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할머니 평화그림책 1
권윤덕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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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총칼로는 꽃나라가 되지 못해요


《꽃할머니》
 권윤덕
 사계절
 2010.6.7.


  연필을 쥐는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연필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이야기가 있어요. 호미를 쥐는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호미로 땅을 쪼거나 일구는 밭살림이 있어요. 부엌칼을 쥐는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부엌에서 칼질을 하면서 아침저녁으로 맛난 밥을 짓는 즐거운 보금자리 숨결이 있어요. 총칼을 쥐는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서로 죽이고 죽는 끔찍한 총칼춤, 바로 싸움판, 싸움 불구덩이가 있지요.


꽃할머니 얼굴은 두 가지다.
시무룩한 얼굴과 활짝 웃는 얽굴.
“웃어 보려고 해도 웃을 일이 없어.
뭐 그렇게 크게 웃을 일이 있어? 좀 삐죽 웃으면 되지.”
이렇게 말씀하시지만, 꽃 이야기를 할 때면 늘 활짝 웃으신다. (2쪽)


  일제강점기 끝자락을 무시무시한 싸움터에서 시달린 사람이 많습니다.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이가 무척 많고, 살아서 돌아왔어도 넉넉하거나 느긋하게 살림을 가꾸지 못한 이가 참 많습니다. 《꽃할머니》(권윤덕, 사계절, 2010)는 이들 슬프며 아픈 꽃사람 가운데 ‘꽃순이’로 태어나 ‘꽃색시’가 될 무렵 온몸하고 온마음에 멍울이 든 나머지, 어느새 ‘꽃할머니’가 된 숨결이 걸어온 길을 보여줍니다.

  이름 그대로 꽃할머니입니다. 스스로 꽃이요, 꽃을 좋아하는 할머니라서 꽃할머니입니다. 꽃을 아끼기에 꽃할머니입니다. 꽃다운 넋이기에 꽃할머니예요. 꽃처럼 곱게 피어나던 밝고 싱그러운 삶이기에 꽃할머니입니다.


꽃할머니가 열세 살 무렵이었다.
일본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었고,
나라 밖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총독부는 젊은 사람들을 전쟁터로 내몰고,
곡식이며 놋숟가락까지 거두어 갔다.
사람들은 나물을 캐어 죽을 쑤어 먹었다.
그날도 꽃할머니는 언니와 함께 나물을 캐러 나갔다. (6쪽)


  꽃색시는 꽃다운 나이에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꽃다운 나이였던 숱한 벼슬아치·먹물꾼·나라지기는 어떤 일을 했을까요. 이 나라뿐 아니라 이웃나라 사내들은 이녁 꽃나이에 어떤 길을 걸으며 어떤 삶터를 이루려 했을까요. 꽃나이에 이른 뭇나라 사내는 바로 그 꽃다운 나이에 호미를 쥐고서 논밭을 일구거나 나무를 사랑하거나 숲을 돌보는 길을 걸었나요, 아니면 총칼을 거머쥐고 으르렁대면서 이녁 나라뿐 아니라 이웃나라까지 짓밟으려는 길을 걸었나요.

  싸움판을 일으킨 이들은 온나라를 불구덩이로 태우려 했습니다. 스스로 꽃사람 아닌 막사람이 되려 했고, 총칼사람이 되어 숱한 꽃돌이·꽃순이를 군수공장으로, 싸움터로, 위안소로 보냈습니다.

  왜 두 손에 꽃이 아닌 총칼을 쥐려 할까요. 왜 두 손에 풀잎이 아닌 돈을 거머쥐려 할까요. 왜 두 발로 숲이 아닌 싸움판 불구덩이를 디디려 할까요. 꽃을 잊은 총칼사람은 꽃순이도 꽃돌이도 괴롭힙니다. 들볶고 짓밟지요.


군대가 이동할 때마다 꽃할머니도 끌려 다녔다.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만주인지, 상해인지, 사할린인지…….
폭탄 냄새와 폭격 소리와 온천지 불꽃만 기억 속에 남았다.
그렇게 몇 해가 더 흐르고, 전쟁이 끝났다.
군인들은 꽃할머니를 전쟁터에 버려두고 떠났다. (24쪽)


  싸움판이란 불구덩이를 일으킨 이들은 꽃넋을 노리개로 삼습니다. 불구덩이가 걷힌 뒤에 나라지기·벼슬아치·먹물꾼이 된 이들은 지난날 아프게 밟히거나 시달리거나 고단한 꽃돌이·꽃순이를 다독이거나 보듬는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이 총칼이 가시니 저 총칼이 들이닥쳐요. 꽤나 오래 서슬퍼런 총칼나라로 흘렀습니다.

  오늘 이곳은, 이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이제 꽃나라인가요, 아니면 아직도 총칼나라인가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은 숲나라인가요, 아니면 무시무시한 싸움나라인가요?

  일제강점기라는 그때에는 싸움판 불구덩이였다면, 조선 무렵은 사람을 위아래로 가른 종살이 불구덩이였고, 오늘날은 입시 불구덩이서 버젓이 판칩니다. 예나 이제나 꽃돌이·꽃순이는 꽃사람으로 자라나거나 피어날 길이 막힌 얼거리입니다. 꽃길이 아닌, 꽃배움길이 아닌, 꽃노래길이 아닌, 그저 입시지옥이란 사슬터로 옥죄면서 밀어붙이는 나라예요.

  싸움판 불구덩이에서 살아남은 꽃순이는 온몸에 멍이 들어 응어리가 졌는데, 그 뒤로 태어나서 자라는 새로운 아이들도 꽃을 노래하거나 마주하기 어려운 차가운 채찍질이 도사립니다.

  언제 풀 만할까요. 누가 풀 만할까요. 피고름으로 맺힌 응어리랑 생채기는 어떻게 풀 만할까요.

  그림책 《꽃할머니》는 이 땅에서 벌어졌으나 이 땅에서 오랫동안 감춰진 이야기를 꽃송이와 함께 다룹니다. 꽃다운 나이에 꽃피지 못한 채 스러진 숱한 꽃넋 이야기를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제국주의 일본은 ‘위안부’란 이름으로 숱한 나라 꽃순이를 마구 다뤘습니다. 그런데 제국주의 일본이 물러난 땅에서 독재정권은 꽃아이를 닦달하고 억눌렀습니다. 독재정권을 몰아낸 땅인 오늘날인데, 아직도 숱한 꽃아이는 어깨를 펴기 어렵습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지구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난다.
열세 살 꽃할머니가 겪은 아픔은
베트남에서도 보스니아에서도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 콩고에서도 이라크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37쪽)


  왜 나라(정부)가 있어야 할까요? 왜 군대가 있어야 할까요? 왜 나라는 평화로운 살림살이를 바라보지 않으려 할까요? 왜 나라마다 군대랑 전쟁무기를 잔뜩 건사하면서 ‘전쟁이 터지지 않는 아슬아슬한 길’에서 서로 으르렁거려야 할까요?

  푸른별 곳곳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싸움터 한복판과 언저리에서는 숱한 꽃이 집니다. 한국뿐 푸른별 구석구석에서 불거진 불구덩이요 꽃이 지는 생채기에 멍울입니다.

  호미 아닌 총칼을 쥐기에 평화 아닌 전쟁만 불거지지 싶습니다. 총칼을 내려놓지 않기에 평화하고 등을 돌리는 싸움판으로 치닫는구나 싶어요. 총칼을 녹여서 호미와 쟁기로 바꾸지 않기에 평화하고 동떨어진 길로 가고 만다고 느껴요.

  열세 살 꽃님이는 나물을 캐고 꽃을 꺾는 꽃넋으로 살려는 꿈을 꾸었어요. 시골에서 조용하고 수수하게 호미를 쥐던 꽃님이는 총칼을 쥔 적도 생각한 적도 없어요. 군대는 평화를 가르치거나 보여주는 곳이 아닙니다. 군대는 사람을 더 쉽고 빠르며 잔뜩 죽이는 재주를 가르치거나 보여줍니다. 전쟁무기는 푸른별을 푸르게 가꾸는 세간이 아닙니다. 전쟁무기는 푸른별을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바꾸어 놓는 끔찍한 더럼치입니다.

  일본뿐 아니라 남·북녘도, 중국하고 미국하고 러시아도, 또 모든 나라마다 군대하고 전쟁무기를 모두 녹여서 없애지 않는다면, 어디에서나 다시 ‘위안부’란 이름을 내세워 꽃돌이·꽃순이를 괴롭히는 막짓이 불거질밖에 없습니다.

  멀리 보지 않아도 돼요. 이 나라부터 바라봐요. 이웃나라하고 앞으로 나아갈 어깨동무라는 길을 바라보기로 해요. 이웃마을하고 사이좋게 얼크러질 길을 바라봐야지 싶어요. 너랑 나 사이에 금을 긋고 으르렁대는 쌈박질이 아닌, 너랑 내가 손을 잡고 함께 놀고 노래하고 춤추고 일하고 쉬는 보금자리를 가꾸는 길을 바라보면 좋겠어요. 돈을 모으기보다 사랑을 심어서 가꾸기로 해요. 돈으로 풀기보다 사랑어린 마음으로 서로 어루만지기로 해요.

  이제 우리가 바라볼 곳은 꽃나라입니다. 우리 손에 쥘 호미를 생각할 노릇입니다. 우리 발로 디딜 숲을 헤아릴 하루여야겠지요. 총칼로는 꽃나라가 되지 못해요. 총칼로는 언제나 무섭고 차가우며 바보스러운 불구덩이가 될 뿐입니다. 그리고 돈이나 이름값이나 졸업장으로도 꽃나라가 되지 않아요. 어느 꽃한테도 돈이나 이름값이 없습니다. 어느 나무한테도 졸업장이 없습니다. 스스로 꽃이 되고 나무가 되며 숲이 되는 길을 어깨동무로 나아갈 적에 시나브로 꽃나라를 우리 손발로 가꾸며 누리리라 생각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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