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 짓는 글쓰기



  어느덧 나라가 뒤숭숭하고 말아, 이제는 ‘손수 짓는 밥’이 아닌 ‘남이 해 주는 밥’이 가장 맛있다고 하는 말이 제법 떠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우리가 손수 짓는 밥이 맛없다고? 우리가 손수 짓는 살림이 고되다고? 우리가 손수 짓는 삶이 어둡다고? 우리가 손수 짓는 땅이 힘들다고? 우리가 손수 짓는 가르침이나 배움이 덧없다고? 우리가 손수 지은 글을 엮은 책이 재미없다고? 손수 짓는 밥보다 남이 해 주는 밥이 맛있다는 말을 들으면, 이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서 ‘나 스스로 짓는 이야기’ 아닌 ‘남이 해 주는 이야기’에 그만 쉽게 사로잡히는 오늘날 모습까지 잇닿는다. 참말 이와 같을까? 우리는 아이를 손수 가르치거나 키우거나 돌볼 수 없는가? 우리는 밥조차 손수 짓지 못하면서, 옷이나 집을 손수 짓겠다는 생각은 아예 접어버리고 마는가? 우리는 글 한 줄조차 손수 못 지으면서, 책이나 사전을 따로 쓰는 전문가나 지식인이 있어야 한다고 여기고 마는가? 그러나 나는 ‘남이 해 주는 밥이 맛있다고 말하는 다른 사람’ 말에 귀를 기울일 까닭이 없고, 귀를 기울일 틈이 없다. 나는 언제나 손수 짓는 밥을 가장 맛있게 먹을 뿐 아니라, 아이들하고 함께 짓는 밥이 그야말로 맛있다. 아이들하고 함께 짓는 살림이 즐겁고, 내가 손수 짓는 살림이 사랑스럽다. 내가 글을 쓰는 밑힘은 모두 손수짓기에서 비롯한다. 아직 모든 살림을 손수 짓지 못하지만, 차근차근 이 살림 저 살림 손수짓기로 갈음하면서, 내 글쓰기는 나날이 아름다이 피어난다고 느낀다. 글 한 줄을 손수 지을 수 있다면 말 한 마디를 손수 지을 수 있다. 사회에서 떠도는 말에 휘둘리는 글쓰기나 말하기 아닌 손수 사랑하여 짓는 보금자리에서 손수 가꾸는 기쁘며 새로운 글이나 말로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하루를 누린다. 2017.12.21.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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