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설계도 - 어른들을 위한 영국의 동화
로버트 헌터 지음, 맹슬기 옮김 / 에디시옹 장물랭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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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42


괘종시계 안쪽에 숨겨진 이야기
― 하루의 설계도
 로버트 헌터 글·그림
 맹슬기 옮김
 에디시옹 장물랭 펴냄, 2017.3.14. 16000원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날 적마다 하루를 어떻게 열면 즐거울까 하고 이야기해 줍니다. 아이들은 이 말을 차근차근 듣고서 하나씩 펼치기도 하지만, 어제 못 다한 놀이를 아침부터 이으려고 하기도 합니다.

  차근차근 하루를 열든 어제하고 똑같은 몸짓으로 되풀이하든 대수롭지는 않다고 느껴요. 다만 아무리 어제 하던 놀이가 재미있었다 하더라도 아침을 차분하게 맞이하면서 열 적에 더 느긋하면서 즐겁게 새로운 놀이를 짓는다고 느낍니다. 어제 못 다한 놀이부터 아침에 붙잡을 적에는 어쩐지 골을 부리는 몸짓이 되는구나 싶어요. 이는 어른도 아이하고 매한가지가 되고요.

  로버트 헌터 님이 빚은 그림책 《하루의 설계도》(에디시옹 장물랭,2017)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어린이가 읽기에는 퍽 어려울 만합니다. 숨은 뜻도 있고 숨긴 뜻도 있어요. 어린이라고 해서 글쓴이가 숨긴 뜻을 못 읽을 까닭은 없어요. 수수께끼 놀이를 하듯이 차근차근 풀어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 그림책은 어린이보다 어른 눈결에 맞추었구나 싶어요. 어른 스스로 우리 삶을 조금 더 깊은 곳에서 느긋하게 바라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구나 싶습니다. 어른부터 우리 삶터를 조금 더 너른 자리에서 가만히 되새기기를 바라는 뜻을 담았구나 싶고요.


그러던 어느 날, 꼼짝도 하지 않던 아홉 형제에게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들은 우주의 먼지를 이용해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홉 형제에게는 주위 물질을 끌어당기고 재구성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들은 이 능력을 이용해 저마다의 안식처를 빚었다. (3쪽)


  그림책 《하루의 설계도》 첫머리에는 아홉 형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아홉 형제는 해를 둘러싼 별누리를 빗댑니다. 이 우주에서 해를 둘러싸고서 아홉 별이 어떻게 태어났을까 하는 생각을 그린이 나름대로 꿈을 꾸면서 그림으로 담았다고 할 만해요.

  우리는 과학 지식이 있어도 해나 지구나 수성이나 명왕성 같은 별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똑똑하게 알지는 못해요. 어림으로 헤아릴 뿐, 막상 지구나 수성이나 명왕성이 태어날 적에 이를 코앞에서 지켜보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또 해가 태어나는 모습도 코앞에서 지켜보지 않았을 테고요.

  그렇지만 해나 지구나 뭇별이 태어난 모습을 꿈속에서는 그릴 수 있어요. 별이 처음 태어난 모습을 꿈으로 그려 볼 만하고, 이렇게 그린 이야기를 조곤조곤 책 하나로 엮을 만합니다.

  그렇다면 《하루의 설계도》는 왜 ‘하루 설계도’일까요?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할아버지 댁에 머물면서 할아버지 방에 몰래 들어가서 설계도로구나 싶은 그림을 봅니다. 그러나 이 그림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아내지는 못해요. 어딘가 아리송한 그림이지요. 알 듯하면서 알 수 없고, 그렇다고 영 모른다고 하기에는 어려운 그림입니다.


저는 수영에 빠져 살았습니다. 틈만 나면 강습도 받으러 다녔죠. 그런데 한번은 요상한 수업을 했어요. 잠옷을 입고 수영장 바닥에 떨어뜨린 고무 벽돌을 가져오라는 거였죠. ‘잠옷을 입고 수영할 일이 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번거롭기까지 하잖아요. (14쪽)


  할아버지는 아이한테 숨긴 이야기가 있대요. 할아버지는 아이한테 이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으려다가 아이 스스로 이 숨긴 이야기를 알아내려 할 즈음 비로소 오랫동안 숨긴 채 이어온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오래오래 이어온 이야기라고 하니, 어쩌면 아이가 어느 만큼 자란 뒤에 들려주려 했을 수 있어요. 어쩌면 아이가 이렇게 스스로 수수께끼를 궁금해 하면서 온몸으로 뛰어들어 알아내려고 할 적에 ‘때가 되었네’ 하고 느끼며 털어놓으려 했을 수 있고요.

  믿거나 말거나일 수 있는데, 할아버지는 땅밑에 커다란 방을 숨겨 놓았고, 이 커다란 방에는 커다란 얼굴이 있다지요. 게다가 이 커다란 얼굴은 지구를 이 우주에 빚은 얼굴이라지요.

  할아버지가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아이한테 들려주었다면 아이는 깔깔깔 웃으면서 거짓말이라고 했지 싶어요. 아이가 할아버지 몰래 괘종시계 안쪽으로 난 숨겨진 길을 따라 땅밑으로 들어가서 커다란 얼굴을 스스로 보고 말을 걸었기 때문에, 할아버지로서는 그동안 숨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요.

  그나저나 그림책 《하루의 설계도》는 왜 ‘하루 설계도’일까요?

  할아버지는 먼 옛날부터 집안에서 이어온 대로 하루 흐름을 맞추어 움직이며 땅밑에 있는 커다란 얼굴을 묶어 두었다고 해요. 지구를 처음 지은 힘이지만 지구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힘이 있다고 여겨서 묶어 두었대요. 아이는 아이를 둘러싼 여러 터전을 처음에는 싱거운 듯이 바라보았지만, 커다란 얼굴을 만나고, 큰물이 마을을 뒤덮은 일을 치르는 동안, 조금씩 ‘하루 짓기’를 생각합니다. 틀에 박힌 채 돌아가는 하루는 아니되, 스스로 어떤 삶을 짓고 어떤 생각을 가꾸는 나날을 보내야 할까 하고 되새겨요.


그 방은 할아버지가 절대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던 곳이었어요. 작업실이네요. 뭐 재미난 게 있나 살피던 중에 설계도 비스름한 종이를 찾았습니다. (21쪽)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됩니다. 어른은 아이와 함께 자라다가 조용히 몸을 내려놓고 이승을 떠납니다. 어른은 이승을 떠나기 앞서 아이한테 모든 슬기와 사랑을 물려주려고 합니다. 아이는 어른 곁에서 보살핌을 받으면서 자라는 동안 어른한테서 숱한 슬기와 사랑을 보고 배우고 듣고 물려받아요.

  하루 짓기란, 하루 설계도란, 바로 날마다 우리 어른들하고 아이들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요 살림이지 싶습니다. 때로는 즐거우면서 넉넉하게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때로는 골을 내거나 딱딱하거나 따분하게 하루를 흘려 보낼 수 있습니다.

  하루를 짓기에 하루가 아름다울 수 있어요. 하루를 짓지 않기에 하루가 뜻없이 지나갈 수 있어요. 우리가 가볍게 스치면서 지나간다고도 할 텐데, 처음 이 지구를 지은 마음이나 처음 이 우주를 지은 마음이란, 어쩌면 마음에 꿈을 그린 몸짓은 아니었을까요? 새로운 것을 생각하면서 먼지를 그러모아 지구를 빚었다는 이야기처럼, 우리도 아침저녁으로 새로운 길을 생각하면서 작은 마음을 그러모을 적에 하루를 삶을 살림을 사랑을 고요히 지을 만하지 싶습니다. 2017.6.17.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 이 글에 붙인 그림은 에디시옹 장물랭 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서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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