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 한 자루
작은아이가 볼펜을 갖고 싶단다. 아버지는 늘 볼펜을 쓰니 저도 볼펜을 쓰겠단다. 그런데 아버지는 연필하고 볼펜을 같이 쓰거든? 볼펜만 쓰지 않아. 작은아이는 문방구에서 가장 값싼 ㅁ볼펜을 집는다. 작은아이는 물건값을 아직 잘 모른다. 그냥 저 ㅁ볼펜이 먼저 보여서 집었을 수 있고, ㅁ볼펜 생김새가 마음에 들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볼펜은 제자리에 놓으라고 말하고는 1800원짜리 볼펜을 집어서 건넨다. 작은아이는 “왜 그 볼펜을?” 하고 묻는다. “무엇을 쓰더라도 좋은 것을 쓰자는 뜻이야. 너희는 연필이나 볼펜을 자주 쓰니까 좋은 볼펜으로 쓰면 한결 낫지.” 나는 서너 해 앞서까지 그 가장 값싼 ㅁ볼펜을 썼다가 이웃님 도움말을 듣고는 그때부터 1800원짜리 볼펜으로 바꾸었다. 얼핏 보면 1500원이나 더 비싼 볼펜일 수 있지만, 이 볼펜 한 자루로 한 해쯤 쓰고 다 닳으니 하나도 안 비싸다는 느낌이다. 부드럽게 구르면서 막힘이 없고 똥이 적게 나오니 손으로 글을 쓰는 맛도 다르고. 연장이 좋다고 글이 잘 나올 일은 없으나, 좋은 볼펜을 가려서 쓰면서 스스로 손놀림이나 마음이 달라지기도 한다. 2017.8.28.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