠다는 뜻을 밝히는 잡지입니다. 번쩍거리는 꾸밈새가 아닌 투박하거나 수수한 꾸밈새로 오직 이야기에 마음을 기울이도록 이끄는 잡지입니다.

  《에피》를 읽다가 문득 생각해 보니, 꽤 많은 과학잡지는 눈부신 사진을 잔뜩 싣기 일쑤였구나 싶어요. 저 먼 우주라든지, 저 깊은 우리 몸 세포라든지, 멀거나 가까운 곳에서 넓거나 깊게 파고드는 이야기를 그야말로 눈부신 사진을 가득 담아서 보여주기 일쑤예요.

  투박하고 수수하게 꾸며서 글밥이 가득한 과학잡지를 읽으며 생각을 기울입니다. 과학도 ‘말’을 바탕으로 하는군요. 아니 과학도 말을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식이나 기호를 써서 풀이를 하더라도, 언제나 이 수식하고 기호를 말로 나타냅니다. 그리고 수식이나 기호는 ‘말을 줄여서 담아내는 이야기’입니다.


남북의 의료 실천은 확연하게 차이를 보인다. 북한에서는 초점이 전염병과 종종 탄광에서의 부상에 따른 신체적 외상에 맞춰져 있다. 의사들은 그 외의 다른 질병들에 대해 기초적인 사항만 배우는데, 그 이유는 전문 의약품과 장비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암에 대한 화학 요법 같은 것은 논외의 일이다. (57쪽)

DNA의 정보가 RNA를 거쳐 단백질로 표현(발현)된다는 분자생물학의 핵심 이론은 프랜시스 크릭이 처음 제안했던 표현인데, DNA 염기서열 정보(암호)를 단백질의 아미노산 정보로 전환하는 중간물질로 RNA 분자들, 즉 전령 RNA와 전달 RNA를 상정하고 …… (109쪽)


  《에피》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짐짓 과학 전문가나 즐김이한테만 재미있을 수 있으나, 찬찬히 읽어 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줄 느낄 만하지 싶습니다. 이 과학잡지는 조금 더 부드럽고 쉽게 풀어서 쓰려고 마음을 많이 썼다고 느껴요.

  그래도 딱딱하고 어려운 전문말을 다 걷어내지는 못하지요. 아무래도 한국에서 전문가인 분들이 처음 전문 자리에 들어서는 길에 학교에서 배우고 책에서 배운 말이 딱딱하고 어려우니, 이 틀에서 벗어나기는 만만하지 않을 만해요. 과학잡지 한 가지는 이러한 틀을 조금이나마 바꾸려는 길을 걸어가려 한다고 느낍니다.


2m 가까운 크기의 인간은 1mm 남짓한 예쁜꼬마선충과 매우 다르게 생겼지만 DNA와 RNA를 기반으로 한 동일한 유전 언어를 사용한다. (145쪽)

처음 만난 금화조와 십자매는 생각했던 것보다 작은 체구에 귀여운 생김새 때문에 실험동물이라기보다는 애완동물 같아 보였다. 랩헤드는 새들을 귀여워하던 필자에게 ‘귀여워하면 실험할 때 죄책감이 드니 실험동물로만 생각하라’는 충고를 해 줬다. (150쪽)


  《에피》 둘째 책을 한참 읽다가 ‘동물실험’하고 ‘인공생체 칩’에서 주춤합니다. 《에피》가 나아가려는 길을 고작 두 권만으로 어림할 수는 없겠으나, 《에피》 둘째 책에 나오는 ‘동물실험’하고 ‘인공생체 칩’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실험동물은 산 목숨이 아니’라고 여겨야 한다는 대목에 이릅니다. “뇌에 전극을 삽입한 금화조” 사진이 나오는데요, 꼼꼼하면서 ‘실험자료’를 제대로 다루어야 한다는 뜻에서 이렇게 실험을 할 수밖에 없는지 모릅니다. 여러 가지 실험도구를 써야 비로소 실험이 될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금화조하고 실험자 자리를 바꾸어 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이제 과학을 새로 읽으려는 길이라 한다면, 이제부터 과학을 새로 말하려는 길이라 한다면, 그리고 과학이 우리 곁에서 삶을 북돋우는 한 가지로 제몫을 맡기를 바라는 길이라 한다면, ‘생체실험’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헤아려야지 싶습니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허동은 교수와 하버드대학교의 도널드 잉버드 교수의 인공폐 칩이 《사이언스》에 소개되면서, 인공생체 칩 분야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62쪽)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한 마디로 ‘인공생체 칩’을 다루어도 좋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른바 나라하고 대학하고 기업에서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서 ‘인공생체 칩’ 연구를 하고 개발을 하고 널리 퍼뜨릴 만한가를 다시금 헤아려 보아야지 싶습니다.

  우리는 모든 첨단과학이 첨단무기로 나아가지 않기를 바라지만, 정작 이 지구라는 별에서 과학이 걸어온 길은 으레 무기로 기울었습니다. 덧붙여 장사로 기울었습니다. 유전자를 건드린 씨앗이 어떤 길을 걷는가를 생각해 봐야지 싶습니다. ‘생체 칩’을 만드는 일이란, 다치거나 아픈 사람을 돕는 자리에만 쓸 수 있도록 우리가 마음이나 삶을 슬기롭게 다스리는가를 헤아려 봐야지 싶습니다.

  과학만 첨단으로 나아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과학잡지 하나가 모든 이야기를 다루거나 짚을 수 없을 테지만, 과학잡지가 ‘오직 과학만’ 다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과학이 어디에 있으며, 과학이 어디 곁에 있을 적에 참으로 과학다운 과학이 될 수 있는가를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7.12.26.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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