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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냐와 마법의 옷장
이치카와 사토미 그림, 페트리샤 리 고흐 글, 김미련 옮김 / 느림보 / 2004년 12월
평점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53
할머니한테서 듣는 이야기
― 타냐의 마법의 옷장
페트리샤 리 고흐 글
이치카와 사토미 그림
김미련 옮김
느림보 펴냄, 2004.12.13.
그 사람이 뒤를 돌아보더니 타냐에게 물었어요.
“넌 누구니?”
타냐가 수줍게 대답했지요.
“발레리나예요. 전 튀튀가 참 좋아요.”
“그래?”
둘은 빙그레 웃었어요.
“나도 발레리나야. 나도 튀튀를 좋아해.”
“정말요?”
타냐는 깜짝 놀랐어요.
그 사람은 몹시 나이가 많은 할머니였거든요. (9쪽)
우리가 쉽게 놓치는 대목이 있습니다. 무대에 올라야 배우나 가수라고 잘못 여기곤 해요. 무대에 오르지 않아도 얼마든지 배우나 가수인데 말이지요. 학교에 가서 교탁 곁에 서야 교사가 되지 않아요. 이른바 교원자격증을 따야만 교사가 되지 않습니다. 여느 집에서 여느 아이를 돌보며 가르치는 어버이도 누구나 교사예요. 그리고 여느 집에서 여느 어버이하고 오순도순 살아가며 소꿉놀이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도 배우나 가수입니다.
어떤 몫을 스스로 맡아서 즐겁게 노래할 줄 안다면 얼마든지 배우나 가수입니다. 스스로 신나게 피아노를 칠 줄 안다면 얼마든지 연주자입니다. 스스로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달리면 얼마든지 자전거 선수입니다. 스스로 활짝 웃으며 부엌일을 한다면 얼마든지 요리사입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발레가 좋아 언제나 발레를 생각한다고 해요. 이 아이는 따로 무대에 선 일은 없지만 스스로 ‘발레리나’라고 말합니다. 이 아이는 어느 날 어머니하고 처음 극장에 갔대요. 아직 극장 문을 열지 않아서 기다리는데 발레옷인 튀튀를 들고 가는 할머니를 보았고, 할머니 뒤를 좇으며 이야기가 벌어집니다. 발레옷을 들고 극장 골마루를 걸어가는 할머니도 스스로 ‘발레리나’라고 말하거든요.
할머니는 무대에 오르는 분일까요? 할머니는 무대에 오른 적이 있을까요? 이는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할머니 스스로 발레리나로 여긴다면 할머니는 참말 발레리나예요. 이리하여 할머니는 이제껏 살아오며 누린 숱한 발레 이야기를 아이한테 상냥하면서 멋스레 들려줄 수 있습니다. 아이는 극장에서 일하는 할머니한테서 그토록 좋아하는 발레 이야기를 한껏 들으며 가슴이 부풉니다.
그림책 한 권은 발레를 말할 뿐입니다만, 발레를 비롯한 모든 자리에서 우리 스스로 즐겁게 꿈꿀 수 있는 마음이 된다면 모두 달라진다고 하는 실마리를 찬찬히 밝히는구나 싶어요. 어떤 마음으로 다가서고, 어떤 눈길로 바라보며, 어떤 몸짓으로 즐기려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걷는 길이 달라져요. 2017.8.3.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