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골목의 숨은 유적 찾기 - 왔노라, 찾았노라, 내 발로!
안민영 지음, 임근선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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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69


왜 친일파가 살던 집까지 다리 아프게 살필까?
― 서울 골목의 숨은 유적 찾기
 안민영 글
 임근선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펴냄, 2017.4.7. 14000원


  어디에나 ‘숨은 유적’이 있습니다. 도시이든 시골이든 숨은 유적이 있고, 숨은 유물도 있어요. 제가 사는 시골에도 숨은 유적이 있어요. 문화재로 오르지 않았어도 마을 곳곳에 고인돌이 있습니다. 어느 집에는 마당 한켠에, 어느 집에는 밭 한켠에 고인돌이 덩그러니 있지요.

  저희 집 밭뙈기에서 ‘숨은 유물’을 캐내기도 합니다. 어떤 숨은 유물인가 하면 1980년대 첫무렵에 전라도 쪽에서 돌던 ‘짝퉁 베지밀 유리병’입니다. 이곳 시골에 처음 터를 얻어 밭을 일구려고 바지런히 호미질을 하다가 땅속에서 캐냈어요. 요새는 볼 수 없는 ‘짝퉁 베지밀 유리병’은 어느 모로 본다면 쓰레기일 수 있을 텐데, 이런 쓰레기도 서른 해 남짓 흐르면, 또 여기에 서른 해가 더 흐르면 ‘지난 어느 한때를 돌아보는 유물’ 구실을 할는지 몰라요.


겸재 그림 속의 필운대는 소나무 숲 뒤의 절벽과 그 앞의 너른 바위가 인상적이에요. 그러나 현재는 바위 바닥 위로 건물이 세워져 있어 예전과는 풍경이 많이 달라졌어요. (24쪽)

수성동 계곡을 찾아 올라가는 길은 여느 계곡 길과 달라요. 주택가 좁은 골목길이 이어지죠. 숲도 없는 이런 도심에 무슨 계곡이 있을까 생각하며 골목 끝에 이를 무렵, 갑자기 인왕산의 풍경이 펼쳐진답니다. (32쪽)

수성동 계곡 복원 사업으로 아파트를 철거하기로 결정하자, 오랜 기간 이곳에서 살아온 주민들은 아쉬움이 컸던 거예요. 그래서 건물 일부의 흔적이라도 남아 있기를 원했고, 결국 서울시에서 이런 잔해를 남겨 둔 거라고 해요. (37쪽)


  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안민영 님이 쓴 《서울 골목의 숨은 유적 찾기》(책과함께어린이,2017)를 읽습니다. 이 책은 역사교사 한 사람이 손과 발과 땀과 품으로 일구었다고 할 만합니다. 숱한 역사 자료를 더듬고, 수없이 골목을 헤집으면서 ‘숨은 유적’을 하나하나 찾아냅니다. 스쳐 지나갈 적에는 알아볼 수 없는 이야기를 다리품을 팔거나 손품을 팔면서 속속들이 찾아내어 밝혀요.

  이 책은 닷새에 걸쳐서 다섯 군데 숨은 유적을 이야기합니다. 닷새 동안 다섯 곳을 함께 걷자고 이끌지요.

  이 대목에서 얼핏 ‘고작 닷새를 걷는다고?’라든지 ‘겨우 다섯 군데라고?’라 여길 수 있어요. 그런데 닷새에 걸쳐 다섯 군데를 걷자면 한두 시간이 아닌 여러 시간을 걸어야 합니다. 여러 시간을 걸으며 여러 가지를 보아야 합니다.

  슥 훑고 지나가는 닷새나 다섯 군데가 아닙니다. 한 가지를 바라보더라도 깊고 넓게 바라보면서 이러한 ‘숨은 유적’하고 얽힌 수수께끼하고 실마리를 더 곰곰이 생각해 보자는 뜻이지요. 더 많은 것을 보거나 더 먼 길을 나서기 앞서, 작은 것 하나를 눈여겨볼 줄 아는 몸짓하고 마음을 들려준다고 하겠습니다.


나라 팔아넘기고 사례금을 받은 윤덕영은 프랑스에서 넘어온 설계도를 입수해 집을 지었어요. 지금 우리가 사진으로만 봐도 입이 떡 벌어지는데,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땠을까요. (44쪽)

지금 답사를 다니면서 혹시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나요? 우리가 왜 친일파가 살던 집의 흔적까지 찾아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이죠. 여태껏 우리는 벽수산장 입구의 대문 돌기둥을 찾고, 벽수산장이 있던 곳을 둘러보고, 99칸 한옥이 있던 곳까지 살펴봤어요. 어땠나요? 다리 아프다고요? 그래요. 다리 아플 만큼 꽤 긴 거리였죠. 그만큼 당시 친일파 윤덕영이 소유했던 토지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던 거죠. (60∼61쪽)


  《서울 골목의 숨은 유적 찾기》는 첫날 ‘서촌 일대’를 걷습니다. 배화여고 둘레에 있는 필운대에서 첫발을 뗍니다. 백호정 바위 글씨를 살피고, 수성동 골짜기하고 기린교를 살피지요. 서울 한복판에서 ‘골짜기’를 살펴요. 재미나지요.

  이다음으로 박노수 집을 돌아봅니다. 벽수산장이라는 우람한 집이 있었다는 터를 돌아보고, 이 벽수산장이 선 자국을 알려주는 담장이나 돌기둥이나 다릿돌을 찾아나섭니다. 윤덕영 집도 돌아봐요.

  일제강점기에 친일매국을 한 사람들 집을 돌아보는 길인데, 이러한 사람들 옛 집터를 돌아보는 데에도 뜻이 있습니다. 이들이 나라를 팔며 휘두르던 무시무시한 권력을 새삼스레 되새기고, 우리가 이 땅에서 새롭게 걸어갈 길을 되짚는 뜻이 있어요.

  가재우물을 살피고, 우당기념관을 지나서, 선희궁과 세심대를 살펴요. 바위에 새겨진 글씨를 또 봅니다. 신교 다릿돌이 오늘날 어디에 있고, 이 다릿돌을 어떻게 찾아냈는가 하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동안 학교 운동장에 있던 돌 조각들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했죠. 최근에 100년 전 독일 신부들이 찍은 사진 한 장이 발견되면서 운동장 조각들이 신교 다릿돌의 일부라는 사실이 밝혀진 거예요. (78쪽)

10여 년 전에 찍힌 사진을 보면, 그때만 해도 집이 부서지지 않고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어요. 그때 잘 보존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죠. 그런데 건물 아래쪽으로 몇 층의 기단이 보이네요. 꽤 공들여 돌을 깎은 듯하죠. 현진건 선생이 집을 지을 때 깎은 건 아닌 것 같아요. (98쪽)


  둘째 날은 ‘창의문 밖 동네’를 걸어요. 이때에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현진건 집 자리를 살핍니다. 현진건 님이 살던 집은 얼마 앞서까지 꽤 멀쩡하게 있었다지만, 그만 헐리고 사라졌다지요. 한국 현대문학을 밝힌 이들 가운데 옛집이 오늘날까지 멀쩡히 살아남은 곳이 매우 드물다는데, 이 가운데 한 곳인 현진건 집은 나라에서도 서울에서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셋째 날은 ‘한양도성’을 인왕산을 따라서 걸어요. 만만할 수 없는 길입니다. 도성길을 걸으면서 성을 쌓은 돌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엿봅니다.

  넷째 날은 ‘서대문 밖 동네’를 걸어요. 서대문 밖에 있는 독립문이 언제 어떻게 자리를 옮겼는가를 살피고, 서대문형무소를 둘러싼 이야기를 나눕니다. 옥바라지 여관 골목을 지나고 ‘달쿠샤’라는 집을 살펴요. 달쿠샤는 오랫동안 수수께끼처럼 있던 집이라고 했다더군요. 이 집을 지은 서양사람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사람을 도우려고 독립운동을 함께 했다는데, 이 때문에 한국에서 쫓겨났대요. 그래서 이 집을 지은 서양사람이 살던 집은 오랫동안 빈 채 있었다더군요.

  이제는 병원 한쪽에 움츠러든 경교장을 돌아보고 서대문 터가 어디인가를 살핍니다. 이러구러 본다면 넷째 날에 걷는 곳은 한국 현대사에서 독립운동과 맞물립니다. 그런데 독립운동하고 맞물리는 ‘숨은 유적’은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팔아먹으려고 한 이들하고 다르게 아프고 슬픈 자국이기 일쑤입니다. 더구나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 이들이 살던 집은 좀처럼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기도 합니다.


(서대문 형무소) 건물과 담장이 헐리면서 남은 벽돌은 이 부근의 독립공원을 조성하는 데 쓰였지요. 일부는 강원도의 한 공사장에 팔려 나갔다가 뒤늦게 여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고요. 그 벽돌은 서대문형무소라는 유적지의 한 조각이기도 하지만, 갇혀 있던 독립운동가들이 힘들게 노동(노역)을 해서 만든 것이기도 하거든요. (169쪽)

(독립운동을 한) 테일러 가족이 1942년에 미국으로 추방된 뒤 딜쿠샤는 주인이 없는 채로 방치되어 왔죠. 그러다가 10여 가구가 이곳으로 들어와 칸을 나누어 살기 시작했어요. (178쪽)

김구 선생 서거 후 경교장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요. 몇몇 나라의 대사관으로 사용되다가 병원이 들어서지요. 경교장 뒤로 병원 건물이 지어지고, 경교장 내부도 병원 공간으로 바뀌면서 변화가 생기죠. (192∼193쪽)


  《서울 골목의 숨은 유적 찾기》는 다섯째 날 ‘정동 일대’를 걸으며 마무리를 짓습니다. 옛 러시아 공사관을 지나고, 프랑스 공사관하고 신사 참배 터를 지나요. 손탁호텔 터하고 이화학당을 살피고, 유관순 빨래터라는 곳을 돌아보지요. 이밖에 정동교회나 배재학당이나 경성재판소나 덕수궁 구름다리 들을 돌아보는데, 알게 모르게 서울 한복판에서 드러날 듯 드러나지 않을 듯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서울은 눈부시게 달라져요. 아파트뿐 아니라 건물이 매우 높게 올라요. 서울에서 서른 해 즈음 된 건물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고 할 만합니다. 쉰 해나 일흔 해를 묵은 건물이나 집은 더욱 쉽지 않고요. 꼭 한 곳에서 쉰 해 동안 자리를 지킨 오랜 가게를 찾아야 하지 않더라도, 너무 빠르게 달라지는 서울인 터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이거나 모이거나 남기 어렵다고도 할 만해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성공회 서울성당에서는 기와, 처마와 서까래, 한옥 문살 등의 우리 전통 가옥 요소를 찾아볼 수 있었어요. 서양 기독교가 현지에 와서 건축 문화를 일부 수용하고 조화를 이루려 한 노력으로 볼 수 있어요. (252쪽)


  숨은 유적은 지난날에는 유적이 아닌 살림이었습니다. 숨은 유적은 지난날에는 유적이 아닌 무시무시한 권력이었습니다. 숨은 유적은 지난날에는 뼈아픈 생채기였습니다. 숨은 유적은 지난날에는 수수한 마을이거나 골짜기이거나 바위였습니다.

  2017년 오늘날 우리는 이 땅에 새로운 유적을 아로새길 수 있습니다. 촛불을 든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광화문 한쪽에 조그맣게 ‘촛불돌’을 놓을 수 있어요. 거짓으로 얼룩진 권력을 평화롭게 끌어내린 ‘촛불돌’을 놓을 만해요. 촛불돌 곁에는 거짓으로 얼룩진 권력이 나라를 어지럽히는 동안 아프게 가라앉고 만 배 한 척을 되새기는 ‘뱃돌’을 놓을 수 있어요. 바다에 가라앉는 배가 아닌, 하늘로 날아오르는 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픈 사람들 가슴이 아물면서 새로운 사랑이 돋을 수 있기를 바라는 꿈을 담은 ‘뱃돌’을 나란히 작게 둘 만합니다.

  우리는 나라 곳곳에 ‘소녀상’을 놓으면서 우리가 지나온 길을 되새기고, 앞으로 걸어갈 길을 톺아봅니다. 겉보기로는 작은 소녀상일 뿐이겠으나, 우리 역사는 바로 우리 손으로 짓는다고 하는 뜻을 밝히는 거울이 되어요.

  숨은 유적을 찾는 걸음이란, 숨은 이웃을 찾고, 숨은 역사를 만나며, 숨은 새길을 헤아리는 나들이라고 느낍니다. 닷새에 걸쳐 서울에서 숨은 유적을 찾아본 몸짓으로 나라 곳곳에 깃든 숨은 유적을 함께 찾아나서 보면 어떨까요? 2017.4.26.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비평)

* 다음 그림/사진은 책과함께어린이 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 고맙게 받아서 붙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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