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밥하면서 읽는 책 2017.11.22.


우리 마을에는 우리 집에서 한창 밥을 지을 적에 택배가 오곤 한다. 마을로 들어오는 자동차는 택배 짐차에 이장님 짐차에 우리 윗집 짐차를 빼고는 더 없는 터라, 택배 짐차가 대문 앞에 서면 아이들도 나도 소리를 바로 알아챈다. 그렇지만 손에 물이나 기름을 묻힌다거나 부엌칼을 쥔 채로 택배를 받으러 나가지 못하고 아이들한테 심부름을 맡긴다. 빨래를 널다가 택배를 받으면 그나마 고맙다는 말을 내가 건넬 수 있다. 오늘은 한창 밥을 하다가 택배 짐차가 서는 소리를 들어서 큰아이가 받아 준다. 책이 왔네. 밥을 다 지어서 차려 놓고서 책꾸러미를 연다. 여러 책 가운데 《동사의 맛》부터 읽어 본다. 글쓴이 스스로 ‘이름 높은 이(명사)’가 아닌 ‘움직이는 이(동사)’라고 하기에 뭔가 다른 글을 쓰거나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려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동사의 삶》에서 ‘움직이는 모습이나 일이나 이야기’는 첫 쪽부터 끝 쪽까지 하나도 못 찾았다. 글쓴이는 글이나 책은 제법 읽고 강연을 늘 다닌다고 하는데, 이밖에 이녁한테서 ‘움직이는 삶’이란 무엇인지 하나도 알 길이 없다. 더욱이 이 책에는 글쓴이 삶이 묻어나지도 않으나, 글쓴이 생각도 너무 적다. 책 하나를 통틀어 다른 사람이 다른 책이나 누리집에 쓴 글을 따오면서 엮는다. 글쓴이는 ‘-의’나 ‘-적’이나 ‘것’을 털어내야 글이 깔끔하면서 훌륭하다고 밝히지만, 정작 글쓴이부터 ‘-의·-적·것’을 얼마나 많이 쓰는지! 책이름조차 일본 말씨 같은 “동사의 삶”이다. 움직이는 삶이란 없이 책에서 따온 글만 넘쳐서 대단히 씁쓸하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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