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살며 사전을 짓듯 읽고 쓰다
[삶을 읽는 눈] 백 번 읽을 책인가


  해마다 여름 한복판에 날씨가 폭 꺾이는 때가 있습니다. 틀림없는 여름 무더위입니다만, 어느 날 문득 새벽부터 선선하더니 낮에 땡볕이 내리쬐어도 땀이 흐르지 않다가 밤을 맞이하면 으슬으슬해서 이불을 꺼내어 덮어야 해요. 어제 바로 이런 날씨가 찾아왔습니다. 절기로 치면 중복하고 입추 사이입니다.

  흔히들 말하기를, 시골하고 서울은 달라서, 시골에서는 밤이나 새벽에 살짝 춥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도시에서는 낮 내내 달구어진 기운이 식을 틈이 없어요. 시골에서는 흙하고 풀하고 나무가 있을 적에는 낮 내내 햇볕이 아무리 내리쬐어도 해가 넘어가면 ‘달구어진 기운’이 더는 없습니다. 돌이나 시멘트나 아스팔트는 밤이 되어도 뜨끈뜨끈할 테지만, 풀이나 흙이나 나무는 밤이 되면 식어요.

  나무 밑에 서면 에어컨을 쐴 적보다 훨씬 시원하다고 합니다. 이런 말은 어릴 적부터 곧잘 들었으나 막상 시골에서 살며 우리 집 나무를 곁에서 늘 누리기 앞서까지 살갗으로 느끼지는 못했어요. 서울 같은 곳에서 어쩌다가 한두 번 아름드리나무를 마주하며 참 시원하네 하고 느낄 적하고, 시골 보금자리에서 늘 아름드리나무를 바라보며 참말로 시원하구마잉 하고 느낄 적은 사뭇 달라요.

  시골에서 살며 낫으로 처음 풀을 벨 적에는 만만한 일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한 해 두 해 흐르고 세 해 네 해 가며 다섯 해 여섯 해를 지나는 동안 낫질은 하나도 안 대수롭다고 여깁니다. 서둘러서 할 일이 아닐 뿐더러, 결을 살펴서 슥슥 그으면 되는 일이라고 손으로 몸으로 눈으로 다리로 깨달아요.

  가게에서 사다 먹는 열매하고 손수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바로 따먹는 열매는 같은 맛이 아닙니다. 아이들도 바로 따먹는 열매맛을 누리고, 저도 바로 따먹는 열매맛을 누리면서 ‘맛이란 무엇인가’를 새삼스레 배웁니다.

  이른바 누리면서 배우는 삶입니다. 느끼면서 배우는 살림입니다. 그리고 나누면서 배우는 사랑이기도 해요.

  봄가을하고 겨울에는 마을 어귀 빨래터를 보름마다 치웁니다. 여름에는 이 빨래터를 열흘마다 치웁니다. 여름에는 물이끼가 더 빨리 넓게 자라요. 이제 마을 할매는 빨래터를 치우기 어려운 나이라 할 만하기에 저희가 여러 해째 빨래터 치우기를 도맡습니다. 오늘날 시골에는 집집마다 물꼭지가 있고 빨래기계가 있으니 굳이 빨래터로 빨랫감을 이고 지고 나오는 일이 없어요. 지난날에는 빨래터가 늘 북적였겠지요. 물도 이곳에서 길었을 테고요.

  빨래터를 보면 겨울에 아무리 추워도 물이 졸졸 흘러요. 겨울이라고 어는 법이 없습니다. 더욱이 여름에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좔좔 흐르고요. 못마다 물이 바닥까지 바짝 말라도 마을 빨래터에 흐르는 물줄기는 늘 같습니다. 참으로 한결같아요. 여름에는 더욱 시원하고 겨울에는 무척 따스한 물이에요.

  우리 식구가 시골에 보금자리를 틀지 않았다면, 마을에서 살며 이러한 살림살이를 곁에 두지 않았다면, 마을 분들이 모두 나이가 많아 빨래터를 못 치울 나이가 되지 않았다면, 빨래터 물줄기가 어떤 뜻인지 못 읽었으리라 생각해요.

  서울에서 살며 책을 읽기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내 집을 장만하자면 벅차고, 다들 일터를 오가느라 바쁠 뿐 아니라, 먹을거리를 장만하랴, 이것을 하랴 저것을 하랴 참으로 부산하지요. 짧은 길을 자동차로 달려도 어디나 늘 자동차로 가득하니 머리가 곤두서요. 버스나 지하철은 사람들로 넘실대기에 마음을 가다듬어 책을 읽기에 안 만만하다고 할 만해요.

  시골에서 살며 책을 읽기란 수월할까요? 보기에 따라 다를 텐데, 쑥처럼 쑥쑥 올라오는 풀을 베기도 하고, 살림을 꾸리기도 하고, 아이들하고 어우러지기도 하고, 여기에 저기에 마음을 쓰고 몸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등허리가 결리면서 마룻바닥에 벌렁 드러눕습니다. 땀을 몇 바가지 쏟고 나면 손가락을 까딱할 힘마저 남지 않아요.

  이런 하루를 보내면서 책을 손에 쥘 적에는 눈부신 빠르기로 책을 잡아먹을듯이 읽습니다. 몸을 쉬면서 마음을 살찌울 이야기를 느끼거든요. 그렇지만 때로는 책을 매우 느리게 읽습니다. 읽은 대목을 다시 읽기도 합니다. 줄거리만 훑자고 책을 읽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밍밍하거나 싱거운 대목은 빠르게 읽어내지만, 뒷통수에 벼락이 치듯 찌릿찌릿한 이야기가 흐를 적에는 글씨를 하나하나 새기면서 읽고 되읽어요.


  네 식구가 함께 모여 영화를 볼 적에도 이와 같습니다. 시골에는 극장이 없으니 디브이디나 파일로 영화를 사서 봅니다. 우리 식구는 ‘볼 만한 영화’를 한 번만 보고 끝내는 일이 없습니다. 더욱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내처 보는 일이 없어요. 어느 대목을 다시 보려고 되감기 일쑤예요. 자막이 아무래도 틀린 듯해서 영어나 일본말을 새겨서 들으려고 자꾸 되감고요.

  볼 만한 영화라 한다면 적어도 다섯 번을 봐요. 다섯 번쯤 보는 동안 줄거리하고 배역에 얽힌 실타래를 헤아립니다. 열 번쯤 보면서 바탕자리를 둘러싼 속뜻을 헤아리고, 스무 번이나 서른 번쯤 보면서 영화 하나로 깊고 넓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어떤 분이 묻더군요. “어떻게 같은 영화를 서른 번이나 백 번을 볼 수 있어요?” 저는 그분한테 되물어요. “어떻게 백 번이나 이백 번쯤 볼 만한 영화를 즐겁게 안 보고, 딱 한 번 보고 그칠 영화만 자꾸자꾸 보시나요?”


  영화평을 쓸 만한 영화라면 적어도 서른 번쯤 보아야 한다고 느껴요. 영화평을 제대로 쓰려면 쉰 번쯤 보아야지 싶어요. 우리 이웃이 영화를 사랑하도록 북돋울 만한 영화평을 쓰려면 백 번 넘게 보아야지 싶고요.

  책을 다루는 글은 어떠할까요? 우리는 백 번쯤 되읽으면서도 늘 새롭게 배울 만한 이야기가 흐르는 책을 읽고서 느낌글(서평)을 쓸까요? 아니면 빨리빨리 책 한 권을 읽어치우고서 후다닥 느낌글을 쓸까요?

  백 번쯤 되읽어도 늘 새롭구나 하고 느끼는 책을 놓고서 쓰는 느낌글하고, 빨리 새로운 다른 책을 읽으려는 마음으로 어느 한 권 이야기를 딱 한 번만 읽고 나서 쓰는 느낌글은 달라도 아주 다를 수밖에 없으리라 봅니다.

  더 살펴본다면,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하구나 하고 여겨서 우리 집 책꽂이에 백 해쯤 건사할 만한 책인가 아닌가를 살펴서 읽을 적하고, 그냥 책을 읽을 적에도 느낌글을 쓰는 결이 달라요.

  저는 느낌글을 쓸 적에 어느 책이든 다섯 번쯤은 읽은 채 씁니다. 한두 번만 읽고서 느낌글을 쓸 수 있는 책은 없지 싶어요. 한두 번만 읽고서 더는 읽고픈 마음이 안 드는 책이라면, 이런 책으로는 굳이 느낌글을 쓸 뜻이 없다고 생각해요. 제 마음으로 스며들지 못하는 책을 괜스레 이웃님한테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살면서 몸하고 마음을 싸목싸목 깨워요. 낫질을 하고 물질을 하고 흙질을 하고 호미질을 하고 나무질을 하면서 받아들이는 숨결로 책을 여러모로 다르게 마주합니다. 글쓴이나 그린이나 찍은이(사진을 찍은 이)가 작품으로 빚은 책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글쓴이나 그린이나 찍은이가 어떤 삶을 바탕으로 어떤 살림을 다루되 어떤 사랑으로 풀어냈는가 하는 대목을 읽으려고 합니다.


  글 한 줄에 흐르는 바람소리를 함께 누리고 나서 이를 느낌글로 담아내려고 합니다. 그림 하나에 서리는 냇물소리를 나란히 누리고 나서 이를 느낌글로 옮기려고 합니다. 사진 하나에 감도는 노랫소리를 같이 누리고 나서 이를 느낌글로 삭이려고 합니다.

  제가 하는 일은 사전짓기입니다. 사전 가운데 한국말사전(국어사전)입니다. 이러다 보니 온갖 책을 골고루 읽어요. 책을 지식으로만 읽기보다는 제 삶으로 옮기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면서 읽습니다. 앞으로 새롭게 짓는 사전에 밑돌이 될 만한 이야기를 어떻게 다지면 좋을까 하고 헤아리면서 읽어요.

  제가 앞으로 쓰려는 사전은 지식만 다루는 책이 아닌 ‘사람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기쁨’을 다루는 책이 되도록 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읽을 적에 지은이가 어떤 사람으로서 어떤 사랑을 그리고 어떤 기쁨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대목을 읽고서 이를 느낌글로 적어 보려고 합니다.

  이러면서 이러한 느낌글을 ‘시골에서 아이들하고 오순도순 살림을 짓는 어버이 마음이랑 눈길’로 풀어내려고 하지요.

  백 번 남짓 즐겁게 볼 만한 영화를 함께 이야기해 보면 좋겠어요. 참말 우리 모두 영화 한 편을 백 번 넘게 보고서 조잘조잘 영화수다를 나눠 봐요.

  백 번 남짓 신나게 읽을 만한 책을 함께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요. 참말 우리 모두 책 한 권을 백 번 넘게 읽고서 재잘재잘 책수다를 나눠 봐요. 2017.7.27.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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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17-07-30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마음을 ˝싸목싸목 깨워요˝란 말을 써본 적이 없으니 어떤 뜻일까 궁금해집니다.^^

숲노래 2017-07-31 08:13   좋아요 0 | URL
전라남도 말로 ‘차근차근‘이나 ‘천천히‘를 ‘싸목싸목‘이라고 해요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