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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를 쓰세요 - 개인 정보 유출 사건 ㅣ 모퉁이책방 (곰곰어린이) 48
사스키아 훌라 지음, 이나 헤텐하우어 그림, 김현희 옮김 / 책속물고기 / 2017년 4월
평점 :
어린이책 읽는 삶 171
광고종이와 광고편지가 넘치는 나라에서
― 주소를 쓰세요, 개인 정보 유출 사건
사스키아 홀라 글
이나 하텐하우어 그림
김현희 옮김
책속물고기 펴냄, 2017.4.30. 1만 원
여기를 보아도 광고가 있고, 저기를 보아도 광고가 있습니다. 광고가 처음부터 이렇게 넘치지는 않았을 텐데 우리를 둘러싸는 광고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서 스스로 나아갈 길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하루 내내 수많은 광고에 휩쓸려 버릴 만하리라 느낍니다.
시골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어디를 갈라치면, 우리가 앉는 자리 바로 앞 걸상 머리받이에도 광고가 있습니다. 멍하니 앞을 본다면 우리 눈높이에 있는 광고를 고스란히 쳐다보아야 합니다. 시골 군내버스 걸상 머리받이에도 광고판이 있어요.
참말로 딱한 노릇입니다. 도시에서는 전철이나 버스를 탈 적에 어마어마한 광고에 둘러싸여야 하지요. 그냥 걷는 길에도 곳곳이 광고투성이입니다. 길바닥에는 수많은 광고종이가 바람에 나부끼곤 합니다.
비니는 광고지의 내용을 소리 내어 읽었어요. “내일이라도 당장 이 트램펄린의 주인이 될 수 있어요! 광고지에 딸란 엽서에 주소만 적어 보내면 응모할 수 있어요! 우편 요금은 우리가 지불하니 우표를 붙일 필요도 없어요!” “우리도 응모하자! 주소만 쓰면 되니까 식은 죽 먹기야!” (5쪽)
우리는 광고더미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광고종이나 광고판 없는 곳에서 살 수 있을까요? 어린이책 《주소를 쓰세요, 개인 정보 유출 사건》(책속물고기,2017)은 너무 끔찍한 광고더미하고 얽힌 이야기를 다룹니다. 어린이책에서도 광고더미를 다룰 만큼 이제 우리를 둘러싼 광고물결은 매우 끔찍합니다.
저희는 시골에서 살기에 저희 집 우체통에는 광고종이가 꽂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나마 이 대목은 낫다고 할 만해요. 집이 드문드문 있는 시골마을까지 돌며 광고종이를 뿌리는 사람은 없어요. 비록 마을 어귀에 있는 군내버스를 타는 곳 유리벽에 드문드문 광고종이가 붙기는 하지만요.
가끔 도시로 마실을 가서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 집이라든지, 이모 집이라든지, 큰아버지 집을 찾아갈 적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 우체통이며, 이모 집 우체통이며, 큰아버지 집 우체통이며…… 또 다른 이웃집 우체통이며 그득그득 넘치는 광고종이를 으레 봅니다. 이 많은 광고종이는 왜 이렇게 새로 찍어서 왜 이렇게 날마다 수북하게 뿌려야 할까요. 이렇게까지 안 하면 안 되는 노릇일까요. 이렇게까지 해야 돈을 벌 수 있을까요. 이렇게까지 광고종이를 뿌리느라 숲이 아픈 줄 참으로 모르는 어른들일까요.
안타깝게도 기다리는 트램펄린은 오지 않았어요. 그 대신 집배원 아저씨는 메고 온 검은 가방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건네주었어요. 선크림, 냉동 시금치, 트렁크 3종 세트, 커피 머신 등을 소개하는 광고지였어요. “쳇, 이런 걸 기다린 게 아니라고!” (17쪽)
어린이책 《주소를 쓰세요,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은 아이들이 어느 날 문득 광고종이 하나를 보고는 ‘거저로 트램펄린을 준다’는 말에 사로잡혀서 멋모르고 ‘우편엽서를 보낸 일’에서 이야기를 엽니다. 아이들은 광고종이에 나온 그대로 믿어요. 틀림없이 ‘거저로 트램펄린을 받을’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아무래도 광고를 하는 어른들은 이런 ‘착한’ 마음을 노리겠지요. 멀쩡한 사람들이 광고를 그냥 믿고 속아넘기를 바라는 속셈이겠지요. 아이들은 ‘개인 정보 유출’이 되는 줄 모르는 채 광고종이에 바보처럼 속고 맙니다.
가만히 보면 시골에서는 시골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살짝 속여서 물건을 파는 광고종이가 있어요. 행사장에 오면 뭘 거저로 준다고 속이고는 막상 행사장에서 뭔가 사지 않으면 못 나가게 하는 일이 흔하지요. 전화로도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를 속이는 광고가 꽤 흔합니다. 시골 우체국을 보면 ‘광고전화에 속아서 계좌번호를 알려주지 말라’는 알림글을 매우 크게 곳곳에 붙여놓아요.
그나저나 이 아이들한테 오는 것은 트램펄린이 아니에요. 이 아이들은 ‘거저로 주는 광고편지’를 받습니다. 우체부는 날이면 날마다 수많은 광고 편지를 아이들한테 나르지요. 날마다 수북하게 받는 광고편지는 아이들 방이며 마루이며 집안에 가득 쌓입니다.
“맙소사! 이게 다 어디서 온 거야? 혹시 누구한테 우리 집 주소를 알려줬니?” 수많은 광고지를 보고 바나나의 엄마가 물었어요. “엄마, 사실은 …… 딱 한 군데에 …… 트램펄린을 받고 싶었거든요.” 바나나는 사실대로 털어놓았어요. (23쪽)
아이들은 어머니한테 꾸밈없이 말합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털어놓습니다. 아이들 말을 들은 어머니는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알기에 이 말썽거리를 푸는 길을 찾아내려 합니다. 아이들은 ‘수신거부’를 몰라도 어른들은 이를 할 줄 알아요. 그리고 아이들은 호되게 한 번 일을 치렀으니 다음에는 ‘주소를 함부로 남한테 알려주는’ 일 따위는 안 하겠지요.
개 사료 광고지로 종이비행기를 만들며 말했어요. “나도 심심해.” 비니는 유람선 여행 광고지를 둘둘 말아 원통을 만들었어요 … 비니가 대답하며 선크림 광고지를 둘둘 말아 작은 원통을 하나 더 만들었어요. “이걸로 뭔가를 만들어 볼까?” (24쪽)
제 어릴 적을 더듬어 봅니다. 1980년대에 어린 나날을 보낸 저는, 그무렵에는 광고종이조차 알뜰히 건사했습니다. 그무렵에는 광고종이를 함부로 뿌리는 사람이 드물었고, 종이 한 장조차 곳곳에 쓸 데가 많았어요. 어른은 어른대로 종이를 알뜰히 건사해서 쓰고, 아이는 아이대로 종이접기를 합니다. 딱지도 접고 비행기도 접어요. 광고가 적힌 종이이건 아니건 대수로이 여기지 않습니다. ‘종이를 알뜰히 쓰자’는 마음뿐입니다.
달력종이를 뒤집어서 교과서나 책을 쌌어요. 어릴 적에는 다달이, 또는 보름마다, 때로는 주마다 학교에서 ‘폐품 모으기’를 했으니, 길을 가다가도 뭔 종이가 날리는 모습을 보면 얼른 주워서 모아 놓기도 했어요. 제가 어릴 적에는 푸줏간에서 고기를 신문종이에 싸서 주기도 했습니다.
종이를 아끼거나 알뜰히 쓰는 마음이라면, 모든 종이가 숲에서 오는 줄 아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무를 베어서 얻는 종이인 줄 알기에 종이를 함부로 굴리지 않아요. 광고종이를 수없이 뿌리고, 광고 편지를 끝없이 보내는 어른 사회는 ‘숲에서 온 종이’보다는 ‘광고를 해서 돈을 더 벌려고 하는 속셈’이 더 크다고 할 만합니다.
‘개인 정보’를 마구 캐내어 여기저기 퍼뜨리는 짓은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이 합니다. 돈 때문에 하지요. 권력 때문에 하고요. 서로 돕는 작은 마을이라면 광고종이가 굴러다니지 않습니다. 살림을 알뜰히 가꾸는 살가운 마을이라면 광고편지를 자꾸 띄우지 않아도 서로서로 오붓합니다. 아름다운 마을에서는 개인 정보를 함부로 캐내거나 빼내지 않아요.
돈으로 얼룩진 광고종이하고 광고편지는 이제 그칠 수 있기를 빕니다. 개인 정보를 넘보는 짓도 이제 말끔히 사라질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2017.5.15.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