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4.10.
오늘은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이 아니라 ‘군내버스에서 못 읽은 책’이다. 고흥에서 인천까지 가느라 시외버스를 타야 하는데, 고흥서 인천까지는 안산을 돌아서 가느라 훨씬 오래 걸리기에 서울로 가서 지하철을 갈아타기로 한다. 이렇게 가는 길이 바로 인천으로 갈 적보다 빠르고 찻삯마저 적게 든다! 참말로 한국은 ‘모든 길은 서울로!’인 나라이다. 아무튼 마을 앞을 지나가는 첫 군내버스는 손님이 가득하기에 서서 간다. 가방에 챙긴 책은 못 꺼낸다. 그러나 읍내에 닿아 서울 가는 시외버스를 한 시간 동안 기다려야 하니, 이동안 책을 읽는다. 서울에서 보자면 어째 한 시간이나 미리 가서 시외버스를 기다리느냐 할 만하지만, 여덟 시 반 시외버스 때를 맞추려면 마을 앞에서 읍내로 나가는 버스를 일곱 시에 잡아야 한다. 그 다음 군내버스는 여덟 시 사십오 분에 있다. 먼저 며칠 앞서 군내버스에서 읽다가 못 끝낸 《헤밍웨이를 따라 파리를 걷다》를 마저 읽는다. 뒤쪽으로 갈수록 이야기가 좀 느슨하다. ‘헤밍웨이를 따라’ 걷는 이야기보다는 프랑스 문화 상식이나 지식 이야기가 많다. 다른 자료나 책에 다 있는 상식이나 지식을 줄줄이 옮기기보다는 글쓴이가 파리라는 도시를 걷고 누비면서 받아들인 새로운 생각이나 느낌을 펼치면 좋았을 텐데. 글쓴이 생각이나 느낌보다 상식이나 지식이 너무 길어서 아쉽다. 한 권을 마치고서 《나의 유서 맨발의 겐》을 조금 읽다가 《세상이 가둔 천재 페렐만》을 차근차근 읽는다. 이 책도 군내버스에서 읽으려고 다시금 챙긴다. 서울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읽다가 시외버스에서 더 읽고, 시외버스에서 눈을 붙인 뒤 인천 가는 지하철에서도 더 읽는다. 《세상이 가둔 천재 페렐만》은 페렐만하고 얽힌 삶자취를 꼼꼼히 새기면서 읽느라 더디 넘긴다. 그만큼 이 책은 단단하고 알차다. 귀담아듣거나 배우거나 새길 만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숲노래/최종규)