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어느 지구에 사니? - 제4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동시집 49
박해정 시, 고정순 그림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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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89


아이와 어른이 함께 사는 곳에서
― 넌 어느 지구에 사니?
 박해정 글
 고정순 그림
 문학동네 펴냄, 2016.11.3. 10500원


  어른 눈길로 보자면, 어른은 아이를 돌보거나 키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습을 가만히 다시 짚어 보자면, 어른하고 아이는 함께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른 자리에서 살핀다면, 어른은 아이를 가르치거나 이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습을 조용히 새로 짚어 본다면, 어른하고 아이는 서로 가르치고 어깨동무를 한다고 할 만합니다.


늘 퉁명스럽게
책을 빌려주는 사서 언니는
내가 만화를 보느라 낄낄거리면
따가운 눈총을 날리지.
도서관에선 웃을 때도
소리를 내선 안 된다나?
그런 언니가 오늘
붕어빵 한 마리를 잡았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고
책상 밑으로
숨기는 거 있지. (사서가 금붕어 된 날)


  박해정 님 동시집 《넌 어느 지구에 사니?》(문학동네,2016)를 읽습니다. 이 동시집은 우리가 사는 별을 이야기하고, 우리가 사는 마을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사는 집을 이야기하며,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이야기해요.

  하나하나 짚어 볼까 싶어요. 우리는 지구라는 별에 살까요, 아니면 지구라는 별을 느끼지도 못한 채 살까요? 우리는 우리 마을을 날마다 살갗으로 느끼면서 살까요, 아니면 마을 얼거리는 거의 바라볼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살까요?

  우리는 집안일을 함께 하거나 집살림을 같이 맡으면서 즐거운 하루일까요, 아니면 어느 한 사람이 도맡는 집안일이거나 집살림일까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평화로운 곳일까요, 사랑스러운 곳일까요, 끔찍한 곳일까요, 싫은 곳일까요?


꽃밭에
호미 하나

전화 받으러 갈 때
던지고 간 것

뒤뜰에
호미 하나

택배 받느라
두고 간 것

텃밭에
호미 하나

버스 놓칠세라
내팽개치고 간 것 (호미와 할머니)


  아이한테 넌지시 물어봅니다. 아이들아, 너희들은 어느 별에서 왔니? 아이들은 이 물음을 듣고 곧장 어른한테 되묻습니다. 어른들이여, 그대들은 어느 별에서 왔소?

  어른은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면서 돌보는 마음일까요. 아이는 어른을 어떻게 마주하면서 자라는 마음일까요. 어른은 아이를 어떻게 가르치고 이끌어서 앞으로 어떤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까요. 아이는 어른 곁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배우고 받아들이면서 어떤 어른으로 크자는 마음일까요.

  오늘날 거의 모든 아이들은 호미를 안 만지지 싶습니다. 어쩌면 어느 아이는 호미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 수 있어요. 옛말 가운데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가 있어요. 그런데 말이지요, 오늘날 아이들은 낫을 본 적이 없는 나머지, 코앞에 누가 낫을 들었어도 손에 뭘 쥐었는지 모를 만합니다.

  자동차를 보면 어느 회사에서 만들었는지 곧장 알아내더라도, 호미나 낫이나 쟁기나 가래나 보습을 보고는 도무지 하나도 모를 만하지 싶어요.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이와 비슷할 테고요. 텔레비전에 흐르는 연예인 얼굴만 보고도 누구인가 이름을 바로 알더라도, 말이나 되를 보고 말이나 되인지 아는 아이는 거의 없을 만해요. 바구니와 둥구미와 다래끼가 어떻게 다른가를 아는 아이는 드물 테고, 쌀 한 섬이 몇 킬로그램쯤 되는가를 아는 아이는 거의 없을 만하지 싶어요. 어쩌면 요즈음 어른들부터 잘 모를 수 있겠지요. 집이나 마을이 아닌 박물관에서만 이런 살림살이를 만나는 삶이 되었다고 할 만해요.


거미집 생기고
쥐가 들락거리고
마당에 풀이 무성해지면
집이 기울지.

하지만 망치질 소리
도마질 소리
뚝딱뚝딱 들어가고
우리들 웃음소리 들어갔더니
집이 기운 차렸어. (즐거운 집)


  동시집 《넌 어느 지구에 사니?》를 읽으며 마을을 헤아려 보고, 시골을 생각해 보며, 서울을 되새겨 봅니다. 우리는 어느 별에, 어느 나라에, 어느 마을에, 어느 집에 살까요? 우리는 무엇을 하는 집에 마을에 나라에 별에 살까요? 우리가 사는 이 별·나라·마을·집은 어떤 꿈이나 사랑이 흐르는 곳일까요?

  아이들 웃음소리를 들으며 기운 차리는 집에서 사나요? 아이들 웃음소리가 사라진 마을에서 사나요? 학교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얼마나 흐를까요? 마을에는 아이들 웃음소리나 노랫소리가 얼마나 번질까요?


우리 집에 제비 부부가 찾아왔어요.
토닥토닥 흙을 쌓아
몇 날이고 웅크려 앉더니
새끼가 태어났어요.
활짝 핀 노란 주둥이 좀 보세요.
명랑하게 지저귀는 이 꽃과
길가에 새초롬하게 핀 꽃 중에
어느 꽃이 진짜 제비꽃인지 모르겠어요. (제비꽃)


  부드러우면서 따스하게 흐르는 이야기 하나는 아이를 돌보는 어른한테 묻습니다. 어른 스스로 어떤 마음이 되어 아이를 마주하느냐고 묻습니다. 어른 스스로 어떤 생각을 지으면서 아이한테 어떤 삶을 가르치려 하느냐고 묻습니다.

  서울이라는 고장은 언제쯤 제비가 다시 찾아갈 만할까요? 서울 아이나 서울 어른은 사진이나 그림이 아닌 처마 밑 제비를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개미가 씨앗을 물어다 나르면서 퍼지는 제비꽃을 서울이나 부산 같은 커다란 고장에서는 언제쯤 새롭게 만날 만할까요?

  아이를 돌보거나 가르치기만 하는 어른이 아니라, 아이하고 손을 맞잡고 함께 배우고 같이 살림을 짓는 어른이라는 삶을 읽을 수 있기를 빌어요. 어른은 아이한테서 배우고, 아이는 어른한테서 배우며, 서로 사이좋게 웃음짓고 노래하는 별·나라·마을·집이 되면 좋겠어요. 봄꽃 여름꽃 가을꽃 겨울꽃이 철마다 흐드러지면서 기쁨을 누리는 지구별이 되고, 작은 마을이 되며, 사랑스러운 보금자리가 되기를 바라요. 2017.7.2.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동시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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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8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8-05-09 03:07   좋아요 0 | URL
이다음에도 즐겁게 노래꽃을 펼쳐 주시겠지요?
5월이 흐드러지는 하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