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달인 39
카리야 테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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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26


한때 바지락을 한국·중국에서 사다 먹던 일본
― 맛의 달인 39
 테츠 카리야 글·아키라 하나사키 그림/이석환 옮김
 대원, 1999.8.3.


“난 이 하천의 은어가 이 나라 안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은어도 이제 곧 사라지고 말아요. 이 하천에서 천연 은어는 사라지고 방류된 은어만 활개치게 될 거예요.” “천연 은어가 사라져 버린다고요? 어째서 그런 일이.” “그건 이 하천이 이제 곧 죽어버리기 때문이죠.” (136∼137쪽)


  한가위나 설 같은 때에는 그야말로 온 식구가 한 자리에 모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해서 갓난아기까지 한 자리에 둘러앉아서 밥 한 그릇을 마주하지요. 밥 한 그릇을 나누면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함께 집안일을 하기도 하고, 집안일을 마치고서 마루나 마당에 나란히 앉아서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이때에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을 만할까요? 한가위를 맞이하여 여러 나이에 걸친 온 식구가 모이는 자리에서 어쩌면 새로우면서 남다른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어떨까요? 이를테면 ‘4대강 사업’을 놓고서 저마다 뜻이나 생각을 밝혀 볼 수 있고, ‘4대강 사업’ 이야기를 나눌 적에 만화책 한 권을 앞에 놓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물고기 말고도 강에서 잡히는 것들이 그렇게 많나?” “새우, 게, 자라 그리고 여러 가지 조개류.” “도시사람들은 죽은 강밖에 본 적이 없어서 강이 이렇게 풍요롭다는 것도 모르고 믿지도 않는다구요.” (146쪽)

“저게 이 하천의 바지락을 전멸시킬 거예요.” “뭐라구요? 저게 이 하천의 바지락을?” “바지락뿐 아니라 은어도 방어도 오월 송어도, 이 하천의 생물을 남김없이 멸종의 길로 몰아넣고 있죠. 이 하천은 죽게 돼요.” “저건, 저기에 보이는, 저 거대한 악의 요새처럼 보이는 건?” “저게 바로 이 하천을 죽이는 원흉이에요. 이 하천 하구 제방!” (158∼160쪽)


  4대강 사업 첫삽을 뜨던 무렵, 이 일을 해야 나라가 살아난다고 여기는 분이 제법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거나 말거나 너무 바빠서 마음을 못 쓴 분도 무척 많습니다. 이런 일은 예나 이제나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여긴 분도 많았고요.
  오늘날에는 어떠할까요? 2017년을 넘어서려는 이무렵에도 4대강 사업을 ‘잘한 훌륭한 일’이라고 여기는 분이 있을까요?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이 4대강 사업을 나무랍니다. 그렇다면 4대강 사업은 왜 끔찍하거나 무시무시하거나 잘못된 일일까요. 이 대목을 얼마나 짚거나 살피는가를 헤아려 보아야지 싶어요.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하기도 하겠으나, 이보다는 ‘냇물을 흐름을 바꾸거나 막으면서 시멘트를 들이부어 보·제방·둑을 쌓는 일’을 함부로 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를 제대로 알아야지 싶습니다.


“하천이 죽는다고 하는 걸 보니 그 반대운동과 연관 있는 거 아닌가?” “하긴, 세상에 정부에서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반대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죠.” “우린 반대를 위한 반대 따위를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과 생명이 걸려 있습니다.” (162쪽)


  만화책 《맛의 달인》(대원 펴냄)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1권을 1997년에 옮겼고, 2015년까지 111권을 옮겼습니다. 무척 오랫동안 사랑받으면서 깊고 너른 숱한 맛을 다루는 만화책입니다. 그런데 1999년에 한국말로 옮긴 《맛의 달인》 39권을 보면 겉에 “하천을 구하라!!”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맛을 찾는 만화에서 뜬금없이 ‘냇물(하천)을 살려라!’ 같은 이름을 왜 붙이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참맛을 찾으려고 하는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라 한다면, 마땅히 냇물 한살이를 짚을 수밖에 없어요.

  냇물이 죽으면서 냇물에서 살던 모든 목숨붙이가 죽는다면, 냇물고기도 바지락도 민물새우도 모조리 죽을 뿐 아니라, 냇가에서 먹이를 찾는 새도 죽고, 들짐승도 죽습니다. 나무도 함께 죽겠지요. 이때에 사람은 살아날 수 있을까요? 죽은 냇물이 옆에 흐르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목숨을 제대로 건사할 만할까요? 죽은 냇물에 죽은 목숨인데, 죽은 맛 아닌 산 맛을 찾을 수는 없겠지요.


“게다가 어디를 어떻게 보든 막대한 돈이 들 것 같지 않나. 목적이 없어졌으면 당연히 중지해야지.” “보통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하겠죠. 하지만 관청의 나리님들은 달라요. 그들은 합리적인 이성으로 움직이지 않죠. 그들을 움직이는 건 선례와 습관, 체면, 그리고 이권입니다. 30년 전 세운 계획이 현 상태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어도 일단 결정한 계획을 실행 않는 것은 관습에 위배되니 전례가 없습니다. 전례에 없는 일을 하면 안 되니까 하지 않죠.” (172∼173쪽)

“이 하구 제방 건설이 강행되어 그 추악한 몰골을 남기면, 후세 사람들은 경멸과 분노를 담아 건설에 관계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테죠. 봐요, 아직 갈대가 우거진 섬이 남아 있습니다. 야유코 씨, 저건 아주 중요한 것이죠?” “그래요. 갈대섬은 강에 사는 생물들에게 아주 소중한 곳이에요. 새도 물고기도 곤충도 저곳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고 둥지로 삼죠.” (174∼175쪽)


  만화책 《맛의 달인》이 오래도록 숱한 사람들한테서 사랑받는 밑바탕은, 참맛을 찾으려는 살뜰한 마음이나 몸짓이 밴 줄거리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참맛을 찾으려고 하면서 참맛에 서린 ‘바람맛·물맛·흙맛·풀맛’을 살피는 손길하고 눈길이 함께 있습니다. 여기에 참맛을 가꾸는 사랑이나 꿈이나 땀방울을 나란히 짚어요.

  아주 오랫동안 은어 방어 송어를 비롯한 숱한 물고기를 맛볼 수 있도록 해 준 냇물이라고 해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현대 문명이 들어서고 온갖 공장을 세우며 갖가지 보나 제방이나 둑을 섣불리 쌓으면서 이 모두 하루아침에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일본이나 세계 여러 나라는 한때 함부로 시멘트를 들이부으면서 망가뜨린 냇물을 살리려고 애씁니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가까운 일본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냇물을 망가뜨렸다가 큰 생채기를 입고서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냇물을 되살리려고 애쓰는 몸짓은 안 쳐다보려 했어요. 냇바닥에 시멘트를 들이붓는 짓을 하면서도 ‘4대강 살리기’ 같은 이름을 함부로 썼고, 공무원하고 건설업자가 하는 짓을 사람들한테 거꾸로 알렸습니다.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여요.


“물고기도 조개도 사라져 버린다면 그야말로 죽은 강이야.” “무슨 감상적인 소릴 하는 거요! 은어가 대수야! 바지락이 대수냐고! 그까짓 은어야 얼마든지 인공번식 할 수 있잖소! 바지락이 먹고 싶으면 한국이나 중국에서 수입하면 된다구! 그런 것보다 국가의 백년지대계가 중요하잖소! 강의 치수, 수자원의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구!” (177쪽)


  만화책 《맛의 달인》 39권은 일본에서 1993년에 나왔습니다. 1980년대 끝무렵이나 1990년대 첫무렵 일본에서 냇물을 함부로 망가뜨리던 어설픈 행정을 나무라는 이야기를 낱낱이 다루는데요, 건설업자 대표는 사람들 앞에서 “바지락이 먹고 싶으면 한국이나 중국에서 수입하면 된다구!” 하고 외칩니다. 우리는 이 비슷한 외침을 어디에선가 누구한테선가 익히 들었습니다.

  자, 일본에서는 한국이나 중국에서 바지락을 사오면 되겠지요. 그러면 이제 한국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도 중국에서 바지락을 사올까요? 아니면 베트남에서? 이다음에 중국이나 베트남은 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냇물을 정갈하게 건사하는 살림이야말로 나라하고 마을을 백 해뿐 아니라 천 해나 만 해나 십만 해나 백만 해를 아름답고 돌볼 줄 아는 몸짓이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도 즐겁고 아름답게 살아야 하는데, 바로 이 오늘을 앞으로 아이들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백 해도 천 해도 만 해도 정갈하고 사랑스러운 냇물이랑 숲이랑 들이랑 시골이 되도록 함께 머리를 맞대어야지 싶어요.

  숱한 사람들이 서울을 떠나 골골샅샅 시골로 아이들을 이끌고 찾아갑니다. 모처럼 온 나라 시골마다 북적입니다. 한가위나 설에 즐거이 찾아갈 시골이 한결같이 정갈하며 아름다울 때에 서울사람도 맛나면서 좋은 먹을거리를 넉넉히 누릴 수 있습니다. 이 한가위에 온 식구가 둘러앉아서 만화책 한 권이 스무 해 앞서 ‘냇물 막개발’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을 다룬 줄거리를 놓고서 이야기꽃을 피워 보면 좋겠어요. 정갈한 시골하고 아름다운 서울로 나아가는 어깨동무를 슬기롭게 이야기해 볼 수 있기를 빕니다. 2017.10.2.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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