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의 빛깔들 - 리타 테일러가 만난 한국의 자연과 사람들
리타 테일러 지음, 정홍섭 옮김 / 좁쌀한알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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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85



한국을 ‘감빛’이라 노래한 서양 이웃

― 감의 빛깔들

 리타 테일러 글

 정홍섭 옮김

 좁쌀한알 펴냄, 2017.3.8. 13000원



  꼭 시골에서 살아야 감이나 감나무를 찬찬히 살펴볼 수 있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살더라도 마당이 있고, 이 마당에 감나무가 있다면 감이며 감나무를 찬찬히 살펴볼 수 있어요. 우리 집에 마당이 없다 하더라도 마당 있는 이웃집을 찬찬히 살피면 감이랑 감나무를 여러모로 알 수 있고요.


  제가 어릴 적에 살던 고장에서는 감나무를 좀처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어릴 적에는 노느라 바쁘니 이웃집 나무를 살필 생각을 안 했고, 마당 있는 동무네 집에 놀러갔어도 동무네 집에 커다란 감나무가 있는 줄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마흔 줄을 넘는 나이가 되어서야 제가 나고 자란 고장에서 오랜 골목집에서 요즈음도 그대로 사는 동무네 집 마당에 동무네 집 지붕보다 높게 자란 감나무가 있는 줄 알아차립니다.


  어쩌면 그 감나무는 서른 해쯤 앞서는 아직 작았을는지 모르지요. 어쩌면 서른 해쯤 앞서도 그 감나무는 그대로 컸을 수 있어요. 한 가지를 뚜렷하게 말해 본다면, 참말 어릴 적에는 감나무는 바라보지 않고 ‘감알이라는 열매만 먹었’습니다.



이 산은 대구 근처의 교통이 편리한 위치에 있고 넓은 고속도로를 이용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떼로 몰려오는 유람객들에게 특히 피해를 입기 쉽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동화사는 관광 때문에 많은 매력을 잃어버렸다. 관광안내소가 완비되어 있어서, 번잡한 날에는 사찰이라기보다는 쇼핑몰처럼 보인다. (37쪽)


대학이 점점 더 학위 생산 장소로, 사회의 경제 권력에 봉사하는 도구로 되었고, 창조적 사고를 할 줄 아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산업기술 발전에만 치중하는 장소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강의실을 갑갑하게 느끼는 일이 많았다. (54쪽)



  스위스에서 태어나고 캐나다에서 자란 리타 테일러 님이 쓴 《감의 빛깔들》(좁쌀한알,2017)을 읽습니다. 글쓴이는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면서 일했다고 합니다. 이 나라 저 나라에 깃들며 젊은이를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한국에도 깃들어 한국 젊은이를 가르쳤다고 해요. 이 책 《감의 빛깔들》은 글쓴이가 세계 여러 나라에 깃들며 살다가 한국에 마음으로 뿌리를 내리면서 느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글쓴이가 돌아본 여러 나라 가운데 한국이 여러모로 돋보이도록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데, 이 아름다움하고 사랑스러움이 차츰 스러지거나 짓밟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아프다는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내원사와 흩어져 있는 몇몇 암자에 사는 비구니 스님들 말고는 거주자가 없기 때문에, 천성산은 이제까지 멸종 위기 꽃과 벌레와 새와 독특한 도롱뇽 종들이 사는 섬세한 생태계를 그럭저럭 유지해 왔다. (95쪽)


오랫동안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그리고 오늘날에는 공격적인 국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태도가 바로 “밀어붙이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들에게서 아이다움을 빼앗곤 하는 ‘빨리 빨리’ 사회의 단면이기도 하다. 아이들조차도 늘 재촉당하는 말을 듣는다. ‘뒤처지지’ 않도록 빨리 먹어라, 빨리 입어라, 빨리 뛰어라, 다시 말해서 좋은 유치원, 좋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일류대학에 들어가야 한다. (134쪽)



  어느 한 나라에 몸을 맡기기보다는 지구라는 별에서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기를 좋아하던 리타 테일러 님은 어느 대목에서 한국에 사로잡혔을까요? 이녁은 다른 나라가 아닌 한국 이야기를 글로 쓰자는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요? 이녁은 한국 이야기를 이녁 나름대로 글로 남기자고 생각하면서 이 나라에서 어떤 삶을 되새겼을까요?


  이제는 이 말이 한국하고 안 어울릴 수 있을 텐데, 서양에서는 한국을 두고 “고요한 아침 나라”라 했어요. 고요하면서, 밝게 피어나는, 이 두 가지 기운이 함께 흐르는 나라가 한국이라 했지요.


  아무래도 오늘날은 도시가 대단히 클 뿐 아니라 어디로든 이어지든 찻길이 아주 많습니다. 공항도 많고 자동차도 많아요. 송전탑도 발전소도 골프장도 공장도 많지요. 커다란 축구장이나 경기장까지 많습니다. 이런 한국을 바라보는 리타 테일러 님은 한국을 “감 빛깔 같은 나라”라고 이야기해요.



국가 안보에 대한 노골적 주장과 그보다는 약간 덜 노골적이지만 더 강력한 경제적 필요의 주장이, 우리가 생존하고자 할 때 내리는 결정의 유일한 토대인 인간성에 관한 우리의 감각을 계속해서 압도할 것인가? (141쪽)


점점 더 물이 메말라가고 있는 나라에서, 흙을 오염시키고 물을 고갈시키고야 말 골프장을 짓기로 하는 것은 물론 현재 진행중인 광기의 일부다. (145쪽)



  ‘고요한’ 나라가 ‘빨리빨리’ 나라가 된 지 제법 오래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 ‘빨리빨리’가 깃든 지 고작 쉰 해 남짓입니다. 새마을운동이다 경제개발이다 하면서 난데없이 ‘빨리빨리’가 퍼졌어요. 이러면서 시골사람은 도시로 가도록 내몰렸고, 도시사람은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하는 살림으로 등이 떠밀렸고요. 게다가 경제성장을 퍽 크게 이룬 오늘날에도 경제성장이라는 숫자에 아직 발목이 잡힙니다. 우리가 선 자리를 차분히 돌아볼 겨를을 못 내지요. 우리 둘레를 가만히 헤아릴 틈을 못 내고 말아요. ‘이웃사촌·이웃사랑’ 같은 말은 아스라한 옛말처럼 됩니다.


  이러면서 한국에서는 ‘경제성장’ 못지않게 ‘안보’라는 이름이 불거지지요. ‘어깨동무·두레’ 같은 이름이나 ‘평화·평등’ 같은 이름은 꽤 머나먼 이름 같기도 해요.


  이 나라 숨결을 돌아본다면 “고요한 아침 나라”에서는 서로 돕고 함께 걸으며 같이 나누는 살림이었지 싶어요. 이러한 숨결이 ‘빨리빨리’로 바뀌면서 ‘내 앞가림’으로 함께 바뀌었겠지요. 고요하고 돌아보고 밝아 오는 아침처럼 삶을 짓는다면, 이웃을 느긋하게 마주하면서 사랑하는 손길이 될 만하지 싶어요.


  꼭 서양사람 눈길로 이 나라를 볼 까닭은 없습니다만, 바깥에서 차분히 바라본 눈길인 “고요한 아침 나라” 모습을 우리가 스스로 되찾으려고 한다면, 시나브로 이웃사랑이며 마을사랑을 이룰 만하지 싶어요. 4대강 사업 같은 막삽질이란 바로 더 많은 돈이나 빨리빨리 뭔가 뚝딱 세우려고 하던 흐름하고 맞닿아요. 우리가 ‘고요한’ 마음이 되고 ‘아침’을 기쁘게 맞이하려는 마음으로 거듭난다면, 막삽질로 망가진 4대강을 비롯한 이 나라를 예전 못지않게 아름다운 나라로, 이른바 ‘금수강산’으로 새롭게 가꾸는 길을 찾으리라 봅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영어를 능숙하게 연마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물론 부인할 수는 없다. 교조화, 균질화, 통제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영어가 있다. 그런가 하면 가슴으로 말하기 때문에 그 소리가 모음의 풍요로움과 함께 반짝이는 소리를 내는 풍부하고, 아름답고, 살아 있는 언어가 되는 또 다른 영어가 있다. (168쪽)


왜 한국어를 영어에 종속시킨다는 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한국 문화에는 자존감이 없고 결국 영어가 한국에서 상징하는 것, 미국 문화와 소비주의에 종속돼도 좋다는 말인가? (174쪽)



  《감의 빛깔들》을 쓴 리타 테일러 님은 ‘두 가지 영어’를 말하기도 합니다. 세계에서 권력이 된 영어하고, 아름다운 노래와 같은 영어를 말해요. 오늘날 한국은 아름다운 노래와 같은 영어를 가르치거나 배우는 얼거리를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에서 권력인 영어를 더 빨리 일찍 가르치려는 물살에 휩쓸린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은 한국말에서도 엇비슷하게 찾아볼 만해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한국말이 있으나, 일제강점기 찌꺼기말에 물든 한국말에다가 번역 말씨에 젖어든 한국말이 있어요. 아직 털어내지 못한 중국 한자말에 매인 한국말도 있고요.


  한국말다운 한국말은 어디에 있을까요? 감빛과 같이 발그레하면서 따사롭고 아름다운 한국말은 어디에 있을까요? 초등학교에서 감빛 같은 한국말을 가르치는지요? 입시 과목 ‘국어’가 아닌 슬기롭고 따스하며 넉넉한 한국말은 어디에서 가르치거나 배우는지요?



새들과 햇빛과 비에 반짝이는 나뭇잎들과, 나무와 시내와 개울의 언어 그리고 태양 불을 빨아들여 뜨거워지니 소나무 그늘이 들고 나며 어루만져 주는 산 바위들의 언어를 듣게 해 주자. 그러면 아이 하나하나가 자기 진짜 이름을 불러 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176∼177쪽)



  이 책에 나온 “태양 불”은 아무래도 ‘햇볕’을 잘못 옮긴 대목 같습니다. 아무튼 아이들이 해와 새와 나무와 시내와 숲이 들려주는 ‘말’을 듣고 자랄 수 있다면 이 나라는 매우 아름다운 나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라 느껴요. 동서남을 불러싼 너른 바다를 마주하면서 ‘바다가 들려주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싱그러운 마음을 키울 만하지 싶어요. 봄이 되어 이 땅을 새롭게 찾아온 제비를 반기며 ‘제비가 들려주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산뜻한 마음을 북돋울 만하지 싶습니다.


  감나무 한 그루를 보살피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감알이라는 열매가 어떻게 태어나는가 하는 흐름을 생각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감빛으로 마주한 서양사람 리타 테일러 님이 즐거운 사랑으로 적바림한 글을 곱씹습니다. 감빛이기도 하고, 동백빛이기도 하고, 앵두빛이기도 하고, 유채빛이기도 하고, 개나리빛이기도 하고, 참달래빛이기도 하고, 쑥빛이기도 하고, 마늘빛이기도 한, 온통 무지개빛이라 할 만한 살가운 숨결이 흐르는 이 나라를 꿈꾸어 봅니다. 2017.4.22.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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