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하지 않는 글쓰기



  내 글쓰기를 아우르는 빛깔 가운데 하나만 꼽아서 밝히라면 아무래도 “타협하지 않는 글쓰기”라고 해야지 싶다. 나는 참말 아무하고도 타협을 안 한다. 게다가 나는 나한테까지 타협이 없다. ‘타협(妥協)’이란 “어떤 일을 서로 양보하여 협의함”을 뜻한다고 한다. 나로서는 참 바보스럽거나 우악스레 글을 쓰는 셈이겠지. 그러면 나는 왜 타협을 안 하는가? 타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뜬금없는 소리일까? 그런데 말이지, 나는 사전짓기를 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널리 쓰는 말을 담아내는 사전일 뿐 아니라, 사람들이 널리 쓸 만한 말을 살펴서 담아내는 사전이다. 그러니 사전에는 아무 말이나 못 담는다. 널리 쓰는 말이라서 다 담지 않고, 새로 지은 말이라서 고스란히 담지 않는다. 담을 수 있는 말을 가려야 하고, 담을 수 있는 말을 가릴 적에 ‘멋대로’ 해서는 안 된다. 이러니 나로서는 타협하지 않는 글쓰기를 할밖에 없다. 그런데 나로서는 다른 한 가지가 더 있으니 “기다리는 글쓰기”를 한다. 타협은 하지 않되 기다린다.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린다.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제대로 결이 살아나서 함께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오늘 다 풀 생각이 없다. 오늘 풀 수 있으면 오늘 풀되, 오늘 풀 수 없으면 풀 수 있는 날까지 생각하고 꿈꾸면서 기다린다. 아이들하고도 이렇게 한다. 아이들하고 타협하는 일이란 없다. 아이들한테 차근차근 이야기를 들려주고서 기다린다. 아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할 때까지 기다리고, 아이들 나름대로 새롭구나 싶은 생각을 끌어내어 나한테 이야기를 들려줄 때까지 기다린다. 시간에 쫓겨서 타협할 마음이 없다. 스스로 시간을 벌고 틈을 두면서 기다리려 한다. 하나하나 지으려 한다. 스스로 지을 수 있을 만큼 기쁘고 신나고 아름답게 짓고자 한다. 2017.11.29.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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