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5.16.


큰아이는 집에서 어머니하고 뜨개질을 하겠노라 한다. 작은아이는 아버지하고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에 가겠노라 한다. 읍내로 가는 군내버스에서 시집 《마당에 징검돌을 놓다》를 읽는다. 볕은 나날이 달아오르고, 날은 나날이 길어진다. 우체국을 거쳐 읍내 작은 산성이 있는 쉼터에 오른다. 읍내에서 다른 곳에는 나무도 풀밭도 없지만, 작은 산성이 있는 고갯마루 쉼터에는 나무이며 풀밭이며 있다. 나는 이곳을 느긋하게 거닐고, 작은아이는 마음껏 달린다. 문득 생각한다. 어른한테도 아이한테도 ‘놀이기구나 운동기구’ 아무것도 없이 그저 널따란 풀밭이나 흙마당이 있으면 좋구나 싶다. 우람하게 자란 나무 곁에는 풀밭이 펼쳐져 아무 데에나 앉거나 눕거나 걸을 수 있고, 너른 흙마당에서는 바닥에 돌멩이로 금을 긋고 여러 가지 재미난 놀이를 할 수 있으면 참으로 좋겠네 싶다. 나무그늘에서는 이야기꽃을 피우고, 너른 흙마당에서는 연을 날릴 수 있을 테지. 볼일을 마치고 느긋하게 쉬고 걷다가 곧 깍두기를 담그자는 생각으로 굵은 무를 네 뿌리 장만한다. 무만으로도 큰 가방이 거의 찬다. 배추도 두 포기 장만한다. 배추 두 포기로는 무엇을 해 볼까. 달걀 한 판이랑 몇 가지 먹을거리를 더 장만하니 짐이 묵직하다. 군내버스를 타고 돌아가려다가 택시를 부르기로 한다. 몸을 느긋하게 움직이자고, 몸을 쉬어 주자고 생각한다. 택시가 오기를 기다리며 다른 시집 《새벽에 생각하다》를 가방에서 꺼낸다. 할머니 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애틋하면서 아프다가도 상냥하다. 사람은 할머니나 할아버지라는 자리로 들어서면 애틋하면서 아프다가도 상냥한 마음으로 거듭날까. 이러한 마음은 처음부터 흐를까, 아니면 숱한 살림길을 걸은 뒤에 샘솟을까. 작은아이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새근새근 잠든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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