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마을
박수미 지음 / 자연과생태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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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86


시인이란 마을을 사랑하며 노래하는 사람
― 시인의 마을
 박수미 글·사진
 자연과생태 펴냄, 2017.9.15. 13800원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입니다. 한자로 ‘詩 + 人’인 얼거리예요. 그런데 시라고 하는 글(이야기)을 쓴 사람은 이러한 한자가 없던 무렵에도 있습니다. 먼먼 옛날 한자라고 하는 글이 없던 때에 ‘시’라고 하는 글이나 이야기를 빚은 사람을 헤아려 봅니다. 그때 그 옛사람은 아마 ‘노래’를 읊었으리라 생각해요.

  가락을 입힌 말이기에 노래입니다. 말 한 마디가 마치 가락을 입은 듯해서 노래입니다. 노랫가락이라는 낱말이 있으니 ‘말가락’ 같은 낱말도 썼을 만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수십 년간 묵호를 오가며 그곳을 마음의 고향으로 여긴 이동순 시인에게 묵호는 곧 묵호 사람들의 삶을 뜻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선은 늘 하늘로 솟은 산비탈 동네나 해 지기 전 항구에 모여 앉아 그물을 수리하는 어부들의 일상을 향한다. (13쪽)

오랜 전통을 지닌 마을은 누군가에겐 역사의 일부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고향이기도 하며, 또 누군가에겐 현재 사는 집이기도 하다. (83쪽)


  오늘날 노래는 무대에 서거나 방송에 나오거나 여러 악기가 곁에 있어야 부를 수 있다고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무대도 방송도 악기도 없이 얼마든지 노래할 수 있어요.

  어른들이 일을 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이 놀이를 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즐겁게 일하니 즐거운 노래예요. 즐거이 노니 즐거운 노래이지요. 고단하게 일할 적에는 고단함을 씻으려고 노래해요. 힘들게 일하거나 슬픈 날에는 힘듦도 슬픔도 털어내려고 노래합니다.

  반가운 벗을 만나 반가움을 노래해요. 신나는 일을 맞이하면서 신나는 기운을 노래하고요. 가을걷이를 하며 고마운 가을볕을 노래하고, 아기를 낳은 어버이가 아기한테 온사랑을 담아서 자장노래를 비롯한 사랑노래랑 살림노래를 고이 들려줍니다.


평생 혼자 살았지만 그에게는 친구가 많았다. 자주 흙집을 찾아오던 생쥐, 아기 종달새와 까마귀, 다람쥐, 메뚜기를 벗 삼아 그들과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들을 이야기로 때로는 시로 옮겼다. (68쪽)

시인은 땅을 일구듯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를 썼다. 청년기에 접한 문학 전집은 소소한 비료일 뿐, 그가 일궈 낸 글들은 보다 단단한 땅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228쪽)


  박수미 님은 시인 한 사람이 나고 자랐거나 살아가는 마을에서 태어난 시를 찾아서 마실길을 나섭니다. 시 한 줄을 찾는 나그넷길(나그네가 떠나는 길)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나그넷길 이야기가 《시인의 마을》(자연과생태, 2017)이라는 책에 오롯이 흐릅니다.

  가만히 보면 시인은 마을로 찾아가고, 여러 마을을 나그네처럼 떠돌아요. 시인이 남긴 글 한 줄은 마을 이야기, 곧 ‘마을노래’이기도 하면서 ‘나그넷말(나그네가 남긴 말)’이기도 합니다.


통영 여행의 목적은 백석 시를 따라 걷는 것이었으므로 숙소를 잡은 강구안 주변을 기웃거리며 내내 걸어 다녔다. (149쪽)

다시 김영갑 선생의 사진을 떠올렸다. 사진으로도 그렇게 아름다운데 실제로 마주한 제주 풍광은 어땠을까. 그가 말한 삽시간의 황홀이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얻은 자유였을지, 그리고 그의 인생에 얼마나 긴 기다림이었을지 고작 40여 분 눈밭을 바라보다 산을 내려온 나로서는 짐작하기조차 어려웠다. (267쪽)


  어제 시인 한 사람이 마을 한 곳을 사랑하며 남긴 글이 노래처럼 흘러 오늘 우리가 나들이를 떠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새롭게 걷는 이 마을 이 길에서 어제 흐르던 노래를 되새기면서 새롭게 이야기를 지을 수 있습니다. 어제 노래를 들으며 오늘 노래를 짓고, 이 오늘 노래는 앞으로 새로 태어나 자랄 아이들한테 참말 새노래가 되어 새롭게 이 땅을 가꾸는 바탕이나 밑거름이 될 수 있습니다.

  《시인의 마을》은 이동순, 함민복, 권정생, 한하운, 이성부, 백석, 박노해, 서정주, 김용택, 이중섭·김영갑, 이렇게 여러 사람 발자국을 좇으면서 나그네처럼 골골샅샅 누빕니다. 어느 모로 보면 아무개는 시인이 아니라 할 수 있고, 또 누구는 시집이 몇 권 없다고 여길 수 있어요.

  그렇지만 이중섭 님이 빚은 그림은 그냥 그림이 아닌 노래를 닮은 그림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김영갑 님이 찍은 사진은 그냥 사진이 아닌 노래하고 같은 사진이라고 느낄 수 있어요. 살림노래를 그림에 담아요. 바람노래를 사진에 옮겨요. 사랑노래를 그림으로 빚지요. 꿈노래를 사진으로 찰칵 아로새깁니다.


시란, 시인이 그리는 마음의 지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7쪽)


  마음에 길을 그립니다. 마음에 바람이 지나갈 길을 그립니다. 마음에 사랑이라는 바람이 지나갈 길을 그립니다. 마음에 서로 사랑하며 짓는 보금자리가 앞으로 지나갈 길을 그립니다. 마음에 서로 사랑하며 짓는 보금자리가 깃든 마을이며 숲이 앞으로 지나갈 길에 태어나 자랄 어여쁜 아이들이 노래하는 길을 그립니다.

  노래 한 가락을 부르며 나그네가 됩니다. 노래 두 가락을 부르며 살림지기가 됩니다. 노래 석 가락을 부르며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 넉 가락을 부르며 오늘 이 땅에서 활짝 웃음짓는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우리는 모두 시인이 될 수 있어요. 우리는 모두 노래지기가 될 수 있어요. 우리는 모두 삶을 사랑하며 노래하는 고운 숨결이 될 수 있습니다. 2017.9.22.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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