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살려쓰기



  ‘우리말 살려쓰기’란 무엇인가 하고 묻는 분이 있으면, ‘토박이말(순우리말)’을 사전에서 캐내어 살려쓰자는 뜻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토박이말을 사전에서 캐내어 머릿속에 담아내는 놀라운 일을 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은 퍽 고되다. 우리 살림자리에서 어느덧 잊히거나 멀어진 말을 사전을 뒤적이면서 캐낼 적에는 살갗으로 와닿거나 파고들지 못하는 ‘입에서 맴도는 껍데기’가 되기 쉽다. 그러면 ‘우리말 살려쓰기’란 무엇인가? 나는 이를 두 가지로 이야기하려 한다. 첫째, ‘말에 담는 생각을 살려서 쓰는 길’이라고 이야기한다. ‘말’이 아닌 ‘말에 담는 우리 생각을 살리려고 힘을 기울이는 일’이 바로 우리말을 살리려는 일이라고 느낀다. 둘째, ‘마음에 씨앗으로 담을 생각이 되는 말’을 살리려고 힘을 쏟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때에 이 생각(마음에 씨앗으로 담을 생각)이란 ‘꿈·사랑·길’이라고 본다. 우리말을 살리려고 하는 일이란 저마다 스스로 지으려고 하는 꿈을 살리고, 저마다 스스로 가꾸려고 하는 사랑을 살리며, 저마다 스스로 나아가려고 하는 길을 살리는 일이지 싶다. 이처럼 생각을 살리고 꿈·사랑·길을 살리면, 우리가 살릴 말이 무엇인가를 또렷하게 깨달아 즐겁게 쓰면서 어느새 아름답게 거듭나는 우리 모습을 찾는다고 본다. 일본 말씨나 일본 한자말이나 번역 말씨 따위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말씨나 한자말이나 외국말은 ‘지난날 몇몇 지식인이 지식 권력을 쌓으려고 받아들여서 쓰던 말’이다. 그래서 이런 자질구레한 말씨나 한자말이나 외국말은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생각을 새롭게 살찌우거나 북돋우거나 키우는 길에서 걸림돌이 되기 일쑤이다. 새 술은 새 자루에 담듯이, 우리가 새롭게 짓고 싶은 꿈이나 사랑이나 길은 새로운 자루인 ‘새로운 말’에 담아서 그릴 수 있을 적에 즐겁고 아름답다. 곰팡이가 피거나 썩은 자루에 새로 담근 맛난 술을 담을 수 없다. 쉰내가 풀풀 나는 낡은 그릇에 갓 지은 맛난 밥을 담을 수 없다. 낡은 일본 말씨, 케케묵은 일본 한자말, 고리타분한 번역 말씨인 줄 느껴서, 이를 씩씩하게 하나하나 털어내어 새롭게 피어나는 말을 써서 우리 생각을 가꾸면 된다. 열 살 어린이하고 사이좋게 주고받을 수 있을 만한 쉬우면서 수수하고 재미난 말을 새삼스레 떠올리면서 우리 꿈을 말에 얹으면 된다. 학교 문턱을 밟은 적이 없이 시골에서 흙을 살리는 할머니랑 할아버지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만한 쉬우면서 투박하고 사랑스러운 말을 산뜻하게 되새기면서 우리 마음을 말에 실으면 된다. 생각을 살릴 적에 살아나는 말이다. 마음을 사랑할 적에 살아나는 글이다. 2017.4.30.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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