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마당에서 읽은 책 2017.11.21.


아이들한테 큰아버지인 우리 형이 커다란 상자를 하나 보내 주었다. 뭘까 하고 생각하며 여니 태국에서 건너온 과자가 수북하고, 밑바닥에는 태국말로 된 그림책 여러 권! 일 때문에 오갈 적에 짐도 많을 텐데 어쩜 이렇게 한가득 챙겨 주시는지! 더없이 고맙다! 게다가 태국말 그림책이라니! 태국 그림책이 어떠한가를 오늘 처음으로 구경한다. 아마 태국에도 양장 그림책이 있으리라 보는데, 우리 형이 부친 그림책은 모두 가볍고 얇은 그림책이다. 태국글은 하나도 못 알아보겠네 하고 생각하지만, 낯익은 《무지개 물고기》하고 《열한 마리 고양이》 이야기가 있다. 태국글 밑에 영어로 함께 적어 놓았으니 나는 영어로 읽는다. 아이들은 두 가지 그림책 모두 한글판을 숱하게 읽었으면서 나더러 영어로 읽어 달라 한다. “너희들 다 알지 않아? 그림을 보면서 생각해 봐.” “그래도 읽어 줘.” 《무지개 물고기》부터 영어로 읽어 보는데 낯선 낱말이 꽤 있다. 사전을 뒤적이며 읽는데 ‘빛나다’를 가리키는 낱말을 너덧 가지쯤 다르게 적었구나 싶다. 한글판을 나란히 놓지 않고 영어만 읽기 때문에 한국판은 이 대목을 어떻게 옮겼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떠올리기로는 한국말로는 ‘빛나다’를 나타내는 너덧 가지 한국말을 그때그때 달리 쓰지는 않았다고 느낀다. 문학뿐 아니라 그림책도 외국말로 나온 책이 있으면 되도록 그 나라 말로 읽어야 이야기나 줄거리뿐 아니라 결까지 제대로 짚겠구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한다. 그나저나 나는 《무지개 물고기》가 그렇게까지 대단하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무지개 물고기는 빛나는 비늘을 스스로 즐길 뿐이고, 다른 물고기는 제 비늘을 사랑하지 못할 뿐이다. 여느 물고기 하나가 무지개 물고기한테 ‘비늘을 하나 떼어서 달라’고 바란다는 대목은 참 내키지 않는다. 아니, 왜 다른 이한테 있는 것을 부러워하면서 달라고 하지? 더욱이 그냥 달라고만 할 뿐, 무지개 물고기가 싫다 하니 홱 토라져서 다른 물고기한테 무지개 물고기를 나쁘게 빈정거리기까지 한다. 물고기는 물에서 살려면 비늘이 있어야 하는데, 제 비늘을 주면서 무지개 물고기한테 비늘을 바꾸자고 해야 걸맞지 않겠는가. 끝에 가면 무지개 물고기는 반짝비늘을 하나만 남기고 모두 동무 물고기한테 나눠 주는데, 모두들 반짝비늘을 뽐내며 좋아할 뿐, 무지개 물고기가 비늘을 떼어낸 자리에 제 비늘을 주지는 않는다. 이 대목도 참 아리송하다. 이를 사랑이나 너른 마음이나 동무 사이라고 말할 만한지 모르겠다. 나눔이란 틀림없이 아름다웁지만, 모두 똑같아져야 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모든 물고기는 저마다 다른 크기와 생김새와 빛깔이기에 저마다 아름답다. 반짝비늘이 없어도 모두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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