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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돌림풀이 벗기기 10] 비만·찌다·뚱뚱하다, 작파·포기·중단·그만두다·그치다·멈추다, 불안·초조·조마조마하다·뒤숭숭하다·어수선하다
왜 '돌림풀이'와 '겹말풀이'를 벗기는가?
글쓴이는 2016년 6월에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이라는 작은 한국말사전(국어사전)을 한 권 써냈습니다. 이 작은 한국말사전을 써내려고 다른 한국말사전을 살피는 동안, 한국에서 그동안 나온 사전은 하나같이 돌림풀이와 겹말풀이에 갇혀서 한국말을 제대로 밝히거나 알리는 구실을 거의 못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쓴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에는 '한국말을 새롭게 손질한 뜻풀이'만 실었습니다. 그래서 그 책에서는 못 싣거나 못 다룬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내 보려 합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권위가 있다고 하는 두 가지 사전(표준국어대사전, 고려대한국어대사전)하고 북녘에서 내놓은 한 가지 사전(조선말대사전)에 실린 뜻풀이를 살피면서, 앞으로 한국말이 새롭게 나아가거나 거듭나야 할 길을 짚어 보고자 합니다.
ㄱ. 비만·찌다·뚱뚱하다
‘비만’이라고 하면 어떤 모습을 가리킬까요? 이때 한국사람은 으레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첫째 “살이 찐” 모습입니다. 둘째 ‘뚱뚱한’ 모습이지요. 자, 그러면 ‘찌다·뚱뚱하다’는 어떤 모습을 나타낼까요?
이 대목에서 고개를 갸우뚱할 분이 얼마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비만 → 찌다·뚱뚱하다’를 생각하기는 하지만, 막상 ‘찌다’나 ‘뚱뚱하다’가 서로 어떻게 다르게 나타내는가를 헤아리지는 않곤 합니다. 이제 이 세 낱말을 한국말사전에서 살펴보겠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비만(肥滿) : 살이 쪄서 몸이 뚱뚱함
찌다 : 살이 올라서 뚱뚱해지다
뚱뚱하다 : 살이 쪄서 몸이 옆으로 퍼진 듯하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비만(肥滿) : 살이 쪄서 몸이 뚱뚱함
찌다 : (살이) 몸에 올라서 뚱뚱해지다
뚱뚱하다 : 1. (사람이) 살이 쪄서 몸이 옆으로 퍼지고 굵다 2. (물건이) 한 부분이 붓거나 부풀어서 불룩하다
(북녘 조선말대사전)
비만(肥滿) : 1. 살이 쪄서 몸이 뚱뚱한것 2. = 비만증
찌다 : 1. (몸에) 살이 많이 오르다 2. (물건에) 때나 먼지 같은것이 찌들어붙다
뚱뚱하다 : 1. 살이 쪄서 몸이 가로 퍼져있다 2. (물체의 한부분이) 붓거나 부풀어서 두드러져있다
남·북녘 사전 모두 ‘비만’을 “살이 쪄서 뚱뚱함”으로 풀이합니다. 이다음으로 남녘 사전은 ‘찌다’를 ‘뚱뚱해지다’로 풀이하지요. ‘뚱뚱하다’는 남·북녘 사전 모두 “살이 ‘쪄’서 몸이 옆으로 퍼진” 모습으로 풀이합니다. 사전 말풀이는 이래저래 뒤죽박죽입니다. ‘찌다’를 ‘뚱뚱하다’로 풀이하고, ‘뚱뚱하다’를 ‘찌다’로 풀이할 뿐 아니라, 한자말 ‘비만’은 “쪄서 뚱뚱함”으로 풀이하니까요.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비만(肥滿) : → 찌다 . 뚱뚱하다
찌다 : 1. 살이 붙거나 늘어서 무게가 늘다 2. 때나 먼지다 달라붙다 (찌들다)
뚱뚱하다 : 1. 살이 많이 붙어서 몸이 옆으로 퍼지다 2. 어느 한 곳이 부풀어서 부피가 크다
‘찌다’하고 ‘뚱뚱하다’는 비슷하기는 해도 다른 낱말입니다. 아직 남·북녘 사전은 이를 제대로 가르지 못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한자말 ‘비만’을 자꾸 쓰는 바람에 ‘찌다·뚱뚱하다’가 어떻게 다른 결을 나타내는 낱말이었나를 우리 스스로 잊었다고 할 수 있어요.
‘찌다·뚱뚱하다’는 모두 살이 붙은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다음으로 ‘찌다’는 “살이 붙어 무게가 늘다”로 가르고, ‘뚱뚱하다’는 “살이 붙어 몸이 퍼지다”로 가를 만해요. ‘찌다’는 무게를 가리킨다면, ‘뚱뚱하다’는 ‘부피’를 가리킨다고 할까요.
한국말을 알맞게 가려서 쓸 수 있다면, 때때로 ‘토실하다·토실토실하다’나 ‘통통하다·똥똥하다’를 알맞게 써 볼 수 있습니다.
ㄴ. 작파·포기·중단·그만두다·그치다·멈추다
하다가 그만두면 안 하느니만 못 하다는 옛말잉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려면 사이에 그치기보다는 끝까지 씩씩하게 이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열매를 맺는다고 하지요. 남·북녘 사전에서 ‘그만두다’하고 얽힌 한자말하고 한국말을 살펴봅니다.
(표준국어대사전)
작파(作破) : 1. 어떤 계획이나 일을 중도에서 그만두어 버리다 2. 무엇을 부수어 버리다
포기하다(抛棄-) : 1. 하려던 일을 도중에 그만두어 버리다
중단하다(中斷-) : 중도에서 끊다
그만두다 : 1. 하던 일을 그치고 안 하다 2. 할 일이나 하려고 하던 일을 안 하다
그치다 : 1. 계속되던 일이나 움직임이 멈추거나 끝나다 2. 더 이상의 진전이 없이 어떤 상태에머무르다
멈추다 : 1. 사물의 움직임이나 동작이 그치다 2. 비나 눈 따위가 그치다 3. 사물의 움직임이나 동작을 그치게 하다
멎다 : = 멈추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작파하다(作破-) : 중도에서 그만둬 버리다
포기하다(抛棄-) : 도중에 그만두어 버리다
중단하다(中斷-) : 도중에 멈추거나 그만두다
그만두다 : 1. 멈추고 더이상 하지 않다 2. 벗어나 더이상 하지 않다
그치다 : 1. 더이상 계속하지 않다 2. 더이상 계속되지 않다
멈추다 : 1. 더이상 하지 않다 2. 계속되지 않도록 중단시키다 3. 더이상 계속되지 않다
멎다 : 1. (움직이거나 계속되던 작용이) 더이상 계속되지 않고 그친 상태가 되다 2. (비나 눈, 바람 따위가) 더이상 내리거나 불지 않게 되다 3. (시선이) 어떠한 사물에 고정되다
(북녘 조선말대사전)
작파하다(作破-) : 일을 그만두어 버리거나 또는 파하다
포기하다(抛棄-) : 1. 끝까지 내밀지 않고 철회하여 버리다 2. 단념하다 3. 할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중도에서 그만두다
중단하다(中斷-) : 중간에 멎거나 끊다
그만두다 : 1. 하던것을 그치고 하지 않다 2. 할것이나 하려던것을 안하기로 하고 하지 않다 3. 가지고있던 자격이나 지위를 지니지 않게 되다
그치다 : 1. 계속되지 않게 되다 2. 일정한 상태에 머물러서 더 나아가지 않다
멈추다 : 1. 움직이던 상태나 진행하던 행동을 그치고 그만두게 하다 2. 집중하다 3. 진행되던 상태가 멎다
멎다 : 1. 움직이던 사물이 운동을 그만두게 되다 2. 눈, 비 등이 그치다 3. 진행되던 이야기나 소리가 그치다
남녘 사전이든 북녘 사전이든 ‘작파·포기·중단’을 ‘그만두다’나 ‘멈추다’ 같은 낱말로 풀이해요. 이 대목을 찬찬히 살핀다면 한국말 ‘그만두다·멈추다’를 알맞게 쓰고 ‘작파·포기·중단’을 털어낼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만두다·그치다’나 ‘멈추다·멎다’ 같은 한국말은 저마다 어떤 결일까요?
《표준국어대사전》은 ‘그치다’를 ‘멈추다’로 풀이하고, ‘멈추다’를 ‘그치다’로 풀이합니다. 이러면서 ‘멎다 = 멈추다’로 풀이하지요.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중단하다 = 멈추거나 그만두다’로 풀이하는데, ‘멈추다 = 중단시키다’로 풀이합니다. ‘멎다 = 그치다’로 풀이하고요.
《조선말대사전》은 ‘중단’을 ‘멎다’로 풀이하는데, ‘멎다’는 ‘그만두다’로 풀이하지요. 이러면서 ‘멈추다’는 “그치고 그만두게 하다”나 ‘멎다’
로 풀이해요.
남·북녘 사전 모두 뜻풀이가 뒤죽박죽이에요. 실마리를 잡을 수 없고, 실마리를 알려주지 못합니다. 이 비슷하면서 다른 말을 이렇게 엉성한 뜻풀이로 어느 만큼 제대로 밝힐 만할는지요?
《표준국어대사전》은 ‘멎다’를 “= 멈추다”로 다루지만 이는 옳지 않아요. “자전거를 멈추다”라고 쓰지만 “자전거를 멎다”라고 쓰지 않아요. “걸음을 멈추다”라고 쓰지만 “걸음을 멎다”라고는 쓰지 않아요. “놀이를 멈추다”라고 하지만 “놀이를 멎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다른 결을 사전에서 찬찬히 짚거나 다루어 주어야지 싶어요.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작파하다(作破-) : → 그만두다 . 그치다
포기하다(抛棄-) : → 그만두다
중단하다(中斷-) : → 멈추다
그만두다 : 1. 하던 일을 더 하지 않다 2. 할 일을 하지 않거나 맡은 일을 끝까지 하지 않다
그치다 : 1. 더 움직이지 않거나 더 하지 않다 2. 더 나아가지 않다
멈추다 : 1. 하던 일이나 몸짓이 한동안 이어지지 않게 하거나 그 자리에 있다 2. 더 오거나 내리지 않다
멎다 : 1. 움직임이나 흐름이 사라지다 2. 더 오거나 내리지 않다 3. 눈길이 어느 곳이나 것에 그대로 있다
‘작파’라는 한자말은 ‘일(作) + 그만두다(破)’ 꼴이기에 “일을 그만두다”를 가리키니, “일을 작파하고”처럼 쓰면 겹말이 됩니다. 한자말을 쓸 생각이라면 ‘작파하고’라고만 쓸 노릇인데, 말뜻 그대로 쉽게 “일을 그만두고”나 “일을 그치고”로 손볼 때에 한결 낫다고 느낍니다. ‘포기·중단’은 수수하며 쉽게 쓸 한국말을 단출하게 알려줄 때에 좋다고 느낍니다.
‘그만두다’는 일이라고 하는 테두리에서 더 하지 않는 모습이라면, ‘그치다’는 움직임이라고 하는 테두리에서 더 하지 않는 모습으로 가를 만합니다. 일을 할 적에는 움직이면서 하니, ‘그치다’는 “일을 그치다”처럼 쓸 수 있기도 해요.
‘멈추다·멎다’에서도 일이나 움직임이나 몸짓이나 흐름을 살펴서 두 낱말이 다른 결을 가를 만합니다. ‘멎다’는 “너한테 눈길이 멎었어”라든지 “책을 읽다가 이 대목에 눈이 멎었어”처럼 쓰임새를 넓히기도 합니다.
ㄷ. 불안·초조·조마조마하다·뒤숭숭하다·어수선하다
여러모로 엉성한 사전을 살피다 보면 두근거립니다. 설마 한국말사전이 한국말을 이렇게 엉터리로 담을 줄이야 하는 생각으로 떨려요. 다른 낱말은 얼마나 얄궂게 다루었을까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됩니다. 이러한 느낌을 나타내는 여러 낱말을 가만히 살펴봅니다.
(표준국어대사전)
불안(不安) : 1.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조마조마함 2. 분위기 따위가 술렁거리어 뒤숭숭함
초조(焦燥) : 애가 타서 마음이 조마조마함
조마조마하다 : 닥쳐올 일에 대하여 염려가 되어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다
뒤숭숭하다 : 1. 느낌이나 마음이 어수선하고 불안하다 2. 일이나 물건이 어수선하게 뒤섞이거나 흩어져 있다
어수선하다 : 1. 사물이 얽히고 뒤섞여 가지런하지 아니하고 마구 헝클어져 있다 2. 마음이나 분위기가 안정되지 못하여 불안하고 산란하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불안(不安) : 1. 걱정이 되어 마음이 편하지 않음 2. 분위기 따위가 안정되지 않고 뒤숭숭함
초조(焦燥) : 애가 타서 마음이 조마조마함
조마조마하다 : 닥쳐올 일이 걱정되어 마음을 놓을 수 없고 불안하다
뒤숭숭하다 : 1. 어수선하고 불안하다 2. 종잡을 수 없이 뒤섞이거나 흩어져 어수선하다
어수선하다 : 1. 차분하게 안정되지 못하고 뒤숭숭하다 2. 수선스럽게 어질러진 상태에 있다
(북녘 조선말대사전)
불안(不安) : 1. 마음이 놓이지 않고 조마조마한것 2. 술렁거리며 소란하고 험악한것
초조(焦燥) : 안타깝게 마음을 조이는것
조마조마하다 : (닥쳐올 일에 대하여)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스럽다
뒤숭숭하다 : 1. 사물현상이 질서없이 뒤섞이거나 얽히여 종잡을수 없다 2. 궁금하거나 근심스러운 생각으로 정신이 산란하다 3. (분위기나 환경 같은것이) 안정되지 않고 들떠있다
어수선하다 : 1. 갈피를 잡을수 없이 흩어지거나 얽히여 어지럽고 수선하다 2. 깔끔하지 못하고 미적지근하다 3. 똑똑하지 않고 어렴풋하다
‘불안’을 ‘조마조마하다’나 ‘뒤숭숭하다’로 풀이하는데, ‘조마조마하다’를 “초조하고 불안하다”로 풀이하고, 다시 ‘초조’를 ‘조마조마하다’로 풀이한다면, 이 뜻풀이로 무엇을 알거나 짚을 만할까요?
이런 어지러운 돌림풀이나 겹말풀이는 남·북녘 사전이 엇비슷합니다. 한자말은 한자말대로 엉성하고, 한국말은 한국말대로 엉터리로 다루지요.
먼저 ‘불안’은 ‘조마조마하다’나 ‘걱정스럽다’나 ‘뒤숭숭하다’ 같은 한국말로 알맞게 손질할 수 있도록 알려줍니다. ‘초조’는 ‘조마조마하다’나 ‘떨다’ 같은 한국말로 찬찬히 손질하도록 이끌어 주고요.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불안(不安) : 1. 마음을 못 놓음 2. 차분하지 않음 → 조마조마하다 . 걱정스럽다 . 뒤숭숭하다
초조(焦燥) : 마음이 타거나 떨리다 → 조마조마하다 . 떨다
조마조마하다 : 1. 미리 걱정을 하면서 마음을 놓지 못하다 (어떤 일이 잘 안 되거나 잘 안 될 수 있으리라 여기면서 마음을 놓지 못할 만큼 힘이 들다) 2. 어떤 일이 있을는지 미리 헤아리거나 알기 어려워 마음이 뛰다
뒤숭숭하다 : 1. 마음·흐름·몸짓이 가라앉거나 조용하지 못하여 걱정스럽다. 안 가라앉거나 안 조용하기에 이리저리 흔들리기에 걱정스럽다 2. 이리저리 마구 섞이거나 흩어져서 제대로 알거나 찾거나 헤아리기 어렵다 3. 이리저리 마구 섞이거나 흩어져서 제대로 알거나 찾기 어려우면서 걱정스럽다
어수선하다 : 1. 이리저리 마구 섞여 제대로 알거나 헤아리기 어렵다 2. 마음·흐름·몸짓이 가라앉거나 조용하지 못하다. 안 가라앉거나 안 조용하기에 이리저리 흔들리다
‘조마조마하다’는 마음을 놓지 못하되 걱정이 깃든 모습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리 헤아리거나 알기 어려워 마음이 뛰는 모습을 가리킨다고 할 수도 있어요. 이러한 모습을 말풀이에서 수수하게 다루어 줍니다.
‘뒤숭숭하다·어수선하다’는 뜻이나 결이 퍽 비슷하게 겹칩니다만 두 낱말은 쓰이는 자리에서 살그마니 갈라지는 자리가 있습니다. ‘어수선하다’는 가라앉지 않거나 마구 섞여서 알거나 헤아리기 어려운 결을 나타내지요. ‘뒤숭숭하다’는 이러한 결에 걱정스러움이 깃든다고 할 만해요.
어수선할 적에는 딱히 걱정하지는 않는 마음이요, 뒤숭숭할 적에는 걱정까지 이르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러한 결을 사전에서 제대로 짚어 주어야 합니다.
2017.5.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