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생각하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96
천양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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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96



일흔 살 시인은 독백 아닌 고백을 한다

― 새벽에 생각하다

 천양희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17.3.28. 8000원



  천양희 님 새로운 시집 《새벽에 생각하다》(문학과지성사,2017)는 일흔 줄이라는 나이를 맞아들이면서 새삼스레 받아들인 삶을 이야기합니다. 이 시집에 흐르는 이야기는 얼핏 읽자면 말장난 같을 수 있네 싶어요. 그러나 가만히 되읽으면 이 말장난은 어느새 말놀이가 되고, 새삼스레 거듭 읽으면 삶놀이 같은 이야기이지 싶어요. 다시금 찬찬히 읽어보면 하루하루 살림짓기를 하면서 이웃하고 나누고픈 노랫가락이로구나 싶기도 합니다.



전주에 간다는 것이

진주에 내렸다

독백을 한다는 것이

고백을 했다

너를 배반하는 건

바로 너다 (저녁의 정거장)


남편의 실직으로 고개 숙인 그녀에게

엄마, 고뇌하는 거야?

다섯 살짜리 딸 아이가 느닷없이 묻는다

고뇌라는 말에 놀란 그녀가

고뇌가 뭔데? 되물었더니

마음이 깨어지는 거야, 한다 (마음이 깨어진다는 말)



  일흔 줄 시인은 전주 가려던 길에 진주를 갔다고 해요. 이런 일을 아무나 겪지는 않는다고 여깁니다만, 저도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어요. 저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으나 인천 바깥을 거의 몰랐어요. 천양희 시인처럼 전주랑 진주를 헷갈리기도 했고, 고창이랑 순창을 가리지도 못했으며, 상주랑 성주를 가누지도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어릴 적에는 스스로 이러한 여러 고장을 다녀 보지 못했기에 모를 만하고, 작은 도시에서 맴돌며 자랐으니 ‘지도를 살핀 지식으로는 머리에 있’어도 몸으로는 모르기 마련이에요.


  거꾸로 본다면, 저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기에 ‘신흥동 1가’하고 ‘신흥동 2가’하고 ‘신흥동 3가’라는 마을이 어떻게 다른가를 알아요. 인천 바깥사람한테는 고작 길 하나 건널 뿐이라 하더라도 ‘송림1동’부터 ‘송림6동’에 이르기까지 마을마다 숫자만 달리 붙는 마을이 아닌,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르게 일구는 마을인 줄 몸으로 알지요.


  그나저나 저도 ‘전주’하고 ‘진주’ 사이를 헷갈려서 버스를 잘못 탄 적이 있습니다. 버스가 여러 시간 달리고 나서야 알았지요.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요? 뭐, 잘못 간 곳에서 잘못 간 곳대로 하루를 누리기로 했지요.



몇 해 전

무릎에 갑자기 나타난 퇴행성보다는

덜 적막했다


퇴생성이 어느 별자리인가

갑상선이 뉘 집 나룻배인가 (그 말을 들었다)



  시집 《새벽에 생각하다》를 읽으며 우리 집 곁님이 떠올라 빙그레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우리 집 곁님은 서른 줄 막바지에 이르도록 얼굴이 어려 보인다는 소리를 자주 들어서, 네 식구가 함께 마실할 적에 으레 ‘큰딸하고 두 아이는 보이는데 아이 어머니는 어디에 있느냐?’는 소리까지 듣곤 했습니다. 이런 곁님이지만 저한테는 아직 흰머리가 한 올도 안 나는데, 저보다 제법 어린 곁님은 흰머리가 머리를 꽤 덮어요. 아직 마흔 줄에 들어서지도 않는데 말이지요. 이러다가 곁님이 온통 흰바구니를 머리에 뒤집어쓴다면 우리 네 식구가 마실을 다닐 적에 둘레에서 무슨 말을 할까요?


  그러나 둘레에서 무슨 말을 하든 대수롭지 않아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즐겁게 삶을 지을 뿐이에요. 《새벽에 생각하다》를 쓴 ‘할머니 시인’ 천양희 님 이야기에서도 이러한 이야기를 엿볼 만합니다. 남들, 아마 의사일 텐데, 남들이 퇴행성이니 갑상선이니 하고 말을 하더라도 이를 달리 받아들일 수 있어요. 병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닌 ‘별’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퇴행성을 받아들일 수 있지요. 갑상선도 이와 같아서 ‘나룻배’ 이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일흔 살의 인터뷰를 마치며

마흔 살의 그가 말했습니다

떨어진 꽃잎 앞에서도 배워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고

참 좋은 인터뷰였다고 (일흔 살의 인터뷰)


큰 나무에 붙은 매미는

작은 점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매미의 노래는

멀리 퍼지고 깊이 파고든다 시집처럼 (매미 노래와 시)



  우리 하루가 고단하다면 남들이 우리를 고단하게 하기 때문일까요? 어쩌면, 우리한테 집도 있고 은행계좌도 꽤 넉넉하지만, 우리 스스로 걱정이나 두려움을 떨치지 못해서 고단하지는 않을까요?


  우리 살림이 힘겹다면 사회가 우리를 힘겹게 하기 때문일까요? 어쩌면, 우리한테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있고, 사랑스러운 어머니 아버지가 계신데에도, 우리 스스로 자꾸 무언가를 아쉬워하면서 시샘을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힘겹지는 않을까요?


  시인 천양희 님은 ‘일흔 살 인터뷰’를 하면서 마흔 살 기자 입에서 나온 “떨어진 꽃잎 앞에서도 배워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해요. “떨어진 꽃잎”이라니, 누가 떨어진 꽃잎이려나요. 나이가 일흔 살이면 떨어진 꽃잎이려나요.



어느 시인이

산문시로 권위 있는 문학상을 탄 뒤

잡지들 속에는 잡다한 시들이 부쩍 늘어났다

산문인지 산문시인지 모를 산만한 시들

뜬구름 입은 문장들이 흘러내린다

손으로 씨를 뿌리고 눈으로 거두는 것이

글쓰기와 읽기라는데

길어도 너무 길고 난해해도 너무 난해하다

서늘한 그늘이 보이지 않는다 (산문시에 대한 최근의 생각)



  혼잣말(독백)을 하려다가 털어놓기(고백)를 하고 만 일흔 살 시인을 헤아려 봅니다. 우리는 일흔 살이 아니어도 혼잣말 아닌 털어놓기를 곧잘 해요. 다섯 살 아이만 ‘고뇌’를 말하지 않고 마흔 살이나 서른 살 우리도 고뇌를 말해요. 가만히 보면 스무 살이거나 예순 살일 적에도 우리는 ‘사랑’을 말하고, 대여섯 살 어린이도 넌지시 사랑을 말하지요.


  우리가 어른으로서 걷는 길을 아이가 곁에서 지켜보며 배워요. 우리가 아프게 걷는 길을 아이도 아프게 느끼면서 이 아픔을 나누려 해요. 우리가 기쁘게 노래하며 걷는 길을 아이도 함께 노래하면서 까르르 웃음꽃을 터뜨리면서 기쁨을 북돋아 주어요.


  《새벽에 생각하다》라는 시집을 길어올린 일흔 살 시인 천양희 님은 일흔이라는 나이가 무게나 짐이 아니라 즐거움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지 싶습니다. 어처구니없다 싶은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허허 웃다가 가볍게 말놀이를 해 봅니다. 홀가분하게 ‘새로운 별(퇴행성)’을 지켜보며, 사뿐사뿐 새삼스러운 걸음걸이로 이녁 삶길을 걸어가려 해요.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즐거운 배(갑상선)’를 타고 물놀이를 갈 수 있어요. 느긋하게 삶을 노래하면서 시가 흘러요. 넉넉하게 살림을 지피면서 시가 샘솟아요. 고요히 내려놓고 슬그머니 쓰다듬으면서 하루를 지어요. 2017.6.1.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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