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마실길에 읽는 책 2017.9.28.


어제 라디오 방송 녹음을 잘 마쳤다. 그러고 나서 저녁에는 한겨레배움마당에서 하는 ‘작은 출판사 배움자리’에 살짝 곁들이로 앉았다. 씩씩하게 작은 출판사를 여신 두 분을 만나고, 앞으로 작은 출판사를 내려는 뜻을 품은 멋진 이웃들을 만난다. 문득 돌아보니 내가 책마을이라는 데에 발을 담근 지 거의 스무 해가 된다. 이동안 겪거나 느끼거나 배우거나 본 숱한 이야기가 앞으로 새로 책마을에 발을 담그려는 분한테 작게나마 보탬이 될 수 있는 모습을 느낀다. 그래, 내가 지난날 책마을에서 쓴맛 단맛 매운맛 신맛 온갖 맛을 보며 가슴에 담은 이야기가 새로운 길을 나설 이웃님한테 징검돌이 되기도 하는구나. 때로는 징검돌이 되고, 밑돌이나 디딤돌이 되는 일이란 새삼스레 보람차구나. 새벽 네 시까지 이어지면서 끝날 줄 모르는 이야기꽃을 더 버티면 안 되겠다고 여겨서 먼저 일어난다. 나는 아침 여덟 시에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를 타야 한다. 두 시간 동안 가볍게 눈을 붙인다. 씻고 옷을 갈아입는다. 어제 미리 빨아 놓은 옷이 잘 말랐다. 전철을 타고 고속버스역으로 가는 길에 시집 《바다가 처음 번역된 문장》을 읽는다. 2호선에서는 시집을 읽을 만한 틈이 있으나, 9호선을 갈아타니 사람이 밀리고 눌린다. 시집을 꺼낼 틈도, 팔을 뻗거나 가방을 손에 쥘 틈도 없다. 서울사람은, 또 전철이나 지하철이 있는 큰도시 사람은, 아침저녁으로 이 무시무시한 납짝쿵이 되면서 일터랑 집 사이를 오가야 하네. 사람물결이 너무 일렁이니 옆을 스치는 숱한 사람을 따사로운 이웃으로 마주하기 무척 어려울 수 있겠다. 고운 사람한테 치이고 멋진 사람한테 차이는 서울이라고 할까. 이렇게 팍팍한 서울이라면 오히려 더욱 책 한 권에 시집 한 권이 보람이 있겠다고 느낀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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