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빨래터에서 읽은 책 2017.9.10.
아침에 책숲집에 가서 책꽂이를 옮긴다. 큰아이는 이동안 그림책이랑 만화책을 보며 조용하다. 작은아이는 골마루를 가로지르거나 풀숲을 헤치며 달리느라 바쁘다. 세 시간 즈음 땀을 흘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밥을 지어 차린다. 큰아이는 밥을 먹고서 낮잠을 잔다. 작은아이는 잠이 달아났다면서 낮잠을 안 자고 자꾸 묻는다. “아버지? 우리 언제 빨래터 가?” “누나 일어나면 가려고.” 큰아이는 일어날 낌새가 없다. 마당을 치우고서 둘이서 빨래터에 가기로 한다. 작은아이는 누나 없이 둘이 온 마을 빨래터에서 아주 훌륭한 청소돌이가 되어 준다. 아니 얘야, 네가 이렇게 청소 심부름을 훌륭히 하는구나? 누나가 곁에 있으면 늘 장난돌이인데, 누나가 없이 아버지하고 둘이 있을 적에는 얌전돌이에 차분돌이에 살림돌이가 되기까지 한다. 너 말이야, 누나 앞에서는 늘 장난스레 구는 모습이었구나. 일곱 살 시골돌이가 선보인 멋진 ‘수많은 돌이’ 모습을 누리며 빨래터를 치운다. 마을 할배 한 분이 우리 둘이 빨래터 치우는 모습을 보시고는 한 말씀 하신다. “자네가 빨래터 치워 주는 건 아무도 안 알아줘도, 여그 빨래터 여신님은 알아줄 게여. 그럼, 여기 여신님은 다 알지, 자네들 앞으로 복 많이 받을기라.” 마을 빨래터를 거룩하게 여긴다는 이야기는 더러 듣기는 했으나, 마을에서 이곳에 ‘여신’이 계신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그렇구나. 옛날부터 마을에서 이 빨래터를 그냥 빨래터로만 여기지 않으셨구나. 가만히 되새겨 보니 지난 일곱 해 동안 마을 어귀 빨래터를 참 부지런히 꾸준히 신나게 치우면서 지냈다. 시골 빨래터 여신님이 우리를 늘 지켜보셨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빨래터 담에 걸터앉아서 동시집 《딱 걸렸어》를 읽는다. 울산에서 보육교사로 일하는 분이 틈틈이 쓴 동시를 모았다고 한다. 울산도 틀림없이 커다란 도시이긴 하지만, 어쩐지 나는 울산은 도시라기보다 살짝 시골스러운 기운이 있는 고장은 아닌가 하고 여긴다. 바다가 가까이 있으니 이처럼 여길 수 있을 텐데, 이 동시집에 흐르는 이야기도 퍽 시골스럽다. 글쓴이하고 날마다 마주하는 보육원 아이들, 또는 유치원 아이들도 시골스러운 사랑을 곱게 받으리라 생각한다. 부디 도시 아이도 시골 아이도 숲바람을 마시는 꿈을 지을 수 있기를.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